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장 패공(覇公) 탄생 (1)
뜻하지 않게 새로운 인재를 얻은 제환공(齊桓公)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행군 도중 내내 영척(寧戚)을 자신의 수레 옆에 불러놓고 천하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느라 그는 조금도 지루한 줄 몰랐다.
이윽고 제나라 대군과 선백이 이끄는 왕사군이 송(宋)나라 국경에 다다랐다. 그 곳엔 이미 진선공과 조장공(曺莊公)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환공(齊桓公)은 동맹군의 제후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회견한 후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대군을 휘몰아 송(宋)나라 도성을 칠 것인가. 아니면 사자를 보내어 먼저 항복을 권할 것인가?"
"저희들은 제후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송환공(宋桓公)은 북행 회맹에 참석했다가 배신을 하고 떠나간 자이오. 맹세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자에게는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모든 병차를 동원하여 송나라 도성을 향해 쳐들어갑시다."
제환공(齊桓公)이 격앙되어 동맹 군주들을 선동하는데, 영척(寧戚)이 앞으로 나서며 간했다.
"주공께서는 이미 천자의 명을 받아 모든 제후를 규합했습니다. 싸워서 이기기보다는 덕(德)으로써 이기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덕으로써 이기는 것인가?"
"주공께서 송나라를 치려 하시는 것은 송(宋)이 동맹을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신이 재주가 없으나, 송환공에게 가서 지난날의 배신을 사죄케하고 다시 동맹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말로 달래고 오겠습니다."
영척(寧戚)의 말에 재환공이 의심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한 번 배신하고 떠나간 자를 어떻게 말로 달랠 수 있단 말이오? 송환공은 오히려 그대의 목을 치려들 것이 틀림업소."
"신은 한낱 소 치는 촌부에 불과했습니다만, 이제 주공의 은혜를 입어 광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송나라 임금이 신의 목을 친들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신(臣)은 오로지 주공의 뜻이 천하에 두루 펴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제환공(齊桓公)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관중을 바라보았다. 관중(管仲)이 제환공의 뜻을 눈치채고 조용히 아뢰었다.
"영척(寧戚)을 믿어보십시오. 주공께서 요산 밑에서 영척을 만난 것은 하늘이 내리신 복입니다."
관중까지 영척의 뜻에 동조하자 제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를 쓰지 않고 송(宋)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소. 모든 군사는 송나라로 쳐들어가지 말고 각기 영채를 지키기만 하라."
다음 날 영척(寧戚)은 조그만 수레를 타고 서너 명의 시종만을 거느린 채 송나라로 들어갔다.
송환공은 중신들을 불러놓고 의논하고 있었다.
"영척이란 자가 와서 과인을 만나자고 하는데, 그는 어떠한 사람인가?"
대부 대숙피가 대답한다.
"신이 듣건대, 영척(寧戚)은 보래 소를 치던 촌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환공이 새로 등용하여 벼슬을 내린 사람입니다. 말솜씨가 뛰어난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영척이 주공을 뵙고자 하는 것은 주공을 설득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주공께서는 우선 그자를 불러들이되, 일체 대접하지 마십시오. 그가 주공을 설득하는 중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말이 있으면 제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때 주공께서는 그자를 사로잡아 옥에 가두어버리십시오. 그러면 제환공(齊桓公)의 계책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대숙피의 말에 송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대로 하겠다."
그러고는 좌우로 무장한 병사들을 배치했다.
이윽고 영척이 들어와 송환공에게 절을 올렸다.
그러나 송환공은 그대로 앉아 있을 뿐 아무런 답례도 하지 않았다.
영척(寧戚)은 오만한 송환공의 태도와 좌우로 시위해 있는 무장 벙사들을 보고 별안간 탄식의 말을 토했다.
"위태롭구나, 송나라여!"
송환공이 영문을 몰라 물었다.
"과인의 지위가 왕실에서 상공(上公)에 이르렀고, 다른 나라들이 모두 우리 송나라를 두려워하는데 무엇이 위태롭단 말인가?"
"군후께서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옛날 주공(周公) 단과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어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공 단은 성인(聖人)이오. 내 어찌 그에 비할 수 있겠소?"
송환공의 이 같은 대답에 영척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옛날 주공 시절에 주(周)나라는 가장 왕성했습니다. 천하는 태평가를 부르고, 오랑캐는 모두 복종했습니다. 그런데도 주공께서는 토포악발(吐哺握髮)하여 어진 선비가 오면 식사를 하다가도 세 번이나 먹던 것을 뱉어내고 뛰어나갔고, 목욕을 하다가도 세 번이나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뛰어나갔습니다. 이 모두 어진 사람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영척(寧戚)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오늘날 송나라는 어떠합니까? 2대째나 임금을 죽인 사건이 발생했고, 이제 막 군후께서 즉위하시어 옛법을 이어받고자 애쓰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목을 빼어 어진 사람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려야 하고, 어진 선비가 오면 몸을 낮추어 그들을 맞이해야 하거늘, 군후께서는 오히려 자신을 자랑하고 뽐내며 멀리서 온 나그네를 멸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군후의 귀에 어찌 충언이 들어갈 리 있겠습니까? 저는 그러고도 위태롭지 않은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송환공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과인이 임금에 오른 지 얼마되지 않아 군자(君子)의 가르침을 별로 받지 못했소이다. 선생께서는 과인의 실수를 용서해주시오."
이때 대숙피는 송환공이 영척(寧戚)의 말에 감동하는 것을 보고 연신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영척의 언변에 넘어가지 말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송환공은 아예 대숙피 쪽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영척을 향해 물었다.
"선생은 오늘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천자가 권세를 잃으심에 모든 제후의 마음도 각기 흩어져 어느덧 임금과 신하의 구별이 없어진 것은 군후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임금을 죽이고 자리를 빼앗는 일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제환공(齊桓公)께서 천자의 명을 받고 여러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주나라 왕실을 일으키려 했던 것입니다. 그때 군후께서도 참석하시어 여러 제후들로부터 군위를 명백히 인정받지 않았습니까?"
"........................."
정곡을 찔러대는 영척(寧戚)의 말에 송환공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영척은 모르는 척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군후께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회맹에서 탈퇴하고 동맹을 배신했습니다. 이는 곧 천자가 내리신 군위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천자께서 크게 진노하실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리하여 이번에 특별히 왕사군을 보내어 송나라를 치게 하셨습니다. 군후께서는 한순간의 실수로 천자의 군대와 싸우는 불충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아직 송나라가 왕사군과 싸우지는 않았지만, 저는 이미 승패를 알 수 있습니다."
송환공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렇다면 과인은 어떻게 해야 좋겠소?"
"제 생각으로는 즉시 예물을 바친 후 제환공과 회담을 갖고 동맹을 맺으십시오. 그러면 위로는 주(周)나라 신하로서 예의를 잃지 않을 것이며, 아래로는 여러 제후들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창칼을 사용하지 않고도 송나라를 오래도록 안정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가 한때 실수로 회맹에서 탈퇴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고 있던 참이오. 다만 제환공(齊桓公)이 내가 바치는 예물을 받아줄지 그것이 걱정일 따름이오."
"노나라는 회맹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건만, 동맹을 맺은 후에 빼앗긴 땅을 모두 되돌려받았습니다. 이로 보아 제환공(齊桓公)은 지나간 일을 끝까지 미워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군후께서는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예물을 보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화친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물로는 무엇이 좋겠소?"
"제환공(齊桓公)이 어찌 귀한 보물을 바라고 여기까지 나왔겠습니까. 그는 오로지 군후의 마음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소박한 것으로 보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좋은 말씀이오. 그대 덕분에 이제 내 마음이 편안해졌소."
송환공은 얼굴을 활짝 폈다.
그 즉시로 제환공(齊桓公)에게 사자를 보내어 지난 일을 사죄하고 동맹맺기를 청했다. 대숙피 역시 영척의 빈틈없는 말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조용히 궁정에서 물러났다.
노나라를 동맹국으로 끌어들인 데 이어 영척(寧戚)이 세 치 혀로 송나라마저 굴복시키자 제환공의 위세는 더욱 천하에 떨쳤다. 바야흐로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았다.
- 이제 남은 것은 정(鄭)과 초(楚)나라뿐이다.
관중은 날마다 벽에 붙여놓은 중원지도를 바라보았다.
하루는 관중이 영척과 함께 제환공(齊桓公)을 찾아가 말했다.
"주나라가 동쪽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로 정(鄭)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정무공 때에는 동괵을 멸망시켰고, 정장공 때에는 천자가 이끄는 왕사군마저 격파했습니다. 그런 정(鄭)나라가 지금은 둘로 가라져 골육상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중원의 진정한 패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반드시 정나라의 내분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패자(覇者)라는 말을 듣자 제환공은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과인도 정(鄭)나라가 중원의 중추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서. 그래서 항상 정나라 때문에 고심해왔소. 하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계책이 서지 않아 답답할 뿐입니다."
영척(寧戚)이 입을 열었다.
"정나라는 정장공이 죽은 이후 여러차례 임금을 죽이거나 추방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족이란 자의 소행이며, 지금의 임금인 정자(鄭子)도 동생으로서 형님 자리를 빼앗은 자입니다. 이들은 다 분수를 모르고 윤리를 어긴 자들입니다. 당연히 정나라를 쳐 정자(鄭子)를 축출함으로써 그들의 죄상을 밝혀야 합니다."
"정자(鄭子) 대신 누구를 군위에 올리는 것이 좋겠소?"
"지난날 군위에서 좇겨난 정여공 돌(突)은 역성에 머물면서 오로지 신정을 공격할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에의하면, 초나라의 힘을 빌릴 생각까지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마침 얼마 전에 정나라 실권자 제족(祭足)이 죽었다고 합니다. 주공께서는 이 기회에 초나라보다 앞서 사람을 역성으로 보내어 정여공의 복위를 도와주겠다고 말하십시오. 우리의 도움으로 정여공이 복위하면 그는 주공의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우리 제(齊)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관중과 영척의 말을 들은 제환공은 어둡던 얼굴이 환해졌다.
"참으로 좋은 계책이오."
그는 곧 대부 빈수무를 불러 병차 2백 승을 내주고 정(鄭)나라 역성 땅으로 가서 정여공을 돕게 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