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쇠
교통사고로
남편의 차는 폐차가 되었고
왼쪽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한 달여
일간 마른 스펀지 같은
하늘만 원망하다
휠체어에 앉아
퇴원을 하는 게
이나마 가슴 뭉클하다는듯
병원 정문 앞에서
햇살에 잘 다려진
구름 한 점을
머리에 이고는
두 팔 벌려
태양을 끌어안으며
행복을 그리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없었던 나는
좁디좁은 병실 안에서
그 시간을 버텨준
남편에게 고마워하며
"그렇게 좋아?
"그럼 당신을 처음 만난 날 다음으로
오늘이 내겐 좋은 날이야'
아직도 남편의 다리에 감겨있는
깁스한 다리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과는 달리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새로운 하루를 만날 수 있다는 걸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여보. 우리 처음 만났던
그 바닷가에 갈까?"
남편의 그말에
택시가 태워주겠느냐는 듯
휠체어를 보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보란 듯이
세워 보이겠다는 듯
휠체어 바퀴를
도로 쪽으로 방향을 틀어놓고는
연신 양팔을 흔들고 있었지만
택시는 우리를 조종하는 듯
가까이 오던 택시도
휠체어를 발견하고는
차선을 변경해 내달리고 있는 걸 보며
남편은
봄비에 잠든 낙엽처럼
금새 축 늘어져 버렸다
나무가 내어준 그늘 아래서
우리는 별을 잃은 하늘처럼
지나가는 택시만 바라보는 시간이
30여 분 더흘러가고 있었고
머리 위에
먹구름을 바라보며
불안한 듯 서로를 마주 보고 있을 때
택시 한 대가 멈추어 서고 있었다
'기사님 너무 고맙습니다"
택시에 오른 남편은
봄을 만난 꽃처럼 웃으며
고마움의 인사를 먼저 건네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밀물에 누웠다가
썰물에 일어서는 파도를 보며
지나간 옛 추억을 우린 곱십고 있었다
"당신... 기억나지?
우리가 20년 전에 여기서 첨 만난거,,
그럼요...
당신의 시커먼 속을 알게 된
날이기도 하고요..
"어어...
당신이 땀을 뻘뻘 흘리며
찾고 있길래
같이 찾아 준다고 고생한 사람한테...
"이제 고백하시죠?
이미 찾아놓고는
일부러 못 찾은 척
네 시간이나
절 헤매게 했다는 걸요"
"아냐..
진짜 그때 찾은 거야
미리 찾아놓고
거짓말한 게 아니라니까
"당신.
나랑 같이 있고 싶어
그런 거 다 알아요"
집 열쇠가
어느덧
사랑의 열쇠로
변해버린 지난 이야기를 하며
우린 웃고 있었다
달빛에 젖어
모래속에 숨겨둔
지난 사랑에
신이 난 남편은
"그때 당신이 내게 물었지?"
"사랑한 사람이 기억에 오래 남을까?
아닌 사랑해 준 사람이
기억에 오래 남을까,"
라며
"그땐 난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아
사랑해 준 사람의 기억 속에
사랑한 사람이 남아 있는 한
같은 기억 속에 있는 거라고.
그렇게
달의 미소를 닮은
가을바람을 따라
한 줄기
두 줄기
세상을 함고온 비를
두 손을 모아
남편에 손에 건네고 있던 나는
"여보.. 이제 집에 어떻게 가지?"
그러게..
시간이 이렇게 된 출도 모르고"
무심한 하루가 문을 내린 거리에
어디선가 바람처럼 나타난
택시를 타고
가을비를 튕겨내며 달려 가더니
집 앞에 우리를 내려주고
멀어지던 택시를
바라보고 있던 남편은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지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왜요....
뭘 잃어버렸어요?"
"아까 그 해변에 놔두고 왔나 봐"
"뭘요.
집 열쇠는 내게 있는데..?"
"아니∙.. 그것말구"
"그럼 뭐요?"
"당신에 대한 내 사랑"
휠체어를 밀고 가는 남편과
나의 마음속에는
마주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부부란.
행복을 준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