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 생일을 맞아 집 근처에 있는 마포갈비에 가서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아이가 딸 둘 아들 둘, 넷이어서 외식도 자주 할 수 없었다. 여섯 식구 생일과 어린이날,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만 큰 맘 먹고 연중행사를 했다. 밥 먹으면서 너희들에게 미안한 게 몇 가지 있다고 하니 무엇이냐고 물었다.
침대를 사 주지 못한 것이 첫째고, 자기 방을 하나씩 마련해 주지 못한 것이 둘째고, 외식을 자주 못한 것이 셋째며 뒤늦게 장만한 자동차가 티코 마티즈 아반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넷째고…. 여기까지 말하니 둘째 딸이 그만하라고 했다. 그런 거 하나도 섭섭하지 않다고,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그런다. 큰 딸도 맞다며 맞장구친다. 아직 어린 두 아들은 돼지갈비 먹으면서도 고개는 연신 끄덕였다. 충분히 섭섭할 텐데도 고맙다고 하니 내가 더 고마웠다.
◆임대차3법의 후폭풍, “나는 임차인입니다” 논란
벌써 5년이나 지난 일이 문득 떠오른 것은 7월31일부터 시행된 ‘임대차3법’을 둘러싸고 오간 설전 때문이다. 통합당 윤희숙 의원은 국회에서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임대차3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4년 뒤에는 꼼짝 없이 월세로 들어가게 되는구나. 이제 더 이상 전세는 없겠구나. 전세대란이 오겠구나”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1000만 인구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법을 만들 때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점검해야 했다”며 “이 법을 만든 민주당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이에 대해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며 “소득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전세는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운명이며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 온다”고 했다.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저금리 시대에 서민들에겐 월세가 전세보다 손쉬운 임차방법”이라고도 했다.
“나는 임차인입니다”는 연설은 이어졌다. 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70만원 내는 진짜 임차인”이라며 “전세가 줄어들까 걱정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어차파 전세 시대는 가고 옛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집 없는 청년”이라고 소개한 민주당 장경태 의원도 “지방에서 서울로 온 순간부터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살았다”며 “(임대차3법은) 정부가 청년을 위한 주거 사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결혼 3년 차에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빌라에 살고 있다”며 “(통합당 의원들에게) 강남3구 국민들만 걱정하지 말고 4평짜리 최저기준의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의 대표자가 되어 달라”고 했다.
◆문대통령 지지율 급락과 비서 무더기 사표
여야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론은 명확한 방향을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8월 첫째주에 43.9%로 전주보다 2.5%포인트 낮아졌다. 부정평가는 3%포인트 오른 52.4%였다. 민주당 지지율도 35.1%로 3.2%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통합당 지지율은 2.9%포인트 오르며 34.6%를 기록했다. 창당 이후 최고로 민주당과의 격차가 0.5%포인트로 좁혀졌다. 특히 내년 4월에 새 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예정된 서울시의 민주당 지지율은 35.3%로 통합당 지지율(35.7%)보다 낮아졌다. 부산경남에서는 통합당(42.8%)로 민주당(28.4%)을 크게 따돌렸다(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2520명을 조사해 10일 발표한 결과).
불과 4개월 전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범여권에 180석이나 몰아주었던 민심이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깜짝 카드가 등장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기정 김조원 김외숙 김거성 윤도한 수석 등이 8월7일 사의를 표명했다. 노 비서실장이 ‘똑똑한 서초 아파트’ 논란을 초래했고, 김조원 김외숙 김거성 수석은 다주택자라는 것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였다. 특히 김조원 정무수석은 송파구 잠실동 갤러리아팰리스 48평형과 강남구 도곡동 한신아파트 30평형 등 문재인 정부가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아파트 값을 ‘안정’시키려는 지역에 2채를 갖고 있다.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비서진 집단 사표’ 약발은 거의 없었다. 사표를 자발적으로 냈다기보다는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냈다는 분위기에서 진정성이 국민들의 믿음을 얻지 못했다. 또 부동산정책으로 여론이 악화됐는데, 부동산정책을 주도한 국토부와 기재부 장관 및 청와대의 경제관련 비서는 사의에서 비껴 있다. 국민들의 피나는 참여로 성공한 일(코로나19 극복과정 등)에서는 ‘내가 잘 해서 그렇다’는 사람이 많은 반면, 부동산정책 등의 실패에 대해선 ‘내 탓이다’며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역사상 가장 길게 이어지는 장마에 태풍까지 겹쳐 전국이 물난리를 겪는 상황에서도 발 벗고 수해현장의 국민들과 함께 하는 움직임도 찾기 어렵다.
◆27년 동안 1층에서만 살았던 이유
필자는 1가구1주택자이다. 떳떳한 1가구1주택이어야 하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난 27년 동안 빌라 1층을 전전했다. 외벌이로 부족한 살림에 아이 넷을 낳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 넷이면 전세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내 집을 마련해야 했다. 아파트가 살기 편하고 가격도 더 빨리 오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파트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이 넷과 살려면 넓어야 했다. 돈은 모자라고, 애들이 마음껏 뛰고 놀 수 있으려면 1층 빌라가 제격이었다. 넷째인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층 빌라 행진은 이어졌다.
3년6개월 전에 운 좋게도 1층 빌라에서 벗어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헌법재판소에서 심리할 때였다. 필자가 살고 있던 빌라 9세대 전체를 건설업자가 한꺼번에 사들였다. 시세보다 40% 가량 비싸게 팔고 아파트 7층으로 옮겼다. 그 아파트 값이 그동안 2배 이상 올랐다. 28년 동안 새벽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면서 번 것보다(물론 월급 총액이 아니라 생활비를 쓰고 남은 것을 모은 돈) 훨씬 많은 돈이 불과 3년 동안 뻥튀기 됐다.
그렇다고 기쁠까. 그렇게 기쁘지 않다. ‘1층 빌라 서민’에서 ‘7층 아파트 부자’로 ‘신분세탁’이 되는 동안 필자가 한 일은 거의 없었다. 때가 돼서 17년 동안 살았던 1층 빌라를 팔았고, 여섯 식구가 살만한 아파트가 그것밖에 없어서 샀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이 느껴졌다. 강남 대치동에 산다는 게 이유였다.
필자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1989년 말에 결혼해 강북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때만 해도 강북과 강남 집값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지금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7년 동안 강북에 살다 강남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값 차이가 난 것이 필자 탓인가, 정부의 정책 잘못인가. 손가락질이 싫어 대치동을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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