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잊은 우리말, 역사
염병(染病) 염병할.../1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감염병이 전염병이다. 줄여서 염병이고, 방언으로 옘병이라 한다. 조선시대 전염병을 앓으면 거의 살아남기 힘들었다. `죽음`을 의미했다. 천역(天疫)이었던 것이다. 세균 또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을 역병, 역질, 여역, 역려, 괴질 등으로 불렸다. 조선후기 역병은 콜레라, 두창, 성홍열,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다. 한 번 전염병이 발생하게 되면 수 천, 수 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왕조실록에 745회의 관련 용어가 등장한다. 여역 418회, 역질 255회, 괴질 37회, 역병 27회, 역려 8회 등의 순이다. 치사율이 90퍼센트 이상이었다. 성경 민수기에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하여 전염병은 하나님의 경고, 심판으로 묘사되어 있다. 동서양을 막론, 전염병은 강력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 영향력은 파괴적이다. 허준은 전염병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자연의 섭리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20. 3/1 6/1 잃어버린 우리역사
염병(染病) 염병할.../2
조선시대에는 역병이 귀신의 짓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역신(疫神)이라 했다. 역병이 창궐하면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역병이 도는 마을에서는 무당을 찾았다. 신라의 처용(處容)은 자신의 처를 범한 역신을 노래와 춤으로써 쫓았다. 이것이 바로 굿의 기본구조다. 조선에서는 공포와 불안감을 쫓기 위해 무당을 동원, 무사귀신(無祀鬼神)과 역신을 제사했다. 이를 여제(癘祭)라 했다. '여(癘)'는 염병, 전염병을 의미한다. 치료법을 모르니 귀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서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역병 기록이 무려 160회다. 평균 10년에 3회 이상 전염병이 돈 것이 된다. 1592년부터 1791년 까지 200년 동안 가장 많이 발생했다. 무려 91회나 된다. 1749년 44만여 명, 1750년 60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사회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조선 인구는 700만 명 규모였다. 2020 3/7.
-한눌 이야기
역사칼럼니스트.
염병/ 염병할.../3.
염병과 함께 일상에 젖어 든 용어가 ‘마스크’다. 중세시대 가면극에서 생긴 말이다. 원형은 라틴어 마스카(masca)로 알려져 있다. 마스크는 얼굴 또는 입을 가리기 위해 쓰는 물건이라 나온다. 본디 우리말은 입마개다. 가면(假面). 부면(覆面). 탈로 썼다. 국어대사전에는 코ㆍ입 가리개로 병균이나 먼지를 차단하기 위하여 코ㆍ입을 가리는 물건이라 풀이했다. 이로 보면 마스크 보다 입마개가 바른 말이다. 일제는 우리의 말과 글을 없애 우리의 혼과 얼을 빼앗으려 했던 뼈아픈 역사가 있다. 하지만 정부 행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방송인이 더 한다. 외국어를 섞지 않으면 문장을 못 짓는 얼간이 세상, 염병 창궐로 다시 생각해 본다. 언어는 민족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문화 결정체다. 마스크가 입마개를 덮어 버렸다. 염병할... ,
염병/ 염병할.../4.
코로나와 함께 치명적인 언어가 우리를 괴롭힌다. 외래어를 알아들어야 생존에 도움이 되니 필사적으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좋든 싫든 엄청나게 많은 의학 지식과 정보를 접해야 한다. 본디 우리말 입마개는 마스크란 말로 굳어 버렸다. 한글문화연대가 지적한 내용을 인용한다. ‘코호트 격리’ ‘드라이브스루 진료’ ‘팬데믹’ ‘인포데믹’처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전문가와 방송 진행자, 기자들 덕에 알게 되었다. ‘코호트 격리’는 ‘동일집단 격리’로, ‘드라이브스루 진료’는 ‘승차 진료’나 ‘자동차 이동형 진료’로, ‘팬데믹’은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포데믹’은 ‘악성 정보 확산’ 또는 ‘정보 전염병’ 따위로 말이다. 일부 언론에서 비판하듯 정말로 이 시국에 말을 이래 쓰나 저래 쓰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중요하다. 이 무시무시한 전염병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되도록 쉽고 분명한 우리말을 써야 피로와 공포가 훨씬 덜할 것이다.
2020. 4/5.
염병/ 염병할.../5
자가격리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워 졌다. 조선 상류층들은 어땠을까?. 전염병 회피수단으로 피접(避接)을 했다. 이들은 별궁이나 관아에서 마련한 특별한 휴양시설에 거주하며 염병이 지나기만 기다렸다. 반면 하인이나 노비들은 마을 외곽 움막에 머물러야 했다. 피막(避幕)이라 했다. 격리, 수용의 그 열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다. 또 하층민들은 여러 여건상 부랑민이나 유랑자로 전전하였다. 언제 죽을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점 등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을 것이다. 현세는 어떤가?. 문명의 이기 속에서 온갖 혜택을 받는다. 허나 정체(停滯)의 시간이 답답해 미칠 노릇이라 한다. 고대 우리민족은 그 정체의 시간을 축적의 시간으로 바꾸었던 위대한 민족이다. 무려 100일 동안이나 쑥과 마늘만 먹으며 깜깜한 동굴에서 자가격리했던 민족이 아닌가?. 2020. 4/12.
-한눌 이야기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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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 잊은 우리말, 역사
염병할.../ 원숭이의 경고/ 6
염병에 원숭이가 등장했다. 두창(痘瘡)이다. 허준은 전염병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자연의 섭리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원숭이와 관련, ‘원숭이 禺’자에 관련된 한자가 새삼스럽다. 산해경 전에서 ‘우‘는 큰 원숭이로 붉은 눈에 긴 꼬리를 가졌고 강남 산중에 많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강남은 중국 저장성(浙江省) 지역이다. 배필 우(偶)자와 만날 우(遇)자를 보자. 배필 ’우‘자는 사람 人변에 원숭이가 든 특이한 한자다. 만날 ’우‘자에서 공자는 우불우시(遇不遇時)라 해서 만날 ’우‘자를 썼다. ’만나고 못 만나고는 때이다‘는 뜻이다. 아무리 재덕이 출중한 사람도 어려운 때를 당하는 경우에 그 상황을 정확하고 편향되지 않게 인식하는 방법을 공자가 일러줬다. 배필이나, 만남은 우연(偶然)과 필연(必然)이다. 우(遇)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다. 착(辵)으로 구성되었다. 조우(遭遇), 경우(境遇)가 그렇다.
’그럴 연(然)‘은 긍정을 나타내는 대표적 한자다. ’연‘은 고기 육(肉)이 변한 육달 月과 개 犬이 들어있고 밑에 불 火가 그려져 있다. 개고기를 불로 그슬리는 모양이다. 오늘 날에는 개고기 요리는 빠지고 ‘그러하다’라는 뜻만 쓴다. 천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천재일우(千載一遇)가 있다. 좀처럼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이르는 이 말에도 원숭이가 있다. 어리석을 우(愚)자를 보자. 원숭이 ‘우’에 ‘마음 심’(心)이 의미 요소로 쓰인 까닭은 뭘까?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나 머리가 둔하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인간 창조 여신인 여와(女媧)도, 성경에서도 사람은 흙으로 빚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 탄생의 바탕에 원숭이 ‘우’가 있는 토우(土偶)의 신앙이 깔려있다. 현생 원숭이와 인간이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다는 진화론 때문일까?. 옘병에 원숭이가 있음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한눌 이야기/ 역사칼럼니스트
202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