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인재술 7선
천하를 얻으려면 먼저 사람을 얻어라
1. 훌륭한 목수는 좋은 연장을 쓴다
2. 세상이 곧 나의 스승이다
3.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라
4. 귀중한 것일수록 얻기 어렵다
5. 최고의 헤드헌터가 되자
6.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7. 틀 밖으로 나와라
인간 조조 (천하의 지혜를 모아라)
지은이 : 이재하
출판사 : 바다출판사
봉사자 : 한양대학교 김윤동
왜 지금 조조인가
머리말을 대신하여
1. 역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일을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말이 있다. 여
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의 평가 문제이다. 역사는 무엇보다도 역사적 행위들의 기록과
흔적이고, 그것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는 새롭게 펼쳐지는 시대 속에서 언제나 변화하기 때
문이다. 그래서 한 인간이나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만큼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인물 중의 하나가 조조다. 그는 지혜의 상
징인 제갈량이나, 그를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고 한량없이 어진 사람으로 통용되는
유비, 혹은 신의와 충절의 대명사인 관우와 달리, 간교함의 화신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조조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이]가 동양에서 불멸
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라지거나 다른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앞으로도 여전히 그
러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간 조조와 소설적 허구가 창조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조조는 상당히 다르다. 이 대목이 바로 필자가 지금 다시 조조를 거론하고자 하는 가장 커
다란 이유이다. 오늘의 역사는 소설 속의 조조가 아니라 역사 속의 조조의 모습을 정확히
밝히고 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필자는 한 인간으로서 조조를 정당
히 복권시키고 싶은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때는 1,400년 이후다. 실로 조조가 활약했던 시대와는 적어도 1,100년이라는 역사의 거리가
존재한다. 이 장구한 역사의 틈 속에 조조에 대한 가혹한 왜곡이 끼여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조에 대한 평가는 그가 죽고 난 이후 생겨난 숱한 왕조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계
가 있다. 중국 왕조 흥망의 역사는 두 가지 기본적인 틀을 지니고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
로, 아니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수도가 서쪽이나 북쪽에 위치하였을 때는 제
법 융성하였다가도, 이것이 동쪽이나 남쪽으로 옮기면 힘이 없는 왕조로 바뀌어 오래지 않
아 망하고 말았다. 서주와 동주, 서한과 동한이 그러하였으며, 또 남북조의 서진과 동진 및
북송과 남송이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어떠한 왕조라도 서북쪽에 자리잡은 이민족의 세력을
누르지 못하고 동남쪽으로 수도를 옮기면 망한다는 실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한족의 세
력이 중원을 차지하고 있을 때에는 그런 대로 조조를 높이 평가하다가도, 일단 동남쪽으로
밀려나고 말면 조조는 배척이나 타도의 대상으로 급변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삼국의 세
력 판도에서 중원 지역을 차지했던 조조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이처럼 찬사와 비난이 엇갈리던 조조는 급기야 촉한 정통론의 관점에 서 있는 나관중의 소
설 [삼국지연의]가 등장함으로써 엉뚱한 방향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정사나 당대의 기록보
다 더욱 위력적인 흡인력을 지닌 것이 바로 소설이다. 소설을 통해 유비와 조조의 상대적
인 비교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처럼
폭발력을 지닌 [삼국지연의]가 유비를 없애도 이야기는 그런 대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조조를 빼버린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감안한다
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조조다. 허구인 소설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데는 그에 걸맞게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이 책은 그 이유를 찾아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소설이 아니라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간 조조에게서 잘못된 것은 가차없이 비판
하되, 혹시 좋은 점이 있다면 만천하에 드러내고 배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2. [삼국지연의]속의 조조는 한마디로 악의 전형이어서 간사하고 악랄한 데다가 비정하
기까지 하여 절대 본받아서는 아니될 인물이다. 그리하여 소설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
같이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까지 생각되게 만든다. 그러나 실존 인물 조조는 중국 한나라
말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군웅 할거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그나마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
는 터전을 마련했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백성을 사랑한 경세제민의 정치가이자. 손무 이후 가장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여 모
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나가는 병법가이자 군사지휘관이었으며, 문학을 사랑하여 당대의
문학적 기운을 융성하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또한 그 자신 스스로 빼어난 시인이
었다.
필자는 거대한 중국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불행 중의 하나가 합리주의와 실용주의의 결
핍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의 씨앗을 고칠 뻔한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가 있었
다. 나는 조조라는 한 역사적 인물에게서 그 계기를 발견한다. 조조의 매력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자리잡고 있다. 조조는 어떠한 인간적인 매력이나 친화감도 없이 단
순히 뛰어난 용병술이나 매서운 법의 집행만으로 중원의 패자가 된 사람의 결코 아니다.
사실 전략이나 법으로만 천하를 호령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조조의 숨겨진 매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상상을 초월한 인간
경영이었다. 아울러 그것의 사상적 본질은 합리주의와 실용주의였다.
조조는 자신의 뛰어난 개인적 능력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주변의 무수한 인재들과 함께 중원을 제패했
다. 하지만 많은 인재를 거느리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유능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면에서 조조는 하나의 커다란 그릇이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인간적인 번민과 고뇌와 욕심이 없을 수 없으련만,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심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을 비난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설혹 죽이려고 했던 사람일지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고 인재로 등용할 일이 있으면 과감하게 등용했다. 또한 언제나 꾸준한 대화와 토론으로 커다란 동력이 되는 하나의 지점을 찾아나갔고 그곳에 도달하면 즉각 대담한 실천을 옮겼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
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다른 누구보다도 조조의 휘하에 구름처럼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던 현상은 이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유비와 조조를 대비해볼 수 있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먼저 유비와 그의 장수 조운에 얽
힌 이야기다. 조운, 그러니깐 상산 조자룡은 유비 휘하의 가장 뛰어난 장수이다. 치열한
전투 중에 조자룡은 유비의 어린 아들 아두를 품에 안고 수십만 적진을 뚫고 나와 유비 앞
에 데려온다. 그야말로 주군의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은 초개와 같이 생각
한 것이다. 이에 유비는 부하 장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조자룡으로부터 건네
받은 자신의 친자식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린다. 인군의 전형이며, 참으로 눈물나도록
감동적인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달리 본다면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그처럼
소홀히 다루면서 만천하의 부모와 처자식은 얼마나 사랑으로 감쌀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조조와 고유에 얽힌 일화이다. 고유는 조조 휘하에서 대단히 중요한 장수이거
나 책략가는 아니다. 다만 조조가 극도로 미워하는 적 고간의 조카다. 어떻게 하다 보니
고유가 자신의 휘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언제 그가 적과 내통할지 몰라 의심스럽게 만
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를 처벌하거나 몰아내기는 힘든 형편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실수할 수밖에 없는 직책을 맡긴다. 그러나 고유는 실수는 고사하고 누구
보다도 깔끔하고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낸다. 조조가 어느 날 밤 변장을 하고 여기저기 둘
러 다니다 보니 그 눈엣가시 같은 고유가 서류더미에 묻혀 일을 하다가 깜박 잠들어 있다.
조조는 소리나지 않게 가만히 털외투를 벗어 덮어주고 살며시 물러난다. 그 이후로 고유는
죽을 때까지 언제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시비를 가린다. 그
러나 조조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 옳은 말이고, 더 나아가서는 오히려 자신의 털외투를 입
혀주기도 했던 고유가 입을 여는 것 자체가 즐겁고 귀엽기만 하여 그를 아끼고 사랑한다.
물론 고유는 조조 휘하의 즐비했던 모략가들이나 명장의 반열에 낄 수도 없는 인물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조조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조조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바탕으로 현실을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3. 조조는 위공이 되기에 앞서서 건안 15년(210)에 자신의 의중을 장문으로 밝힌 적이 있
었다. 그는 여기에서 자기가 죽거든 묘비에 이렇게 쓰기를 원한다고 적었다.
"고 한나라 정서장군 주후의 묘"라고.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조조는 끝까지 한나라의 신하로 남기를 희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사람은 당대는 물론이고 후세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조조가 누렸던 권위가 그렇거나와, 또 그가 죽은 뒤 아들 조비에 의해서 이루
어진 위왕조의 건립으로 진위가 무색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마 이 문제는 영원히 미
궁으로 남겨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조조는 헌제를 허도를 맞아들인 건안 원년으로부터 차근차근 자신의 기반을 다져
온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이 중원의 통일을 위한 것이었다, 아니면 전란으로 고생하는 만백
성을 위한 위정자의 의무였던 간에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연결된 삼각고리였다는 점이다. 먼저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군웅
할거로 사분오열된 중원을 하나로 통일해야만 하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백성들은 이리저리
끌려나가 숱한 싸움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중원통일은 우국지사의 입을 통하여 천만
번 외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치밀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지도력과 용병술 및 정치적 기반이 총체적으로 통일되어 이루어지는 지극히 어려운 과업이
다. 물론 조조 개인의 정치적인 야심이 없지도 않았을 것이다. 숱한 싸움과 어려움을 헤쳐
나온 경험을 토대로 중원도 통일하고 백성도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조조 자
신은 이 중대한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기반을 다져야만 했다. 또한 많은 인재를 모아야 하고, 좋은 정사를 펼쳐야 하며,
각지의 웅거세력을 복속시켜야만 했다. 실로 조조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사명감을 갖고
일관되게 추진해 나갔다. 그 결과 이에 상응하는 긍정적인 결과도 점점 불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세인의 눈총은 따갑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조조에게 언제나 따라 다니는 비판의 목소리는 이러한 것들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 속에서 이러한 조조의 실제적인 면모가 가감이나 과장 혹은 조금의 왜곡도
없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계기라도 마련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본다. 아울러 그
것은 여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되는 작업이라도 생각한다. 지금의 역사
가 다시금 조조를 부르고 있지 않는가! 조조는 한 개인적인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동양 사
회에서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실천적으로 결합시킨 최고의 실천가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
이다.
끝으로 지난 초여름 필자의 연구실로 느닷없이 찾아와 그동안 나 자신이 고민해온 조조에
대한 이러한 연구와 사색의 결과를 책으로 묶어 내게끔 제안하고 이끌어준 류종력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생각해보면 소설 속에서 왜곡된 조조를 역사 속에 존재한 진정한 조조로 찾아
내고 다시금 오늘의 조조로 되살리는 작업은 내 능력으로는 힘에 겨운 작업일 것이다. 주
변의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의 부족한 능력으로 이 책의 결말마저 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 자리를 빌어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애써주신 바다출판사의 김인호 대표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무인년 추석을 앞두고 용연골 연구실에서, 이재하
서 장 : 조조를 위한 변명
한나라 말엽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영웅 호걸들이 한꺼번에 군대를 일으켰다. 그 가운데
에서도 원소가 호시탐탐 천자의 자리를 넘보면 네 주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의 강성함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러나 위나라 태조 조조는 모략을 운용하여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다.
그는 신불해와 상앙의 법술을 채용하고, 한신과 백기의 기발한 책략을 겸비하였다. 조조는
사람들이 저마다 타고난 재능을 살펴 그들 각각에게 거기에 맞는 직책을 부여함으로써, 그
들이 나름대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고 치밀한 계획에
따랐으며, 지난날의 사사로운 원한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가 마침내 조정의 대
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건국의 대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총명과 책략이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조조야말로 비범한 인물이었으며, 시대를 초월한 영걸이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