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널뛰듯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작기도 하지만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에 이거저거 쌓아놓았기 때문에 집이 더 작게 느껴진다. 몇 년째 안 입고 있는 옷도 분명히 입고 싶을 때가 올 거라며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옷장을 턱하니 차지하고, 신발도 사서는 한 번도 안 신었는데 멀쩡한 신발을 버리기 뭐 해서 신발장에 재어두고 있는가 하면 반찬통을 비롯한 빈 용기며 가방 등 실제로 쓰고 있는 물건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미래에 쓰일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 때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이 대다수인 것 같다. 심지어는 포장 박스 같은 것도 예쁘고 단단하게 내구성이 있어 보이면 언제가 쓸모 있을 거라며 모으고 있으니 내 공간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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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아니지만 내가 쌓아놓은 물건들 때문에 잠재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날마다 적어도 세 개씩 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큼직큼직한 물건을 버리다가 나중에는 빨대나 다 쓴 용기 같은 걸로 규모가 작아지더니 세 개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한 개가 되더니 다시 버리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전에는 습관처럼 주기적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구경하곤 했는데 이제 그런 버릇은 사라졌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푹푹 찌는 여름 날씨가 계속되면서 날도 더운데 좀 시원하게 살고 싶어서 다시 대청소 겸 물건을 버리려고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니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아 미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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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오늘도 날이 더워 우리 동네 입구에 있는 작은 찻집에 들렀다. 할머니 사장님이 집에서 만든 수제청이나 수제차를 팔고 있는데 이런 더운 날씨에 얼음을 동동 띄워 마시면 더위가 가실 뿐만 아니라 기분전환도 된다. 냉오미자차를 시키고는 차를 만드는 할머니에게 질문한다.
“우리 사장님은 찻집도 이렇게 깔끔하게 유지하시니까 집도 너무 깨끗할 것 같아요.”
내 말을 듣자마자 할머니는 손사래질을 하면서 대꾸한다.
“아녀, 날마다 내가 미친년 널뛰듯이 바쁜데 집안 꾸미고 있을 여유가 어디 있것어?"
나는 할머니가 쓴 ‘미친년 널뛰듯이 바쁘다’는 뜻밖의 비유에 빵 터졌는데 할머니가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나도 인터넷으로 스타트업인가 거시긴가 해서 택배로 보내기만 하고 이렇게 가게에 나와 있는 것은 이만 접어야 할 것 같어. 그래야 집안도 좀 돌보고 나 자신도 좀 돌보재이.”
“그래도 바쁘신 게 아마 건강의 비결일지도 모르잖아요.”
할머니에게서 시원한 오미자차를 받아 나오면서 생각한다. 비록 ‘미친년 널뛰듯이’ 바쁘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미친년 꽃 구경하듯이’ 여유롭게 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