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양보는 했지만 내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26-0920》나는 내가 에코이스트인 줄 알고 평생을 살았다.
by여유시간
1시간전
나는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양보를 많이 했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상대가 편해진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순서를 바꾸기도 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을 특별히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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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했던 양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모든 것을 양보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까지 쉽게 내어주지는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나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요구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다.
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면 상대가 불편해하더라도 내 생각을 유지했다.
그때는 그것을 ‘자기주장’이라고 특별히 이름 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면서 살아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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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는 양보와 포기를 구분하고 있었다.
양보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거나, 내 편의를 조금 내려놓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상대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생각과 기준까지 바꾸지는 않았다.
양보는 내가 선택하는 행동이고, 포기는 때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빼앗기는 일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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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중에 에코이스트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과거의 나를 다시 해석하기 시작했다.
남에게 양보했던 기억들이 먼저 떠올랐다.
내가 참았던 일, 맞춰주었던 일, 다른 사람을 위해 뒤로 물러났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나는 나보다 남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구나’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기억에는 내가 지키고 선택했던 장면도 있었다.
그 장면들을 빠뜨린 채 나를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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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쓰면서 그 빠진 장면들이 하나씩 돌아왔다.
나는 남을 배려했지만 내 인생의 결정권까지 양보하지는 않았다.
필요할 때 물러났지만 항상 물러서지는 않았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했지만 내 입장을 없애지는 않았다.
나는 양보하면서도 나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에코이스트라고 생각했던 것은 남에게 양보했던 장면을 지나치게 크게 기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안다.
양보를 많이 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에코이스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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