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시조라는 것을 아시나요?
ㅡ동시와 시조의 만남
이승하
이 땅의 시인 중 시와 동시를 함께 쓰고 있는 이들로 누가 있을까? 지난 세기에 동시집을 여러 권 낸 소설가 혹은 시인으로 이문구ㆍ안도현ㆍ도종환ㆍ손동연 등이 있었다. 그런데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동시 쓰기 붐이 일어나서 강기원ㆍ강정규ㆍ길상호ㆍ김개미ㆍ김륭ㆍ김일영ㆍ김준현ㆍ김진완ㆍ김현서ㆍ문성해ㆍ백창우ㆍ복효근ㆍ서정홍ㆍ성명진ㆍ송진권ㆍ송찬호ㆍ안상학ㆍ안학수ㆍ유강희ㆍ윤제림ㆍ이만교ㆍ이안ㆍ이정록ㆍ임수현ㆍ장옥관ㆍ장철문ㆍ조정인ㆍ최승호ㆍ함기석ㆍ함민복ㆍ현택훈 등 동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 30명이 넘는다. 좀 더 폭넓게 조사하면 시인 중 동시집을 낸 이는 50명은 족히 될 것이다. 송찬호 같은 시인은 동시집을 5권이나 냈다. 장석주 시인도 곧 동시집을 낸다고 한다.
시인들 사이에 동시 쓰기 붐이 일어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시집은 잘 안 팔리는데 동시집은 잘 팔린다는 표면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동시가 갖고 있는 천진성, 순수성, 간결성 등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시는 더욱더 난해해지고 자기만의 성채에서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유시는 장형화와 산문화가 대세인 것도 같다. 시집 독자가 21세기에 들어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반대급부로 시낭송을 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고 있는 중이다. 디카시의 대유행도 자유시의 소통 불능에 한 원인이 있음을 감지한다. 여러 번 읽어도 시인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에 대한 거부감이 낭송하기 좋은 시, 즉 귀에 속속 들어오는 적당한 분량의 리듬감 있는 시의 파급을 유도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소설 독서로의 쏠림 현상은 더욱더 심해져 서점의 시집 코너는 아주 한산하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동시조를 쓰고 보급 운동을 펴고 있는 이가 있어 소개를 해드릴까 한다. 서관호 시인은 1948년 경남 김해 출생으로 경남대 대학원을 나왔다. 2002년 《현대시조》로 등단한 시조시인으로 시조집 『세월은 강물처럼』 『물봉선 피는 마을』 등을 펴냈다. 2010년부터 문예지 《어린이 시조나라》를 발간해 어언 30호를 냈다. 본인도 여섯 권의 동시조집을 펴낸 바 있고 부산시조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우선, 아이들이 어떤 동시조를 쓰고 있는지 보자. 제25호는 《어린이 시조나라》 2022년 상반기 호다.
물 깊이 들어갔다
참았던 숨 내쉬는
휘익〜 그 소리가
새 소린 줄 알았어요
해녀의 숨비소리는
새 노래보다 고와요
―김아림,「숨비소리」전문(25호)
제주도 세화초등학교 6학년 김아림 학생의 시조로, 해녀들이 물질할 때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인 숨비소리를 듣고 쓴 것이다. 특히 휘익〜 하고 내뿜는 소리를 유심히 듣고 써 청각적 이미지를 잘 환기하고 있다. 다음 동시조는 학교에 가지 못하던 코로나 시절을 회상하며 쓴 것이다.
매일같이 등교하다 지금은 온라인 수업
철없이 학교 안 간다 즐거워하던 우리들
이제는 어떤 공부도 학교에서 하고파
―정예은,「학교」전문(25호)
2020년과 2021년 두 해 동안은 전국 모든 학교에서 온라인으로만 수업이 이루어졌다. 2022년부터 부분적으로 조금씩 해제되기 시작해 2023년 5월 5일에 해제가 발표되었다. 서울 대조초등학교 6학년 정예은이 발표한 이 동시조는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쓴 것이다. 시조가 3장 6구로 되어 있다는 것도, 음수를 잘 맞춰서 쓰는 것도 아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기특하다.
올해 시즌 SSG
KT한테 졌어요
아쉽게 가을야구
6위가 되었어요
나가지
못한 아쉬움
다음 시즌 기다려
―정도현,「프로야구」전문(25호)
강릉 유천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쓴 동시조다. 이런 동시조를 써본 아이들은 훗날 시조나 자유시를 어떤 두려움도 없이 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삶과 꿈을 짧은 3장 6구 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시 쓰기에 취미를 붙여 앞으로 계속 펜을 만지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어린이 시조나라》에서는 매호 사이버 시조백일장을 여는데 장원 5만 원, 차상 3만 원, 차하 2만 원, 참방 1만 원의 상금과 상장을 학교로 보내준다. 차상과 차하 등도 딱 1명씩만 뽑는 것이 아니다. 제25호의 장원작은 부산 사직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쓴 것이다.
이랬다 저랬다를 또다시 반복하는
좋았다 얄밉다가 하루에 수십 번씩
어쩌다 눈 마주치면 헛웃음만 허허허
―이려원,「못 말리는 내 동생」전문(25호)
형제는 티격태격, 아웅다웅하면서 자라게 마련인데 그러면서 또 정이 든다. 동생이 얄미우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못 숨기고 헛웃음만 허허허 하고 웃는 언니나 오빠의 심정으로 쓴 이 동시조는 유머가 있어 독자가 어른이건 아이건 간에 좋아할 작품이다. 모기에 대해 쓴 동시조도 유머가 뛰어나다.
사람을 좋아해서 입술로 뽀뽀하나
뾰족한 긴 악기로 멋지게 노래하나
하지만 너의 목소리 내 취향은 아니야
―최서완,「모기」전문(25호)
모기는 사람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고약한 습성을 가진 곤충이다. 모기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소리를 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 금방 노출되어 사람에게 공격을 받는다. 모기가 내는 소리를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는 부산 사직초등학교 2학년 최서완 학생은 3만 원의 상금을 받고 기분이 무척 좋았을 것이다. 이 문예지는 매호 연변의 조선족 아이들에게 청탁해서 동시조를 싣고 있다.
개구리 폴짝폴짝 수영하러 간다네요
나도야 어서어서 뒤를 따라 가야지요
아빠는 개구리랑 나랑 수영 솜씨 같대요
―김효연,「수영」전문(25호)
연길시 중앙소학교 5학년 학생의 동시조다. 김효연 학생의 국적은 중국일 텐데, 한글로 시조를 써본 경험은 한글을 익히고 한국을 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지면에는 기성 시인과 시조시인에게 동시조를 청탁해서 싣는다. 이로써 각자 동시조를 써보는 경험을 거의 처음으로 하게 될 것이다.
눈이 오네 눈이 오네 입속에 되뇌이면
누니오네 누니오네 누님같이 눈이 오네
새하얀 면사포 쓰고 사뿐사뿐 오시네
―채현병,「눈이 오네 눈이 오네」전문(25호)
꼭 닫힌 방 안에서
똑 같은 숫자 공부
얼마나 갑갑하고
얼마나 지겨울까?
그렇지! 종을 치면서
그 마음을 달래 봐
―최효숙,「시계」전문(25호)
두 시조시인이 청탁을 받고 이와 같은 동시조를 써보았다. 동심으로 돌아가 모처럼 동시조를 써본 경험이 앞으로 이 길로 계속해서 가게 할지 모른다. 전자는 ‘눈이’를 ‘누니’로 발음하게 된 데서 모티브를 얻었고 후자는 방이나 교실에 갇혀(?) 수학 문제를 매일 푸는 답답함을 모티브로 가져왔다. 시계는 종이라도 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숙제를 하기 전에는 놀 수도 없다. 이 문예지 덕분에 두 시조시인은 유년 시절로 돌아가 본 경험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면 완전히 어린아이인데 일찍 학원에 가서 시조 작법을 배우기도 하나 보다. 순발력과 표현력이 놀랍다.
글짓기 교실에서 열심히 배운 시조
내가 직접 쓰려 하니 머리가 뒤죽박죽
어떡해, 나만 못 하나 봐, 정말로 걱정이네
―김시연,「나만 못 하나 봐」전문(26호)
아침에 엄마 몰래 게임 좀 하고 싶어
엄마가 잠을 잘 때 게임기 트는 순간
현서야 한 대 맞을래
우리 엄마 무서워
―조현서,「게임」전문(26호)
충주 성남초등학교 2학년 김시연과 부산 사직초등학교 2학년 조현서는 계속해서 시조도 쓰고 시도 쓰면 훗날 이 땅의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작품이 어린이 문예지에 실리는 경험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서관호 시인이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니 경의의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참방을 한 4편 중 이런 동시조는 어른인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계산기가 있는데 왜 아이들은 수학을 공부해야 하나. 수학적 사고력 배양 때문에?
학교서 배우지만 학원서 또 배우고
아무리 알려줘도 머릿속 실타래네
수학아 다음 생에는 안 만나면 좋겠어
―노다윤,「수학」전문(26호)
강남의 중학교 학생들이 홍성대 저 『수학의 정석』을 과외 학원에 다니면서 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행학습인지 조기교육인지 아이들 작은 머리가 터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중학교 학생을 입시지옥으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강릉 송양초등학교 6학년 노다윤 학생은 다음 생에서는 수학을 안 만나면 좋겠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면 이런 동시조를 썼을까.
흑룡강성 계동현 조선족학교 6학년 리승희 학생은 가족이 흩어져 있나 보다. 아마도 식구 중 누군가가 돈 벌러 한국에 가 있을 것이다.
하늘을 단장하며 날리는 예쁜 눈꽃
새해를 기분 좋게 보내라는 메시지
언제면 우리 식구도 함께 모여 즐길까
―리승희,「눈꽃」전문(26호)
새해 설날에 눈이 와서 온 세상에 예쁜 눈꽃이 피었는데 리승희 학생의 가족은 흩어져 있는 것이다. 동시라고 해서 다 곱고 착하고 순할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이 아이들이 느끼는 아픔과 슬픔도 동시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 시조나라》 제26호는 바로 그때 돌아가신 장순하 시조시인의 특집을 마련하였다. 말년에 8권의 문학전집을 냈을 만큼 일생을 시조문학을 위해 헌신한 분이다. 이런 시조가 실려 있다. 동시조는 아니다. 시인 스스로 ‘생활시조’라 이름 붙였다. 1960년대 작이다.
훔쳐 갈 것 하나 없다
혼자서 구시렁대니
이불 쓰고 숨어 있던
주인이 킬킬댄다
도둑이 역정을 내며
“이게 웃을 일이야!”
―장순하,「웃을 일」전문(26호)
도둑질하러 집에 뛰어든 강도가 가져갈 게 없자 “훔쳐 갈 것 하나 없다”고 혼자 구시렁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생전의 내 할머니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기도 해 실감이 났다.
제27호에 실린 동시조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엄마와의 사랑을 다룬 것이다. 아이가 쓴 짧은 시조라고 해서 감동을 안 주는가 혹은 적게 주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아이가 쓴 동시조가 어른을 감동시킨다.
졸졸졸 나의 뒤를
그림자 따라오네
울 엄마 내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든든히 받쳐주시는
내 인생의 그림자
―남건우,「엄마 그림자」전문(27호)
착하네!
엄마 칭찬
나는 날 것 같아요
괜찮아!
그럴 때는
속상한 맘 풀려요
사랑해!
그 한마디에
엄마 마음 있어요
―위승연,「칭찬」전문(27호)
강릉 율곡초등학교 6학연 남건우 학생의 동시조와 제주 어도초등학교 6학년 위승연 학생의 동시조는 모자 간, 모녀 간의 사랑이 믿음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살이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 믿음이 있는 한 헤쳐나갈 수 있음을 두 사람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동물을 소재한 동시조도 큰 감동을 준다.
밥 달라 야옹야옹
안아 달라 야옹야옹
너와 나 아옹다옹
오늘도 힘들지만
날 보는
까만 눈동자
귀여워서 봐준다
―서예진,「고양이」전문(27호)
거북이 느리다고 놀리지 말아야죠
토끼는 빠르다고 자신감 넘치지만
거북은 바닷속에선 토끼보다 빨라요
―신지안,「토끼와 거북」전문(30호)
대구 대청초등학교 3학년 서예진 학생과 부산 연지초등학교 6학년 신지안 학생의 동시조를 읽노라면 동시조가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투명하게 하고 빛나게 함을 알 수 있다. 시조의 역사가 이제 거의 800년이 되었는데, 이 아이들의 동시조를 읽고 있노라면 전통을 잇는 정도가 아니라 동시조가 전통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려조 중엽의 우리 조상이 창안한 시조가 연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고, 지금도 이 땅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잔치 마당을 연 서관호 시조시인의 네 번째 동시조집에서 2편을, 여섯 번째 동시조집에서 3편을 가져와 감상해볼까 한다.
강강강 강강강강
강아지도 아나보다
내가 시조시인인 걸
옆집 개가 아나보다
3, 4조 리듬에 맞춰
약강약강 짖는다.
멍멍멍 멍멍멍멍멍
멍멍이도 아나보다
종장의 절정구조
옆집 개도 아나보다
한 박자 늘린 강박에
힘을 실어 짖는다.
ㅡ「강아지도 아는 시조」전문
3/4/3/4가 시조 초장과 중장의 기본 자수이고 3/5/4/3이 종장의 기본 자수이다. 옆집의 개가 짖는데 강강강 강강강강, 멍멍멍 멍멍멍멍멍 하고 짖으니 짜식이 내가 시조시인인 것을 아나보다 하고 신기해 하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한 편의 동시조를 통해 서관호 시인은 시조 종장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종장이 절정구조이고 3/5로 한 박자 늘린 강박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시조 작법을 작품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상상력과 언어의 기교와 주제의 깊이가 중요한 세 가지 요소라고 말한 동시조도 있다.
내가 시라면 명시일 수 있을까?
허우대 멀쩡하고 오장육부 다 성한데……
문제는 떨치는 상상력 말 부리는 재주지.
내가 시라면 명시일 수 있을까?
분단장하였겠다 명품 옷 걸쳤겠다
문제는 겉보다 속이지 담아놓은 주제지.
―「내가 시라면」전문
네 번째 동시조집 『강아지도 아는 시조』(2017)에 이런 동시조 작법에 대한 시만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오랫동안 동시조의 전파에 심혈을 기울인 서관호 시인의 업적을 생각해 이 두 편을 예시하였다. 여섯 번째 동시조집 『될성부른 나무들』(2023)을 보면 시인의 관심이 어린이 세계에서 우리 사회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조라고 해서 어린이 세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웅변하고 있다.
제비는 어디 가고 날아오지 않는 걸까?
그거야 싫은 사람, 미운 사람 있는 거지.
자연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은 싫단다.
제비를 기다린다, 올해는 꼭 날아오길
그러나 벼논에는 메뚜기도 없지 않니?
아뿔싸, 농약을 쳤구나, 먹잇감이 없구나!
―「제비를 기다리며」전문
한길 가 코스모스 할 일도 가지가지
오가는 손님들께 환영에 배웅까지
등굣길 친구들에겐 아침인사 꽃 미소.
한길 가 코스모스 바쁜 듯 한가한 듯
매연 차 과속 차엔 돌아서 외면하고
다문화 가족에게는 응원 박수 꽃 박수.
―「코스모스 4」전문
앞의 동시조는 농약 살포로 말미암은 생태파괴 현상을 고발한 작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봄에 ‘강남 갔던 제비’가 보이지 않는다. 와본들 먹을 게 없으니 오지 않게 되었다고 시인은 말한다. 뒤의 동시조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피부색이 다르다고, 말이 서툴다고, 엄마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놀리거나 차별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교훈적인 작품이다. 시인은 「한 탈북민 아저씨」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소외계층이 되면 안 된다고 얘기해주고, 「만남의 광장」에서는 남한 사람, 북한 사람이 동포니까 통일을 꿈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해준다. 아이들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국민의 도리임을 말해준 이는 서관호 시인밖에 없을 것이다.
물건을 훔쳐야만 도둑이 돠는 걸까
공짜로 나라 혜택 누리면 도둑이지
나도야 얼른 자라서 세금 내야 하겠네.
물이나 공기마저 맑게 하기 어려우니
낸 세금, 받는 혜택, 저울에 얹어보자
도둑이 되지 않기는 쉬운 일이 아니네.
―「도둑과 나 2」전문
혹자는 이 동시조를 두고 지나치게 교훈적이다, 아이들에게 민주시민이 되기를 강요한다고 불만스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탈세’라는 말을 들은 아이에게 긴 설명을 해줄 것 없이 이 동시조 한 편을 보여주면 될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나라가 움직여 가는 것임을 알게 하는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고, 탈세자의 도둑 심보가 왜 잘못된 것임을 가르칠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육자로서의 소임까지도 다한 서관호 시인이 《어린이 시조나라》의 편집에서 손을 뗀다고 한다. 제30호를 보면 31호부터는 (사)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 이 반년간지를 내고 자신은 물러난다고 편집후기에 쓰고 있다. 머리말도 “어언 15년, 30호를 끝으로 저의 역할을 접고 앞으로는 한국시조시인협회가 더 힘차게 국시 확산 운동을 펼쳐나가게 되어 크나큰 다행이며 그 우람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음을 경축합니다.”라고 썼다. 동시조 보급 운동에 힘쓴 서관호 시조시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조시인 중 동시조집을 낸 분으로 민병도 시인이 있다. 2020년에 낸 『은행나무 숟가락』은 시조시인이 낸 동시조집의 표본이 되지 않나 싶은데, 동시조집의 제목이 된 작품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은행나무 잎사귀는
은행나무 숟가락이네
햇살을 떠먹다가
바람을 떠먹다가
황금빛 마차를 타네
―「은행나무 숟가락」전문
나뭇잎은 숟가락,
햇살 곧잘 떠먹어요
반짝반짝 윤이 나게
배를 잔뜩 채우고선
졸음도 함께 먹었는지
숟가락 툭, 흘려요
―「나뭇잎 숟가락」전문
이 2편의 동시조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의 이파리를 숟가락의 이미지로 풀어본 것이다. 숟가락이 없으면 산해진미도 먹을 수 없다. 은행나무의 이파리가 햇살을 받아서 나무를 숨쉬게 하고 자라게 한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땅에 떨어져 나뒹군다. 이런 동시조는 어른도 읽을 수 있고 아이도 읽을 수 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조 쓰기는 민명도 시인의 주특기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도 동시조집 『은행나무 숟가락』에 차고 넘친다.
가랑잎 몰래 떨어져 내 손등에 내렸어요
푹 꺼진 눈가 주름과 찌그러진 콧등 너머
병원에 남겨두고 온 할머니가 보였어요
―「가랑잎과 할머니」전문
새벽 일 나간
기침 소리 기다리며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비를 맞는 가로등
젖어도 젖지 않는 척
골목길을 살핀다
―「가로등」전문
이런 동시조의 독자가 아이들만일 수는 없다. 어른들이 오히려 더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 불능의 시가 횡행하는 소통 부재의 시대에 이런 동시조가 널리 전파되어 읽혀져야 하지 않을까. 두 수로 이루어진 다음 동시조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교과서를 편찬하는 분들에게 수록해줄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책 속에서 빼곡하게
글자들이 잠을 잔다
어쩌다 내가 다가가
어깨라도 흔들어주면
그제야 눈을 비비며
귀찮은 듯 일어난다
책 속에는 크고 작은
생각들이 살고 있다
어쩌다 내가 다가가
손이라도 내밀어주면
한 마리 새가 되어서
등에 잠시 앉는다
―「책」전문
책 속에서 글자와 생각들이 살아간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글자와 생각을 의인화한 것이다. 책 속의 크고 작은 생각들에게 내가 어쩌다 다가가 손을 내밀면 한 마리 새가 되어 등에 잠시 앉는다는 고차원적인 표현이, 아이들이 읽고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이 이 동시조를 설명해주면서 우리에게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곁들여 얘기해주어도 좋을 것이다. 디카시 쓰기가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시조시인들 사이에 동시조 쓰기 붐이 일어나면 좋겠다. 시인들이 동시를 쓰는 현상에 뒤이어.
동시조가 언제부터 씌어지기 시작했는지, 그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부산의 서관호 시인이 2010년 3월에 《어린이 시조나라》를 창간하면서 창작 운동을 일으켜 어언 15년이 되었다. 서 시인은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에게 시조 형식의 동시를 쓰게 하였고 연변 조선족 아이들에게도 펜을 쥐어 주었다. 기성 시조시인들에게 동시조를 청탁해서 매호 10편 정도씩 실었다. 시조시인들 사이에 동시조 쓰기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필자와 이름이 같은 3학년 어린이의 동시를 소재하면서 이 글을 맺기로 한다.
분명히 내게 주신 만원권 네 장인네
고모도 고모부도 나에게 주셨는데
엄마의 지갑 속으로 사라지는 내 용돈
[출처] 동시조라는 것을 아시나요?|작성자 이승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