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5

[아침이슬]

각성 5

쏴아아아아

비가 온다. 햇빛의 싱그러움에 무료해진 꽃들이 비의 시원함에 즐거워한다.

오랜만에 오는 비였기에 많은 농부와 사람들은 칙칙하고 습기찬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했다. 오랜만에 왔기에......

"마이샤는?"

"......밖으로 나가셨다더군. 오늘같은 날에는 가만히 틀어박혀 있으면 몸에 종기가 난다나......"

"......점점 말썽꾸러기 라이샤를 닮아가는군."

"이때까지 두 분이 서로 다른 것이 이상했던 거야, 그 두 분은 서로 쌍둥이라고. 서로 같아도 달리 할 말이

없는거야."

"그건 알아. 하지만...... 왜 하필 라이샤를 따라가냔 말얏!"

상당히 표독스럽게 말하는 나미의 말에 답해줄까하고 생각하던 퉁가리는 입술근처의 근육만 움직여 웃어주고

는 고개를 돌려 비가 내리는 밖을 보았다.

주륵주륵

「비가 오는 군요......」

"이런 날엔...... 너나 나나 나가면 그대로 죽을지도 모르겠는걸?"

「......끔찍한 말씀은 마십시오. 또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된다라...... 설명해주겠어?"

「......」

"왜 말이 없어, 카이드라스?"

「아닙니다......」

카이드라스는 갑자기 라이샤가 앙칼부리지 않고 자신에게 부탁하는 모습을 보자 잠시 사고능력이 멈췄었다.

이런 모습을 보기는 매우 힘들었던 것이다.

카이드라스가 말이 없자 웃으며 답하는 라이샤를 보며 카이드라스는 생각했다.

'이분이...... 오늘 비가 오니 사고능력도 달라지시는가 보군......'

「저는 영혼입니다. 이렇게 타오르고 있는 제몸은 꺼질지 몰라도 저 자신은 꺼지지 않지요.」

"그렇군...... 그런데 나는? 나는 불의 신이지. 불과 물은 상극이야. 그런데 어떻게 내가 무사할 수 있다는 거

지?"

「라이샤님은...... 분명히 물과 상극인 불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라이샤님은 뼛속까지 불이 아닙니

다.」

"이것도 무슨말인지 설명 부탁해."

카이드라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비오는 날이 많아지기를...... 고분고분 자신의 말에 질문을 하는 라이

샤가 귀여워졌던 것이다.

「라이샤님은 몸자체는 인간이십니다. 그러하기에 라이샤님은 저렇게 물이 많은 곳에서 계신다고 해도 별 문

제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문제는 있을 것입니다. 감기정도에...... 걸린

다고 하면 되나요?」

"후...... 감기라...... 재밌었어, 카이드라스."

굳어버린 카이드라스를 뒤로 두고 라이샤는 고개를 돌려 비가 내리는 자이드라 시를 구경했다.

쏴아아아아아

타다다다다다

비가 오는 소리와 누군가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빗속을 마이샤가 달리고 있었다. 옷은 이미 다 젖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마이샤는 상관않는 듯 했다. 매우 기쁜듯이 온 얼굴에 미소를 짓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달렸다. 계속해서 달렸다.

왕궁의 벽이 지나가고 왕궁의 앞뜰이 지나가고 왕궁을 지키며 잠시 졸던 병사도 지나가고 비가 와서 장사 못

한다고 투덜대는 상인을 지나가고 시장을 지나가고 비오는 날에도 진흙탕물에서 장난치는 아이를 지나가고 비

가 온다고 기뻐하는 농부도 지나가고 불이 켜진채 즐거운 듯 웃음소리가 들리는 집을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

나갔다.

정신없이 달리던 마이샤가 정신을 되찾은 곳은 다름아닌 자이드라 시를 거의 벗어나서였다. 마이샤의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밭이 펼쳐져 있었다.

'가이아 평지인가......'

가이아 평지. 자이드라를 농업국가로써 성공하게 만들어준 평지이기도 했다. 또 자이드라 농부의 80%가 이곳

에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 평지는 엄청나게 넓어서 자이드라 땅의 30%정도를 차지했다. 처

음 이곳을 발견했을때는 굉장히 넓기는 하지만 수로 걱정이 되어 사용하지 못했으나 그 가운데에 엄청난 크기

의 호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은 경작되었다.

그 호수의 이름은 노이스 호. 가이아평지의 반을 차지하는 엄청난 크기의 호수였다.

'......저건...... 노이스 호인가 보군......'

마이샤의 눈에 잘보이지는 않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푸른 물의 느낌. 작은 샘이나 저수지 같은 곳에서 느껴지

던 물의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물의 힘. 마이샤는 그곳이 노이스 호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마이샤는 또 다시 달렸다. 얼굴에 온통 웃음을 지니고.

【감기들면 어쩌지......】

「가이샤님...... 마이샤님은 물의 신이십니다. 그런 걱정을 하실 이유가......」

【걱정되는 걸 어떻게 하나 세라핌......】

가이샤가 바라보고 있는 창의 방향은 바로 노이스 호 쪽. 바로 마이샤가 등을 보이고 웃으면서 가고 있는, 그

것이 보이는 방향이었다. 물론 보통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앞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세라핌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세라핌......】

「네......」

【날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

【네가 아무런 일도 없이 나를 찾아오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나의 즐거운 한때를 네가 방해할리도 없지만 말

이야.】

「가이샤님...... 천상계에서 있었던 대천사회의의 결과를 알려드리죠.」

【......말해보아라.】

가이샤는 마이샤가 보이는 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대천사회의에서 천상계의 모든 천사, 타천사로 인간계에 쫓겨나지 않은 모든 천사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

과. 가이샤님을 데려와야 한다는 쪽으로 모두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유는?】

「가이샤님은 너무나 오랫동안 천상계의 창조주자리를 비워두셨습니다.」

【부인하진 않겠다. 모두가 아는 사실일테니.】

「이것은 천상계에서 지켜야할 고귀하고 아름다운 품목들의 모음집 제 1권 5쪽에 나오는 직무태만입니다.」

【그것이...... 창주주인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나......】

「가이샤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천상계에서 지켜야할 고귀하고 아름다운 품목들의 모음집에 해당하는 존

재들은 천상계에 한번이라도 있었던 그 모든 것이라고......」

【그랬었지....... 하지만 말이다, 세라핌...... 난 잠시 휴식삼아 온 것일 뿐이다......】

「가이샤님의 휴식을 방해한 점,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인간세상에 너무나 많이 있었구나. 슬슬 올라가서 지겨운 업무를 봐야지......】

가이샤는 잠시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는 듯하더니 웃는 얼굴로 세라핌에게 말했다.

【그럼...... 가자꾸나.】

「여기에 계신 모든 신들께 인사도 안하시고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의 얼굴을 보면...... 더욱 가기가 싫어질 것 같으니...... 이만 가도록 하자......】

「네.」

세라핌의 짧은 대답이 끝나고 그들은 환한 빛에 싸여 사라졌다.

멍하니 나미와 같이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던 퉁가리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때 나미도 같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가 돌린 고개의 방향도 퉁가리와 똑같았다.

"가이샤님이......"

"가셨나보군......"

퉁가리와 나미의 이어지는 말. 그들의 잠시 시작되었던 대화는 빗소리에 묻혀 다시는 일어서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창밖을 바라보던 라이샤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아까까지 가이샤와 세

라핌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왕궁의 어느 방쪽이었다. 카이드라스는 이미 붉은검속에 들어가 있었지만 그도 그

느낌을 받았다.

"가셨나......"

「그런 것 같습니다.」

이들의 대화도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타다다다다다

가이아 평지는 굉장히 넓다. 또 노이스 호는 가이아 평지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고로 아직 마이샤는

노이스 호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헉, 헉, 헉......"

잠시 멈춰 숨을 고르던 마이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가이샤가 있던 곳을 향해서였다. 계속해서 그

방향을 보고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던 마이샤는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끝날때쯤이 되자 다시 고개를 돌리고 달

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헉헉거리는 그의 입에 나지막하게 소리가 들렸다.

"가셨군......"

마이샤는 다시 달렸다.

【훗...... 내가 떠난 것을 알리지 않으려 했건만......】

「네?」

【그들이 모두 내가 간것을 알아버렸구나.】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 알게될 사실인데 말이다.】

「......」

마이샤의 눈에 푸른것이 보였다. 바다와 비슷한 푸른색...... 바로 노이스 호였다. 노이스 호 앞에 다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샤는 계속해서 뛰었다.

이대로 계속가면 물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물이 마이샤의 무릎에 올때쯤 마이샤는 멈추어

섰다.

"헉, 헉......"

마이샤는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놀라워......」

갑자기 들려온 소리였지만 마이샤는 놀라지 않았다. 아까부터 자신을 맴돌던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기운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했고 마이샤역시 그랬다. 그 기운은 자신이 다스리는 물의 느낌이

었기 때문이다.

"넌...... 뭐지? 난 물의 요정따위 만든 기억이 없는데."

라이샤와 같이 너무 오래있었던 것일까...... 마이샤의 말투가 점점 라이샤와 비슷해지는 것 같았다.

「이봐, 이봐. 난 물의 요정이 아니라구.」

그렇게 말하며 마이샤의 눈앞에 무언가가 움직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런 희미한 움직임이었다.

「너도 나를 느끼고 있었을텐데? 안그래?」

"......그렇다."

「너무 당당하단 생각안들어?」

"......그럴지도."

「훗, 됐어. 내 주인의 화를 돋게 해봤자 내가 좋을 건 없을테니.」

"......넌 누구지?"

「난 네가 사용하는 무기, 푸른검속에 잠들어있던 물의 힘. 이름은 하이네.」

"하이네......?"

「좋은이름이지 않아? 비가 와서 물의 힘이 강해지자 이렇게 너의 앞에 나타난 거지. 평소의 네 물의 힘은

너무나 약해서 말이야.」

가만히 그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이샤는 발끈해서 외쳤다.

"내 물의 힘이 뭐 어쨋다는 거야! 뭐가 어때서!"

「이봐, 이봐...... 목소리 크다고 이기는게 아냐.」

"......"

「내가 한 말은...... 말 그대로야. 음...... 아직 소개가 안 끝났군. 마저 내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하이네, 붉은

검에 기생하는 카이드라스와는 친구사이지, 아주 절친한~. 그리고 난 푸른검에 기생하고 있지.」

카이드라스 이야기가 나올쯤에는 하이네의 발음이 약간 올라가는 듯 했다.

마이샤는 그가 카이드라스 쯤은 알고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이거, 이거...... 내 이번 주인은 되게 머리가 좋은걸? 고생 좀 하겠어......」

"......"

붉은 검과 푸른 검에 깃들어있던 힘의 근원. 카이드라스와 하이네가 깨어났고 그로 인해 그들은 진정한 각성

을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