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 바콜 (Lauren Bacall 1924~2014)
1942년 18세의 나이에 모델로 데뷔한 뒤 '하워드 호크스'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소유와 무소유’(1944년)로 데뷔했다.
함께 출연했던 25세 연상의 '험프리 보가트' 와 1945년 결혼한 뒤
‘빅 슬립’(1946년), ‘어두운 통로’(1947년), ‘키 라르고’(1948년)에서
호흡을 맞추며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하드 보일드' 로맨틱 코미디이면서, 전쟁 모험 영화이기도 한 '로렌
바콜'의 이 데뷔작은 순식간에 고전(古典)의 반열(班列)에 올랐고,
기억에 남는 그녀의 재치 있는 대사들("당신 휘파람은 물론 불 줄
알겠죠")은 대중문화의 한 요소가 되었다.
스크린 상의 오만한 태도에서 '보가트' 에게 아주 잘 맞는 상대였을 뿐
아니라, 그녀가 맡은 인물인 마리 '슬림' 브라우닝('슬림'은 낸시의 별명)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호기 카마이클'의 노래들을 부르기도 했는데,
그 노래들은 '앤디 윌리엄스'가 더빙한 것이라고 여러 해 동안 잘못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워너 브라더스'의 만화영화 「바콜 투 암즈
(1946)」에 그려지면서 최고의 찬사를 얻어냈다. '로렌 바콜' 은 1940년대의
남은 기간 동안 '보가트' 와 함께한 「다크 패시지(1947)」와 「키 라르고
(1948)」등에 출연 했다.
1957년에 '보가트' 와 사별(死別)한 후 '바콜' 은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했고, 특히 「이브의 모든 것(1950)」을 뮤지컬로 옮긴 「갈채」의 주연을
연기한 것이 유명하다. '필름 누아르'의 아이콘 적 배우로 「명탐정 하퍼
(1966)」에 캐스팅되면서 그녀는 다시 영화로 돌아와 성격 배우로 활동
했는데,「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1974)」에서는 웃기고, 「마지막 총잡이
(1976)」에서는 감동적이었다. '제임스 가너'와 함께 주연한 「광란자(1981)」
에서는 사이코패스에게 스토킹 당하는 브로드웨이의 '디바' 역으로 자기
자신을 희화화했다.
' 로렌 바콜' 은 두 번 결혼했지만—'험프리 보가트' 와의 첫 결혼은
그가 세상을 떠난 1957년까지 유지되었다— 대체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 "결혼이 영원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5년 동안 결혼을
유지하는 건 영원한 결혼생활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지금(2005년) 결혼해야 한다면 아주 싫을 거예요. 때때로 이런
생각이 떠오르죠. 만약 넘어져서 머리를 다친다면 응급 전화를
걸어 줄 사람도 없겠다는."
· "나는 두 번의 결혼생활 내내 일을 뒷전으로 밀어 뒀죠.
그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인천 아이러브색소폰 클럽 대표 윤양로 원장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