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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십자가와 재림의 소망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서론 - 아직도 준비중인가? 모순적 소망
시기는 정하지 않았지만, 서기 2000년을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많은 교인들이 내심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재림”이란 말과 재림의 임박함을 가리키는 징조들이 우리 재림성도들의 가슴에 어떤 정서를 유발시키는가? 고대감인가 아니면 불안인가? 가슴이 벅차오르는가 아니면 준비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가? 좀 더 빨리 오셨으면 하고 바라는가 아니면 좀 더 늦게 오셨으면 하고 바라는가? 우리 재림교인들이 가장 답변하기 힘들고 거북한 질문의 하나가 “당신은 예수님 맞을 준비가 되셨습니까?”이다. 그 질문에 많은 재림교인들이 자신 있게 답변하지 못한다. 언젠가 읽은 재림신문에 따르면, 시골생활 하는 분들의 100%는 자신들이 “품성 변화”가 덜 되서 예수님이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아직 품성 변화가 덜 되서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갖추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째 늘 모자람에 쫒기는가? (재림의 꿈을 꾼 사람들)
언제 우리가 준비될 수 있을까? 여전히 “준비 중”인가? 그렇다면 언제 “준비 완료”가 될까? 일요일 법령 소문만 들으면, 많은 재림성도들의 가슴에는 “주님, 안됩니다. 아직 덜 됐습니다.”하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몇 년을 더 준비해야 예수님 오실 준비가 완료될 수 있는걸까?
1. 소망의 백성- 언제나 준비될까
신약 최대의 신학자인 바울은 언제 재림을 맞을 준비가 갖추어졌을까? 우리는 로마서 5장에서 그 답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그 답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된 그 순간에”이다! 하나님과 바르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이다. 그 때 우리의 생애는 예수님의 완전한 생애로 가리움을 받고,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죄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로써 우리는 하늘에 당당히 들어갈 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제 예수님이 오셔도 된다. 그분이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날이 기다려진다. 그리하여 그 날이 도래할 것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한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자기 실력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말한다. “은혜” 같은 말은 세리나 죄인들에게 해당되지 그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율법을 철저하게 순종하려고 분투함으로써 짠 품성의 옷이 더러운 옷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늘에 들어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완전한 의를 생산하는데 그가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자신이 영적으로 철저한 파산자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때 그는 예수님을 발견한다. 그가 필요로 하는 완전한 의, 그토록 달성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완전한 순종의 생애를 예수님이 제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의를 받아들었다. 바로 그 순간, 바울은 하늘나라에 갈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바로 칭의를 받은 순간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그대가 하나님과 바르면,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오늘 오신다 하여도 예비된 것이다”(마라나타, 98).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한다면, 바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된 것이라는 말씀이다. 엘렌 화잇은 대재림 운동 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내적 준비가 갖추어졌다는 내적 증거의 필요를 느끼고, 우리의 흰옷은 심령의 순결이며 우리 구주의 속죄의 피로 죄로부터 깨끗해진 품성임을 느꼈다”(교회증언 1권, 51).
“부지런히 마음을 살피고 겸손하게 고백함으로 우리는 경건하게 소망의 시간을 향하여 나아갔다. 매일 아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애가 바르다는 증거를 얻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느꼈다....구원의 기쁨은 우리의 음식과 음료보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했다. 구름이 마음을 가릴라치면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가납하셨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그 구름들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감히 쉬려하거나 잠을 잘 수 없었다”(상동 55). 밀러주의 재림성도들도 그랬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그것을 점검했다.
“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0-43) 너무 과하게 특혜받앗다는 찜짐함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언제 기다리게 되는가? 바로 칭의를 받는 순간이다! 바울이 그랬고, 루터도 그랬고, 엘렌 화잇도 그랬다. 그것은 재림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올바르게 된 그 순간 바로 지금 예수님이 오셔도 우리는 준비된 것이다! 바로 그 때부터 예수님의 재림이 기다려지기 시작한다. 그 영광의 소망이 실현되는 날을 고대하는 일이 시작된다. 기다림의 시작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 신앙의 출발점부터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출발지인 갈바리 십자가에서 하늘 입장권 비용이 “완불”되었기 때문이다.
재림교인이 신앙을 몇 년을 했든, 나의 품성 계발의 정도가 어떠하든, 항상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게 해 주는 그리스도의 의로운 생애를 필요로 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순종이 영광스러워도, 우리의 품성이 변화되었어도, 우리는 구주의 공로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우리는 순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지 않는다. 이는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기 때문이다”(정로의 계단, 60).
“그것은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의 자신의 행위로 거룩하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기심과 죄를 통해 오염되어 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통하여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은혜인 것이다”(정로의 계단, 60)
2. 신앙의 삶을 가꾸고 믿음의 승리를 경험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것을 아는가? 여기 이 법칙을 증명하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1969년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에 의해 실행된 매우 흥미 있는 실험이 그것이다. 우선 치안이 비교적 허술한 골목을 고르고, 거기에 보존 상태가 동일한 두 대의 자동차를 보닛을 열어놓은 채로 1주일간 방치해 두었다. 다만 그 중 한대는 보닛만 열어놓고, 다른 한 대는 고의적으로 창문을 조금 깬 상태로 놓았다. 약간의 차이만이 있었을 뿐인데, 1주일 후, 두 자동차에는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 보닛만 열어둔 자동차는 1주일간 특별히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보닛을 열어놓고 차의 유리창을 깬 상태로 놓아둔 자동차는 그 상태로 방치된 지 겨우 10분만에 배터리가 없어지고 연이어 타이어도 전부 없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낙서나 투기, 파괴가 일어났고 1주일 후에는 완전히 고철 상태가 될 정도로 파손되고 말았던 것이다. 단지 유리창을 조금 파손시켜 놓은 것뿐인데도, 그것이 없던 상태와 비교해서 약탈이 생기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깨진 유리창’이라는 단어로 인해 ‘Broken Window’라는 새로운 법칙이 만들어 졌다. 이러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나중에 세계 유수의 범죄 도시 뉴욕 시의 치안 대책에도 사용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1980년대, 뉴욕 시에서는 연간 60만 건 이상의 중범죄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여행객들 사이에서 ‘뉴욕의 지하철은 절대 타지 마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뉴욕 시의 치안은 형편 없었다. 미국의 라토가스 대학의 겔링 교수는 이 ‘브로큰 윈도우’ 법칙에 근거해서 뉴욕 시의 지하철 흉악 범죄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낙서를 철저하게 지우는 것을 제안했다. 낙서가 방치되어 있는 상태는 창문이 깨져있는 자동차와 같은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통국의 데빗 간 국장은 겔링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치안 회복을 목표로 지하철 치안 붕괴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낙서를 철저하게 청소하는 방침을 내세웠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 낙서를 지운다는 놀랄만한 제안에 대해서 교통국의 직원들은 우선 범죄 단속부터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물론 당연한 반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서도 문제지만, 우선은 그런 작은 문제보다는 큰 문제인 흉악한 중범죄 사건을 어떻게든 빨린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간 국장은 낙서를 지우는 것을 철저하게 행하는 방침을 단행했다. 지하철의 차량 기지에 교통국의 직원이 투입되어 무려 6000대에 달하는 차량의 낙서를 지우는,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작업이 수행되었던 것이다. 낙서가 얼마나 많았던 지, 지하철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개시한 지 5년이나 지난, 1989년, 드디어 모든 낙서 지우기가 완료되었다.
낙서 지우기를 하고 나서 뉴욕시의 지하철 치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그때까지 계속해서 증가하던 지하철에서의 흉악 범죄 발생률이 낙서 지우기를 시행하고 나서부터 완만하게 되었고, 2년 후부터는 중범죄 건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94년에는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뉴욕의 지하철 중범죄 사건은 놀랍게도 75%나 급감했던 것이다. 그 후, 1994년 뉴욕 시장에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지하철에서 성과를 올린 범죄 억제 대책을 뉴욕시 경찰에 도입했다. 낙서를 지우고, 보행자의 신호 무시나 빈 캔을 아무데나 버리기 등 경범죄의 단속을 철저하게 계속한 것이다. 그 결과, 범죄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마침내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는 것이 그 주변 범죄율을 감소시킨 것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어떤 파장에 의해 모두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가지가 변화하게 되면 그 주변까지 변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당신의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해 보세요.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영적인 면에도 사실이다. 우리 영혼에 죄의 낙서가 쓰여 있을 때, 그것을 그냥 방치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매일 밤 우리는 예수께로 가서 그분께서 당신의 보혈로 우리의 두루마기에 묻은 죄의 얼룩을 지우시도록 해야 한다. 말하자면 날마다 새롭게 칭의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밤새 영혼이 수리되어 아침에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완벽한 그리스도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세상에 나가야 한다.
매주 금요일은 지나간 엿새를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행복한 경험, 거룩의 날로 들어가기 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낙서가 내 영혼에 남아 있는지, 아직도 고치지 못한 영혼의 깨어진 유리창이 있는지 점검하는 날이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게 된다.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 24)고 말씀하셨다. 혹 우리가 엿새 동안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안식일 전에 형제와 화해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는 일에는 형제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일도 포함된다. 그렇게 하여 매 안식일, 우리는 흠 없는 주님의 두루마기를 입고 그분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안식일 경험은 실로 매 7일마다 하는 재림 준비 연습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 분기마다 성만찬 때, 세족 예식을 통해서 또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일을 점검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의 하나인, 형제 사이의 불화를 청산하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마 5:23, 24). 그러고 나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주님과의 아름다운 만찬에 들어간다. 성도들이 하나 된 가운데서, 한 상에 앉아 하늘에서 언젠가 우리가 맛보게 될 만찬을 미리 맛본다. 이 성만찬에서의 경험을 이런 바로잡음 없이,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루터는 믿음을 “순종하려는 새로운 성향”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믿음은 그에 상응하는 행함 없이 설 수 없다.” 그처럼 믿음과 행함은 그토록 나뉠 수 없게 결합되어 있다. “우리의 선행만으로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지만 우리는 선행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교회증언 4권, 228).
왜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믿음이 아니라 행함에 따라 심판하시는 것일까?(고후 5:10; 롬 2:6) 그 이유는 “행동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한 믿음의 공언에 그치는 단순한 지적 동의, “값싼 은혜”와 “행함이 있는, 그리고 “믿음의 행위들”을 생산하는 “진정한 성화시키는 믿음”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구원하기에 안전하다”는 것을 보는 우주 앞에 보여주실 수 있을까? 그것은 그 사람을 총체적으로 심판하심을 통해서이다. 본훼퍼가 말했듯이, “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며,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심판은 행함에 따라 받는다(겔 3:20; 롬 2:6; 고후 5:10). 즉, 최후의 심판은 믿음의 진실성에 대한 판단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날마다 바르게 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통하여 의의 옷을 날마다 새롭게 갈아입는 사람, 형제와의 관계를 바로잡는 사람, 역사하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을 지닌 사람, 그 믿음이 날마다 더욱 큰 선행을 이루어내어 믿음의 진실성을 전시하는 사람,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경험을 계속 유지하여 그분과 교통하고 심령에 하늘이 있는 사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준비된 사람이다. 엘렌 화잇은 오늘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대가 하나님과 바르면,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오늘 오신다 하여도 예비된 것이다”(마라나타, 98). / 김학심 할머님과 침례증서
3. 신앙으로 서로 격려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교회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너희는 주님이 너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며, 너희는 그 일을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할 것이니라.”(필립 역)
이 기념의 예식과 재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고 또한 결정적이다. 바울은 성만찬 자리에 앉을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재림하실 때까지 전하기로 결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고전 11:26).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선교사로 태어난다. 성만찬에서 우리는 다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 받는다. 내가 마심으로써 기념하는,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흘리신 그 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흘려진 피이기도 하다. 우리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바로 복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외쳐야 할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이다. 십자가가 우리의 기별의 내용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그린필드란 마을의 한 박물관에 거대한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이 복잡한 기계 옆에는 보일러의 압력과 바퀴의 크기, 수효, 마력, 길이, 그리고 중량 등등을 소개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 밑줄에는 “여기서 생산되는 힘의 96%는 그 기관차를 움직이는데, 뒤에 달린 객차들을 끄는 데는 4%가 사용됩니다.” 라고 쓰여 있다. 이런 교회들이 종종 있다. 교회의 거의 대부분의 자원과 인력과 자금이 교회를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교회의 본 업무인 영혼 구원을 위해서 힘과 자금과 노력을 거의 투입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 살아있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 적이 있다. 재림교인들은 모든 것을 재림에 비추어 평가한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하늘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면 답이 곧바로 나온다. 품성. 그리고 우리가 구원한 영혼들이다. 하늘에 가져갈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다. 화잇 여사는 우리가 하늘 구름수레를 타고 하늘에 갈 것이라고 했는데, 수하물 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의 몸도 하늘에 가져가지 않는다. 하나님이 새 몸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바치는 길 뿐이다(마 6:20).
재림을 어떻게 기다릴까 - 마시멜로 실험 “15분을 기다려 마시멜로(미국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캔디)를 한 개 더 상으로 받은 아이들과 15분을 참지 못해 탁자 위 마시멜로를 먹어치우고 만 아이들의 10년 성장 과정을 상호 비교한 연구 결과는 흥미 그 자체였다네. 15분을 참았던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학업 성적이 뛰어났지. 또한 친구들과의 관계도 훨씬 원만하고,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네. 놀랍지 않은가? 겨우 15분이었지만……” 호아킴 데 포사다․엘런 싱어가 쓴 ‘마시멜로 이야기ꡑ중 ‘마시멜로 실험’의 결과를 표현한 한 구절입니다. 이것은 큰 만족을 얻기 위해 기다리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작은 만족(마시엘로 한 개)을 찾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교훈입니다. 현대인은 기다리는 것이 몹시 괴롭다. 기다림은 힘들다. 마트에 가서 줄서기를 해 보라. 조금만 줄이 길면, 짜증이 나고, 조금 더 짧은 줄로 가려고 혈안이다. 많은 사람에게는, 에서의 팥죽이 낫지 미래의 장자의 명분이 중요치 않게 생각된다. 재림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일 때, 성공 전략은 눈을 계속 상급에만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성공의 비결은 기다리는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수많은 실험이 입증한 사실은, 지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지 않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제일 오래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전략은, 우리의 궁극 목표, 즉 하늘나라를 얻어야 한다는 궁극 목표는 항상 유지하되, 기다려야 얻을 하늘나라에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마태복음 24장의 재림의 징조와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의 관계를 주목했다. 재림의 징조가 성취되고 재림이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할까? 매일, 매시간 다른 것은 제쳐놓고 재림을 기다려야 할까? 기다림 그 자체에 몰두해야 할까? 그 해답을 마태복음 25장이 준다. 재림이 가까운 때에, 기다림의 전략은 기다림 자체가 아니라 세 비유에 나오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잔을 손질하고, 기름을 채우고, 불을 붙여 빛을 발하는 것이다. 즉,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성령으로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고 실천되게 하여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마 25:1-13).
결론 - 근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평생을 지낸 노 부부가 은퇴한 후 뉴욕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뉴욕항에 도착하자 팡파르가 울려 퍼졌고, 선창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미국의 유명한 비행사 린드버그를 환영하는것이었습니다. 그는 단발기로 대서양 횡단비행을 마치고 그 배를 같이 타고 왔던것이었습니다. 한평생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고 심신이 피곤에 지쳐 돌아온 그들을 환영해주는이는 한 사람도 없는데 반해 린드버그는 군중들의 열열한 환호를 받는것을 보고 그들은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갈 곳도 없어 삼류 호텔로 들어 갔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그들은 통곡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아프리카 오지에가서 복음을 증거 하느라 한 평생을 보내고 돌아왔지만 환영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대서양을 횡단한 린드버그를 위해서는 전 뉴욕시민이 환영을 하고 있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노부부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린드버그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희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너희가 고향에 돌아 올때의 영광은 그것과 비교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너희를 환영하기 위해 천사가 나팔을 불고, 먼저 천국에 온 자들이 마중나올것이며, 내가 직접 너희의 손을 잡아 인도할 것이다,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거라."
아직 우리는 본향에 도착하지 않았다. 주님은 언젠가 친히 우리를 에스코트 하러 천천만만 천사와 함께 오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그 진입로 입구를 통과할 것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하늘 유리바다까지 7일 간을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마라나타, 306),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