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차별하지 않을 수 있다 / 이훈
차별하지 말자고 쉽게 말들 하지만, 어찌 보면 사회가 정신질환자를 차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딘지 이상하지만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뭔가’를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적 심리요, 행동이다. 본능은 힘이 세다. 말로는 그 불꽃을 꺼뜨릴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뭔지 알고 두려움이 가시면 저절로 가라앉는다. 고백하건대 나는 의사지만 가족의 문제를 겪기 전까지, 아니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정신질환이 뭔지 잘 몰랐다. 의대에서 정신과학을 배웠고, 좋은 성적을 받았고, 병동 실습에서 환자들을 접했는데도 그랬다. 하물며 일반 대중이 어떻게 정신질환을 알겠는가?
알아야 차별하지 않을 수 있다. 정신질환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을 겪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연민과 공감이 생겨나고, 돕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한권의 책에서 비로소 그런 지식을 얻었다. 예컨대 이런 구절.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증상이나 경험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과 감정이 비논리적이며 수시로 변하는 것을 스스로도 느낀다. 그들은 최소한 우리가 그들의 행동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것만큼 스스로의 행동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공포나 기피의 대상, 조롱거리가 되는 일도 흔하다….’
정신질환을 혐오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면 올바른 지식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 출판을 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책에 희망을 건다. 복잡한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총체적으로 전달하는 데 책만 한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캠페인을 벌이고 행사를 여는 비용의 일부를 좋은 책 만드는 데 쓰면 어떨까?
강병철, < 정신질환, 차별은 당연하다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82066.html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 저 직책을 차별하는 것이 그렇기는 하나 합리적 핵심을 취해 뭘 알아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그럴듯한 데가 있다. 연민이나 동정도 뭘 모르면 막연한 상태에 머문다. 맹자의 측은지심도 마찬가지다. 이런 감정은 타고나는 거지만 잘 가꾸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 씨를 뿌리고 그냥 두면 썩어 버릴 수도 있다. 거름도 주고 김도 매야 한다. 한마디로 구체성이 우리를 살린다. 나는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조건의 하나로 이 성질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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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앞에 꽃이 있다. 내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얘기해도 독자는 무슨 말인지 모른다. 눈으로 직접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의 공감을 얻으려면 꽃의 모양이나 향기를 마치 눈앞에서 보고 냄새 맡듯이 보여 줘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다루는 대상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끔 감각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구체성이다. 문학적인 성격을 지닌 글이 이미지를 애용하는 것은 이 구체성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의 교훈적인 성격은 주로 이 구체성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하자. 예를 들어, 소풍을 갔다 와서 수필 한 편을 쓴다고 해 보자. 교훈을 내세운답시고 “오늘 소풍 참 재밌었다. 다음에도 꼭 가야겠다.”고만 하면 참여하지 못한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글쓴이를 따라서 ‘이번에는 못 갔지만 다음에는 나도 꼭 가야겠다’고 할까? 사람은 그리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습관이나 성격을 바꾸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어린이에게도 교훈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되도록 피하고 구체적인 얘기를 들려주어 스스로 느끼게 한다. 소풍이 재미있었다는 말 대신에 즐겁게 놀았던 장면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면 독자는 ‘아! 이러니 나도 다음에는 꼭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여기서 좋은 글은 내 주관적인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나 감정을 누르고 대상을 존중하며 꼼꼼하게 관찰하는 데서 나온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훈, <글을 잘 쓰려면>, https://cafe.daum.net/ihun/kmR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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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명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지식, 더 나가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알아야 차별이나 혐오의 감정을 넘어설 수 있다. 사랑은 구체성의 열매다. 모르면 남은 물론이고 나 자신조차도 무시하게 된다. 남한테 당하기도 쉽다. 그러니 삶은 구체성을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저 글의 옥의 티 하나. 인용 구절이 나오는 책 제목을 소개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