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시집 속의 가을 시와 詩作 노트 |
호버링Hovering
김현주
식탁 위, 쓰다 버린 어설픈 시詩 같은
풋고추 네댓 개, 저게 홀로 붉어질 리 없는데*
풋것의 밤에 대해, 연두의 숨 가쁜 미래에 대해
이 편지를 보거든 내 꿈에 와 자세히 말 좀 해 보라고,
땡볕을 모아 불을 지르던 고추잠자리 한 마리 죽어
무덤으로 삼는 내 의식의 게토,
소리 없이 당도한 햇살 1g에도 연두는 연두를 다하고,
어디 새어나갈 빈틈이 있기나 한지 등을 살살 문질러 줄 때마다
부풀어,
터지려는 화농의 배꼽.
천지 분간 못 하는 난리통에 피고 지는 일이 어디 저 고추밭만의 일이겠냐
함께 한 방향으로 누워 어디 제대로 품이나 한번 헤아려 봤냐,
오래 누워 욕창이 번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
연애편지를 고쳐 조용히 비문碑文으로 읽는
저 매운 향기,
묏등에 소복이 내려앉은 온기를 혼신을 다해 만지듯
서정의 문장에 너라는 한 점을 간신히 착상시키고
혼자 떠 있다.
흐린 창밖.
속수무책의 당신은 지금 어디쯤의 비행일까,
* 장석주 「대추 한 알」 차용
詩作 노트
가을볕이 졸음처럼 고추밭에 내려앉는다. 갓 따온 식탁 위 매운 풋고추 네댓 개, 졸다가 깨다가 저 혼자 붉어지고 있다. 깊어지는 시간의 햇살로 광합성이 이루어진 것이지만, 청춘을 불 지르던 네가 홀연히 마침표를 찍은 마음 밭, 어디를 눌러도 독한 울음이 흘러나와 아무도 말리지 못한 한때, 내 자서自書 같은 가을빛 한 자락, 어디 새어나갈 빈틈이 있기나 한지 풋것은 어설프게 붉어지다가 시간의 흐름에는 장사가 없다 했던가, 고추잎마름병처럼 이제는 검버섯이 피고 만다. 눈을 감아도 타오르던 마음의 별채에 새소리가 날 때마다 눈물방울이 낙엽처럼 뚝뚝 진다. 헤어진 1분조차 안타까워하면서도 사후까지 깜빡이는 초신성처럼 만산홍엽의 전후로 나른해지는 허밍은 늘 ‘괜찮다’는 혼잣말, 가을밤은 그리움 속에서 그리움을 견디는 빈 무덤인가, 내 불온한 사랑은 그때 성장이 정지되어 퇴행성불구가 되었다. 단호한 못질로 돌아오지 않는 은하 저쪽, 검불처럼 굴러다니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여기까지만 따라오고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게 금줄을 친다. 풋풋한 연애편지를 고쳐 냉정한 비문으로 읽는 깊은 밤, 그대는 어디쯤의 비행일까, 청춘의 안부는 가뭇없다.
김현주 | 2007년 『시선』으로 등단. 시집 페르시안 석류 好好 해줄게 유채꽃광장의 증언 등. 2016년 숲속의 시인상, 2020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수상.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지원 및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다수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