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의 길 (16)
지고의 선과 최상의 진리를 찾아 보살의 발길은 남쪽 가야(Gaya,伽耶)로 향했다. 그 뒤를 꼰단야, 왑빠, 밧디야, 마하나마, 앗사지 다섯 사람이 따랐다. 가야산 꼭대기에 오른 보살은 나무 아래 풀을 깔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길고 긴 고통의 원인인 번뇌와 속박을 어떻게 하면 태워버릴 수 있을까? 번뇌와 속박을 태워버릴 불은 어떻게 지필 수 있을까?’
그때 맑고 선명한 생각이 떠올랐다.
‘물에 축축하게 젖은 나무토막으로는 불을 피울 수 없다. 그런 나무토막을 주워 불을 피우려고 부싯돌을 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불을 얻을 수 없다. 그 사람은 소득도 없이 피곤할 뿐이다.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 현재 몸과 마음을 오욕(五欲)의 강물에 내던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욕에 목말라하고, 오욕에 욕심을 내고, 오욕에 열을 내고, 오욕을 추구한다. 그들은 오욕으로 향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정화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수행자는 격렬하고 모진 고행을 하더라도 진리를 보고 알고 깨닫는 것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고행을 하지 않더라도 진리를 보고 알고 깨닫는 것이 불가능하다. 물 속에 던져진 나무토막에 부싯돌을 켜는 것처럼 소득이 없다.
물에서 건졌지만 물기가 마르지 않은 나무토막으로는 불을 피울 수 없다.
그런 마무토막을 주워 불을 피워야지 라고 생각하며 부싯돌을 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불을 얻을 수 없다. 그 사람은 소득도 없이 피곤할 뿐이다.
땅 위의 바짝 마른 나무토막으로는 불을 피울 수 있다. 그런 나무토박을 주워 불을 피워야지 하고 마음먹고 부싯돌을 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불을 얻을 수 있다.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 오욕의 강물에서 빠져나와 생활하면서 마음속으로도 오욕에 목말라하지 않고, 오욕에 욕심을 내지 않고, 오욕에 열을 내지 않고, 오욕을 추구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오욕으로 향한 마음을 버리고 정화한 것이다. 그런 수행자가 격렬하고 신랄한 고행을 한다면 진리를 보고 알고 깨단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고행을 하지 않더라도 진리를 보고 알고 깨닫는 것이 가능하다. 바짝 마른 나무토막에 부싯돌을 켜는 것처럼 분명 소득이 있다.‘
더 이상 스승은 필요치 않았다. 보살은 올바른 고행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고행자들이 머무는 숲 우루웰라(Uruvela) 의 세나니(Senani)에서 발길을 멈췄다. 아름다눈 네잔자라(Neranjara)강이 굽이치는 그곳은 땅이 기름지고 숲이 깨긋했으며 경관이 수려하였다. 농가 주변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과일나무가 무성했으며, 마을 사람들은 편안하고 고요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수행하기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숲 속 고행자들의 수행법은 다양했다. 어떤 이는 하루에 한 끼를 먹었고, 어떤 이는 니틀에 한 끼, 어떤 이는 반달이나 한 달에 한 끼만 먹었다. 어떤 이는 하루에 보리 한 알이나 깨 한 알, 쌀 한 톨밖에 먹지 않았다. 쇠통을 핥아먹는이, 물만 마시는 이, 굶어 죽으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믿는 이도 있었다. 소나 양의 가죽을 입은 이 나무껍질을 걸친 이, 재를 몸에 바른 이, 시커먼 검댕이나 통을 바른이, 아예 벌거벗은 이들도 있었다. 씻지 않는 이, 추운 밤에도 몇 번씩 강물에 들어가 목욕하는 이, 해나 달을 응시하는 이, 주문을 외우고 웨다를 읽는 이, 갖가지 신들과 귀신들에게 비는 이, 칼과 창 등 무기에 제사지내며 해탈을 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숲 속에서의 외로운 삶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보살은 생각하였다.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가 깨끗하지 못한 이, 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이, 탐욕으로 심한 애욕을 느끼는 이, 원한을 품은 이, 악의를 품은 이, 마음이 침울하고 무거운 이, 마음이 들뜬 이, 의혹에 휩싸인 이,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는 이, 불안으로 몸이 굳은 이,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추구하는 이, 게으르고 나태한 이, 산만한 이, 어리석은 이 , 그런 이라면 숲 속의 고독한 삶이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보살은 몸과 마음의 선하지 못한 업을 태워버리기 위해 고독하고 처절한 고행을 시작하였다.
식사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머물러 달라는 청도 받아들이지 않고, 가져온 음식도 받지 않고, 문간에 준비된 음식도 받지 않았다.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 않고, 곡식으로 빚은 술도 과일로 빚은 술도 쌀로 끓인 미음도 마시지 않았다. 오로지 야채만 먹기도 하고 쭉정이만 먹기도 하고 숲속 나무뿌리나 과일만 먹기도 하고, 혹은 떨어진 열매만 주워 먹기도 하였다.
거친 베옷을 입고, 쓰레기 더미에서 주어온 누더기를 입고, 풀이나 나무껍질 또는 부엉이의 깃털을 엮어 입고, 아예 나체로 지내기도 하였다. 목동이나 나무꾼이라도 다가오면 놀란 사슴처럼 달아나는 보살은 숲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이 되었다.
보살은 호흡을 멈추는 고행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빨을 앙 다물고 혀끝을 세워 목구명을 막아 몸과 마음을 압박했다. 그러자 힘센 장정이 힘없는 사람을 짓밟는 듯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렀다. 고행에 압도당한 몸은 안절부절 못하고 편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통증을 이겨내며 부지런히 노력하고, 집중력을 기울여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숨을 쉬지 않고, 입과 코뿐 아니라 귀까지 막고, 더 강력하게 해야 겠다는 생각에 입과 코와 귀뿐만 아니라 모든 구멍을 막고 숨수기를 멈췄다. 그러자 힘 쎈 사람이 거친 가죽끈으로 머리를 싸고는 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능숙한 도살자가 날이 시퍼런 칼로 소의 배를 가르듯 강렬한 바람이 배를 갈랐으며, 힘쎈 사람 둘이서 약한 사람을 잡아 손발을 묶은 채 숯불 아궁이에 던지듯 강렬한 불길이 온몸을 휘감으며 타올랐다.
그러나 통증을 이겨내며 부지런히 노력하고, 집중력을 기울여 의식을 잃지 않았다.
호흡을 멈추는 고행을 통해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한 보살은 음식을 먹지 않는 고행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음식을 줄여나가던 보살은 강낭콩 또는 완두콩으로 만든 죽을 한 방울씩만 먹게 되었다. 점점 야위어가던 몸은 결국 피로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보살은 멈추지 않았다. 마른 넝쿨처럼 뼈마디가 불거지고, 엉덩이는 낙타의 발처럼 말라 버렸다. 등뼈가 쇠사슬처멈 드러나고, 갈비벼는 낡은 건물의 서까래처럼 울퉁불퉁 모습을 드러냈다.
오직 깊은 우물속 반짝이는 물처럼 움푹 팬 눈두덩 깊숙이에서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다.
바라문 수행자들은 그런 보살을 보고 손가락질하였다.
“사문 고따마(Gotama)는 검둥이였구먼.”
어린 목동들까지 다가와 침을 뱉고 오줌을 싸고 흙을 뿌렸다.
“에이, 더러운 녀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