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단1리 지역주민 간담회(17.11.14)
1)박효진 81세, 사곡리가 고향
처음에는 어려서 그대로 있었다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북으로 피난가라해서
근북 생창리넘어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인민군 주먹밥도 날라주었다
1.4후퇴시 평택까지 피난갔다 돌아왔다
51년 5월말에 춘천까지 왔다가 고향으로 들어와 국군2사단 만났다
★천불산 앞쪽에서 많이 죽었다. 지뢰도 많다
중공군이 앉은체로 죽기도 했더라
2)김창복 82세, 춘천이 고향이다
처음에는 피난도 못갔다
당시 군인은 너무 약했다, 춘천 모진교근처에서 전쟁전 표무원인가 대대가 월북하여 민심도 안좋았다
그러다 봉의산근처에서 포격이 심했다
서면 방동리 덕두원리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 국군이 올라오고 잠잠하더니 얼마있어 추운 겨울날인데 중공군이 왔다. 인민군도 함께왔다
이때도 피난 못가고 있는데 인민군이 와서 황소를 내놓으라 했다
집에서 할머니가 나서 가져가면 안된다고 하니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숯가마터에 숨고 내가 직접 몰고가기로 하고 황소 등에 인민군이 가져온 쌀을 실고 싸리재 고개를 넘어 멱골로 가져갔다
★그런데 산에 시신이 얼마나 죽어있는지 황소가 걷기를 주춤거렸다
쌀을 날라주고 다시 황소를 끌고 넘어왔다
황소가 길을 잃지않고 오더라
봄날에 피난갔다가 51년6월에 다시 들어왔다. 먹을 것이 없어서 깡통 줍고 미군쓰레기장 뒤져 먹을 것을 찾아야했다
폭격으로 다 타버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미40사단 탱크부대에 하우스보이로 들어가 1년간 근무하는데 금성천 넘어였다
국군6사단도 보았고 3사단도 보았다
나이가 어려 어느날 다 복귀하라해서 식당에 숨어서 연명하다 결국 나와야 하는데 3사단 헌병을 피하기 위해 어쩔수없이 손을 써서 부식차를 타기로 하고 된장통이 있는 틈사이로 숨었다
그러나 길이 워낙 엉터리라 된장통이 뒤집어져 온몸이 된장으로 물들어 춘천역 근처에 내렸는데 꼭 인분통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춘천역 앞은 지옥이었다
부상당한 군인들이 천막 수십동에 분산되어 고통을 호소하고 열차는 계속 왔다가며 부상자를 날랐다
얼마나 죽었는지는 모른다
휴전무렵은 휴전반대 데모를 옥산포 용산리에서 피켓들고 하는데 미군이 지나가며 총으로 공포를 쏜다, 미군은 휴전찬성이라고 소문이 돌았다~~?
3)장덕기 84세, 육단리가 고향이다
인민군따라 피난을 평강으로 갔다왔다
그러다 1.4후퇴시 국군을 따라 충청도까지 내려갔다가 완전 휴전되고 들어와 잘 모른다
4)정상옥 할머니 87세, 근북 자월리가 고향이다
1.4후퇴시 피난을 간다는 것이 도창리로 갔다
그래서 중공군과 같이 있었다
밤에는 방공호에 사람들이 있고 낮에는 중공군이 숨는다
중공군은 밤에 잠을 민간 가옥에서 잔다
51년 봄부터 미군정찰기가 나타나 방송을 했다. 피난가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중공군이 같이 중공으로 가자고 했다~?
방공호에 숨고 집에 있기도 하고 그러다 미군이 왔는데 모두 나오라 해서 죽는줄 알고 나왔더니 차에 태워 수원까지 왔다
나머지는 전쟁끝나고 다시 고향찾으러 올라오는데 별별 고생다했다
★말도 못한다, 별짓다하고 살아났다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육단1리 지역주민 간담회 내용
이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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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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