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학(漢學)을 천착한 80대 초반 선생님이 사무실에 같이 계신다. 나로선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시절 마지막 선비이자 대유(大儒)인 중재 김황(1896∼1978) 선생님 슬하에서 꼬박 10년을 공부하셨다 한다. 지금 이 시대에 ‘한작(漢作)’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분은 최근 돌아가신 벽사(碧史) 이우성 선생님말고는 이 선생님이 거의 유일할 듯하다. 고전 중에 가장 먼저 추천해줄 것이 어떤 책이냐고? 여쭙자 곧바로『논어(論語)』를 말씀하신다. 논어는 200번을 읽어도 부족하다면서 “인생독본, 그 자체”라 하신다. 그럴까? 왜 그럴까? 도무지 모르겠다. “논어가 그렇게 중요한 책이냐?”고 묻자 “논어 속의 수많은 공자님 말씀이 바로 인성교육의 시작이자 마침표이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최근 부산대 융합연구팀이 선생님의 말씀을 과학적으로 증명이라도 한 듯한 논문을 발표했다. "높은 수준의 한문교육이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울과 불안, 부적응과 고통을 줄이고 정서적 안정감이나 자아 존중감을 높이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 그것이다. 결론은 "논어 등 한문교육이 인성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는 것. 논어의 내용으로 풀어보자. "군자는 평온하지만 소인은 늘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고, 논어를 읽으면 성격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어떠하신가?
인성교육(人性敎育)이라? 인성이 무엇일까? 나는 한마디로 인성을 ‘싸가지’라고 말하겠다. 싸가지없는 놈(인성교육이 안된 놈)과 싸가지 있는 사람(인성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기본부터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그럼 싸가지는 무엇인가? 예의범절(禮儀凡節)이라고 하면 너무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냄새가 진동하는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제4차 산업혁명시대가 닥쳤다해도 인성, 싸가지, 예의범절은 여전히 존재의 빛을 발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예전 대가족 시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받아줄 재롱은 다 받아주면서도 ‘밥상머리 교육’을 시켰다. 그것이 사람 사는 도리, 인성교육, 이른바 조손교육(祖孫敎育)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언감생심(焉敢生心), 할아버지가 어디 있는가? 아버지하고도 하루 몇 분을 얘기하는가? 그저 교육을 ‘제도권 학교’에 맡기고 있다. 교육은 ‘가정교육(家庭敎育)’이 먼저야 하거늘, 이것이 무너진 지 오래이다. 그렇다고 제도권 교육이 제대로 작동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물어보아도 알 것이다. 우리는 ‘인성교육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책임이 아닐까? 그 대안(代案)이 고전에 있으며, 그 고전의 바탕이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이므로, 한자와 한문을 어느 정도는 익혀야 한다는 게 이 졸문칼럼의 요지(要旨)이다. 왜 그러한가?
우리나라 한문고전만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기관이 1965년 당대의 내로라하는 사계(斯界) 석학 50인이 만든 ‘민족문화추진회(민추)’였다. 그들은 1974년부터 ‘국역연수원’에서 한문 전문번역가들을 양성해냈다. 직장을 작파하고 학습부 1기를 마치고 전문부까지 내처 7년여를 공부한 후 ‘민추’에서 20여년간 청춘을 불사른 분이 현재 공공기관으로 환골탈태한 ‘한국고전번역원’ 제4대 원장인 신승운 성균관대 명예교수이다. 그분이 한 일간지 학술기자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한자와 한문을 익히면 사는 데 자신감이 붙고 공부를 하는데 아주 똑똑해진다”고. 자신감이 붙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더구나 똑똑해지기까지 한다고?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한자와 한문을 초중고 대학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선택과목으로 명목만 유지할 뿐.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인성교육도 저절로 되고 사는 데 자신감도 붙고, 게다가 똑똑해진다는데, 왜 한자와 한문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무슨 나라라도 망할 것처럼 ‘한글전용론자’들은 떠들어대는 것일까? 뭐, 사교육시장이 판을 치고 우리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진다고? 과연 그러할까?
10여년 전에 한 대학 한문교육학과 교수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자기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고? 부모님 성함을 한자로 써보라고? 놀랍게도 자기 이름을 겨우 상형문자 쓰듯 그렸는가하면, 70%는 부모 성함을 쓰지 못했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경제학박사가 되어 돌아온 신진 교수가 ‘경제’를 한자로 ‘經濟’라고 판서(板書)하지 못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횡행하기도 했다. 설문조사를 한 교수는 결론을 이렇게 맺었다. “오랫동안 경험학상 한문은 아니더라도 한자를 많이 알면 수학력(修學力)이 훨씬 향상되더라”고. 이유인즉슨, 간단하다. 우리말의 60∼70%가 한자어(漢字語)에서 유래되었지 않은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장난’이라고 쓰지만 어원은 ‘작랸(作亂)’에서 온 것이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기초한자는 어릴 적부터 누구라도 무조건 배워야 한다. 친히 아는 한 교수는 오로지 초등학생들을 위하여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을 10년도 넘게 걸려 만들었다. 2만 5천여자가 된다던가. 어른들도 볼만한 사전이다. 또 예를 들어보자. ‘포물선’이라는 수학용어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훈음과 독음을 알면 이해가 훨씬 쉽다. ‘던질 포(抛) 물건 물(物) 줄 선(線)’ 물건을 던질 때 생기는 선이라고 설명해 보라. 아하, 고개를 금세 끄덕거리지 않겠는가. 수학능력(修學能力)이 향상된다는 것은 모든 단어에 대해 이해가 쉬워질 것이므로 당연한 얘기가 아닐까. 똑똑해지면 자신감이 생길 것은 불문가지.
<논어>를 보자. 이른바 ‘사물론(四勿論)’이 있다. 예(禮)가 아니면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가지도 말라는 것이다(非禮勿聽 非禮勿視 非禮勿言 非禮勿動). 논어처럼 좋은 말투성이 책이 있을까? 효제(孝弟), 충효(忠孝), 극기복례(克己復禮),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교언영색(巧言令色) 등, 모두 살면서 교훈(敎訓)이 될만한 것들을, 공자님은 하나하나 비유를 들어 우둔한 제자들을 가르쳤다. 동양의 고전은 <논어>에서부터 시작되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인성교육의 교과서’로써 사람 사는 도리를 설파했다. <소학(小學)>은 또 어떤가? 어릴 적(4∼5세) 한자를 배우면 습득이 빠르고 평생 간다고 한다. 디테일한 행동강령이 모두 적혀 있다. 출필곡반필면(出必告反必面), 이것 하나만 봐도 처신의 기준이 되지 않겠는가.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팔반가(八反歌)’는 또 어떤가? 그 옛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리얼하게 불효(不孝)의 종류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명기(明記)했을까? 놀랍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옛사람들의 그림자도 밟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한자와 한문을 가르쳐야 하고, 그들은 배워야 한다. 나는 한글을 사랑한다. 세종대왕을 존경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순우리말로 쉽게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며, 사실 우리말에 대한 지식도 여느 사람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세종대왕께 여쭤볼 수가 없어 그렇지만, 틀림없이 한자를 전혀 쓰지 않고 모든 글을 한글로만 쓰라고 한글을 창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300자든, 1000자든, 기본한자(基本漢字)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병기(倂記)를 한다니까, 온 나라가 망하기나 할 듯이 여기저기서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인양 들고 일어난다. 그거야말로 나라가 망할 일같아, 나는 오직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는 것같아 안타깝다. 한자사랑이 곧 한글사랑인 것을 왜 모를까? 자신감이 붙어 공부도 잘 되고 성적도 쑥쑥 올라간다는데, 어디 그뿐인가? 싸가지가 있는, 예의바른, 인성교육이 제대로 된 청소년으로 자라는 지름길이 여기 있다는데, 왜 그렇게 반대를 하는 걸까? 백 번 말해도 그들의 반대논리가 마냥 궁색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첫댓글 MB 정부 등에서 비리 3종세트(병력회피,탈세,투기)를 두루 갖춰야만 장관이 되는 나라에서....
김기춘, 우병우같이 싸가지 없는 사람이 실권을 쥐고 나라를 흔드는 사회에서....
국민들이 사회에 나가서 배운대로 실천할려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유도리 없는 사람으로 '그들이' 비웃는 사회에서....
학교에서는 독립운동이 정의라고 가르치지만, 사회에 나오면 친일파적 가치로 살아야 능력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교육만 가지고 되겠어? ㅎ
우병우 아들이 학교에서 잘 가르친다고 싸가지가 있어질까? ㅎ
인성좋은 사람이 출세도 하고, 나라도 다스리는 사회가 앞으로도 지속되면 국민들은 자연히 따라가지 않을까?
한자는 뜻글자라 이치가 숨어 있기는 하지 배워 두면 좋지 어려워서 탈이지만
포물선은 물리시간에 다르게 표현하는데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