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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7일 동강 할미꽃 야생화 탐방
고인돌, 사니조은, 일초와
산행코스 : 문희마을 – 성터 - 칠족령 전망대 – 제장마을 – 바세마을 – 소사나루 – 연포마을(거북이마을) – 하늘벽 유리다리 – 칠족령 – 문희마을
산행거리 : 약 13.8 Km
산행시간 : 약 8 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939662
거리 16.9 km
소요 시간 8h 37m 8s
이동 시간 7h 10m 19s
휴식 시간 1h 26m 49s
평균 속도 2.4 km/h
최고점 494 m
총 획득고도 575 m
난이도 보통
동강할미꽃
양산박
강원도 산골짝 동강변 바위틈에
할미꽃이 해마다 핀다는거야
옛날에는 흔하디 흔한게 할미꽃이었쟎아
할미꽃 생각나니? 흰 털 보송보송 나 있고
할머니 허리처럼 등이 둥글게 굽어져 있고
검붉은 입술로 숨을 헐떡거리는
난 그 모습을 상상하며 동강을 찾았어
근데 동강할미꽃은 옛날 할머니가 아니야
아주 아주 세련된 모습이었어
허리도 꼿꼿하고 옷도 보라색이야
금니를 드러내며 웃을 땐
귀티가 절절 흐르는거 있지
서양 할미꽃인줄 알았어
근데 이 꽃은 동강 주변에서만 자란다는 거야
그래서 동강할미꽃이라 부른데
프로로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환경변화
매일 새로운 소식이다. 확진자 수가 하루에 500명 ~ 800 명씩 늘어난다. 3월 7일 현재 확진자 수는 7천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가 50명에 이른다. 정부는 바이러스 예방에 사활을 걸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4월 15일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가량 앞두고 국민들의 민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눈물겹도록 가상하다. 세월호에 대한 잘못된 대처가 기폭제가 되고 뒤 이은 최 순실 농단으로 인해 몰락한 지난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금처럼 진보와 보수의 힘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는 원칙만 내세워 어떤 일을 도모하기에는 불안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확진자 수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중국 다음으로 많지만 이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생겨난 예외적인 환경을 탓해도 될 법하다.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이하 신천지)의 신도들이 집단예배를 통해 서로 감염되고 감염시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아직 최초로 우한에서 대구 또는 청도의 신천지 예배당에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밝혀진 것은 없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신천지 우한 교회에서 감염자가 들어와서 대구의 예배당에서 대거 퍼뜨린 것 같다.
현재 전체 확진자 중에서 대구 경북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거의 90 %를 차지하는 것은 신천지 교인들의 은밀한 예배방식과 적극적인 전도활동 그리고 자신의 신분 뿐만 아니라 감염 또는 예배 참석 등을 은폐하는 습성이 초래한 상황이다. 이런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들끓는 분노에 부담을 느꼈던지 이 때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던 신천지 이 만희 교주는 기자회견 형식을 빌어 국민들께 사과하고 코로나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으로 120 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봄날의 들불처럼 번지는 코로나 바이러스 현상에 편승하여 야권에서는 정부시책에 협조하는 대신 정부의 실책을 끄집어 내어 국민들을 이간질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감염사태가 확산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는데 보수 야권에서는 마스크 공급량을 미리 확보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질책만 퍼붓는다. 이런 장단에 언론은 칼 춤을 추고 국민들은 마스크를 구하러 우체국 앞에서 또는 약국 앞에서 밤샘 장사진을 치는 등 일리아드의 오딧세이를 방불케 한다. 정부는 그런 상황변화에 비틀거린다. 급기야 약국에서 1 주일에 1인 2매를 요일별로 살 수 있다는 오부제를 내 놓았다. 우선 심리적인 안정이라도 꾀해보려는 궁여지책이다.
지난 1월 초부터 아니 그 이전인 작년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건데 이런 상황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 중국에는 확진자 수가 줄어들어 진정국면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보도는 신뢰성이 없다. 국가에 의해 통제된 언론이 내 놓고 있는 데이터는 조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엄정하게 완전 공개된 자료를 내 놓고 있다. 그 자료를 보면 확진자 수의 증가폭이 분명히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역학조사를 통해 감염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최근에 나온 감염자들은 어디서 누구에게서 전염되었는지 알 수 없는 소위 사회 감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이제까지 감염자가 100 명 아래로 미미한 숫자를 보이던 유럽국가에서 폭발적으로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동의 이란과 유럽의 이태리는 화약고에 불이 붙은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의 중간 거점으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국민만평에서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바이러스 COVI 19)는 치료제도 예방백신도 없다. 병에 감염되면 14일의 잠복기 안에 그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니 예방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이 바이러스는 쉽게 전 세계에 퍼져 나갈 것이다. 따뜻한 봄날 들 불이 번지면 모두 달려들어 꺼보려 하지만 그 불은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봄날의 들 불과 흡사하다. 다 잡았다 생각하면 또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불길이 되어 다시 타오를 지 모른다.
산행기
코로나가 국내 경기를 덥썩 물어 버렸다. 가뜩이나 힘이 없어 빌빌대던 경제의 목덜미를 꽉 깨물어 버린 것이다. 대학교 개학이 연기되고 초.중.고교 방학이 연장되었다. 대부분 교회나 성당 그리고 불교 사원에서 주말에 하던 예배를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업부 직원들이 회사에 나오는 대신 재택근무형태로 일을 한다. 셰계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국을 통제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현재 100 개 국가에서는 한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입국을 막거나 도착한 날로부터 14일간 격리시킨다. 이로 인해 여행사, 항공사의 매출이 곤두박질 치고 공장에서는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 공급이 부족하여 조업중단 사태가 일어난다. 시중에는 생필품이 부족하여 생활비가 오르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생산원가에 반영되어 경제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연속 2 주째 낙동정맥 산행이 취소되었다. 대부분 집에 머물면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자중하라 하지만 내게는 천금처럼 귀한 주말 시간을 허투로 낭비하고 싶지 않다. 마치 다음달에 세상의 종말이라도 올 것처럼, 마치 다음달에 생을 마감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살아서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순간이라도 더 움직이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다.
아직 눈이 남아 있는 강원도 선자령에 갈까, 매화꽃이 만발했다는 경상남도 백운산 쫏비산에 갈까 하다가 고인돌 형님의 제안으로 평창 정선의 동강 할미꽃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제까지 소문으로만 들었던 동강 할미꽃을 직접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남쪽에는 이른 봄꽃들이 밴드와 블로그 등에 올라오지만 할미꽃이 피려면 적어도 한 달가량은 더 있어야 한다. 스스로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밴드에 동강 할미꽃 소식이 올라왔다. 바위틈에 피어난 진한 보랏빛 꽃은 할미꽃을 닮았으나 할미꽃이 아니다. 즉, 사이비(似而非) 할미꽃이다. 언젠가 동네 할머니들이 바위틈에 할미꽃을 심는 것을 보았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던 터라 사실 동강 할미꽃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봄철만 되면 꽃쟁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동강 할미꽃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작년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찾아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낙동정맥 산행이 취소된 것을 기화로 남쪽대신 동쪽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아침 6시 30분 복정역에서 만나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제2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탔다. 아침 기온이 선선하다. 우수(2월 19일)이 지나고 경칩(3월 5일)도 갓 지난 날씨는 따뜻하다. 겨울답지 않았던 겨울이었으니 봄이 왔어도 그다지 반갑지 않은 듯 시큰둥해진다. 그래도 정말 계절의 변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꽃이 증명해준다.
광주 휴게소를 지날 때 동쪽 하늘이 밝아지면서 먼동이 터온다. 지난 주 오대산 비로봉을 내려오면서 하대감과 조만간 비로봉에서 아침 해돋이도 맞이해 보자고 한 말을 상기시킨다. 저처럼 구름이 살짝 흩어져 구르는 그 사이로 해가 올라온다면 산정에서 맞이하는 광경은 황홀하기 그지없겠다.
광주 휴게소에서 만난 아침 해돋이
황소 모양의 조형물이 멋진 횡성 새말 나들목을 빠져나가 국도를 달린다. 목적지는 평창군 문희마을이다. 이제까지 여러 번 동강을 가봤다는 고인돌 형님이 오늘 우리 꽃탐방의 인솔자이다. 원래 고속도로를 더 달려서 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으로 나가는 것이 정석이라는데 고인돌 형님이 침묵하는 동안 내비님께서 새말 나들목으로 안내를 해준 것이다. 어쩌면 횡성군 안흥면을 지나면서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흥찐빵을 사 먹고 가라는 계시에 따라서 움직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는 길목마다 안흥찐빵집이 즐비하다.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내 차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찐빵집 앞에 스르르 멈춰 섰다. 한 박스에 12,000 원. 빵을 박스에 담는 동안 맛을 보라며 김이 나는 찐빵 하나를 건네 준다. 쫄깃한 빵 속에 질척거리지 않는 팥 고물이 가득 들어 있다. 안흥찐빵 맛은 변함이 없다. 아니, 조금 더 발전한 것 같다. 처음에는 흰색 빵만 있었는데 지금은 보라색, 노란색 등 가짓 수가 조금 늘어났다. 집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왔는데도 빵 다섯 개가 거침없이 빨려 들어간다.
문희마을
평창군 소재지를 지나 미탄면 소재지를 우회하여 달리다 좁은 2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송어횟집이 듬성듬성 보이는 기화리를 지나면서 동강이 가까워짐을 짐작한다. 그리고 더욱 좁아진 길 모퉁이를 돌자 눈 앞이 시원하게 트이며 넓은 강줄기가 흐르는 모습이 나타난다. 동강(東江)이다.
내가 동강을 처음 본 것은 10 년도 더 된 일이다. 윤이가 다니는 회사에서 시행한 동강 래프팅 행사에 게스트로 참여했었다. 가뭄 탓에 물이 적어 보트를 밀기도 하면서 약 2 ~ 3 킬로미터 정도 래프팅을 탔던 기억이 난다.
“저기 물 위에 새 두 마리 보이지?” 고인돌 형님이 강 건너편 물가를 가리키며 우리의 시선을 던진다. 물 위에는 작은 점처럼 하얀 새가 떠 다닌다.
“저게 동강 ‘비오리’여.” 꽃을 보러 왔는데 고인돌 형님 눈에 처음으로 띈 것은 강 위를 유영하는 오리였다. 우리는 고인돌 형님의 손가락 끝을 좇아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점을 따라갔다.
“원래 겨울 철새인데 우리나라 환경에 적응하여 자리를 잡았대.” 비오리가 낮게 강 위를 날아간다.
동강
나는 좁은 길 모퉁이에 차를 잠시 세우고 강 윗쪽 아랫쪽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백운산 산행 들머리에 이런 멋진 강이 있을 줄 몰랐었다.
길 가 바위 옆에 아담한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안돌바위 유래’ 라는 제목의 비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옛날 뗏목꾼이 급물결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아내는 남편을 구하겠다며 사고현장으로 가는 중에 이 바위를 지나야 했다. 발 아래는 소용돌이 치는 동강의 물결인데 이 바위를 안고 돌아가다가 황망한 마음에 그만 발을 헛디뎌 아내마저 물살에 쓸려 결국 죽고 말았다. 애틋한 부부의 죽음을 안타까와 하는 마을 주민들은 그 아내의 죽음을 초래한 바위를 안고 돌아가는 바위라는 뜻에서 안돌바위라 부르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 곳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언제적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은 조앤 바에즈가 부른 솔 숲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A River in the pines)’라는 노래 가사와 비슷하다.
안돌바위 유래
안돌바위를 지나 강을 따라 조금 더 가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문희마을이라 한다. 우리는 마을 입구를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동강 할미꽃 촬영대회 행사를 하고 있다. 행사 주최측에서는 손 세정제까지 준비하며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었다.
고인돌 형님의 안내로 강을 따라 큰 갯바위가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을 따라가 본다. 아직은 겨울 추위에서 갓 벗어나 솜털을 뒤집어쓰고도 떨고 있는 할미꽃을 보았다. 이미 여러 번 사진에서 보았기에 그게 할미꽃인줄 알지 색깔이나 모양은 내가 알고 있는 할미꽃과 많이 다르다. 꼬부랑 할머니 할미꽃은 무엇보다도 등이 활처럼 휘어져 있는데 동강할미꽃은 꽃대가 잘 보이지도 않을 만치 짧고 꽃은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 있다. 꽃 모양도 백합꽃만큼이나 크고 모양도 나팔같이 생겼다. 색깔도 자주색이라기 보다는 푸른색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아직 덜 피었다. 아마 1 ~ 2주는 더 있어야 활짝 피어날 것 같다.
돌단풍
동강고랭이
할미꽃을 찾아서
구석 구석 할미꽃이 막 피어나고 있다.
여기저기 큰 바위 갈라진 틈새에 묵은 풀줄기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뿌리에서는 새로운 꽃 싹이 나왔다. 그리고 동강고랭이와 돌단풍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강가 바람이 불지 않고 햇볕이 늘 비치는 양지쪽이라서 다른 곳에 비해 계절이 한 박자 빠른가 보다.
할미꽃 군락지 윗쪽 벼랑에는 지붕이 덮인 긴 회랑이 이어져 있다. 천연기념물 260호인 백룡동굴 입구로 가는 길이라 한다. 백룡동굴은 길이 1.6 km 정도 되는 석회암 동굴인데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임시 휴관중이라 한다.
백룡동굴로 들어가는 회랑
회양목 - 강원도 영월, 태백, 삼척 및 북한의 회양 등 석회암 지대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칠족령
오전 10시 할미꽃 탐방을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다. 고인돌 형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산 허리를 따라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길 가에 나 있는 나뭇가지에 맺힌 꽃봉오리를 가리키며 분꽃나무를 알려준다. 작년 5월에 영월 장릉에서 만난 꽃이다. 이렇게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나뭇가지가 갑자기 귀한 꽃나무로 변신한다. 다른 나뭇가지에는 작년에 맺었던 열매꼬투리가 검은 색으로 마른 채 아직도 달려있다.
큰구슬붕이
거미고사리
성터 부근에 쌓은 돌탑
새벽에는 서늘하여 속에 조끼를 껴입고 가라 한 윤이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뻔했는데 산길을 걸어 오르다 보니 머리부터 땀이 삐질삐질 솟아나는데 겉옷을 벗을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게으른 주인을 만나면 몸이 고생한다. 옷을 벗는 것이 귀챦아 산행 내내 땀을 흘리며 다녔다.
문희마을에서 제장마을로 넘어가는 등너미 길 양쪽에 작은 돌탑이 서 있다. 예전 고구려와 신라군이 대치할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 한다.
분꽃나무
분꽃나무 열매
제장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수 백년은 됨직한 신갈나무가 서 있다. 그 나무 곁에는 ‘칠족령(漆足嶺)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이름의 유래를 적어놓은 팻말이 있다. 여기서는 개가 주인공이다. 옛날 옛날 제장마을에 옻칠을 해서 먹고 사는 선비 집에 누렁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개는 밤만 되면 집을 나갔다가 새벽이슬이 내리면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그런 일이 반복되니 선비는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알아보려고 개 집 앞에 칠하다 만 옻을 발라 놓았다. 다음날 낮에 그 개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보니 이 칠족령이 있는 고갯마루로 이어져 있었다. 누렁이는 매일 밤 이 곳에서 고개 너머에 있는 무희마을에 살고 있는 암캐(개의 이름이 무늬였다)와 만나 정분을 나누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그 제장마을의 누렁이와 문희마을의 무늬의 애틋한 사랑을 가상히 여겨 이 고개 이름을 칠족령이라 불렀다 한다. 얼핏 들으면 그냥 개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에서 개 대신 그냥 머슴(예를 들어 돌돌이)을 넣고 무늬라는 암캐 대신 문희마을의 부잣집 하녀(석순이)라고 하면 어떨까? 혹시 무늬는 대갓집 규수는 아니었을까? 어쨌든 옻칠하는 선비집의 누렁이의 연애소설이 재미있다.
칠족령
칠족령에 자리잡은 늙은 신갈나무
칠족령 전망대에서 - 산 아래에 제장마을 그 강 건너에 바세마을 그리고 멀리 소사나루에서 다리를 건너 거북이마을로 간다.
“저 아래 강 옆에 저기가 할미꽃 군락지여” 이 곳에 여러 번 다녀가신 고인돌 형님의 발 아래 강을 가리킨다.
“저 능선을 따라가면 하늘벽 유리다리가 있고 그 근처에 노루귀꽃이 조금 있어” 노루귀라는 말에 내 귀가 쫑긋댄다. 올 해 아직 보지 못한 노루귀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앞선다.
“그런데 아직 안피었을꺼야.” 쫑긋대던 귀가 제풀에 숨을 죽인다.
“우리는 오늘 저기로 내려가서 강을 따라 가면서 할미꽃 군락지도 보고 다시 저기 저 능선을 올라갔다가 내려가서 다시 저기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올라오면 어떨까?” 난 그러고 나서 백운산을 거쳐 내려가는 줄 알았다. 만만치 않은 거리인데 하면서도 오늘은 무작정 고인돌 형님의 뒤꿈치를 따라가기로 했다.
제장마을로 내려가는 산길은 급경사다. 얼기설기 매어 놓은 안전로프를 집고 신중하게 내려간다. 제장마을에서 올라온다면 땀 꽤나 흘리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이 길을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혼자서 왔다는데 길을 잘 몰라서 이 길을 택했다 한다.
“여기 이것 좀 봐.”마을로 내려서기 전 이정표 주위에는 매끄러운 강돌이 많이 흩어져 있다.
“어떻게 강에 있어야 할 돌들이 여기에 이렇게 많이 있을까?” 고인돌 형님은 이 지역이 옛날에는 강바닥이었는데 땅이 솟아올라 이처럼 높아진 것이라 추측한다.
제장(堤場)이라는 한자를 해석하면 이 곳에 저수지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지나친 억측일까? 혹시 마을 윗쪽에 둑을 쌓아서 강줄기를 인위적으로 돌린 것은 아닐까?
길 가에 꼬리진달래 나무가 많이 보인다. 월악산에서 많이 보았고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태백산 윗쪽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제장마을 뒷산에서 우연히 만나니 반갑다.
꼬리진달래 열매
마을로 내려가기 전 아직 산 위인데 둥근 강돌이 산재해 있다.
제장마을 산 아래에는 사과 과수원이 있고 우리는 과수원을 지나 강변으로 내려선다. 고운 모래펄 오른쪽 강둑에는 큰 나무가 줄 지어 서 있다. 마치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축축 늘어져 있어 당연히 버드나무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가니 가지에 진한 자주색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비슬나무(또는 비술나무)다. 처음 보는 나무가 신기한데 주변을 둘러보니 강가에 크고 작은 나무가 수두록하다.
비슬나무 - 느릅나무과 느릅나무속 나무다.
비슬나무 - 멀리서 보면 꼭 버드나무 같다.
제장마을과 강 사이에 널찍한 자갈밭이 있는데 아주 큰 물이 나면 가끔씩 범람하는 곳인 듯 이 곳에도 비슬나무가 많이 자란다. 그리고 자갈밭에는 할미꽃이 아주 넓게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 형님은 이 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할미꽃 군락지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정말 여기저기 굵은 돌무더기에 할미꽃 마른 풀줄기가 수북이 덮여 있고 그 아래에는 새로 솜털을 뒤집어 쓴 할미꽃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제장마을 앞 동강
동강 자갈밭에 널려 있는 할미꽃 군락지
제장마을 주민들은 산 아래 밭에 농사도 짓고 팬션을 운영하면서 살고 있는 듯하다. 마을 앞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데 길 가 양지쪽에 광대나물과 꽃마리 그리고 꽃다지가 이쁘게 올라왔다.
광대나물
꽃다지
꽃마리
제장마을 끝에 있는 다리를 건너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오른쪽 산비탈로 오른다. 비탈 오른쪽은 깍아 지른 동강 강안이고 산길은 강안에서 벗어나 왼쪽 숲속으로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와 뒤돌아본 제장마을
“이게 뭐지요?” 길 가 습진 곳에 작은 풀 하나를 가리키며 일초님이 걸음을 멈춘다.
“거미고사리 아닐까요?”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생각나는 것을 말한다.
“아니요. 거미고사리하고 달라요” 연구하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나중에 산행을 마칠 때쯤 만난 고인돌 형님의 지인에게 물어서 그게 한국사철란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철란은 주로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자라지만 한국사철란은 중부이북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이름을 알고 나면 그냥 풀이 꽃으로 변한다. 똑 같은 풀인데도 말이다.
한국사철란
능선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는데 그 곳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있었다. 도로 옆에는 어느 가족 묘지인지 봉분이 큰 무덤이 여러 개 늘어서 있다. 우리는 도로가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벌써 오후 1시가 넘었으니 벌써 점심 때를 넘긴 것이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바세마을로 내려간다. 길 가에 함석으로 만든 당집이 있다. 바세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양쪽에는 소나무 숲 사이로 흐른다. 승용차가 자주 지나가는 도로 옆 소나무 숲을 파헤치고 새로 집을 짓는 곳이 더러 보인다. 바세마을을 지나 소사나루 마을에는 교회도 보인다.
당집에는 근래 제사를 지낸 듯 하리보 구미베어와 막걸리 빈 병이 많이 있다.
바세마을로 내려가는 솔밭길
하늘벽 유리다리
소사나루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거북이마을(연포)로 들어선다. 옛날에는 담배농사도 지었던지 다 무너져가는 건조장도 보인다. 하늘벽 유리다리로 향하는 길 모퉁이를 돌자 마당이 넓은 파란색 지붕을 한 건물이 눈에 띈다. 지금은 캠핑장으로 쓰고 있는 폐교된 연풍분교다.
북이마을 - 오래된 담배 건조장이 옛 향수를 불러온다.
폐교된 연풍분교 - 지금은 캠핑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거북이마을을 지나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산길로 접어든다. 올괴불나무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른 봄 다른 나무들은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시기에 연분홍색 꽃으로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다. 내가 처음 운길산에서 이 꽃을 보았을 때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뒤로는 해마다 이른 봄 산행할 때 은근히 기대되는 꽃이다.
올괴불나무 - 봄의 전령사들이 모두 출동했다.
술길에서는 간간이 오른쪽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터지는 길을 걷는다. 하늘벽 유리다리 탐방길로거북이마을에서 장제마을까지 이어진다. 눈에 익은 것 같으면서도 낯선 나무가 눈에 띈다. 줄기는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굵으면서 세로로 굴곡이 져 있고 새 가지에는 잎 봉오리가 마주나기로 달려 있다. 작년에 맺었던 열매 흔적인 듯 마른 꼬투리 조각이 달려있다. 이 것도 나중에 만난 고인돌 형님 지인께서 알려주는데 털댕강나무라 한다. 원예종으로 가꾸는 꽃댕강나무는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야생으로 자라는 댕강나무는 처음 본다. 인동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경북지역 이북 황해도 함경도 만주 등에 서식하며 5월에 꽃이 피고 9월에 수과(瘦果) 열매가 익는다 한다.
털댕강나무 마른 열매
털댕강나무 줄기
한참 앞서가던 고인돌 형님이 하늘벽 유리다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2009년에 만든 이 다리는 좁은 굴곡길을 이어준다. 만일 이 다리가 없다면 위험한 벼랑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기어올라야 할 것 같다. 바닥은 강한 유리로 되어 있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으나 오랜 세월 산꾼들의 발길에 거칠어지고 흙이 묻어 있는 유리판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다. 다만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강의 절벽과 바세마을 전경이 무척 아름답다.
하늘벽 유리다리
꽃을 찾아 가는 길은 멀고 험해도 ....
옛날 얘기다. 하늘나라 임금이 지상의 인간을 다스릴 때 사용하는 천봉(天棒 – 하늘의 지휘봉) 하나를 잃어버렸다. 하늘의 군사를 풀어 찾아보니 선녀 하나가 나쁜 마음을 먹고 천봉을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와 이 하늘벽 기슭에 숨어 있는 것이었다. 군사들은 선녀을 잡아 다시 하늘로 올라갔는데 하늘벽에 숨겨놓은 천봉은 회수하지 못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이 하늘벽에 나무다리를 놓고 하루에 열세번씩 넘나들면서 동강 절벽에 숨겨져 있는 천봉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하늘벽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바세마을
우리는 천봉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동강 절벽에 자라는 할미꽃에 찾아보지만 아직 때가 이르다며 마른 풀잎만 보여준다. 그리고 얼마쯤 가자 절벽쪽에서 사진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 어깨 너머로 보니 활짝 핀 동강할미꽃이 화사하게 웃고 있다. 심봤다. 산삼 캐는 심마니에게는 산삼이 심이겠지만 봄꽃을 좇아 나온 꽃쟁이에게는 꽃이 심이다.
“어이 박상무 아냐?” 고인돌 형님이 그 사람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꽃탐방을 오래 하신 고인돌 형님은 꽃길에서는 늘 이렇게 아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도 반갑게 인사한다. 여러 명이 함께 왔다고 한다.
아직 철이 이르지만 부지런한 할미꽃 몇 송이 피어 있다. 어줍쟎은 실력으로 그래도 정성껏 한 송이 한 송이 카메라에 담아 챙긴다.
동강의 깍아지른 절벽에 할미꽃이 피고 있다.
그리고 칠족령으로 오르기 전 능선길에서 우리는 마침내 노루귀를 만났다. 솜털이 보송보송 난 귀를 쫑긋거리며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파란 꽃, 청노루귀다.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알고 있는데 먼 데서 온 손님 대접하느라 이리 바삐 나왔는가. 혹여 발에 치일세라 조심하면서 비탈길 위 나뭇가지를 잡고 청노루귀를 배알한다. 이제 동강할미꽃도 보고 노루귀도 만났으니 봄 맞을 준비는 다 되었다.
동강할미꽃 못지 않게 예쁜 청노루귀꽃
고인돌 형님의 지인분은 나무에 대해 잘 아신다. 길 가에 난 나무 가지를 가리키며 시베리아 살구나무라고 알려준다. 내 눈에는 살구나무와 구분이 안간다. 그 분은 다시 시베리아 살구나무 잔가지는 붉은 색을 띤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좀 색다른 것 같다. 이렇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열매가 달린 것을 보고도 그냥 개살구라고 넘겨 버렸을 터이다.
시베리아 살구나무
생강나무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른다. 장제마을에서 바세마을로 그리고 다시 거북이마을(연풍)을 거쳐 하늘벽유리다리를 지나 칠족령 원점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가 가까워진다. 백운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리는 총총걸음으로 다시 문희마을로 내려간다.
“이 나무 가지를 씹어보세요.”하고 고인돌 형님 지인께서 나뭇가지 하나를 가리킨다. 줄기가 검은 색이다. 작은 가지 하나를 꺽어 입에 넣고 씹었다. “아 소태나무요.” 전에 몇 번 보긴 했지만 아직도 숲 속에서 이 나무를 꼭 찍어 구별할 수 없다. 산을 다 내려와 문희마을에 이르기까지 입안에서는 쓰디 쓴 소태나무 맛이 입속을 맴돈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문희마을로 돌아왔다.
고인돌 형님의 지인분들은 오늘 돌아본 구역을 짚어보고 내일 갈 곳을 살핀다.
아침 9시에 시작한 동강 탐방은 오후 5시 넘어서야 끝났다. 약 13 m 거리를 누비며 강과 산 그리고 꽃과 나무를 보면서 강원도 평창군, 영월군 그리고 정선군에 걸쳐있는 동강 탐방을 마친다. 어제(금요일) 저녁에 만나 오늘 문희마을 할미꽃 탐방을 마치고 또 내일 이어서 동강 지역을 탐방한다는 고인돌 형님의 지인들과 작별하고 우리는 문희마을을 떠났다.
송어회
서울로 향하는 길에 평창군 기화리에 있는 송어횟집에 들렀다. 아삭아삭한 샐러드 무침에 쫄깃한 송어회와 퇴김으로 푸짐한 저녁을 먹고 저녁 7시 40 분쯤 출발하여 중간에 양평 휴게소를 잠깐 들러 밤 10시 복정역에 도착했다.
첫댓글 굽이치는 동강을 제대로 돌아오셨네요
구석구석 야생화에 송어회까지...ㅎ부럼
동강을 가 보셨나요? 나는 10년전 래프팅 하고 처음 가봤습니다. 멋진 곳입니다. 함 시간 내서 다녀오세요.
산행기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ㅎ
호기심이지요. 내가 태어난 이 곳은 어떤 곳일까.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일까. 왜 그리고 어떻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