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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절 양심은 인간의 3대 주체
여러분,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고, 스승보다 앞서 있고, 하나님보다 앞서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몸이 양심을 마음대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 향락의 세계에서는 그렇습니다. 돈에만 의지해 살면 향락으로 흘러 가 버립니다.
남녀간에 난잡한 사랑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해 갑니다.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을 해서 신·인·애 일체권의 사랑, 타락하지 않은 때의 하나님과 인간이 완성해서 일체권이 되어야 했던 것을 전부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체권, 즉 지상·천상천국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해원해야 됩니다. 해원이라는 것입니다. 한을 풀지 않으면 해원이 안 됩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안팎으로 전부 다 해결해 나왔습니다. 그걸 복귀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복귀를 완료한 것입니다. 지금 그런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을 잘 맺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268~269쪽)
<해 설>
1) 인간의 3대 주체는 양심
3대 주체사상이 뭐냐? 하나님은 참부모고 참스승이고 참왕입니다. 하나님이 스승이 되고 왕이 되고 싶지만, 부모가 못 돼 가지고는 안 됩니다. 태어나 가지고 배우고 배워 가지고 주인이 돼야지, 배우지도 않고 주인이 되고 부모가 됩니까? 부모가 돼야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부모입니다. 천지 이치가 그렇습니다. 누가 부모냐? 부모의 기원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선생의 기원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주인의 기원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모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거꾸로 됐습니다. 손바닥이 이렇게 돼야 할 텐데, 이렇게 돼서 얼굴을 만져야 할 텐데 이렇게 만지고 있습니다. 뒤집어졌습니다. 뒤집어진 것을 바로 해야 됩니다. 타락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햇빛을 받아야 할 텐데 나갔기 때문에 어두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400-107,2002.12.28)
선생 중의 선생이 양심입니다. 부모 대신 자리요, 하나님 대신 자리가 양심입니다. 3대 주체사상을 지탱하는 축이 양심입니다.
(249-178,1993.10.10)
인간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모두 평등한 것입니다. 양심권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대해서 제일 잘 가르치는 분이 누구냐? 선생님이 아닙니다. 자기의 양심입니다. 부모보다도 귀한 것이 양심입니다. 하나님보다 귀한 것이 양심입니다. 이 양심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애국하는 길,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은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모르더라도 양심은 압니다. 외적으로 잘 모시면 부모한테 효도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다른데 몸만 그러한 행동을 하면 세상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인정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진짜 효도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양심이라고 하는 위대한 주인이 자기에게 서 있다고 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50-73~74,1993.10.12)
양심은 뭐냐? 하나님이 나에게 절대 권한으로 넘겨준, 자주 완성을 시킬 수 있는 주인으로 준 것입니다. 왕부모로서 나에게 하나님 대신 심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왕스승입니다. 그게 양심입니다. 하나님 대신 전권을 가진 양심을 준 것입니다. 내 몸뚱이를 대해 마음이 전권행사를 해야 됩니다.
(258-67,1994.3.16)
양심은 부모보다 앞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을 앞서는 것입니다. 조상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조상 아담 해와보다 앞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적 그 사랑의 대상권을 중심삼고 몇천 만 배, 몇억만 배 잘나기를 바라는 그런 기준은 우리 인간이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부모에 앞서고, 스승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모고, 스승이고, 주인 아닙니까? 3대 주체사상이 사랑에서 이뤄진다 이겁니다. 이론적으로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270-295,1995.7.16)
내 마음에 3대의 주체, 주인이 들어와 있습니다. 부모가 들어와 있고, 스승이 들어와 있고, 왕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이 세상의 어느 스승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또 양심은 이 땅의 주권자보다도 앞서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게 될 때 얼마나 고마워요? 하나님의 제일 귀한 자체를 나에게 심어 준 것인데 이걸 얼마나 유린했습니까?
(290-247,1998.3.2)
양심이 뭐냐? 3대 주체사상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본질을 그냥 그대로 대신 이어받은 것이 양심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지요? 하나님은 영원한 참부모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은 스승입니다. 절대적인 선한 스승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입니다. 절대적인 주인입니다. 그러한 주체 되는 하나님이 대상 되는 인간 앞에 하나님의 주인 될 수 있는 부모 자격, 부모 대신한 것을 나에게 꽂아 준 것이 양심이고, 또 최고의 선생을 대신해서 꽂아 준 것이 양심이고, 천년만년 주인을 대신해서 꽂아 준 것이 양심입니다. 3대 주인을 양심 보따리에 넣어 가지고 하나님 자신의 뭐라고 할까, 하나의 열매와 같이 심어 준 것이 양심입니다.
(291-183~184,1998.3.11)
양심은 하나님의 상대이기 때문에 주체 성격과 다른 것입니다. 주체는 이리 가려고 하면 상대는 이리 와야 됩니다. 또 다른 인격체다 이겁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으로 하면 개성진리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양심은 주체적 양심보다도 먼저 알게 돼 있습니다. 주체가 먼저 안다 하게 되면 그 상대적 주체는 없어지는 것이다 이겁니다. 없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하늘 앞에 상대적 존재세계는 일체적 존재 속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상대성을 줬기 때문에 양심이 하나님보다도 나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56-202,1994.3.13)
우리 창조원리에는 하나님의 95퍼센트 창조에 또 다른 5퍼센트를 보탬으로 말미암아, 협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같이 공동 창조주의 자리에 선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 양심을 중심삼고 볼 때,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인 동시에 나에게 있어서는 제1하나님보다도 더 가까운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양심을 모실 줄 아는 사람은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종교가 필요 없다는, 무종교 필요성의 논리를 이러한 원칙에 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잘 알고 나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귀한 양심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 대신 존재인데 종교를 무엇 때문에 믿느냐는 것입니다. 양심이 하자는 대로 하면 종교 완성자가 되기 때문에 무사통과입니다.
(256-203,1994.3.13)
하나님이 참 고마우신 분입니다. 제2의 하나님을 전부 다 넣어 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가 있으면 그림자와 같은 분을 넣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냐 하면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참스승입니다, 전지전능하니까. 또 하나님은 왕중의 왕입니다. 사랑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부모이고, 스승이고, 왕입니다. 주인입니다. 이 주인의 세 가지 요소를 나에게 박아 넣어 준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이 하나님 대신이요, 나의 부모였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290-317,1998.3.4)
2) 양심은 부모보다, 스승보다,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
양심은 몸뚱이가 한 것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왜 속이냐는 것입니다. 부처끼리 싸움하면서도 누가 옳은지 그른지 다 알면서 싸우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허재비가 아닙니다.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양심을 중심삼고 커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몸이 있으면 하나님도 양심에 따라 가지고 키워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들이 나기 몇천년, 몇억만년 전에, 하나님이 커 나오기 전부터 양심의 명령을 따라서 몸이 하나돼 가지고 커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는 말이 이해됩니다. 그거 하나만 알아도 여러분이 죄를 못 짓습니다.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습니다. 백과사전의 모든 것에 능통한 학박사, 박박사가 있다 하더라도 그 박사가 결정했다고 전부 다 옳을 수 없습니다. 그 양심이 몇 퍼센트 나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521-273,2006.3.22)
내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왜? 하나님의 절대가치의 상대적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의 목적을 완성시킬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나는 부모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다! 양심은 왕보다 앞서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자기에게 있는 모든 제일 귀한 것을 갖다 옮겨 심어 줬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영원히 절대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452-294,2004.6.7)
양심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데서만 ‘본연의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부모 중의 부모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주인 중의 주인인 것입니다. 이것들이 천지를 중심한 3대 주체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양심만이 주체사상을 달성할 대상의 자리에서 절대 일체가 되어야 하므로 양심의 위치는 우리를 낳아 준 부모보다 스승보다 어떤 나라의 왕보다 나은 자리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리 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대신 절대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내가 하는 일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전부 다 압니다. 양 심은 몸이 나쁜 일을 하려 할 때 언제나 반대하지만, 몸뚱이가 제멋대로 마음을 끌고 다니는 것은 타락한 사랑의 힘이 타락할 때의 양심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양심이 완성에 도달하여 하나님과 참사랑의 관계를 맺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259-41~42,1994.3.27)
3) 양심의 소리, 양심의 명령
양심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면 그 사람이 망할까요, 환영받을까요? 환영받습니다. 위대한 발견이 자기에게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양심은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인정했을 때, 그건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양심을 따라서 살았다고 하면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양심은 원뿌리가 좋은 곳임에 틀림없다고 하는 것을 인정했을 때, 양심이 말하는 대로 했을 때, 그다음의 길이 꾸불꾸불입니까, 수직입니까? 똑바로입니까, 지그재그입니까? 똑바로입니다.
(250-74,1993.10.12)
부모에게서 태어나 선생님한테 교육받고 왕을 중심삼고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3대 욕망을 모두 감지시키는 주체의 입장에 서는 것이 자기 양심입니다. 양심은 위대한 선생입니다. 선생은 거짓말을 하는 때가 있을지라도 양심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자기의 위대한 선생이 양심입니다. 다른 선생을 방문하여 묻기 전에 자기 양심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하는 것을 물어야 합니다.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입장에 섰을 때는, “하나님이여, 저를 보다 정직한 길로 가도록 지명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인간은 확실하게 꿈같은 것을 봅니다. 간접적인 계시의 방 법이 꿈입니다.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으면 꿈 가운데서 가르쳐 줍니다. 본 궤도에 오른 기차는 석탄을 넣고 불을 지피면 달리게끔 되어 있습니다. 양심을 쭉 따라가면 틀림없이 천국으로 갑니다. 이중의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250-115~116,1993.10.12)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신 속에 가장 소중한 스승을 일생 동안 내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승을 잘못 대우하고 짓 밟고 남용합니다. 그 스승은 바로 인간의 양심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우리 자신에도 도움이 되도록 말을 하며 우리를 참사랑과 연결시켜 주고자 합니다. 부모와 같이 우리의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비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속에는 또한 양심의 소리에 항상 거역하는 반란자가 있습니다. 그 반란자는 바로 육체인 것입니다. 육체는 양심을 비참하게 짓밟고 남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양심의 적이었던 육체, 우리 자신의 생명과 인성을 크게 손상시킨 육체의 편을 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양심은 항상 마음속의 스승이요, 부모로서 인류의 궁극적인 부모인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만 합니다. 이때 양심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며, 나아가서는 ‘제2의 하나님’으로까지도 불릴 수 있습니다.
(201-208,1990.4.9)
통일교회라는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개인적인 통일권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걸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에 요사스런 사건이 많지만, 남자 여자 문제만 수습하고 양심과 몸이 하나되어서 이것이 양심대로 움직이면 천하는 자동적으로 평화의 세계가 됩니다. 이 두 가지입니다. 요걸 누가 하느냐? 아무리 봐도 세계에 문 총재밖에는 없습니다. 문 총재는 이런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을 하나님 대신 자리에 놓고 매일같이 양심 하나님 앞에 경배하라 이겁니다. 그러면 오늘 절대 양심의 명령에 반대하는 악마의 졸개가 안 된다 이겁니다. 이놈의 몸뚱이는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여러분은 몸뚱이가 끌려 다녀요, 양심이 끌려 다녀요? 양심이 끌려 다니지요? 양심이 우는 것입니다. 부모 대신 세워진 양심이 울고, 하나님 대신 세워진 양심이 울고, 스승 대신 세워진 양심이 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들어가 있는 양심을 울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 앞에, 부모 앞에, 스승 앞에, 천지의 대부모가 하나님이요, 천지의 대스승이 하나님이요, 천지의 대주인이 하나님인데. 그 스승, 그 어머니 아버지, 그 주인, 그 근본을 피해 가지고 어디에 가서 안식을 하겠습니까?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3대 주체사상입니다.
(258-67,1994.3.16)
양심이라는 것은 나를 끌어 무한한 가치의 주체의 자리, 대상의 자리를 일일을 넘고, 일년을 넘고, 일생을 넘어서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양심의 명령대로 하게 되면, 영원히 그 양심의 명령대로 산다 하면 영원히 모든 해방의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하늘이 나와 더불어 관계 맺을 수 있는 터전이라는 것은 양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동무들과 분쟁을 하든가 뭘 하게 되어 나쁘고 좋은 것을 가릴 때 “너, 양심적으로 가책을 안 받느냐?” 대번에 그럽니다. 양심이 중심이 돼 있습니다. 그러면 양심의 명령에 절대로 복종하는 몸뚱이가 됐으면 사탄이 처할 수 있는 곳이 있겠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전부 받들라는 것입니다. 시봉하고 섬겨라,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266-224~225,19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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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