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은총’은 노동의 대가로 요구하는 품삯이 아니라,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자비’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일꾼들, 품삯’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신앙생활을 ‘노동’으로, 또 은총을 ‘품삯’으로
생각하는 것을 꾸짖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노동이 아니고, 은총은 품삯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은총입니다.
그리고 ‘은총’은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4)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받고 평생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회개한 사람이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 같은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더 좋은 나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덜 좋은 나라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성당에 일찍 와서 잘 준비하고 미사 참례를 한 사람이
받아먹는 성체와 늦게 온 사람이 먹는 성체가 다를 수 없고,
일찍 왔다고 성체를 두 개씩 주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평생 마음껏 살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생각이고,
그런 진정성 없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미사 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밖에서 놀다가 영성체 때가
되어서야 성당에 들어와서는 성체를 받아먹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도 역시 어리석은 생각이고,
만일에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성체 모독죄를
짓는 일이 될 뿐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