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총칙 레포트.docx
20130760 법학과 김미정 (주제: 평등)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평등의 정의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평등(平等)이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을 의미한다. 즉 신분 성별 재산 종족 등에 관계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는 모두 동등하다는 것이다.
평등에는 같게 대하는 평등과 다르게 대하는 평등이 있다. 우선 같게 대하는 평등은 절대적∙획일적 평등이라고도 하며 이는 장애, 재산의 정도 등과 같이 선천적, 후천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평등을 이야기 한다. 1인 1표와 같이 주로 정치적 영역에서 강조된다. 다르게 대하는 평등은 상대적∙실질적 평등이라고도 하며 선천적, 후천적 차이를 인정한다. 이것은 일의 결과가 더 좋은 사람에게 성과급을 주고, 전기의 사용량에 따라 누진세제도를 적용하는 것처럼 사회∙경제의 영역에서 주로 적용된다. 우리 헌법 법 제 11조를 살펴보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제 11조에서 말하고 있는 평등도 이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 모두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어떤 나라도 전부터 만인이 평등한 곳은 없었다. 청동기시대에 계급이 발생해 그 이후로 사람마다 각자의 위치와 자리가 정해져 있었고 2000여년동안 이것이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 서양에선 여자와 흑인들, 아이들은 차별 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참정권을 얻기 위해서, 성인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싸웠다. 결국 참정권을 얻어냈으며 정치적으로 평등을 실현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까지 신분제에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왕족과 양반, 중인, 노비 등이 있었고 그에 따라 차별 받으며 살았다. 우리나라의 신분제가 폐지된 것도 조선후기, 갑오개혁 때 이다. 서양에서 차별 받던 이들이 참정권을 얻어낸 것도 19세기이다. 이렇듯 우리가 모든 사람들이 차별 받고 평등하지 못했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문서로, 공식적으로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고 법에 명시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헌법 제 11조가 평등에 관한 명언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와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라는 문구이다. 이것은 광고인 박웅현씨가 만든 문구로 2000년도 초반에 실시한 KTF 기업 이미지 광고 ‘KTF적인 생각’ 에 실렸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에 도전한다.”는 이 문구는 남녀차별 혹은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나온 문구인데 뜻을 보면 남녀간의 차이는 인정하되, 차이에서 오는 차별은 인정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겠다는 말이다. 남녀간의 두뇌구조 혹은 신체적 차이처럼 선천적으로 다른 부분의 차이는 인정하겠지만 그 차이를 이유로 한쪽을 더 높게 판단하고 다른 한쪽에 불이익을 주는 차별에는 과감히 도전하여 평등을 이뤄내겠다는 의미같다. 나는 이 광고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예전부터 여성은 채집을 하고, 남자는 사냥, 수렵 등을 했었다. 물론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남성이 더 잘하는 일이 있다. 그에 맞춰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고,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성에 따라 남녀의 역할이 나눠지고 그러한 관습이 계속 내려오다 보니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긴 것 같다. 현대도 남성은 바깥 일, 여자는 집안 일 이런 식의 고정관념이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집에나 들어앉아서 살림이나 할 것이지 밖에 나와서 민폐만 끼친다고 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것도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나온 남녀차별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팽배했기 때문에 남녀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일본 메이지유신 때는 여자가 남자의 부속물이었던 적도 있었다. 일본에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께 복종하고, 결혼하고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늙어서는 아들에게 복종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여성의 지위가 바닥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여성의 지위가 많이 상승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남자들이 차별을 받는다고도 할 수 있다고도 한다. 앞으로 남성과 여성이 온전히 평등해져, 누구든지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성별이 아닌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인정받았으면 한다. 물론 여성들도 여성이라는 것을 들어 많은 혜택을 보고 상대적으로 남성들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하면 나중에는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는 문구가 나온 광고를 보면 한 기업의 간부급쯤 된 양복에 넥타이를 한 중년남성이 나온다. 그는 청바지에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젊은이를 보고 무시하지만 후에 그 젊은이가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이 광고를 보면 옷을 가지고 그 사람의 신분을 결정짓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또한 외모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의 모습을 콕 집어 비판하는 것도 같다.
예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옷차림을 보겠다. 이들의 사진을 보면, 故 스티브잡스는 주로 청바지에 운동화를 주로 공식석상에 나왔고, 빌게이츠는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나온다. 이렇듯 두 사람의 옷차림은 서로 대조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평등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습관이 있다. 나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러한 능력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 땅 위에 유일한 평등은 죽음이다. (1816-1902, 영국 시인 필립 제임스 베일리)
이 말도 공감이 간다. 법에서도 명시하고 있다시피 현재, 형식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해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모두 평등한가? 그것은 아니다. 사장과 사원의 말이 동등하게 작용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종속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국가고시에 합격한다던가, 누군가가 돈 많은 집으로 시집을 가거나 장가를 갔을 때 신분 상승했다는 표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학벌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며 또 다른 현대판 신분제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학벌이야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존재하겠지만 예전부터 학연, 혈연, 지연이 크게 작용했던 우리나라에서는 학벌이 유난히도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지금은 학벌보다는 개인의 능력에 중점을 두는 사회로 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학벌이 많은 불평등을 자아내기 때문에 학력위조와 같은 사건들이 많이 터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실질적으로 경제적, 사회적인 부분 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종속되게 된다. 중국에도 현대판 신분제라고 불리는 호구제(户口)가 있다.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호구를 가져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을 제한 받고, 이동하면 그 지역의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료혜택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혜택들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다들 기를 쓰고 대도시에 호적을 두고 싶어한다. 한 중국인 선생님께서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준수한 사람이 있었는데 지방에서 태어나 호구가 좋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러자 결혼을 하려 해도 지방호구라는 이유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결국 베이징에 호구를 두고 있는 나이 많고, 경제적인 능력도 거의 없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중국은 베이징과 상해 같은 대도시와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는 엄청나다. 물론 호구제도가 없으면 중국의 엄청난 인구들이 모두들 몇 안 되는 대도시로 인구가 지나치게 몰리겠지만, 지방사람들은 자신들이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들이 사는 지역이 굉장히 낙후된 것도 불만인데 거기다 대도시에 일을 하러 가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정말로 억울할 것 같다. 이렇게 지역마다 엄청난 격차를 가지고 있는 중국에서 호구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도농간의 엄청난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
.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평등하고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감명 깊었던 것은 아래 시이다. 이것은 한 흑인소년이 쓴 2006 UN이 선정한 최고의 어린이 시라고 한다.
When I born, I black. 내가 태어났을 때, 난 검다.
When I grow up, I black. ...내가 성장할 때, 난 검다.
When I go in sun, I black. 내가 햇볕에 나갈 때, 난 검다.
When I cold, I black. 내가 추울 때, 난 검다.
When I scared, I black. 내가 두려울 때, 난 검다.
When I sick, I black. 내가 아플 때, 난 검다.
And when I die, I still black. 그리고 내가 죽을 때, 난 여전히 검다.
You white folks... 너희 백인들은...
When you born, you pink. 네가 태어났을 때, 넌 분홍이다.
When you grow up, you white. 네가 성장할 때, 넌 희다.
When you go in sun, you red. 네가 햇볕에 나갈 때, 넌 붉다.
When you cold, you blue. 네가 추울 때, 넌 푸르다.
When you scared, you yellow. 네가 무서울 때, 넌 누렇다.
When you sick, you green. 네가 아플 때, 넌 녹색이다.
When you bruised, you purple. 네가 멍들었을 때, 넌 보라다.
And when you die, you gray. 그리고 네가 죽을 때, 넌 회색이다.
So who YOU callin' C O L O R E D ? 그런데, 넌 누구를 유색이라 부르는가?
이 아이는 인종차별을 예로 들어 흑인들인 백인에게 차별 받고 있지만 흑인과 백인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명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길지만 난 이 시가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어린 아이가 썼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예전에 백인들은 흑인이나 황인종들을 유색인종이라고 하여 차별대우했고 자신들보다 하등 한 인종으로 여겼다. 현재까지도 인종차별은 벌어지고 있다. 여러 인종, 민족이 섞여 사는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러시아의 인종차별도 심한 편이다. 또 우리나라사람들의 외국인 차별 특히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 사람은 누구나 국적, 피부색, 성별등과 관계없이 평등해야 한다. 어린 아이조차도 인종을 이유로 차별을 받았고 느껴왔기 때문에 이런 시를 쓴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평등을 위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