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삼상 2:11-17)
1.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샤라트)
샤라트는 (제사장으로서) 섬기다, 경배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대제사장 엘리 앞에서 제사장으로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긴 것이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도 제사장으로 섬긴 것이다.
2.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벨리얄)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로 야다)
벨리얄은 “약한, 보잘 것 없는, 불경건한”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고린도후서 6장 14-15절『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알지못한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로(부정) 야다(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다라고 번역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의미는 연합을 의미하며,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이다. 신도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부활생명이 없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는 자가 벨리얄이며, 어둠에 있는 자라는 말이다. 하늘의 부활생명이 현재 없는 자가 그렇다는 말이다. 장차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자도 현재는 어둠에 있는 자가 된다. 지금 현재가 중요한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홈니와 비느하스)은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못했다(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날마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온갖 충성을 다바쳐서 교회를 섬기지만,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엘리의 두 아들과 같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3-4.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미쉬파트)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미쉬파트는 율례, 관습을 의미한다.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변질된 율법을 의미한다. 모세의 율법(레위기)에 의하면 기름은 번제단에서 태워야 한다. 레위기 7장 31-33절에서『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또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아론의 자손 중에서 화목제물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는 그 오른쪽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니라』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상징하고, 가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을 상징한다.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참여하여 연합되고, 살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 연합되는 것이다.
특히 기름 부분에 대해서는 레위기 3장 3-4절에서 설명한다. 『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내장에 붙은 기름과 콩팥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다. 창세기 4장 4절에서『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레위기 3장 16절에서『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그래서 불살라라는 것이다. 불타는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살고기에 붙어있는 기름은 식용으로 허용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화목제물로 하나가 된 자에게는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다.
거제(트루마)는 제물을 높이 들고 아래로 내리는 방법의 제사다. 화목제와 땅의 첫 소산물,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다시 받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드릴 때는 자기를 드리는 것이다. 자기라는 존재가 멸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라는 존재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혼인 것이다. 그래서 그 혼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시 돌려 받는 것은 새생명인 영의 몸을 돌려 받는다. 이게 부활인 것이다.
제물의 가슴은 일반 제사장들의 몫인 반면 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를 드린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 제사를 드린 제사장은 바로 십자가의 예수를 상징한다. 가슴으로 번역된 케레브는 주시하다, 감지하다, 숙고하다, 예언하다 라는 하자흐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오른쪽 뒷다리로 번역된 쇼크(שֹׁ֣וק)는 ‘…을 뒤쫓다’또는 넘치다, ‘넘쳐 흐르다’ 적시다 라는 슈크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돌려받는 것은 하늘의 생명이다. 하늘의 생명은 영원히 넘쳐 흐르는 생명수가 된다. 오른쪽은 생명으로 나아가는 자의 모습이다. 반대로 왼쪽은 생명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자의 상징이다. 양은 오른쪽, 염소는 왼쪽에 두었다고 말을 한다.
피와 기름은 죄를 상징하며, 하나님께 죄의 근원을 태워 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반복되는 말을 하는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하시는 것이다.
엘리의 두 아들들은 율법에서 정해진 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의 전통에 따라서 이렇게 제물을 세 갈고리를 이용하여 마음대로 취한 것이다. 제사에는 관심없고, 제물에만 관심있는 탐욕스러운 제사장들이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해셨는데, 이들은 율례를 만들어, 제물을 취하므로 죄를 깨닫기는 커녕 탐욕의 모습만 드러낸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고 재물을 갈취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십일조가 될 것이다. 율법에서 정해졌지만, 오늘날에도 십일조를 철저히 해야만 복을 받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바로 그들만의 전통이고 율례가 된다.
5.(감)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감이라는 히브리어는 영어로 also(게다가)라는 강조 단어이다. 번역이 빠져 있다. 앞의 부정한 짓에 연결된다. 율법에 의하면 기름을 태운 후에 자기 몫을 가져가야 하는데, 기름을 태우기 전에 가져간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몫을 가져가는 짓을 하는 것이다. 제물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배의 변질이다.
기름을 태우기 전에 고기를 가져가는 행위는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없는 기복신앙을 표현해준다. 성령이 없는 예배는 헛 예배인 것이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영(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것을 말씀하신다. 예배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의 감동 안에 들어가는 것이 예배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드리는(태워지는) 것이다. 자기를 드리는 의미는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6-7.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민하)를 멸시함이었더라.
그 사람은 엘리의 아들보다 더 믿음이 좋은 것 같다. 그 사람은 기름을 태우는 의미를 안 것이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은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제물에만 관심이 있어서, 고기를 태우기 전에 가져가는 모습을 본다. 오늘날에도 예배보다 제물에 더 관심이 있는 자들은 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민하”는 선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선물이 주어진다. 이 선물을 멸시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에게 하나님이 부활 생명을 선물로 주신다. 그런데, 신도들은 지금 당장 받지 많고 죽은 후에 받겠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이 없는 자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사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배의 의미를 모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