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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높이시고 승리하시고 돌아오신 예수님에게 특별한 선물을
허락하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는데요
하늘 아버지께서 승리 하시고 돌아오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특별히 준비하시고 계셨던 그 선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도행전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신후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라는 것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구약 성경에 요셉에게 허락하시고 또 신약에 돌아온 탕자에게 허락하신
그 아버지께서 집을 나갔다 돌아온 탕자에게 주신 그 특별한 선물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지금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앎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이러한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좀전에 읽은거와 같이 사도행전 2장 33절에
하늘 아버지께서 승리하시고 돌아오신 예수님을 높이셔서 그분이 약속하신 성령님 미리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성령님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오순절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 성령님을 모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약 120명의 성도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약속하신 성령님이 임하여 그 따르던 자들이 성령님을 경험한 것을
사도행전 2장1~21절 말씀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1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11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14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런데 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 집을 나갔다가 정말 온갖 고생 시련과 고통과 정말 말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들을 당하다가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생각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허락된 아버지가 준비한 그 귀한 선물은 마치 예수님을 위해서 아버지가 준비하신 그 약속의 성령님을 허락하여 주셨듯이 이 돌아온 탕자에게 누가복음 15장 2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제일 좋은 세마포 옷을 준비하였던 그 옷을 내어 입히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기라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한다 라는 면에서 이와 같은 선물을 허락하십니다.
이 발의 신을 신기는 그것을 주시면서 특별히 이 돌아온 탕자가 신발과 함께 두 가지 특별한 선물을 받는데 그 선물 중에
하나가 그 손에 끼어진 금가락지 그리고 그의 몸에 입혀진 옷입니다.
이 세가지 이 선물들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달리시고 죽으신 후에 승리하신 그 의로움이 나타나신 거로 3일 만에
일요일날 이른 아침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그리고 하늘 아버지께 올라가셨을때 아버지께로부터
얻은 특별한 선물들입니다.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이 특별한 선물들 그걸 왜 받으셨을까요.
이 특별한 선물들을 다시 이 땅에 있는 하늘에서 받으신 이 선물을 이 땅에는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없는 이 선물을 하늘에서 아버지께로부터 공급받은
그 있을 수 없는 특별한 선물들을 땅에 속한 자들에게 다시 부어주시기 위해서 우리 교회에게 허락한 이 믿는 자들에게
허락한 특별한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이 성령님이라는 얘기죠 성령님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에베소서 1장 13절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인치심을 받았다고 그럽니다.
여러분 이 신약 성경에 돌아온 탕자가 아름다운 세마포옷과 금반지를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처럼
그 선물들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 아버지가 그리스도에게 내려 주신 특별한 선물인
성령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님이 어떻게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지를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하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창세기 41장40~ 42절 말씀입니다.
40너는 내 나라를 다스려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이 왕좌뿐이다.”
41그러고서 바로는 요셉에게 “내가 너를 이집트 전국을 다스릴 총리로 임명한다” 하며
42자기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가락에 끼워 주고 그에게 고운 모시 옷을 입히며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었다.
승리한 이긴 보좌의 그 왕이 제공해주는 왕과 같은 자리인 국무총리의 자리에 합당함으로 말미암아 적합한 자가 되었으므로 그 요셉에게 총리 대신이 되게 함과 동시에 애굽의 바로 왕은 특별히 세 가지 선물을 요셉에게 전해주고 있는
내용을 창세기 41장 42절에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선물을 주었죠. 인장 반지를 손에 끼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또 세마포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오색 찬란한 형형색색의 세마포 옷이겠죠 또는 흰백색의 세마포 옷일 수도 있습니다.
의의 옷을 나타낸다는 면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고요 또는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라는
면에서는 여러 가지 채색 옷과 같은 옷일 수도 있습니다.
금사슬을 목에 거는 이 세 가지 선물들을 바로 왕이 요셉에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누구죠 예수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보여주고 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가 실체라면 요셉은 그림자와 같은 자입니다.
요셉이 이러한 세 가지 선물을 왕으로부터 받았다는 얘기는 마치 그리스도가 하늘의 아버지께 부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 아버지께 올라갔을 때 받은 선물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면에서 얼마나 이 말씀이 깊은 영적인 의미와 진리를 이렇게 포함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늘에만 속하고 있었던 이 선물이 땅에 있는 자들에겐 없었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들에게 공급해 주기 위하여 교회들에게
다시 전해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선물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여러분들 아시겠죠. 그런데 탕자는 가만히 보면 누가복음 15장 22절에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는
세마포 옷과 금가락지는 받았는데 금사슬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왜 주어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승리한 자들에게 그 금 사슬 이라는 것이 주어졌는데 탕자는 승리한자 이긴자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살다가 의로우신 아버지께로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간신히 의의 옷을 걸쳐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정도의 삶을 나타내는 자이지 승리한 자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탕자는 승리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요셉은 완전히 승리한 자 모든 왕이 인정한 총리 대신으로서 완전하고 온전하고 적합한 자이기 때문에
승리한 자로서의 모습으로 세마포 옷과 인장 반지와 더불어 금사슬을 그가 왕으로부터 전해 받는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치심 인장 반지가 인치다 라는 그런 뜻입니다
인장 반지는 그때 당시 로마 시대에도 마찬가지 였었고요 그 높은 자 권위 있는 자가
그 인장 반지에 표시된 자기의 권위를 나타내는 문양으로 만들어진 인장을 중요 문서나 서신을 보낼때 촛물과 같이 녹여서
봉투 겉면에 꾹 눌러 인봉을 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인봉된 그것이 인친자의 권위를 나타내고 그가 허락한 사람이 아니면 결코 뜯어 열어 볼수 없는 그런 것이 이 인장의 의미로 권위가 있는 자는 인장 반지를 꼭 손가락에 끼고 다녔던 것입니다.
높은 자들 귀인들 고관 대작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그런 금가락지죠
좀 전에 읽은 것처럼 에베소서 1장 13절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여러분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았나요 성령님께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요셉이 그의 손에 인장반지가 끼워졌고 성령님에 의해서 인침을 받았다 라는 이야기기도 하고요
또 탕자가 금가락지를 끼움 받았다는 것은 인침을 받았다는 이 구원에 대한 이런
표상으로 성령님께로부터 인침받았다 라는 것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슬이 그의 목에 이렇게 둘러 있고 그의 세마포 옷은 그의 온 몸을 감쌌습니다.
여러분 마치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시고 하늘에 자리에 앉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영광 가운데 약속된
선물인 성령님을 받으신 것처럼 탕자에게도 이러한 금가락지, 옷, 신발이 주어졌고 금사슬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는 왕으로부터 금사슬 그리고 옷과 순서적으로 말하면
인장 반지와 그리고 옷과 그리고 금사슬이 주어졌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아버지께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받으신 약속된 선물인 성령님을 탕자가 받고 구약 성경에서는
요셉이 받은 것처럼 바로 예수님이 오시기 2천 년 전에 있었던 먼 옛날에 요셉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영광 가운데 왕으로부터 이러한 세 가지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받은 선물들 그대로 구약 성경이 예표로 예수님을 예표해주듯이 이렇게 똑같이
인장 반지와 그리고 세마포 옷과 금사슬을 이렇게 받고 정말
이긴 자로서의 당당한 보좌에 앉은 자로서의 모습이 이렇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탕자에게는 나중에 그 금사슬이 주어졌다 라고 말씀을 드렸죠.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성령님의 인침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분께서 인을 쳐야 자기 것임을 알고 구원받은 자라는 것을 온 세상에 우주 앞에 또 천사들 앞에 이렇게 나타나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인것과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구속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살렸다 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인정하고 동의할 때 심령으로 하나가 될 때 바로 그 날에 그 마음을 가진 때에 우리는 실제적으로는 성령님께로부터 인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영접하는 바로 그때에 우리는 성령님께로부터 이러한 도장에 의해서 인쳐지듯이
우리는 그분에 의해서 보여진 바 되고 나타내진 바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인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말씀 속에 임재 하시는 성령님에 의해서
구원이 이루어 진다 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홀로 인칠 수도 없고요 그리스도의 말씀 그 자체로 인칠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렇게 내려올 때 그리고 성령님이 그 말씀 속에 함께 하나가 되어 지면서 우리 마음을 동화시키고
감동시키고 연합시켜 하나가 될 때 우리가 그제서야 성령님께로부터 인쳐진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인쳐졌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말씀과 더불어 성령님께 인친 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하늘나라 정부의 원칙이 되는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산 그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이 인침 받은 증거를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탕자가 받은 그 금가락지 그리고 창세기 41장 42절에 요셉이 바로 왕으로부터 받은 그 인장 반지는
성령님으로부터 모든 믿는 자들이 성령님께서 구원받은 자들에게 인쳐지게 하시는 성령님을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탕자도 금가락지를 받았고요 요셉도 바로 왕으로부터 총리대신 이라는 그런 합법적 바로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자로 또 요셉 입장에서는 하늘 아버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로
그가 왕으로부터 인장 반지를 받았다는 것은 곧 성령님을 아버지께로 부터 받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인쳐졌다 라는
것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승리하고 돌아온 그리스도에게 이러한 약속의 선물인 성령님을 허락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 속에 모시게 되면 이 말씀과 더불어 성령님께서 그를 인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과 성령에 대한 인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성령님께서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승리하신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셔서 이 땅에 있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셨는데 이 인치심 중에 성령님께서 허락되심으로 말미암아 받은 첫 번째 선물은
금가락지였었고요 두 번째 선물이 옷입니다.
탕자는 한 가지 옷만 받았어요. 원래 두 가지의 옷이 있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을 자세하게 이렇게 좀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남겨주고 가신 것이 옷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9장 23절에 그 말씀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23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그의 옷을 취하여 예수님의 옷이죠.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 네 깃으로 나누어 제비 뽑기를 했어요.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여러분 이것은 겉옷을 지금 네 깃에 나누어 가지고 조각 내어서 한 깃씩 각각
네 사람이 제비 뽑기로 당첨된 자들이 얻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뭡니까 속옷도 취하였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겉옷과 속옷이 있는 것입니다.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날실과 씨실이 있다면 왜 하나로 통으로 짜져 있는 것일까요.
이건 세상의 옷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특별한 하늘에만 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옷이라는 의미에서 통으로 짠 것이라고 이렇게 속옷이 호지 아니하였다.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다 라고
우리 하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늘의 제봉틀로 하나님께서 친히 짠 옷입니다.
그래서 위로 부터라는 뜻이 있죠.
세상 사람들이 만든 수가 놓아지고 또 여러 가지 모양들이 만들어진 그런 이 세상의 것은 단 하나도 단 그 어떤 모양으로나
어떤 인위적인 방법으로 짜져 있지 않은 인간적인 것들이 전혀 혼합되지 아니한 순수한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것을
그리스도께서 친히 입고 계셨었는데 그것을 세상에 내려줌으로 말미암아 이 네 깃으로 제비 뽑기로 나눠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탕자는 한 가지 옷만 받았습니다.
이 두 가지 옷 중에서 하나는 구원의 옷이고 하나는 승리의 옷인데 이 탕자는 이 세상 가운데 이 오염되고 흠과 점이 있는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생명을 느끼고 돌아왔기 때문에 그는
간신히 구원받은 자의 모습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이 구원에 대한 의로움만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탕자는 아직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그 삶의 기간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가 된 삶
연합된 삶 아버지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이 되고 자신의 뜻과 계획들이 아버지의 뜻과 계획들과 연합되어진 그런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이긴 자 승리한 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에게는 승리에 대한
옷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탕자와 마찬가지로 의의 옷을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접하고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순간에 의의 옷을 입게 되었지만 승리의 옷 내 목에서부터 발끝까지 내 온몸을 감싸주는 잔칫집에서 입게 되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나오죠 그런 아름다운 세마포 채색 옷을 입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승리의 삶이 승리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지니고 예수님처럼 하늘 아버지의 그 계명을 그 하늘 아버지의 법을 정말 일치된 마음으로
하나된 마음으로 그대로 똑같이 사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품성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유가 되어서
그 품성이 세상 가운데 사람들에게 인류에게 드러나져 있어야 됩니다.
생명으로 나타나졌어야 돼요 표현되어졌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탕자가 아직까지 그러한 승리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삶
아버지의 마음과 똑같으게 되는 그러한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때까지는 승리의 옷이 주어지지 않고 단지 구원의 옷만 주어지게 됐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3장 16절에 보면
16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23장에 6절에도 보면
6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여러분 여기에 의의 옷이 우리에게 허락되는데 이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순전하고 온전해졌을 때 옷이 주어지는데
우리는 두 가지 옷을 입어야 된다 라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이야기에서는 그냥 옷이 주어졌는데 그 옷은 구원에 대한 의의 옷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옷은 승리한 자들에게 잔칫집에서 천국 잔치에서 우리가 그 예복을 입고
주님의 그 천국 잔치에 우리가 가야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계시록 19장 8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8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물론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에 대한 말씀을 마태복음22장에 하고 있습니다
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저희가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1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우리가 이 의의 옷을 입음에 있어서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인 주님을 모심에 있어서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의의 옷인 구원의 옷일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주어지지만 개인적으로 주님과 같은 믿음과 주님과 같은 품성을
그런 아름답고 의롭고 거룩한 품성을 가지고 사는 자들에게 개인적인 그런 경험을 가진 자들에게 주어진 옷이
여러분 승리의 옷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리스도께서 선물해 주시는 의의 옷과 또개인적으로 주님과 같은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그런 승리의 옷 이 두 개의 옷이 이렇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장 3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여러분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서 거룩하게 하시고 의롭게 하시는데 이 의로움은
우리가 구원받았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이 자격을 갖춘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얘기는 의의 옷은 입혀졌지만 아버지 집에는 들어올 수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그 의로운 아버지와 함께 앉을 자격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걸 우리가 명심하셔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냥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고요 거기에는 순서가 있고 과정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영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아버지와 함께 온전해 지기 위해서 온전한 그 자리에 함께 앉을 자격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사는 믿음과 품성 생애 그러한 것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먼저는 탕자에게 그가 집에서 부끄러움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의의 옷 그 의의 옷이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아들이라는 일단 자격은 얻게 해줘야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허락하신 그 의의 옷을
주신 것입니다.
그건 일반적으로 예수님 믿는 모든 자들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를 믿으면 의로우신 하늘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의롭게 된다 라는 그러한 뜻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의롭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운 그분을 통해서
의의 옷을 입어서 아버지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받았다 라면 아버지의 그 식탁에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예수님이 그대로 나타나져야 됩니다.
믿음이 나타나져야 되고요 그분이 가지셨던 그 아름다운 고우신 선하신 마음씨들 성품들
품성들이 하나님의 형상들이 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까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의의 옷을 입은 자들은
의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제는 부끄럼 당하지 아니하는 선한 행실 선한 일들 주님의 형상을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그대로 내 나를 통해서 표현되고 나타내지는 그 삶을 살아낼 때 보여질 때 사람들에게 행해질 때 만물 위에 그런 것이 드러 나질때
그때서야 우리는 승리의 옷 정말 개인적인 의의 옷이 또 하나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까 요한복음 19장23절에 예수님께서 속옷과 겉옷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것을 읽었죠
우리는 우리가 입고 있는 이 구원의 의의 옷만이 아니라 이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옷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주지 시키며 강조를 하고 또합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이 두 가지 옷이 온전히 우리에게 입혀졌을 때
우리는 정말 그제서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우리가 일컬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이 의의 옷은 지금 우리가 그러한 과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옷인 의의 옷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졌지만 이 두 번째 주어진 예복
이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그것은 아직도 주님이 오시기까지 끝까지 죽을 때까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정말 피흘리기 까지 때로는 싸우고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되고
죄의 유혹과 죄의 충동들을 이겨나가는 삶을 계속 삶으로 말미암아 내가 단단해지고 견고해지고 고착해졌을 때 흔들림이 없어졌을 때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그 의의 승의 승리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아까 예레미야23장6절 말씀에 읽은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세상에 어떠한 그 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라는 것은 옳은 것이죠. 선한 것 선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그 옳다 라는 진리 라고 그러죠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순간에 주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죽을 때까지 그 일은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될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오직 하나이십니다.
오직 유일하게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며 하나님 자신이 생명이심을 영광이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표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단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없어요.
그래서 외아들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독생자 홀로 사시는 자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계획이나 우리의 마음 우리의 어떤 그런 것들로
우리가 절대 생산되지 않습니다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절대적입니다. 제가 이것을 몰라서 얼마나 고통 가운데 살았는지 모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고 의존하면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봄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라는
얘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주 가운데 이 만물 가운데 유일한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그 하나님의 형상 중에서 가장 특별한
그 생명과 그 공의로우신 의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의가 되신다 라는 말씀을
이 생애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믿고 의존하는 자들에게 입혀지는 것이 의의 옷입니다.
그런 자들은 살면서 생애를 통해서 말씀을 진리로 받으면서 승리하겠죠.
세상을 이기겠죠. 마귀를 이기겠죠. 죄를 이기겠죠. 나를 이기겠죠.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옷인 승리의 옷이 주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이긴 자로서 승리한 자로서 승천하셔서 그 하늘 보좌에 앉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 의로움을 이긴 것이 그분의 의로움인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이 옷을 입혀주시기 위하여
약속된 선물인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옷을 입혀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버지에게 받은 약속된 선물인 성령님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온 인류 앞에 그것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바 되어 누구를 통해서요? 성령님을 통해서 그 의의 옷이 전해졌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의의 옷은 성령님이 가져오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님을 통해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되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되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 되시는 의로우신 예수님을 나타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서 항상 오시는 분이에요. 만약에 말씀이 없이 성령님이 오셨다.
그건 여러분 의심해 보셔야 됩니다. 절대 그렇게 오실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성령님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라는 통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말씀의 진리를 통해서 항상 제공이 되어지고
전해지고 임재하시고 내주하시고 옷 입혀주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승리의 옷을 입혀주시기를 원하면서 이 일을
계속적으로 수고하시고 정성을 다하시고 정말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우리를 위해서 힘쓰시고 일하시는 분이 바로
하늘 보좌에 지금 계신 하늘 성소에 계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성령님이 이와 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그리스도에게 주시고 그리스도는 그 약속된 선물인 성령님을 이 땅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부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 세분 하나님이 함께
이 의의 옷과 승리의 옷 이것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가락지를 깨워주신 것이고요 그것이 확증된 것이 바로 금가락지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증된 표시가 금가락지입니다.
이것이 계속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도록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는 날마다 깨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강도 만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보면 그가 여리고 성에 내려가는 삶을 살다가 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오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하늘 아버지께로 좀 고통 가운데 힘들더라도 올라오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리고성을 향해서 편안함과 누림과 만족을 위해서 그 성으로 가다가 강도에게 무엇을 뺏겨버렸습니까? 옷을 뺏겨버렸어요.
여러분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관한 말씀을 자세하게 한번 읽어보세요.옷을 뺏겼습니다.
이 악한 영들 이 마귀는 어떻게든지 우리가 이 구원의 의의 옷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함으로
하늘 아버지께 얻은 가장 귀한 선물인 성령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이 옷을 못 입게 하려고 옷을 벗겨 빼앗아 가버렸어요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인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 그분이 옷을 입혀주시고요
그리고 떡과 기름으로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요 떡을 통해서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 또 여관 주인에게
말을 해서 돌보아 달라고 돈까지 주면서 포도즙을 이렇게 생명을 공급해 주기를 원하여서 그렇게까지 한 명의
잃어버렸던 그 생명의 영혼에 대해서 귀함을 하시고 의의 옷을 입게 하시기 위한 간절함과 그 열망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지고 나타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옷이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 뺏기면 안 됩니다.
어떤 방편으로도 삶에 분주하게 만들고 삶에 치우치게 만들고 먹고 마시는 거 여러분 그만 멈추세요.
가난하게 살면 좀 어떻습니까? 좀 없이 부족하게 살면 어떻습니까? 있는 그 자리에서 자족하고 사세요.
모자라면 조금 모자라는 가운데 허리띠 졸라매고 또 일을 할지라도 더 욕심 내지는 마시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의의 옷과 특별히 구원에 대한 옷과 승리하게 하는 이 구원의 옷을 입은 자들은 많은데요.
잔칫집에 참여하게 될 그 승리의 옷 예수님이 입으셨던 그 승리의 옷 그 긴 세마포 아름다운 채색옷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영광의 옷을 그걸 입지 못하게 사단은 그렇게 세상에 눈을 돌리게 하고 세상 가운데 살며 분주하게 바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정도껏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딱 선을 긋고 여기까지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에 의해서 그렇게 선을 긋고 그러니까
한 100% 중에서 한 10% 20%만 세상에 관여하시고요 80% 90%는 의의 옷과 승리의 옷을 우리가 소유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 말씀과 기도와 영적인 삶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표현되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에 전심 전력을 다 해야 되는 것이 여러분 필요합니다.
그렇게 살 때 그럴 때 우리는 그나마 간신히 옷을 빼앗기지 않고 강도들에 의해서 빼앗긴 바 되지 않고
우리가 그 옷을 지킬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16장15절에 보면은 여러분들 옷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5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약속하신
귀한 선물인 가장 좋은 선물이죠. 성령님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어요.
그분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허락해 주신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겨놓고 가신 의의 옷과 승리의 옷이 입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물을 것입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입고 있느냐 라고 물으실 때 예 저는 주님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렇게 답변을 해야 되는데 만약에 답변하지 못하게 된다면
근데 보통은 첫 번째 옷은 입고 있다 라고 얘기하겠지만 두 번째 이 승리의 옷 이것은 지금 우리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이게 지금 열심히 주님의 품성을 담기 위하여 주님의 믿음을 가지기 위하여 주님의 증거를 가지기 위하여 우리가 열심히 예수님과 같은 똑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칠 때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생산이 되고 산출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 옷을 특별히 여러분 소유하기 위해서 만들기 위해서 보석과 같은 삶을 살아야 되고요
주님을 온전히 세상에 나타내는 표현되어지는 삶을 살아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셔야 됩니다. 주님 나에게 성령님 나에게 이 옷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두 번째 옷 왜냐하면 첫 번째 옷은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주어진 그의 구원에 의의 옷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창세기 41장 42절에 보면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이 금사슬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금사슬에 대한 얘기 이것이 탕자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잖아요
그에게 금가락지을 끼워주고 옷을 입혀주었고요 옷 중에서도 첫 번째 구원에 대한 의의 옷만 입혀줬죠
하늘 아버지 보좌와 함께 같이 하는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서 입을 아름다운 채색옷 영광의 옷인
그 승리의 옷은 아직 입혀지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제 아버지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앞으로 일정한 기간을 통해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살 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믿음과 그런 신앙의 삶과 품성을 소유한 자가 될 때 이 두 번째 승리한 자들에게 입혀지는
승리의 옷이 입혀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사슬이 탕자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는 주어졌어요. 탕자에게는 금사슬이 없어요. 승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요셉은 승리하였기 때문에 바로왕이 자기 대신 이 세상을 통치하도록 대표할 수 있도록
금사슬을 목에 걸어준 것은 바로 승리한 자의 표상입니다.
그럼 이 사슬이라는 것이 뭐죠 목에 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뻣뻣한 목을 가진 자들에게 이 금사슬이 주어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9절에 보면은 이러한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여러분 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말씀이 출애굽기, 신명기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몰라요
목이 곧은 자들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 앞에
경외하는 마음 정말 그런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목이 뻣뻣한 자들 목이 곧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마음이 없어요.
곧 이 금사슬이라는 것은 어떤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냐 하면 하나님의 권위에 온전히
순복한 그래서 예수님이 승리한 자의 표상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을 통해서 완전히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한 것입니다.
십자가가 있었고요 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을 때 십자가가 절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십자가가 절대적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혹
내오라고 명하신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보다도 더 우선한 것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복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그렇게 의식하고 살았어요.
온전히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권위에 온전히 순복한 자들의 목에 걸어지는 것이 이 금사슬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복해야 된다 라는 의지를 가진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목이 숙여지고 경외한다는 것이 뭐죠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들 중에 많은 계명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십계명은 하늘나라
그 정부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공의가 그 말씀 그 계명 안에 다 스며 있습니다.
그 계명들 하나 하나를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로우신지 얼마나 긍휼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넘치시는지
그분의 어떤 계명이 우리를 살리시는 생명의 말씀 이신지 그 말씀 안에 다 숨어 있습니다.
그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복종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자들의 목에 걸려지는 것이 사슬입니다.
내 의지가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복하고 순종하는 삶을 보일 때 정복되고 복종될 때
내 목에 사슬이 건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종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이 금 사슬이 절대 건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금사슬은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 앞에 순종하고 순복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승리하신 그리스도께 약속된 선물인 가장 고귀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면요
우리가 이 세 가지 선물이 창세기 41장에 기록된 이 말씀이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는 인장 반지 금반지를 빼어서 손에 깨우게 하죠.
그다음에 두 번째 세마포 옷을 입혔죠 세 번째 금사슬을 목에 걸어주십니다.
이게 순서가 먼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인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의의 옷 구원을 성령님을 통해서 받습니다. 이게 인치심입니다.
그래서 인장 반지를 주었다는 뜻이죠. 의의 옷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승리의 옷은 감춰진 옷이기 때문에 세마포 요셉은 승리한 자로서 왕으로부터 받은 그것은 승리한 자에게 주는
그 승리의 옷까지도 포함한 것을 말합니다만 탕자에게는 그것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두 가지 옷을 소유받기 위해서 정말 이 삶을 열심을 내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금사슬을 목에 걸기 위해서는 성령님에 의해서 완전히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복하는 삶을 살 때 노예와 종 같은 삶을 전적으로 그와 같은 삶을 표현한다면 그런 삶을 살 때
바로 성령님이 우리 자신을 복종하게 하여서 우리 목에 금사슬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목이 곧은 백성에게는 절대로 그것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복종하고 순종하여서 부드럽게 된 자들을 우리에게 계속 성령님을 통해서 부드럽게 한다 라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 차돌처럼 완악하고 강폭하고 딱딱한 그런 돌 같은 자들이 아니라 물고기 처럼 부들부들한 어린아이 살결같이 부드러운
어린아이 볼을 만져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 볼을 만지면 만질수록 어쩌면 그렇게 부드러운지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아이들의 그 부드러운 볼 살을 한번 만져보세요.
만지면 만질수록 더 만지고 싶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참 포근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부드러움이 있듯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예수님 앞에 성령님 앞에 이렇게 순종하고 순복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 때 부드러워짐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의지가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이 육적인 삶이 영에 귀속하는 그런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지시한 대로 준행하고 지키는 삶을 살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목에 그 금사슬을 이렇게 씌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의지가 아직도 살아있고 내 육체적인 육적인 어떤 생각들과
그런 성질들 고집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절대 그 금사슬은 우리에게 허락될 수가 없습니다.
나의 목이 곧으면 그 금사슬을 맬 그 위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님께 속박 당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복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온전하게
순종하는 마치 결박된 것처럼 정말 이 쇠 사슬에 메인바 된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순종하는 삶
그 성령님께 속박되어진 그 삶을 살게 되면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의 아름다움을 보시고 더욱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금사슬을 이렇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 금 사슬은 목이 뻣뻣한 자들에게는 금 사슬이 채색 옷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 순복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머리가 되시고 권위가 되시고 대표자가 되시는 하늘 아버지께 고개를
숙임으로 말미암아 옷 속에 있는 그 무거운 금사슬이 바깥으로 뛰쳐나와서 아름다운 하나님 아버지를 그 금사슬을 통해서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고우심이 하나님 아버지의 그 선하심이 그 금사슬을 통해서 내가 순복하는 삶을 살 때
순종하는 삶을 살때 엎드려 이렇게 내가 마치 웃 어른들에게 인사하기 위해서 고개를 이렇게 푹 90도 가까이
이렇게 고개를 숙였을 때 금사슬이 뛰쳐나오게 돼서 그 아름다운 금사슬이 그 사람의 전체 인장 반지를 끼고 아름다운
세마포를 입고 그 사람의 형체 품위 인격 이런 것들이 금 사슬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금사슬이 없으면 뭔가 하나가 빠진 것이에요.
그건 승리한 자의 모습이 아니에요. 승복한 자의 모습이 아니에요.
순복한 자에게만 주시는 것이 금사슬입니다.
여러분 금사슬을 그 많은 것들 중에 그러니까 순서가 그래요
이 인장 반지를 성령님께로부터 인침받은 자들이 구원의 옷을 입는 것이고요 구원의 옷
가운데서도 의의 옷 구원의 옷을 입게 되고요 허락하신 보편적으로 그다음에 그 자들이
점점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고요 승리의 옷을 입게 되는 사람이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아버지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되니까 나타내줘야 되니까
영광을 보여야 되니까 금 사슬을 줌으로 말미암아 순복할 때마다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순종할 때마다 하늘 아버지의
영광이 표현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고 예수님을 소유하게 하여서 구원 얻게 하신 이유예요.
이걸 모르면 여러분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사슬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완전히 그리스도의 말씀에 성령님께 순복하는 삶을 사는 자다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속박되어 있는 그러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그런 아들 딸들이다 라는 것을 여러분 보여야 될 것입니다.
금사슬은 하나님께 순종을 보이는 우리의 표시입니다.
성령님의 가장 큰 귀한 선물이 뭐냐 하면 인장 반지도 좋은 것이고 구원의 옷도 좋은 것이지만
그 인침받고 구원을 얻은 자들 그들은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정말 순종함으로 보여지는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체적으로 드러나게 해주는 하나의 상징이요 표상인 금 사슬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요셉이 받은 선물들이며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에게 허락받은 것이며 그리스도는 승리함으로 하늘 아버지께
가장 귀한 선물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을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예수님께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하신 것 처럼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다른 세상것을 구하기를 원치 말고 하늘에서 내가 너희에게 허락한 성령님을 그렇게 소유하기를 간절히 원하라고 우리에게 호소하시며 간절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나를 이렇게 구원받게 해주셨다는 확증의 인장 반지가 끼워져 있어야 되고요
내 몸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감싸주고 오히려 아름답고 영광으로 나타나게 해주는 온몸을 감싸주는
아름다운 옷들을 입어야 되고요 내 목에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아름답고 거룩하신 모습을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기
위해서는 금사슬을 소유해야 된다 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요셉이 왕에게 이러한 선물을 받았고요 그리스도께서도 승리하였기 때문에 하늘의 왕으로서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님을 받으셔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이와 같은 자신과 같은 똑같은 삶을 살아서
이웃들에게 인류에게 사람들에게 똑같이 인장 반지를 나눠주고 옷들을 나눠주고 금 사슬을 이와 같이 귀한 하늘의 귀한 선물들을 너희가 받았으니 너희도 나눠주라고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전해주는 이 너무나도 귀한 선물을 받은 우리는 요셉처럼 그 귀한 인장 반지 세마포옷 금사슬을
받은 요셉은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세상 모두에게 양식을 공급해주는 대표자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하나님 아버지를 대표하는 대표자가 되었어요.그래서 다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요셉과 같은 자가 되십시다. 그리스도와 같은 이기는 자가 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장 반지와 옷들과 금사슬을 소유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교제 말씀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치 탕자처럼 오염되고 흠과 점이 많은 고된 세상살이에 찌들은 모습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그 마음을 깨닫고 이제서야 하나님 집으로 돌아온 나의 모습을 보며 우선 적으로 나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덮어줄수 있는 구원의 의의 옷을 걸쳐 주심에 감사 드리며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 요셉의 세가지 선물에 대해서 듣고 알게 됨으로 나의 신앙의 나아갈 바를 알고 소망을 가지며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신앙의 길의 표본이 되어주시는 말씀으로 몇번이고 되새김을 하다보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온전히 먹게 되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되실것이 생각됩니다
다른 말씀도 너무나 귀하지만 이 말씀을 통하여 세분 하나님이 하나의 마음이 되어 우리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되게 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시고 계시는 지를 잘 알게 해주시는 말씀 이라 깊이 깊이 두번 세번 묵상 하실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