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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 _ 오만 왕국 (Sultanate of Oman)
아라비아 반도 남동부 해안에 있는 나라.
수도 : 무스카트(Muscat).
화폐 : 오만 리얄.
군주제 국가이며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 함께 존재하는 혼합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개발도상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출품은 대부분 원유이며 대개 수입을 초과한다. 보건환경이 미약하며 국민들의 문화생활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이슬람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알 알람 펠리스(Al Alam Palace)
● 오만의 정치와 사회
오만은 독립 이슬람 왕국으로 절대권력을 지닌 군주 1명이 자신이 직접 뽑은 내각과 직접 지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자문회의(1981∼)의 도움을 받아 통치한다.
헌법이나 선거로 구성된 입법부나 합법적인 정당이 없다. 법체계는 〈코란〉의 율법과 마호메트의 교시로 이루어진 샤리아에 기초를 두고 있다. 반정부세력으로 오만 해방인민전선(PFLO)이 있는데, 이들은 오만 남부의 도파르 주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며 유격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1970년대에 보건의 질과 적용범위를 크게 향상·확대시켰으며, 그결과 상당히 높았던 결핵·과립성결막염 ..
● 오만의 국민
아랍인이 총인구의 3/4을 넘어 압도적으로 많으며 부족 단위로 조직되어 있다. 인도인, 주로 발루치족으로 이루어진 파키스탄인, 벵골인, 페르시아인, 동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등이 이 나라에서 일하고 있으며, 석유산업과 관련해서 서양인들도 상당수 유입되고 있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며 발루치어와 마리어 계통의 언어도 사용한다.
주요종교는 이슬람교로 수니파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구증가율이 높아 인구의 45%가량이 15세 미만이며, 전체인구의 9/10 이상이 시골지역에 거주한다.
공식명칭 오만 왕국 (Sultanate of Oman)
언어 아랍어
인구 3,355,262명 (2016)
인구밀도 11명/㎢
민족 구성 남아시아인, 발루치인, 아랍인
종교 이바디 이슬람교(75%), 수니파 이슬람교, 시아파 이슬람교
정부 형태 단일 국가, 양원제, 전제군주국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부총리 파드 빈 마무드 알
코란
이슬람교도들이 신의 말씀이라고 믿는 경전. 이슬람교도는 <코란>이 태초의 신의 말씀으로 마호메트를 통해 인류에게 전달되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코란>을 낭송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인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나 불교도가 불경을 읽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다.
기독교의 <성경>이 종교적 의의와 기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실 생활의 적용에서는 종파에 따라서 상당한 해석의 차이가 있음에 비해, 많은 독실한 이슬람교도에게 <코란>은 거의 절대적인 일상 생활의 지표이기도 하다.
〈코란〉은 아랍어 기록 문헌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샤리아
샤리아는 〈코란〉, 전승 혹은 〈하디스〉(언행록)에 기록된 마호메트의 순나(관습), 이즈마(공동체의 합의), 키야스(유추를 통한 추론법) 등 4가지 근원에 의거한다. 이즈마는 〈코란〉과 순나의 의미를 밝혀 교리와 관습을 공식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키야스는 이슬람에서 독자적 해석과 판단의 진정한 기초이다.
개인적인 사고와 견해는 독단적인 것으로 비판받았다. 샤리아학에는 마호메트의 언행록(〈하디스〉), 〈코란〉 주석학(타프시르), 신학(칼람), 법학(피크) 등 4가지의 분야가 있다. 하디스와 코란 주석학은 신학과 법학의..
오만과 한국의 관계
한국 단독수교국으로 1974년 3월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1976년 10월에 한국의 상주대사관이 설치되었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북한과는 별다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기술협정(1975. 1)·문화협정(1975. 7)·항공협정(1983. 5) 등이 체결되어 있으며, 1989년 11월말 현재 대한수입 2,081만 달러, 대한수출 10억 2,399만 달러 상당의 교역량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건설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1989년 6월 기준 84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적 : 309,500.0㎢
자연환경 : 기후 사막성기후
오만의 자연환경
오만에서 가장 높은 지형은 오만 만 해안과 나란히 뻗은 알하자르 산맥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두드러지게 높이 솟아 있으며, 알자발알아크다르 대산괴 부근에서 해발 3,000m를 넘는 이 산맥은 북서쪽에 있는 너비 32km의 알바티나 충적평야와 넓게 펼쳐진 자갈사막 사이에 솟아 있다.
자갈사막은 오만 영토의 3/4을 차지하면서 남서쪽으로 약 600km를 뻗어 남서쪽 모서리의 도파르(또는 주파르) 주에 있는 산맥까지 펼쳐져 있다. 오만은 덥고 건조한 나라이지만 해안지방은 습도가 높다. 연평균강우량은 약 100㎜이다.
오만 만
아라비아 해 북서쪽에 있는 만. 남서쪽의 아라비아 반도 동부(오만)와 북쪽의 이란 사이에 위치한다. 너비는 오만의 알하드 곶과 파키스탄-이란 국경의 과타르 만 사이에서 320㎞에 이르며, 길이는 560㎞이다. 북서쪽의 페르시아 만과 오만 만 사이에는 호르무즈 해협이 있다.
만을 따라 발달한 조그만 항구도시로는 오만의 수하르·알카부라·무스카트·수르, 이란의 자스크·반다르베헤슈티(옛 차바하르) 등이 있다.
어업도 이루어지지만 주로 페르시아 만 주변 산유지대의 항로로서 중요성을 띤다. 오만 만은 아라비아 해와 인도양에서 페르시아 만으..
알하자르
오만 북부에 있는 산맥. 오만 만 연안과 평행을 이루며 무산담 반도에서부터 대략 아라비아 반도 북동쪽 끝 알하드 곶까지 남동쪽으로 호(弧)를 그리며 뻗어 있다. 알하자르('암석'이라는 뜻) 산맥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굽어보는 루우스알지발, 알가르비알하자르(西하자르), 알자발알아크다르('푸른 산'이라는 뜻) 대산괴, 나클 산, 앗샤르키알하자르(東하자르), 바니자비르 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까지 매우 가파르게 경사져 있는 이 산맥의 최고봉은 해발 3,075m의 알아크다르 산이며, 평균높이는 약 1,220m이..
오만의 경제
석유 화학 탱크(Petrochemical tanks)
오만은 개발도상국으로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 함께 존재하는 혼합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석유생산과 수출이다.
국민총생산(GNP)은 198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구증가 속도에 비해 급속한 성장을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농업부문에 노동력의 약 절반이 종사하지만 소득은 GNP의 3%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급농업이 대부분이나 라임과 대추야자는 수출한다.
연강우량의 변동이 심해 농업은 거의 관개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작물로는 대추야자·알팔파·라임·망고·멜..
GDP 약 719억3,100만 달러 세계 71위
1인당 GDP 약 1만7,406 달러 세계 46위
화폐 오만 리얄 (null)
오만의 역사
오만에는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몇몇 고고학적 유물들은 오만이 BC 3000년경의 수메르 자료에 번영하는 뱃사람들의 무역국가라고 기록된, 거의 전설적인 마간국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대 오만에서 생산된 향료는 배로 중동과 지중해 지방에 수출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BC 9세기부터 아랍인들이 오만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남서 아라비아에서 온 카흐탄족과 북서 아라비아에서 온 니자르족 등 뚜렷이 구별되는 두 종족이 있었는데, 이 두 종족집단 사이의 대립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만 역사에 영향을 미쳐왔다.
카부스 이븐 사이드
오만의 술탄(1970~). Qaboos bin Said라고도 씀. 영국인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은 후 잉글랜드 서퍽의 베리세인트에드먼즈에서 공부했고 버크셔 샌드허스트에 있는 왕립사관학교도 다녔다. 그의 아버지 사이드 이븐 타이무르는 1965년 그를 고국으로 불러서 6년간 감옥에 가두고, 자신은 석유로 하여 재정이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수준은 중세시대의 상태에 머물러 있게 했다.
카부스는 1970년 영국의 도움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왕궁을 점령하고 그의 아버지를 국외로 추방했다. 그뒤 즉시 여러 가지 현대화 정책을 야심 있..
유럽 대항해 시대를 열어 준 이슬람 항해술
미국의 이슬람 역사를 보면 놀랍게도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때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 이슬람이 뿌리를 내렸다니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베리아 반도의 많은 무슬림이 콜럼버스와 함께 항해에 나섰다. 합리적인 창의성과 과학적 발명이 상대적으로 억압당하던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자마자 유럽의 조선술과 항해술에만 의지한 채 신대륙으로 향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무슬림 항해사들이 콜럼버스의 길잡이로 나선 것이다. 1498년 5월 20일,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1469?~1524)는 아랍인..
세상을 바꾼 이슬람
문화와 생활
국가번호 968
도메인 .om
전압 230V / 50Hz
무비자 체류기간 30일, 일방적 면제
가볼만한 곳 : 무스카트(Muscat)
무스카트는 오만 만 연안에 자리잡은 오만의 수도. (아). Masqat. 1970년까지 오랫동안 국명에 이 도시의 이름을 붙여 국명을 무스카트오만이라고 불렀다. 오만 만 연안, 화산들로 둘러싸인 후미진 곳에 위치하며 서쪽과 남쪽으로 도로가 나 있다. 1508년 포르투갈인들이 무스카트와 인근 해안지대를 점령하고 교역소와 해군기지를 두었다가 1650년 쫓겨났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세운 요새 2채가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으며 옛 성벽과 몇 개의 성문도 남아 있다.
살랄라
오만 남부 아라비아 해안에 있는 도시. 고대 유향 산지로 유명했던 도파르 지방의 역사적인 중심지이다. 마르코 폴로의 기록을 통해 13세기에 번창했던 도시임을 알 수 있다. 그후 수세기 동안 경제적으로 쇠락하고 중요성이 떨어졌으나 오랫동안 정복당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가 1800년대에 이르러서야 오만의 술탄에게 통치를 받게 되었다. 술탄 사이드 이븐 타이무르는 1932년부터 1970년 7월 폐위되기까지 살랄라에 근거를 두고 당시 무스카트 오만이라 불리던 이 나라를 통치했다.
● 오만 역사
오만에는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몇몇 고고학적 유물들은 오만이 BC 3000년경의 수메르 자료에 번영하는 뱃사람들의 무역국가라고 기록된, 거의 전설적인 마간국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대 오만에서 생산된 향료는 배로 중동과 지중해 지방에 수출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BC 9세기부터 아랍인들이 오만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남서 아라비아에서 온 카흐탄족과 북서 아라비아에서 온 니자르족 등 뚜렷이 구별되는 두 종족이 있었는데, 이 두 종족집단 사이의 대립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만 역사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7세기까지 오만은 종족간의 전쟁과 페르시아인의 침입에 시달렸다. 751년 이슬람교의 하와리즈 교파를 받아들인 오만인들은 성직자인 이바디들을 중심으로 다시 모여 줄란다 이븐 마수드를 이슬람교의 정신적 최고지도자인 이맘으로 뽑았다. 그뒤 이맘들의 통치가 이어지다가 1154년 바누 나반이 왕조를 세웠다. 1428년 이후 이맘들은 자신의 권력을 다시 선포하고 왕에게 도전했다. 1624년 이맘이 된 나스르 이븐 무르시드가 종족분쟁을 끝냈으며, 그의 후계자는 1507년 이래 오만 해안 지방을 통치해오던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오만 해안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바디파). 18세기초 카흐탄족의 후손 히나위족과 니자르족의 후손 가피리족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으나, 1744년 두 종족이 공동으로 부 사이드 가문의 아흐마드 이븐 사이드를 이맘으로 선출함으로써 내전은 끝났다. 그의 후계자들은 술탄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오만과 아프리카 동부에 걸쳐 큰 제국을 건설했다. 수도도 잠시 동안 잔지바르로 옮겨졌으나, 1861년 이후 오만과 잔지바르는 분리되어 서로 다른 통치자의 지배를 받았다.
오만의 내륙 부족들은 종종 술탄보다는 선출된 이바디 이맘을 계속 후원함으로써 지배왕조와 충돌했다. 이로 인한 정치적 분쟁이 지속되다가 1959년 마지막 이바디 이맘이 오만에서 쫓겨남으로써 평화가 정착되었다. 오만이 완전히 국제적인 승인을 얻은 것은 1970년 카부스 이븐 사이드가 자신의 아버지인 술탄 사이드를 몰아내고 정부 자유화를 시작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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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의 술탄
1975년 당시 북예멘의 지원을 받은 좌익유격대가 도파르 주에서 소요를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났다. 1971년 아랍 연맹과 국제연합(UN)에 가입했으며, 1981년에는 페르시아 만 협력회의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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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 왕국, 비트코인 채굴에 11억 달러 투자–일자리 창출과 경제 다변화 / 2023.08.25.
중동의 오만 왕국이 비트코인 채굴에 11억 달러를 투자키로 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포보스는 오만이 개인이 소유한 비트코인 채굴 시설에 11억달러를 투자키로 했다며 이는 새로운 경제지평을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만은 비트코인 채굴이 이슬람법에 부합하면서 혁신적이라며 전통과 혁신을 융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만은 걸프지역 국가중 국내총생산(GDP)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오만은 대학 졸업생의 24%가 컴퓨터 과학 학위를 가지고 있으나 오직 5%만이 해당 분야에 취업한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채굴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충분한 취업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오만의 경제자유구역(Salalah Free Zone)에는 최근 3억 5000만 달러규모의 데이터 호스팅과 암호화폐 채굴 시설에 대한 투자가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