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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샘
시 106: 1-8, 딤후 3: 1-5
오늘 구약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면으로 많은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양을 치면서 신앙적으로 깊은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골리앗과 맞서 싸울 용기를 내었고 그 싸움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능력을 참으로 실감나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사울왕의 시기로 인해, 또 후에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그리고 많은 대적들로 인해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당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여 그야말로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많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니 다윗이 얼마나 깊은 신앙적인 안목을 가졌겠습니까. 그는 본문에서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신약 본문의 말씀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가지는 태도가 어떠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태도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감사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으면서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의 샘”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감사하는 자로 삽니다.
구약 본문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사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본문 1절에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했습니다. 선하심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모든 피조물을 향해 선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시 145:9에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했고,
시 145:15에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했으며,
시 145:16에는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와 허물 잘 못한 것까지도 선으로 바꾸어 좋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롬8:28)
*다음에,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1절에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23:6에서 여호와를 나의 목자라 고백하며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했습니다.
벧전 2:3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친히 맛 본 자였습니다. 그가 한 때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자였지만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낙심하여 다시 고기 잡으러 갔을 때 부활하신 주님은 친히 갈릴리로 찾아 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신 후 주님의 영 때를 먹이라는 부탁을 받고 주님을 위해 충성 하다 기쁨으로 순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인자(헤세드)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4:8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는데, 바로 구약의 인자하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반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1만 달란트 빚 진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도저히 엄청난 빚을 갚을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아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진 자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유한 포도원 주인이 자기가 고용한 일군 중 한 사람이 값비싼 포도주 통을 엎질러서 포도주를 다 쏟은 것을 알고 그를 법정에 고발합니다.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법은 당신 편에 있소. 당신의 일군은 마땅히 당신에게 손해 배상을 해야 하오. 그러나 당신은 부자이고 일군은 가난하지 않소. 듣기에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이라고 들었소. 그래서 오늘 나는 당신에게 법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헤세드에 따라 행동하기를 판결하는 바이오. 헤세드의 원리에 따라 고소를 취하하고 당신의 일군에게 임금을 지불하여 주시면 좋겠소. 당신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손해를 보지만 영적으로는 더 부요해 지실 것이오. 그래서 당신이 일군을 용서한 것처럼 하나님도 당신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헤세드로 인해 세상이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해주시면 좋겠소"(해롤드 쿠스너, The Lord is my shepherd, p.160-161) 그는 재판관의 권고를 따랐다고 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들은 사람들을 인자하게 대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하나가 영원성입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인간은 유한하고도 순간적인 존재로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요', ‘잠깐 동안 피었다가 시드는 풀의 꽃같은 존재요,’,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 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그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 21:3-4에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했고, 6절에는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했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 충성했던 사도 바울은 고후 4:18에서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영원하심을 깊이 맛보아 알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성도는 늘 감사의 샘이 솟아나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처한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아도 감사의 샘이 마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샘에서 나오는 물을 계속 퍼내면 계속 신선한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샘과 샘 주변이 오염되지 않도록 계속 관리하는 일이 필요한 것처럼 감사의 샘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샘이 마르거나 오염되면 더 이상 샘을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감사의 샘이 마르고 오염되면 원망과 불평이 쓴물처럼 솟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까지 희생하신 사랑을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요 3:16-17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사랑, 이 한 가지만으로도 감사 할 필요충분조건이 됩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엡 2:8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 보다 더 귀하고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수영과 다이빙을 가르치는 한 수영 코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자 수영을 하고 나면 잘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풀장으로 갔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전등을 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풀장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붕이 유리로 덮여 있었기에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달빛으로 사방이 그리 어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었고, 그 빛에 비춰진 그림자는 풀장의 반대편 벽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다이빙을 하려고 발판에 올라섰습니다. 몸과 팔을 완전한 십자가의 형상을 그려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냥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왜 그 순간에 다이빙을 하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위험에 대한 어떠한 예감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그림자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 배웠던 찬송가 한 구절을 암송했습니다. '그가 죽으심으로 내가 용서받으니....' 다이빙 발판 위에서 얼마 동안을 서 있었는지, 그리고 왜 다이빙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이빙 발판에서 내려와 풀장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바닥에 닿자 차며 부드러운 감촉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전날 밤 풀장 관리인이 물을 다 빼놓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냥 다이빙했다면, 그것은 죽음으로 뛰어드는 다이빙이었을 것입니다. 벽에 비춰진 십자가가 죽음에서 구해 냈던 것입니다. 자비로 목숨을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 차다 찬 바닥에 그대로 무릎 꿇고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십사 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통해 주신 특별한 은혜와 순간순간 은혜 주심에 범사에 감사 하는 성도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감사의 샘이 마르면 영적 고갈이 오고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신약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1절)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종말에 주님이 오셔서 심판할 때가 가까워지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해지고 더 악해질 것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본문에 무려 19가지나 되는 죄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모습을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의 때에 ‘죄가 세상에 관영했다.’고 했는데, 죄가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역시 하나님을 외면 한 체 죄 가운데 살아갈 때 불로 그 도성을 멸하셨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대하여 계18:5절에서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지적한 죄를 보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통해 사랑에 대한 원칙을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며 살라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이웃은 사랑의 대상에서 빠지고 자기만 알고,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자기만 사랑하는 이기주의에 빠져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자기를 사랑하게 된 원인이 바로 돈을 사랑한데서 온 것입니다. 돈을 가치 있게 사용하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 되지만 잘 못 사용하면 돈 때문에 타락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고, 사회에 죄악의 풍조를 만들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장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자기중심의 사람은 남을 비방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 자랑과 자기도취에 빠져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하여 다른 이를 업신여기고 자기가 최고인줄로 자부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믿음 안에 사는 성도는 주님을 자랑합니다. 시편 본문에서 다윗은 나를 구원하신 주를 찬양하고, 주를 높이면서 주를 자랑하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주님 은혜를 깨달은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주님만을 높이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거역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죄의 늪에 빠지면 부모나 남에게 받은 은혜, 사랑은 곧 잊지 버리고, 대신 부모나 남이 내게 상처 준 일과 억울한 일은 잊지 않고 용서하지 않으며 보복하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 심령은 평안이 없습니다. 성경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으니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사라지게 되고, 부모나 선한 이웃이 베푼 사랑을 잊게 되니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으나 타락하여 모든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고 살다가 큰 죄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남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고한 자를 모함하고 참소합니다. 자제력을 상실하여 절제하지 못합니다.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관용하는 마음 대신 맹수처럼 사납습니다.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풍조에서는 믿음을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감사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성도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으면서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의 샘”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감사하는 자로 삽니다.
◈.성도는 늘 감사의 샘이 솟아나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감사의 샘이 마르면 영적 고갈이 오고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아멘.
<2024. 11. 14.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