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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神賦 - 曹植(子建)
黃初三年 황초 삼년에,
余朝京師 경사(京師)에 입조하였다
還濟洛川 돌아가는 길에 낙천을 지나게 되었다
古人有言 옛 사람이 이르기를
斯水之神 이 물에 선녀가 있으니
名曰宓妃 그 이름이 복비라
感宋玉對楚王 송옥과 초왕과
說神女之事 무산신녀의 일에 느끼는 바 있어
遂作斯賦 이 부를 짓는다
其詞曰
余從京師 경사를 떠나
言婦東藩 동녘으로 돌아가네
背伊闕 越轘轅 이궐산을 등지고 환원산 넘고
經通谷 陵景山 통곡을 지나 경산에 이르니
日旣西傾 이미 해가 저물고
車殆馬煩 수레와 말이 지치었으매
爾迺稅駕乎蘅皐 물가에 수레를 쉬고
秣駟乎芝田 지초 무성한 밭에서
容與乎楊林 여물을 먹이며 버들숲에 앉아
流眄乎洛川 흘러가는 낙천을 바라보매
於是精移神駭 문득 정신이 산란하였네.
忽焉思散 홀연히 생각이 흩어져
俯則未察 굽어 보아도 보이지 않고
仰以殊觀 우러러 보아도 달랐는데,
覩一麗人于巖之畔 바윗가에 서 있는 한 미인을 보았네.
爾迺援御者而告之曰 이에 어자를 불러 묻기를,
爾有覿於彼者乎 자네도 저 이가 보이는가,
彼何人斯 若此之豔也 저 이는 누구이기에 저토록이나 고운가
御者對曰 어자가 답하니
臣聞河洛之神 제가 듣기로 낙수의 신을
名曰宓妃 복비라 이르는 바
則君王之所見也 군왕께서 보신 이가
無迺是乎 그 이가 아닐까 하나이다.
其狀若何 그 모습이 어떠한지
臣願聞之 소인도 궁금하다 이르매
余告之曰 내 답하기를
其形也 翩若驚鴻 그 자태는 놀란 기러기처럼 날렵하고
婉若游龍 노니는 용과도 같아
榮曜秋菊 가을의 국화처럼 빛나고
華茂春松 봄날의 소나무처럼 무성하구나.
髣髴兮若輕雲之蔽月 엷은 구름에 쌓인 달처럼 아련하고
飄飄兮若流風之廻雪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벼우니
遠而望之 멀리서 바라보니
皎若太陽升朝霞 아침 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고,
迫而察之 가까이서 바라보니
灼若芙蕖出淥波 녹빛 물결 위로 피어난 연꽃과 같네.
穠纖得中 섬려한 모습과 아담한
脩短合度 키마저 모두가 알맞고 적합하니
肩若削成 그 어깨는 일부러 조각한 듯 하고
腰如約素 그 허리는 흰 비단으로 묶은 것 같구나.
延頸秀項 길고 가녀린 목덜미에
皓質呈露 절로 드러난 흰 살결은
芳澤無加 향기로운 연지도 호사한
鉛華不御 분도 바르지 아니하였구나.
雲髻峩峩 구름같은 머리를 높이 틀어올리고
脩眉聯娟 그 아미는 가늘고 길게 흐르며
丹脣外朗 붉은 입술은 밖으로 빛나고
皓齒內鮮 백옥같은 이는 입술 사이에서 곱구나.
明眸善睞 눈웃음치는 눈동자는 아름답고
靨輔承權 그 보조개가 능히 마음을 끄나니
瓌姿豔逸 그 맵시가 고와 이를 데 없고
儀靜澤閑 거동이 고요하여 윤기가 흐르니
柔情綽態 그 부드러운 마음에 가냘픈 자태에
媚於語言 말투 또한 더욱 아름답구나.
奇服曠世 기이한 복색은 지상에는 없으며
骨像應圖 그 자태 그림과 같으니,
披羅衣之璀粲兮 찬연한 비단옷에
珥瑤碧之華琚 귀에는 아름다운 귀걸이 달고
戴金翠之首飾 금비취 머리장식에
綴明珠以耀軀 밝은 구슬을 꿰어 몸치장하고
踐遠游之文履 무늬 신 신고
曳霧綃之輕裾 얇은 명주치마를 끌며
微幽蘭之芳藹兮 그윽한 난초 향기에 묻혀
步踟躕於山隅 산모퉁이를 거니네
於是忽焉縱體 이에 몸을 놓아
以遨以嬉 즐겁게 노니니,
左倚采旄 왼쪽은 채색 깃발에 기대었고
右蔭桂旗 오른편은 계수 깃발에 가리웠네
攘皓腕於神滸兮 물가에서 흰 팔 걷고
采湍瀨之玄芝. 여울가에서 현초를 캐는데,
余情悅其淑美兮 내 뜻이 그 맑은 아름다움에 흠모되어
心振蕩而不怡 마음이 흔들려 편안치 않네
無良媒以接歡兮 좋은 매파가 없어 말 전하지 못하여
託微波而通辭 잔물결에 부쳐 전하노니
願誠素之先達 사모하는 내 뜻을 알리고자
解玉佩以要之 구슬 노리개를 풀어 바라네
嗟佳人之信脩 가인은 닦음에 정성되어
羌習禮而明詩 예를 익혔고 시에도 밝으니,
抗瓊珶以和予兮 구슬을 집어 답하기에
指潛淵而爲期 깊은 연못을 가리켜 화답하였네
執眷眷之款實兮 간절한 정을 지녔으나
懼斯靈之我欺 그 속음을 두려워하니
感交甫之棄言兮 정교보의 버림받은 말 생각하고
悵猶豫而狐疑 슬퍼져 머뭇거리며 의심하네
收和顔而靜志兮 온화한 얼굴 거두고 뜻을 조용히 가지며
申禮防以自持 예의를 차려 자신을 지키니
於是洛靈感焉 이에 낙신이 느낀 바 있어
徙倚彷徨 이리 저리 헤매이는데
神光離合 광채가 흩어졌다 모이며
乍陰乍陽 그늘이 되었다 밝아졌다 하니
竦輕軀以鶴立 날렵한 자태 발돋움하여
若將飛而未翔 나는 듯 날지 않고
踐椒塗之郁烈 향기 자욱한 길을 밟고
步蘅薄而流芳 꽃길을 걸어 방향을 퍼트리며
超長吟以永慕兮 길게 읊어 영원히 사모하니
聲哀厲而彌長 그 소리 서러워 더욱 길어지네
迺衆靈雜遝 그리하여 갖은 신령들이 모여들어
命儔嘯侶 서로 짝들을 부르게 하니
或戲淸流 혹자는 맑은 물 속을 노닐고
或翔神渚 혹자는 신령스런 물가를 날며,
或采明珠 혹자는 밝은 구슬을 찾고
或拾翠羽 혹자는 비취빛 깃털을 줍네
從南湘之二妃 남쪽 상강의 두 비를 따르게 하고
攜漢濱之游女 한수가의 여신을 대동하니
歎匏瓜之無匹 포과성이 짝없음을 탄식하고
詠牽牛之獨處 견우성이 홀로 삶을 읊조리네
揚輕袿之綺靡 아름다운 옷자락을 나부끼며
翳脩袖以延佇 긴 소매 가려 물끄러미 서니
體迅飛鳧 날렵하기가 나는 새 같고
飄忽若神 표연하기가 신령과 같네
陵波微步 물결을 밟아 사뿐히 걸으니
羅襪生塵 버선 끝에 먼지가 일고
動無常則 그 몸짓 대중없으니
若危若安 위태한 듯 평안한 듯
進止難期 나아가고 멈추어섬을 예측하기 어려워
若往若還 가는 듯 돌아서는 듯 하네
轉眄流精 돌아서 바라보니
光潤玉顔 옥안이 눈이 부시고
含辭未吐 말을 머금어 내지 않으니
氣若幽蘭 그윽한 난초와 같아
華容婀娜 화용이 눈부셔
令我忘餐 식사를 잊게 하네
於是屛翳收風 이에 병예가 바람을 거두고
川后靜波 천후가 물결을 재우며
馮夷鳴鼓 풍이가 북을 울리고
女媧淸歌 여와가 고운 노래를 부르니
騰文魚以警乘 문어를 띄워 수레를 지키고
鳴玉鸞以偕逝 옥방울을 울리며 더불어 가는구나
六龍儼其齊首 육룡이 머리를 맞대
載雲車之容裔 공손히 수레를 끌고
鯨鯢踊而夾轂 고래가 뛰어올라 바퀴를 돌보며
水禽翔而爲衛 물새가 날아올라 호위하며
於是越北沚 過南岡 북쪽 물가를 넘어 남쪽 산을 지나네
紆素領 廻淸陽 흰 고개를 돌려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動朱脣以徐言 붉은 입술을 열어 천천히
陳交接之大綱 만남의 일을 말하니
恨人神之道殊 사람과 신의 길이 다르매
怨盛年之莫當 아름다운 나날에 함께 하지 못함을 원망하네
抗羅袂以掩涕兮 비단 소매 들어 눈물을 가리나
淚流襟之浪浪 눈물이 떨어져 옷깃을 적시니
悼良會之永絶兮 좋은 만남이 영원히 끊어질 것을 슬퍼하며
哀一逝而異鄕 한번 가니 다른 곳에 있음을 서글퍼 하네
無微情以效愛兮 미미한 정으로 다하지 못한 바 있어
獻江南之明璫 강남의 빛나는 구슬을 바치고
雖潛處於太陰. 비록 깊은 곳에 거할지라도
長寄心於君王 이 마음 긴히 군왕께 거하겠다 하네
忽不悟其所舍 문득 그 있는 곳 뵈지 않더니
悵神宵而蔽光 섭섭히 사라져 빛을 가리네
於是背下陵高 이제 돌아서 높은 곳 오르려 하니
足往神留 발걸음은 가고자 하나 뜻이 머물려 하니
遺情想象 남은 정을 되새기며
顧望懷愁 돌아보며 탄식하네
冀靈體之復形 그 모습 되찾기를 바라며
御輕舟而上泝 작은 배를 몰아 강에 오르니
浮長川而忘反 아득한 강물에 배 띄우고 돌아갈 길 잊으나
思緜緜而增慕 생각은 연이어 그리움만 더하고
夜耿耿而不寐 밤은 깊었는데 잠들지 못하고
霑繁霜而至曙 엉킨 서리에 젖어 새벽에 이르노라
命僕夫而就駕 마부에게 명하여 수레를 내게 하고,
吾將歸乎東路 이제 나는 동로로 돌아가려 하네
攬騑轡以抗策 말고삐 잡아 채찍은 들었으나
悵盤桓而不能去 그 마음 서운하여 돌아서지 못하네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라는 작품입니다.
『천룡팔부(天龍八部)』에서 북명신공(北冥神功), 육맥신검(六脈神劍)과 더불어 단예(段譽)의 3대 무공으로 인용되는 능파미보(凌波微步)는 <낙신부>에 출전을 두고 있습니다. 단예는 무량산(無量山) 석실에서 옥미녀상에 천번 절을 하고 소요파(逍遙派)의 북명신공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얻게되는데, 두루마리에는 능파미보(凌波微步)도 실려있었죠. 그리고 석실내의 각종 무공비급이 보관되어있는 낭환복지(瑯嬛福地)는 원래 중국의 신화전승에서 천제(天帝)가 장서를 보관하는 장소라는군요.^^ 단예는 남해악신(南海惡神)과의 대결과정에서 두루마리의 '능파미보(凌波微步)'라는 글자를 보고는 바로 조식의 <낙신부>의 구절들을 떠올리는데, 미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앞부분 襛纖得衷에서 媚於語言까지의 싯구들은 옥미녀상에 빗대기도 합니다. '媚於語言'의 어언(語言)은 왕어언(王語嫣)을 암시하는 것이겠죠.^^
조식(曹植)
조식(192~232)이『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했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이죠.『삼국지연의』배경이 되는 후한(後漢) 헌제(獻帝 196~220)의 연호가 건안(建安)인데, 조조(曹操)와 그의 아들 조비(曹丕), 조식의 삼조(三曹)와 건안칠자(建安七子)를 중심으로 한 당대의 문학적 성취를 건안문학(建安文學)이라고 한답니다. 조식은 건안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며, 두보(杜甫)이전에는 시성(詩聖)으로 불렸을만큼의 평가받는다는군요. 남조(南朝)때의 시인 사령운(射靈運)은 '천하의 글재주를 한 섬이라 한다면, 조식이 8말을 차지하고 나도 1말을 가져서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사람들은 나머지 1말을 쓰고있다'(天下才共一石, 曹子建獨得八斗, 我得一斗, 自古及今共用一斗.)며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왠지 사령운본인을 내세우는 느낌도 드는군요.^^ 아무튼 <낙신부(洛神賦)>의 서문은 황초삼년(黃初三年)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황초(黃初)는 조비(曹丕)가 220년 헌제(獻帝)를 실각시키고 위(魏) 문제(文帝)로 등극하면서 부터의 연호라는데, 222년이랍니다. 그런데 조식은 <낙신부>를 222년에 쓴 것으로 밝히고 있지만, 조식이 낙양으로 입궐했다는 기록등 정황으로 볼 때 223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군요. 조비가 황제로 즉위한 지 3년이 되는 해라는 것은 조조의 두 아들 조비와 조식의 관계를 생각하면 상당히 암울한 전조로 보이기도 합니다.
煮豆持作羹, 漉菽以爲汁, 콩을 삶아 국을 끓이고, 콩을 걸러 즙을 만드네
萁在釜下然, 豆在釜中泣, 콩대는 솥아래에서 타고있고, 콩은 솥 안에서 울고있네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건만, 어찌 이다지도 괴롭히는가?
조조는 조식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서 후계자로 삼을 생각도 있었던 모양이고, 황제가 된 조비가 동생의 문학적 재질을 시기하여 7보를 걸으며 詩를 짓지 못하면 처형하겠다고 하자, 조식이 지었다는 유명한 <칠보시(七步詩)>입니다. 210년 조조가 업성(鄴城)에 동작대(銅雀臺)라는 청동누대를 건축하자, 조식은 불과 18의 나이에 <동작대부(銅雀臺賦)>를 지어서 조조를 감복하게 만듭니다.『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동작대부>의 '連二橋於東西兮, 若長空之蝃蝀(동서로 두 다리를 이으니 아득한 하늘에 드리운 무지개같구나)를 '攬二喬於東南兮, 樂朝夕之與共'(손책의 첩과 주유의 부인(二喬)을 동남에서 끌고와서 함께 아침저녁으로 즐기리라.)로 바꿔치기를 해서 주유를 격동시키지요.^^ 조식이 평가를 받는 반면, 조비도 재능이 부족한 것은 전혀 아닌데... 배다른 형제도 아니고. 기녀출신으로 조조의 첩이었던 무선황후(武宣皇后) 변씨(卞氏)의 같은 소생인데도 권력이 개입되면 친형제간도 없는 모양입니다.-0-;; <칠보시>는『세설신어(世說新語)』<문학(文學)>편에 처음으로 실리는데,『삼국지연의』에 인용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그 정황에 신빙성을 두기는 어렵다고 하는데, 조조의 후계를 놓고 권력쟁탈전을 벌인 두 형제간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겠죠.
복비(宓妃)
<낙신부(洛神賦)>에서 아름다움의 화신이며 애정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복비(宓妃)는 원래 복희씨(伏羲氏)의 딸이었는데, 강을 건너다가 익사하여 뤄허(落河)의 신이 되었다고하는 중국 신화의 등장하는 물귀신입니다. 그리고 물의 신 하백(河伯)의 부인이라는데, 하백의 잦은 외도로 항아(嫦娥)의 남편으로 활 잘쏘는 후예(后羿)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아무튼 223년 낙양으로 입궐했다가 지금의 산둥성 러쩌(菏澤) 부근에 있었다는 봉토 견성(鄄城)로 돌아가던 조식이 황허(黃河)의 지류인 뤄허(洛河)에 이르러 복비에 빗대어 저술하는 애정비극의 대상은 조비의 황후인 문소황후(文昭皇后) 견부인(甄夫人)이라는군요. 그러니까 조식은 형수에게 애정고백을 하고있는 셈입니다.^^;;
문소황후(文昭皇后 182~221) 견씨(甄氏)는 원래『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원소(袁紹 154~202)의 둘째아들 원희(袁熙 ?~207)에게 시집을 갔답니다. 그런데, 204년 조조가 지금의 허베이성 한단(邯鄲)인근의 업성(鄴城)을 침공하면서 포로로 잡혔고, 조비(曹丕 187~226)가 5살 연상인 견씨를 발견하고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군요. 조식이 어떻게 견씨를 사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 것 같은데, 거의 2천년 가까운 과거의 일이지만, 10년이나 연상의 형수를 흠모하게되는 정황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렵군요. 개인적으로는 <낙신부>는 조식과 견씨의 실제 애정관계에 기반을 두고있다기 보다 조식의 정치적 역정과 맞물린 문학적 감수성내지 상상력의 소산으로 이해하렵니다.^^;; 아무튼 원소의 며느리였으며, 조조의 아들들을 반하게 할만큼의 미인이었던 모양인데, 본문의 '羌習禮而明詩'구절처럼 문학적인 조예도 있었던지 <당상행(塘上行)>이라는 작품도 남겼다는군요. 조비가 황제가 되면서 황후가 되기는 하지만, 조비의 후궁인 곽비(郭妃)의 시기와 모함으로 221년 사약을 받고 숨진답니다. 그래서 견성(鄄城)의 봉토에 있던 조식이 223년 입궐하면서 황후의 소식을 물었다는데 조비는 황후가 쓰던 베개를 주었고, 그 베개를 가지고 돌아가던 조식이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군요. 조식의 봉토가 견성(鄄城)이라서 제목이 애초에는 <감견부(感鄄賦)>였다는데, 당시에는 견성(鄄城)의 '鄄'과 견부인(甄夫人)의 '甄'이 서로 통용되는 글자여서 <감견부(感甄賦)>로 전해지기도 했고, 견씨의 아들인 조예(曹叡)가 조비에 이어 명제(明帝)로 즉위하면서 모후를 복권하고, 제목을 <낙신부(洛神賦)>로 바꾸었다는군요. 조예(曹叡)도 조비가 아니라, 원희의 소생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있었던 모양인데, 참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간 견씨(甄氏)는 바이블에서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Lot's wife)처럼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군요.
이 글은 제가 잘가는 카페 글을 옮겨 온 글입니다. 장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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