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대표선수들의 평창 동계패럴림픽
지구촌 장애인들의 겨울 스포츠제전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지난 3월 18일을 끝으로 열흘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이번에 치러진 종목은 6개로, 평창에서는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스키가, 강릉에서는 휠체어컬링과 아이스하키가, 그리고 정선에서는 알파인스키와 스노보드 경기가 펼쳐졌다. 대한민국에 있어 이번 행사는 한층 감회가 남다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및 패럴림픽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기에 개최된 데다, 49개국 570명이 출전한 최대급 규모, 그리고 한국이 대회 사상 최초로 전 종목 출전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36명의 선수들이 보여준 뜨거운 경기, 꽃보다 아름다운 열정을 되새기며 평창 동계패럴림픽의 시각장애인 대표선수들을 만나보았다.
하얀 신뢰의 질주, 알파인스키의 양재림, 황민규 선수
겨울 스포츠 하면 스키를 첫 손에 꼽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는 알파인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경기를 돕는 가이드러너와 함께 활주에 임한다. 그러나 둘 사이의 신체적 접촉이 있어서는 안 된다. 대신 가이드러너가 먼저 코스를 지나며 기문과 장애물 등의 여부를 각자의 헬멧에 달린 블루투스 무선통신 장치를 통해 전하면 선수는 그를 참고해 활주한다. 한국의 시각장애인 대표로는 양재림(3급, 여, 29)과 황민규(3급, 남, 22) 선수가 있다.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경기는 슈퍼복합과 마지막에 치렀던 대회전입니다. 두 경기 다 조금 더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하지만 최선을 다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알파인스키는 회전, 슈퍼대회전 등의 종목으로 나뉜다. 그리고 양재림 선수는 고운소리(23) 가이드러너와 4개의 세부종목에 출전했다. 그는 미숙아망막증으로 인해 왼쪽 눈은 시력이 없고, 오른쪽 눈은 정상인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시력이 고르지 않은 탓에 몸의 균형 감각이 떨어졌고, 그를 극복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왔다. 그중 하나가 스키였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대한장애인체육회의 권유를 받고 정식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제한된 시야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아찔한 속도와 정밀한 기술이 필수인 알파인스키 활주를 해내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도 무섭죠, 사람인데(웃음). 하지만 혼자가 아니잖아요. 가이드러너의 안내를 들으며 믿고 활주하다 보면 어느새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져요.”
한편 황민규 선수도 알파인스키 남자 회전과 대회전 부문에 유재형(27) 가이드러너와 출전했다. 메달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첫 참가임을 감안한다면 의미가 깊다. 그는 본래 육상선수였으나 2016년 우연히 찾은 스키캠프에서 알파인스키를 접하고 도전하게 되었다.
“도구를 다루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런데 경기 당시 회전에서 너무 많이 돌았던 것 같아요. 아쉽지만 그만큼 의욕이 생깁니다. 베이징을 목표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애인 알파인스키 시각부문의 매력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양재림과 고운소리 선수처럼 서로를 신뢰하며 함께 나아가는 모습. 황민규 선수와 같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 메달보다 더욱 값진 노력과 믿음의 활주였기에 그들의 활주는 더욱 빛났다.
설원의 마라톤 크로스컨트리스키와 얼음의 철인 바이애슬론의 최보규 선수
노르딕스키의 한 종류인 크로스컨트리스키는 대자연과 인간이 겨루는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스가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가 1/3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구력과 체력, 인내를 시험한다. 한편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스키와 사격을 융합한 경기로 체력은 물론 얼음처럼 견고한 철인의 정신력까지 겸비해야 하는 종목이다. 시각장애인 최보규(1급, 남, 24) 선수는 바로 이 두 경기 모두에 김현우(23) 가이드러너와 출전했다.
“사실 사격에 조금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바이애슬론에 출전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결과가 나오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최 선수는 그렇게 평창 패럴림픽 소감을 밝혔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지인의 권유로 노르딕스키를 시작했다. 하지만 패럴림픽에까지 참가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런 최보규 선수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순위를 더 올려야죠. 체력도 더 키우고 테크닉도 향상시켜서 다음에는 10위 안에 들고 싶습니다.”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한국은 순위 16위를 기록했다. 신의현 선수가 크로스컨트리스키 좌식 부문 7.5km에서 금메달, 15km에서 동메달을 따고 정승환, 한민수, 최시우 등 17명의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한 덕분이다. 동계 패럴림픽 노르딕스키 부문 최초로 메달을 쟁취한 이번 성과는 기념할 만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메달 여부를 떠나 선수들 하나하나의 노력과 구슬땀은 찬사를 아껴서는 안 될 매우 값진 보석이다. 패럴림픽은 하반신 마비의 ‘패러플리지아(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의 합성어로 ‘동반(parallel)’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번 올림픽 역시 ‘동반’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경기였다. 앞으로도 계속될 장애인 선수들의 도전과 질주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