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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6년 3월 26일 (토)
o 날씨: 맑음
o 산행경로: 산성대 입구 - 산성대 - 광암터 삼거리 - 통천문 - 천황봉(809m) - 바람재 - 구정봉 - 향로봉 - 미왕재 - 도갑사
o 산행거리: 10.1km
o 소요시간: 5시간 10분
o 지역: 전남 영암
o 일행: 나홀로
o 산행정보: 월출산
▼ 산행지도
오늘 산행지는 남도 끝단에 있는 월출산이다. '달 뜨는 산'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영암 땅 평지위에 하늘로 솟구치듯 우뚝 솟아 있고, 정상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구정봉, 향로봉, 장군봉, 사자봉, 주지봉 등 기기묘묘한 암봉들과 기암괴석들이 마치 거대한 수석전시장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지리산, 무등산, 조계산 등 남도의 유명산들이 대부분 완만한 흙산인데 비해 월출산은 숲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바위산에다 깍아지른 산세가 압권이다.
산행코스는 30년만에 개방된 산성대코스를 거쳐 천황봉(정상)에 오른후 도갑사 방향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산객들이 붐비는 시간을 피하기 위하여 160km나 떨어져 있는 익산에서 아침일찍 출발, 산행들머리에 도착하니 아침 8시를 조금 넘기고 있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산행을 준비하는 산객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 산행들머리 주차장
주차장에서부터 '氣찬묏길' 이라는 둘레길(?)을 따라가면 산성대탐방로 입구로 이어진다.
▼ 산성대탐방로 입구
산성대탐방로입구에서 천황봉(정상)까지는 약 4km의 거리다. 등산로는 초반부터 제법 가파르게 시작한다. 초입에는 산죽도 많고 등산로 주변에 피기 시작한 진달래가 운치를 더해준다.
월출산의 비경을 빨리 보고 싶은건지 초반부터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만큼 다리에도 부담이 가중된다.... 약 1km를 올라가면 바위능선을 타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사방의 멋있는 조망에 눈을 뗄수가 없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안개에 둘러쌓인 영암군청시내가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내려다본 영암군청 방향
진행방향으로는 앞쪽과 좌우가 온통 바위산이다. 정면은 역광이라 시커멓게 보이긴 하지만.... 초반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더니 정강이 앞쪽 뼈가 아파온다. 무리하면 나타나는 고질병이다. 에휴~~ 들머리에서 약 1.8km를 올라오면 산성대다. 약간 넓은 평지인데....산성대라는 지명이 붙은 이유가 무엇일까? 진행방향으로는 하늘을 뚫을 것 같은 천황봉이 쇠뿔처럼 솟아 있고, 오른쪽 멀리 구정봉도 한눈에 들어온다.
▼ 산성대에서 바라본 천황봉(왼쪽)과 구정봉(중간 뒤)
산성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암릉을 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숨겨진 비경이었던 산성대코스의 속살이 들어나는 순간이다. 암릉은 가야산의 만물상코스 또는 용봉산의 암릉구간과 오버랩된다...
▼ 뒤돌아본 등산로
암릉구간에는 나무계단이 잘 설치되어 크게 어렵지는 않다. 나무계단이 없었던 예전에는 어떻게 다녔을까.....
▼ 고인돌 바위를 지나고....
묵직한 천황봉 아래로 보이는 암릉구간은 오목조목 장난감을 보는 듯하다... 이 구간은 특히 가야산의 만물상코스를 떠올리게 한다. 멀리 바라보이는 천황봉 정상부근에 하얀눈빛이 비친다. 간밤에 눈이 내린 것인지.....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천황봉과 암릉구간(아래)
진행방향 좌측은 천황사로 이어지는 암릉이다. 바람골을 중간에 두고 앞쪽은 장군봉, 뒤쪽은 사자봉의 모습이 장쾌하다. 뒤쪽의 사자봉 능선은 작은 설악산을 연상케 한다. 특히 사자봉은 설악산 공룡능선의 1279봉을 떠올리게 한다.
▼ 장군봉(앞)과 사자봉 방향(뒤)
산성대코스는 30년만에 개방된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보고 또 보고, 또 돌아 보고....
▼ 뒤돌아본 산성대 코스
장군봉 능선은 가까와질수록 모산재 능선을 닮았다. 모산재에는 순결바위가 있는데, 여기는.....
▼ 장군봉 방향
들머리에서 약 3.3km 올라온 지점, 천황봉을 약 0.6km 앞둔 지점이 광암터 삼거리다. 이곳은 산성대코스와 천황사코스가 합류하는 지점인데, 천황사코스는 바람골을 경유하여 이쪽으로 올라오게 된다.
▼ 광암터 삼거리
광암터삼거리를 지나면 왼쪽 아래로 깊게 패인 바람골 계곡이 아찔하고, 우측의 암릉사이에 걸쳐있는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가 감탄을 자아낸다.
▼ 내려다 본 바람골과 구름다리
천황봉을 약 300m 앞둔 지점에 통천문삼거리가 있다. 이곳에서는 구름다리를 거쳐 천황봉으로 오르는 코스와 연결된다. 통천문삼거리에서 가파른 나무계단을 약 100m 올라가면 통천문을 통과하게 된다.
▼ 통천문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 통천문
[通天門] 통천문은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m 아리에 있다. 천황사쪽에서 바람폭포 또는 구름다리를 지나 천황봉 쪽으로 오를때 만나는 마지막 관문의 바위로서, 이 굴을 지나야 천황봉에 오를 수 있다. 천황봉에 이르는 문의 역할 때문에 통천문이란 이름이 생긴 것인데, 이는 월출산 최고봉을 지나 하늘로 통하는 높은 문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바위굴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과 함게 월출산의 북서쪽 능선이 펼쳐지며, 멀리 내려다보이는 영암고을과 영산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내판)
통천문을 지나면 하늘위에 솟아있는 천황봉(정상)이다. 동쪽으로 천황사의 장군봉/사자봉 능선과 바람골, 서쪽은 구정봉 능선, 남쪽은 경포대, 북쪽은 산성대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천황봉에서 바라본 사자봉 능선
▼ 천황봉(정상)
▼ 천황봉에서 내려다본 산성대 능선과 영암군청
▼ 천황봉 정상부 모습
천황봉에서 바라본 구정봉 방향은 그야 말로 기암괴석과 암봉의 향연이다. 하늘위에 돌꽃이 가득 피어있다.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다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천황봉을 내려가는 길에 상고대가 피었다. 간밤에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은 모양이다. 꽃피는 봄날에 여기는 눈꽃도 같이...
▼ 상고대가 핀 천황봉 아래
천황봉에서 구정봉까지 약 1.6km 구간은 기암괴석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천황봉→구정봉 방향 등산로
▼ 내려다 본 경포대계곡 방향과 월남저수지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구정봉(오른쪽)과 향로봉 (중간 우측 뒤)
▼ 거북바위(?)
▼ 돼지바위도 지나고.....
▼ 남근바위 아래를 통과하고....
남근바위를 만지거나 껴안으면 젋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구정봉 아래에 있는 베틀굴과 함께 음양을 상징하고 있다. 남근바위를 지나면 의자바위 조망점으로 이어진다.
▼ 의자바위 조망점
▼ 의자바위 조망점에서 바라본 구정봉
의자바위 조망점을 내려서면 바람재다. 바람재는 경포대 방향 등산로와 갈림길이다. 바람재에서 구정봉까지는 약 0.5km의 거리. 마음은 벌써 구정봉에 올라가 있다.
▼ 의자바위 조망점에서 내려다본 바람재(아래)
▼ 구정봉 장군바위를 바라보고....
[구정봉 장군바위] 전방 200m 지점에 우락부락한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한 바위가 있다. 이목구비의 형태와 머리위의 투구 모양이 뚜렷하여 마치 월출산을 지켜주는 장군이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이 바위를 "큰 바위 얼굴" 이라 부르기도 한다. (안내판)
▼ 구정봉 아래에서 천황봉을 배경으로....
구정봉 장군바위 바로 아래에 베틀굴이 있다.
▼ 베틀굴
[베틀굴] 구정봉을 오르다 보면 맨 먼저 나타나는 곳이 입을 떡 벌린 형상을 하고 있는 베틀굴이다. 이 굴은 옛날 임진왜란때 이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곳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굴의 깊이는 10m쯤 되는데, 굴속에는 항상 음수가 고여 있어 음굴 또는 음혈이라 부르기도 하여 이는 굴 내부이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와 같은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 굴은 천황봉쪽에 있는 남근석을 향하고 있는데 이 기묘한 자연의 조화에 월출산의 신비를 더해주고 있다. (안내판)
베틀굴을 올라서면 구정봉이다. 구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좁은 바위틈을 통과해야 한다. 구정봉에서는 천황봉방향의 조망이 압권이다.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사통팔달의 조망은 가이 환상적이다.
▼ 구정봉에서 바라본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방향
▼ 구정봉에서 바라본 천황봉
구정봉은 30m 이상의 암반으로 그 넓이는 장정 50여 명이 앉을 수 있다. 직경 2∼3m 안팎의 웅덩이가 패여 물이 항상 괴어있으며, 이 웅덩이를 일러 정(井)이라 하고 이 정상의 암반을 신령암(神靈岩)이라고도 하며 삼동석(三動石) 이라고도 한다. 이 우물은 옛날 동차진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벼락을 맞아 죽을 때 생긴 것이라 전해온다.
[구정봉 전설] 동차진은 구림(鳩林)에 유배되어 내려와 살던 어느 장군의 유복자로 태어날 때 겨드랑이에 깃털을 달고 왔으며 백일이 되자 이가 났고. 세 살이 되자 맷돌을 번쩍들어 올렸다. 일곱 살 나던 해 어른들처럼 나뭇짐을 지고 다녀 "구림에서 장사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평범한 자식으로 기르고 싶었는데 어느 날 그의 집에 들른 노승의 말에 생각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사람이란 자고로 때를 만나야 하고 사람을 만나 기량을 닦지 못하면 비운에 빠지게 되는 것이오"라며 아들을 자기에게 맡기라 이르는 것이었다.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자식이 비뚤어진다는 말에 놀란 노모(老母)는 동차진을 노인에게 맡겼다. 동차진은 괴 노인을 따라 금강산(金剛山)에 들어가 10년 동안 도술을 익혔다.10년의 세월이 흘러 동차진은 그의 노모를 찾아 집으로 왔다. 동차진의 어머니는 자식의 능력을 실험하기 위해 자식에게 내기를 걸었다. "차진아, 그 동안 쌓은 네 능력을 보고 싶구나, 내가 밥을 지을 동안 너는 저 산봉우리에 올라 석성(石城)을 쌓아라.". 이 시합에서 노모가 이기자 차진이 억울해 하며 돌을 내던지고 깨뜨렸다. 이를 본 동차진의 어머니는 아들을 타일렀다. "듣거라, 항시 자만과 만용이 사람을 망치는 법이란다.". 이 무렵 북쪽 오랑캐들이 국경을 넘어 침공해 왔다. 이를 전해 들은 노모는 아들의 도술을 쓸 곳이 생겼다고 기뻐 나가 싸우도록 일렀다. "그까짓 오랑캐쯤은 내가 직접 나가지 않고도 섬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께 이르고 구정봉(九井峰)에 올라간 동차진은 한 동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략질하던 오랑캐들의 머리 위에 돌멩이가 수없이 쏟아져 몰살되었다. 이때 하늘에서 뇌성이 울리며 옥황상제의 노기 서린 외침이 울려왔다. "네 이 놈 동차진아! 네가 익힌 도술은 바르고 정정당당하게 쓰라는 것이었지, 오만 방자하게 쓰라는 것이 아니다. 네 놈의 하는 행실을 보아하니 인간을 규도 하는데 도술을 쓰기보다 네 공명심을 채우거나 만용을 부리는데 써 화를 부를 것인즉 살려둘 수 없다.". 벼락이 내려 아홉 번째에 때려 죽여버렸다. 이처럼 비참하게 죽고 만 동차진은 사람들이 이 봉(峰)에 올라올 때마다 세 번을 움직여 다시는 자신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응징하였으며 그 때문에 신령암(神靈岩) 삼동암(三動岩)이라 고도 부른다고 한다. (백과사전)
구정봉을 내려와 이제는 향로봉을 지나 도갑사로 하산할 예정이다.
▼ 구정봉에서 바라본 향로봉
구정봉에서 북쪽으로 약 0.5~0.6km를 가면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이 있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왕복 1km,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내일을 위하여 체력을 아끼기로 하였다. 마래여래좌상은 안내판을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 마래여래좌상 안내판
▼ 향로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구정봉(왼쪽)과 천황봉(맨뒤)
향로봉은 현재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등산로는 향로봉 아래를 돌아 도갑사 방향으로 이어진다.
▼ 향로봉 부근에서 바라본 구정봉과 천항봉
향로봉을 지나면 내리막 너덜길을 계속 걷게 된다. 도갑사까지는 약 4km의 거리다.
▼ 하산길에 올려다본 향로봉(오른쪽) 방향
너덜길과 숲길을 약 1km 정도 내려오면 미왕재, 억새밭이다. 멀리 남쪽으로 솟아오른 두륜산과 그 오른쪽으로 덕룡산 주작산 능선이 아련하다. 덕룡산, 주작산 능선은 높지는 않지만 암릉과 진달래가 어우러지면 한폭의 그림이 되는 곳이다. 작년 4월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회가 되면 덕룡산+주작산+두륜산 종주를 한번 해야 하는데....
▼ 억새밭 (미왕재)
[억새밭] 과거 숲이었던 이곳은 산불이 나면서 나무들이 불에 타고, 대신 벼과 식물인 억새가 들어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그래서 원래 지명인 미왕재와 더불어 "억새밭" 이라은 애칭을 가지고 되었다. 억새꽃이 활짝 핀 가을이면 은빛 물결로 흔들리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구름다리', '바위산' 등과 함게 월출산의 상징적인 명소가 되었다. 이 억새밭을 보호하기 위하여 출입차단 시설을 설치하고 식생복원조사를 실시중에 있다. (안내판)
▼ 억새밭에서 바라본 향로봉 방향
미왕재, 억새밭을 지나면 도갑사까지 약 2.7km는 숲길이다. 도갑사까지 등산로 주변에 동백나무가 제법 많지만 동백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벌써 처절하게 진것은 아닌지...
산아래로 내려올수록 진달래가 제철임을 알리고 있다.
▼ '도갑사 도선수미비' 도 지나고....
[도갑사 도선수미비] 이 석비는 1653년에 건립된 것으로 우선 규모면에서 다른 비석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각부의 양식에서 귀부는 다른 예와는 달리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비신 역시 조성재료가 대리석이라는 점 외에도 양 측면에 조각된 운룡문은 매우 힘찬 기상과 율동감을 지니고 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석비의 건립기간이 18년임을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 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나아가 대부분의 석비가 1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 비해 도선과 수미선사를 표방하고 있어 이 역시 독특한 예라 생각된다. 한편 건립연도가 동일함데도 불구하고 비문이 각각 독립된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찬자는 물론 쓴 사람과 각자가 사람이 모두 다른 것은 비문의 내용을 볼 때 석비를 다시 세우기로 계획하고 3년의 모금활동과 건립기간 18년을 포함한 21년간에 걸친 건림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2번째 비문에는 앞선 비문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으며, 석재의 채취로부터 이동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3번째 비문에서는 음기를 청탁받은 사실이 기록된 점으로 보아 석비의 건립과정에서 3개의 비문에 대한 준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판)
▼ 도갑사 전경
[월출산 도갑사]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도선국사(826~898)가 헌강왕 6년(880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며, 1999년 대웅전 뒤편 건물지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도갑사가 크게 번창한 때는 조선시대 초기이다. 이곳 영암 출신인 수미왕사가 1457년부터 1464년까지 (세조3~10년) 대대적으로 중창했는데, 당시 건물규모가 966칸에 달하는 대가람을 이루었고 소속된 암자가 12곳, 도갑사에 머무르며 수행하는 승려가 780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해 오다가 1597년 정유재란으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전란이후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여 17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그 뒤 영조52년(1776년)과 헌종 원년(1835년)에도 일부 중창이 있었다. 근래에 도갑사가 한국전쟁과 화재 등으로 많은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실시한 네차례 발굴조사에서 옛 가람 배치를 확인하고 복원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ㅎ)등 국가지정 문화재 5점과 도갑사 석조(유형문화제 제 150호) 등 전라남도 지정문화재 5점이 있다. 또한 전체가 전라남도 기념물 제3호인 월출한은 빼어난 산세와 절묘한 기암절벽, 아름다운 풍광으로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운다. 통일신라때는 "월나악(月奈岳)",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월출산으로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정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국보 제144호인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제1283호인 용암사지 3층석탑이 있고, 용추폭포, 구절폭포, 금릉경포대 등이 장관을 이룬다. (안내판)
▼ 도갑사 일주문과 매표소
▼ 탐방지원센터 부근에 있는 보호수 (팽나무, 높이 8m, 둘레 440cm, 수령 480년)
명불허전이다. 월출산의 비경을 구경하느라 산행시간이 여느때보다 많이 소요되었다.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곳이다. 도갑사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이용(요금 12000원)하여 산성대입구에 세워둔 차를 픽업하였다. 귀가길에 먼거리에서 바라본 월출산은 거대한 공룡의 갈퀴를 보는 듯하다.
▼ 영암로에서 바라본 월출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