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러의
교향곡 6번 1 악장 1번
주제는
장쾌한
행진곡이면서
타악기의
두드림으로 힘을 북돋운다.
아니면
ABBA 의 신나는 노래
댄싱 퀸이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먼
길
비
맞으며 걸으니 녹초가 되었으면
마음
속에서 그렇게라도 추스려야 한다.
오렌세에
들어가면서
몸이
가지런하지 못했다.
어지러워
몸을 겨우 가누어 걸었던 것.
천천히
걸으니 회복되어 번화한 거리를 만났다.
불협화음의
거리다.
산길은
팔 다리 움직임의 조화가 있다.
빠르게
걷든, 늦게 걷든 리듬에 맞추어 걷는다.
들려오는
소리, 보이는 모습들이 자연 질서에 들어 있다.
몇
마리가 짖어대는 개소리 조차
어쩌면
불협화음 속의 귀에 익숙한 느낌이 있다.
낯
선 거리에 들어 가면
발걸음이
고르지 않다.
사람에
부딪치고 신호등에 걸리고
같이
흘러 가는 교통의 흐름이 일정하지 않다.
소음도
간판이며 지나는 사람의 표정까지 신경 쓰이니
불협화음이
마음을 긴장시킨다.
자유의
유연성이 뚝 떨어진다.
피곤한
몸, 낯선 거리는
현대시의
음률 부조화를 능가한다.
영문
모를 추상화를 들여다보는 촌 사람이 생각한다.
저
소음에 가까운 헤비 메탈 패션은
뭔가
있어 보이는 거 아니야?
최소한
뭉크의 “절규” 처럼
대비라도
시켜 놓을 밝음이 있든가.
도시의
거대한 소음은 지팡이로 보도를 찍어서 내는
미미하지만
둔탁한 리듬으로 저항해 본다.
내
몸은 샤워 물 벼락이 급하다.

By Edvard Munch -
WebMuseum at ibiblio Page: http://www.ibiblio.org/wm/paint/auth/munch/ Image
URL: http://www.ibiblio.org/wm/paint/auth/munch/munch.scream.jpg,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7610298
오렌세
도착 후 쉴 곳을 찾느라 마음이 조급해진다.
알베르게를
찾아도 보이지 않아
공동묘지
입구에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한남자가
다가와 되돌아 가라고 한다.
San
Francisco 성당에
붙어 있는 공동묘지.
그
옆 박물관 건물이 알베르게라고 한다.
이렇게
도착했다.
오후 4시다.
호주여자 Sue 가 거실에 느긋하게 앉아 있다.
프랑스
사람 실바도 보인다.
Laza
에서 Xunqueira 마을로 직행했던 사람들이다.
Xunqueira에서 24km밖에
안 된다.
오후에
비 오기 전 뽀송뽀송하게 도착했다.

오스삐딸레라가
보이지 않아 짐부터 풀고 샤워.
등록비 6유로.
빨래는
할 수 없다.
우의만
펴서 마르도록 걸쳐 놓았다.
쉬고
나니 정신이 든다.
시내
구경을 나갔다.
알베르게가
고지대에 있기 때문에
시내
전체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계단을 거쳐 내려간다.
오렌세
대성당은 웅장한 바실리카다.
화려한
입구 돌 장식.
문간에
청년이 서서 구걸을 한다.
다른
사람들과 잡담을 하다가
누가
들어 가기만 하면 돈을 달라고 한다.
거지도
직업이고 구걸은 생계수단이다.




성당
안은 어둡고 시원하다.
기둥이
줄지어 서서 지붕을 떠 받친다.
예수님
수난 상, 성모상, 성인 상들이 보인다.
작은
성당들이 구석에 들어 있다.
옛
무덤이 벽을 따라 설치되었다.
제대와
장궤 의자는 줄을 처서
관광객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
성당에서 미사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어디
물어 볼 만한 곳이 없다.
늦은
오후여서 그런가
기도하거나
명상하는 사람도 없다.
나름
바쁜 걸음이다.
이
거대한 구조물에서 있었을 화려하고 장엄한 미사.
과연
예수님이 바라던 모습일까?
오히려
잔디에 앉은 수 천명의 군중이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이렇게
돌로 쌓아 놓고
뒤에
오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는 대신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이야기가 더 감동이겠다.
제주도
김만덕 할머니나 경주 최 부자처럼 베푸는 삶이
이
거대한 “성전” 보다 더 거룩하다.
관광객들이
오고 가지만 몇 안 된다.
조용하다.
사진
찍는 플래쉬가 가끔 번쩍인다.
기도를
바치고 나왔다.




성당
옆을 걸어 광장으로 갔다.
아이스
크림 가게에 초등학생 단체가
줄
서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있다.
이미
자기 몫을 받은 학생들은 줄에서 빠져 나와 재잘거린다.
또
다른 성당 건물.
비싸
보이는 식당들. 가게들.
누군가
툭 쳐서 돌아보니
어제
만났던 스페인 청년들이 웃고 있다.
악수하고
헤어졌다.
중심가는
고층 건물들이 넓은 줄지어 있는 넓은 거리이다.
차들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바글거린다.
의류, 신발 가게, 은행, 식품
가게, …
계단을
걸어 올라와
알베르게
앞 길 건너에서
보까디요를
사 먹었다. 4.5유로.
쉬었다.
알베르게
건물은 박물관 바로 옆이어서
알려
주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옆에는
건물 외벽만 남은 고 건물이 있다.
옛
성당 건물의 해체 복원 공사를 하는데
외벽은
그대로 세워 둔다.
그
옆은 공연장 건물.

저녁시간
길 건너 “홍콩주가”라는 중국 음식점에 갔다.
한자로
이름을 쓴 간판이다.
매운
사천 음식을 시켰는데 맵지 않다. 12.5유로.
중국인
가족이 운영하는 것 같다.
카운터는 40대로 보이는 부인.
웨이터는 20대 중국인이다.
50대의 중국남자가 오더니 오렌세에 사느냐고 묻는다.
사람이
그리운가 보다.
순례자라고
했다.
알베르게
거실은 천정이 높다.
옛
성당 건물 안에 2 층으로 내부를 개조 했는데
거실은
높은 천정까지 뚫려 있다.
침실에서는
아래층 거실에서 하는 말 소리가 증폭되어 크게 들린다.
조용조용
말하면 웅성거림으로 들린다.

Sue는 사우디에 있는 남자친구가 독일로 오면
만나기로
했다면 좋아한다.
이
여정이 끝나면 곧 바로 독일로 가겠단다.
들뜬
기분에 목소리까지 변했다.
늙어서도
여자는 여자다.
로렌세에
하루 더 머물면서
온천
찾아 갈 생각을 하고 있다.
프랑스
사람 실바는 오후 일찍
오렌세에
도착하긴 했는데
알베르게로
오는 길을 몰라서 시내를 헤맸다고 한다.
비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시내하러 사라졌다.
스페인
남자들이 거실에서 한잔하면서 떠든다.
잠을
잘 수 없다.
내려가서
잠 좀 자자고 주의를 주었다.
다들
주섬주섬 챙겨서 침실로 갔다.
내일
걸으려면 자 두어야 하니 잘 되었다 싶었을 것이다.
피델리스가
판을 깼네.
오렌세에서
다들 관광객이 되어 있다.
마시고
떠들지만
기도하고
명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알베르게는
싸구려 클럽인 셈이다.

새로운
얼굴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00km
이상만 걸으면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에서 순례 증명서를 발급한다.
이
폼 나는 순례증명을
액자에
넣어 걸어 놓으면
추억도
되고 뿌듯할 것이다.
관광도
하고 순레도 하고.
그런
정서는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순례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들 한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성지 순례는 아예 관광청에서 관장한다.
까미노
산티아고는
목적지인
성지에만 매달라지 않고
오가는
길에 더 시간과 마음을 두는 것이 다르다.
죽은
뒤에다 모든 것을 걸지 않고
살면서
이웃과 잘 지내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선행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성지
순례는 그래서 오가는 길이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대화와 표정과
그들의
지난날의 회상이
생전의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더 마음을 끌어 당긴다.
도시의
산책과 산길을 걷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래도
순례길
알베르게에서 만나는 코고는 소리에서 리듬을 찾게 된다.
몸이
피곤하니 그것도 잠깐이면 새 아침이 올 것이다.
참고문헌
[1]
윤수민, 조선의 여성 상인 김만덕, 도서출판 창해, 2009
[2]
G. Mahler, Symphony No.6 A minor,
1903
[3] B. Andersson, B.Ulvaeus,
S. Anderson, Dancing
Queen, ABBA 1976
[4] Edvard
Munch, The Scream, 18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