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제9회 지리책읽기대회 수상작 - 더불어사는세상
수상자: 경북 성의여자중학교 2학년 전*율
참가도서: <10대를 위한 세계 분쟁지역 이야기>
결과물 종류: 감상문
나는 합의를 거친 평화는 원치 않는다. 나는 평화를 가져오는 합의를 원한다.
-헬렌 켈러-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온 날이었다. 그 책은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고,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책을 읽었었지만, 그 책을 빌리진 않았다. 그렇기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하지만 방학 며칠 전 지리책읽기 대회 선정 도서라는 말에 도서관에 가보았지만, 그 책은 누가 이미 빌려 간 상태였다. 그러다 어찌저찌하여 방학 중에 책을 구하게 되었다. 굳이 고른 이유를 꼽자면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 있지 않은가? 표지에 따라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안 드는 것. 난 표지를 좀 가리는 스타일이라 제목이 자극적이지 않는 이상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표지와 제목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너 말곤 날 읽어줄 사람이 없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결론적으로 그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다. 정말 단순한 이유다. 누군가는 어이없다며 비웃을 것만 같고 누군가는 날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볼 것만 같은 이유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내 삶에서 얻은 약간의 기술이자 과장해서 말하면 지혜의 산물이다. 덕분에 난 계속 재밌는 책만 읽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분쟁지역이라는 소재 자체가 나에겐 정말 흥미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의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국제상황들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평소 읽는 책들도 정치, 경제, 사회에 관한 책들이니 말이다.
서론은 좀 길었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프란체스카 만노키의 ‘10대를 위한 세계 분쟁지역 이야기’는 말 그대로 내 또래에 아이들이 읽기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분쟁지역, 예시로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이라크 등등의 국가들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거나 혹은 겪어온 사람, 망명을 간 사람들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들 보는 세계 분쟁지역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뉴스에서 접하게 된다. 그리고 우린 뉴스에서 보여주는 것만큼, 딱 그만큼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그 감정을 쉽게 잊어버린다. 이 책은 단순히 분쟁지역의 이야기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다. 위에 말했듯이 이 책은 그 분쟁지역에 살고 있는, 혹은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뉴스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고, 알려줄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서술한 이 책은 정말 대단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라, 잠시만. 그들의 이야기라면 뉴스에서도 인터뷰를 진행할 때 알 수 있지 않은가? 보편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진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그 어려움을 딛고 살아가는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생사가 오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뉴스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건 그저 흔히 세상에 보이는 표면일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프란체스카 만노키는 그들의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과 뉴스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 저자 프란체스카 만노키 (줄여서 만노키라고 부르겠다.) 는 해당 지역을 직접 방문했다. 책에는 6개의 분쟁 중인 국가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가 나오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두 생생하게 서술했다. 실제로 그녀가 우크라이나에 방문했을 당시, 그날 다음날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서술했다. ‘전쟁이 시작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은행에 저금해 놓은 돈을 찾고, 식량을 확보하고, 물과 약을 준비하고, 연료를 비축하는 등 모두 현실적인 것들이다.’ 우크라이나 이외에도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를 방문하여 뉴스에는 잘 담기지 않은 현지인들의 고통스럽고도 아픈 이야기도 들어보고, (실제로 친구를 사귀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머물러 보기도 하면 그 지역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느낀 것을 담아내었다.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에 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서 파힘이라는 사람을 만났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 대학의 교수였고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혼란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쳤던 사람이다. 하지만 미군이 철수하며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빨리 졸업했으면 한다고 생각하였다. 책에서 만노키는 파힘의 말을 옮겨 적어놓은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더 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는 행동은 없어요. 그리고 교육을 받는 것은 우리를 발전시키는 가장 고귀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합니다.” 파힘의 그런 말 한마디가 무게감 있으면서도 그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었다. 나는 감히 그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의 고통은, 그들의 절박함은, 그들의 괴로움은 당사자가 아니 고서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녀도 우크라이나에서 그런 일을 겪기 전까진 그런 현실적인 일들을 해야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파힘도 탈레반이 다시 점령하기 전까진 본인들이 그런 험난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를 권유하였다. 만노키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여러분이 방에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우크라이나의 기차역 승강장으로 가야 한다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생각 연습을 권하는 이유는 내가 취재한 것을 이야기로 풀어놓아야 할 때마다 스스로 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은 우리를 조금이나마 그들과 가깝게 만들어 주는 주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일들과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쓴 만노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전쟁은 나쁜 것이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으니 없어져야 해!’가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일까? 그녀는 서문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전쟁에서 어떻게 울었는지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전쟁에서 사람이 무섭고 어두운 존재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전쟁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전쟁 중의 폭력은 사람뿐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둘러싼 도시공간을 대상으로도 가해진다. 전쟁이 나면 우리가 살던 집이 무너지고 우리가 매일 생활하던 일상적인 장소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건물을 공격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암묵적인 공격이다.’ 이 문장들이 그녀의 전쟁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들을 가져오는지를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치명적이고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만노키는 책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떻게 지내세요?” 상투적인 문장처럼 자동으로 우리 입 밖으로 나오는 질문이지만, 사실 타인을 향한 가장 큰 관용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것은 그냥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질문이다. 진심으로 뒤에 이어질 대답을 들으려 하는 질문이다… (중략) …부디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 그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문장은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고통스럽고 무서운 존재인지를 암시함과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이 두려움을 해결해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우주의 작은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80억이라는 무수한 별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별들의 이야기는 무수하고 다양하며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별들 하나하나는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각자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 중 몇몇은 불행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써내려 가게 된다. 자신들의 아름다움으로만 채워도 부족할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그저 자기 신경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우린 그 별들을 죽이고 있다.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 외친다. 행동하고, 표현하며 자신들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별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기엔 너무나도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우린 그들에게 관심으로 포장된 무관심을 주었고, 그들의 고통을 아는 척하며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그것을 악용하는 정신 나간 놈들도 존재하기도 한다. 만노키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면, 더 이상 그런 최악의 사태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우린 그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세상을 바꾸자고,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건 의미 없는 짓이다. 무엇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고, 그들의 잘못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를 우린 알아야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뉴스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그들의 고통의 일부이다. 우린 뉴스로는 그들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전부 다 알 수 없다. 정말 당신이 진심으로 그들의 고통을 없애 주고 싶다면 뉴스 너머의 세상을 보아라.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나라면 저 상황에서 그들만큼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라. 충분히 생각하고 난 후엔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 보아라.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움직여라. 작은 물결을 만들어 가보자. 점차 더 커질 수 있게.
우린 세상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없다. 아인슈타인도, 소크라테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러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다른 곳에선 고통의 비명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러니 우린 세상을 좀 더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준 나 자신과 여러 도움을 주신 사회 선생님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