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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혼으로 향유적이면……."
하면서 다뿍 시름 겨워 콧노래를 흥얼흥얼 흥얼거립니다.
무릇 그 총각이면 총각, 기생이면 기생이 깊숙한 산중이나 또는 아무도 없는 제 집의 제 방구석에서, 대체 누구더러 들으라고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그게 가로되, 흥이라구요. 새짐승이 자웅을 후리려고 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총각은 거기 어디 촌 처녀색시더러 들으란 노래고, 기생은 또 저대로 제 정랑(情郞)더러 들으란 노래고.
이렇듯 본능에서 우러나서 노래를 부르기는 짐승이나 인간이나 매일반이지만, 그 다음이 다르답니다.
인간은 제가 부르는 제 노래에, 남은 상관 않고 우선 제가 먼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촌 계집애가 들어를 주는지 않는지, 어느 놈팽이가 들어를 주는지 않는지, 그런 것은 생각도 않는답니다.
그런 타산은 도시에 의식 가운데 떠오르지도 않고, 괜히 그저 마음이 싱숭생숭하길래 아무렇게나 아무거나 괜히 그저 불러지는 대로 한마디 부르고 보니까는 어떻게 속이 더 이상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기뻐지는 것 같기도 하고, 후련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일언이폐지하면 소위 흥이라는 게 나는 거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방 서울아씨와 이야기책『추월색』도 꼬옥 그렇습니다.
공자님은 가죽 책가위가 세 번이나 해지도록 책 한 권을 가지고 오래 읽었다더니만, 서울아씨는『추월색』한 권을 무려 천독(千讀)은 했습니다. 그러고서도 아직도 놓지를 않는 터이니까 앞으로 만독을 할 작정인지 십만독 백만독을 할 작정인지 아마도 무작정이기 쉽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아씨는 책 없이, 눈 따악 감고 누워서도『추월색』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르르 내리 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게 천하 명작의 시집(詩集)도 아니요, 성경책이나 논어 맹자나 육법전서도 아닌 걸, 글쎄 어쩌자고 그리 야속스럽게 파고들고, 잡고 늘고 할까마는, 실상인즉 서울아씨는『추월색』이라는 이야기책 그것 한 권을 죄다 외우는만큼 술술 읽기가 수나롭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취하는 점이 없습니다.
그는 무시로 마음이 싱숭생숭할라치면 얼른『추월색』을 들고 눕습니다. 누워서는 처억 청을 높여 읽는데,
"각설이라 이때에……."
하고 양금채 같은 목으로 휘청휘청 멋들어지게 고저와 장단을 맞춰 가면서 (다리와 몸을 틀기도 하면서) 가끔 시큰둥한,
"……하징 아니헤야……."
조의 콧소리로 양념까지 치곤 합니다. 이렇게 멋지게 청을 돋워 읽고 있노라면, 싱숭거리던 속이 어떻게 더 이상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기뻐지는 것 같기도 하고, 후련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일언이폐지하면 그 소위 흥이라는 게 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건 촌 나무꾼 총각이 육자배기를 부른다든가, 또는 기생이 궂은비 오는 날 제 방 아랫목에 누워 콧노래로 수심가를 흥얼거린다든가 하는 근경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지 않다구요.
그러므로 노래가 아무것이라도 제게 익은 것이면 익을수록 좋듯이, 서울아씨의『추월색』도 휑하니 외우게시리 눈과 입에 익어, 서슴지 않고 내려 읽을 수가 있으니까, 그래 좋다는 것입니다. 결단코『추월색』이라는 이야기책의 이야기 내용에 탐탁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바이면 차라리 책을 걷어치우고 맨으로 누워서 외우는 게 좋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건 또 재미가 없는 것이, 인력거꾼이 인력거를 안 끌고는 뛰기가 싱겁고, 광대가 동지섣달이라고 부채를 들지 않고는 노래가 헤먹고 하듯이, 서울아씨도 다 외우기야 할망정 그래도 그 손때 묻고 낯익은『추월색』을 펴들어야만 제대로 옳게 노래하는 흥이 납니다.
진실로 곡절이 그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이야 이를 앓는다고 흉을 보거나 말거나? 또 오뉴월에도 이야기책을 차고 누웠다고 비웃음을 하거나 말거나 아무것도 상관할 바 없고 사시장철 밤낮없이 손에서『추월색』을 놓지 않는 서울아씨요, 그래 오늘 저녁에도 일찌감치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헤야 드디여 돌아오징 아니……."
이렇듯 서울아씨의 추월색 오페라가 적이 가경에 들어가고 있는데, 이짝 한편으로부터서는 도무지 발성학상 계통을 알 수 없는 버스 음악 하나가 대단히 왁살스럽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비― 비―가, 오―오…… 모― 모―가, 모―가, 모―가……."
태식이가 방 한가운데 배를 깔고 엎디어, 조선어독본 권지일, 비가 오오, 모가 자라오를 읽던 것입니다.
좀 민망한 비유겠지만 발음이 분명치 못한 것까지도 흡사 왕머구리(큰개구리) 우는 소리 같습니다.
그러나 열심은 무서운 열심입니다. 재작년 봄에 산 조선어독본 권지일 그것을 오로지 이 년하고도 반 년 동안 배워 온 것이 이 대문인데, 물론 그전엣치는 다 잊어버렸습니다. 한편으로 잊어버려 가면서도 끄은히 읽기는 읽으니까 그게 열심이던 것입니다.
"비― 비―가, 오―오. 비―가 오―오. 모― 모―가, 모―가…… 이잉, 잊어버렸저……! 경손아."
"왜 그래?"
"잊어버렸저!"
"잊어버렸으니 어쩌란 말야?"
"……"
"고만둬요! 제―발…… 그거 한 권 가지구 도통할 텐가? 대학까지 졸업할 작정인가!"
"누―나?"
"……"
"누―나?"
"……"
"누―나―?"
"왜 그래?"
"잊어버렸저!"
"비가오오모가자라오."
"잉?"
"참 너두 딱하다……! 비가 오오― 모가 자라오― 그래두 몰라?"
"히히…… 비―가 오―오, 모―가 자―자―라 자―라오, 히히…… 비―가 오―오, 모―가 자―라 자―라오."
"에이 귀따가워!"
경손이는 비로소 제가 어디 와서 있던 줄을 깨닫고는 벌떡 일어나더니, 마루의 뒷문에 연한 툇마루를 타고 뒤채의 큰방인 제 모친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 방에는 경손의 숙모 조씨까지 건너와서 동서가 바느질을 하고 앉아 소곤소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경손이가 달려드는 설레에 뚝 그칩니다.
"넌 네 방에서 공부나 하던 않구, 무엇 하느라구 앞뒤루 드나들구 이래?"
경손의 모친 박씨가 지날말로 나무람 겸 하는 소립니다.
"놀구 싶을 땐 책 덮어 놓구서 맘대루 유쾌하게 놀아야 합니다요!"
경손이는 떠벌거리면서 바느질판 한가운데로 펄씬 주저앉습니다. 바느질감이 모두 날리고 밀리고 야단이 납니다.
"아, 이 애가 웬 수선을 이리 피워…… 공분 밤낮 꼴찌만 하는 녀석이, 놀 속은 남보담 더 바치구……."
"어머니두……! 내가 공부 못한다구 우리집 재산이 딴 데루 갈까……? 태식이 천치는, 비가 오오 모가 자라오, 그거 두 줄 가지구 한 달을 배워두 천석꾼인데…… 아 그런데 이 경손 씨가 만석 상속을 못 받어요?"
"넌 어디서 중동이만 생겼나 보더라……! 쓸데없는 소리 말구, 공부 잘해!"
"낙제만 않구 올라가믄 돼요…… 학교 성적 좋은 녀석 죄다 바보야…… 아 참, 우리 작은아버진 말구서…… 그렇죠? 아즈머니……."
무슨 일인지, 경손이는 이 집안의 그 많은 인간 가운데 유독 그의 숙부 종학 하나만은 존경을 합니다.
"말두 말아!"
조씨가 그러잖아도 뚜― 나온 입술을 좀더 내밀고 쭝긋거리면서, 경손의 말을 탓을 하던 것입니다.
"……세상, 그런 못난 사람두 있다더냐?"
"우리 작은아버지가 못나요? 난 보니깐, 우리집에선 제일 잘나구 똑똑합디다. 단, 경손이 대감만 빼놓구서, 하하하…… 나두 우리 작은아버지 닮아서 이렇게 똑똑해……! 그렇죠, 어머니? 내가 똑똑하죠?"
"옜다, 이 녀석! 까불기만 하는 녀석이, 어디서……."
"하하하하……."
"사내가 오즉 못나믄 첩 하날 못 얻어 살구서……."
조씨는 혼자 말하듯 구느름을 내다가, 바늘귀를 꿰느라고 고개를 쳐듭니다. 새초옴한 게 벌써 새서방 종학이한테 귀먹은 푸념깨나 쏟아져 나올 상입니다.
"첩 얻으믄 못써요! 태식이 같은 오징어(연체동물) 생겨나요, 시들부들…… 그렇죠? 아즈머니!"
"말두 말래두……! 첩을 백은 못 얻어서, 새장가 든다구 조강지처 이혼하려 들어? 그게 못난 사내 아니구 무어라더냐……? 그리구서두 머? 경찰서장……? 흥, 경찰서장 똥이나 빨아 먹지!"
"흥! 작은아버지가 경찰서장 할 사람인 줄 아시우? 참 어림없수!"
"그래두 그럴 양으루 법률 공부 배운다믄서?"
"말두 마시우. 큰사랑 뚱뚱할아버지, 헷다방이지……! 아주, 작은손자가 경찰서장 될라치믄 영감님이 척 뽐낼 양으루! 흥!"
"너 이 녀석,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지망지망 해라?"
경손의 모친은 경계하는 소립니다. 그 소리가 시할아버지 귀에라도 들어가고 보면 생벼락이 내릴 테요, 따라서 말을 낸 경손이도 한바탕 무슨 거조든지 당할 터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조씨는 연방 더 전접스럽게,
"워너니 자기가 진작 맘 돌리기 잘했지야…… 주제에 무슨 경찰서장은……."
"아즈머니두……! 아즈머니두 경찰서장 등대구 있었수? 그랬거덜랑 얼른 이혼하시우. 경찰서장 오백 리 갔수!"
"아, 저놈이 못 할 소리가 없어!"
경손의 모친이 눈을 흘기면서 나무랍니다.
"어머니두! 이혼하는 게 왜 나뿐가? 내가 여자라믄 백 번만 결혼하구 백 번만 이혼해 보겠던걸…… 헤헤…… 그런데 참, 어머니!"
"듣기 싫여!"
"아냐, 저 거시키…… 서울아씨 시집 안 보내우!"
"매친 녀석!"
"뭘 그래! 시집 보내예지. 난 꼴 보기 싫여!"
"이 녀석이 시방 맞구 싶어서……."
"내버려두시오! 그 애야 다아 옳은 말만 하는걸…… 난 그리잖어두 맘 없는 집살이에, 덮친 디 엎친다구, 시고모 등쌀에 생병이 나겠습디다…… 난 그 아씨 꼴 아니 봤으면 살이 담박 지겠어!"
"오―라잇! 우리 아즈머니 부라보……! 아 그렇구말구요. 서울아씬 시집 보내구, 아즈머니두 이혼하구서 새루 결혼하구, 응? 아즈머니!"
"네 요놈, 경손아!"
"네에?"
"너, 정녕 그렇게 까불구 그럴 테냐?"
"하하하…… 그럼 다신 안 그러께요…… 그 대신 오십 전만……."
"망할 녀석?"
경손의 모친은 일껏 정색을 했던 것이, 경손이가 더펄대는 바람에 그만 실소를 해버립니다.
"응? 어머니…… 오십 전만……."
"돈은 무엇에 쓸 양으루 그래?"
"하, 사내대장부가 돈 쓸 데 없어요? 당당한 백만장자 윤직원 윤두섭 씨의 맏증손자 윤경손 씨가!"
"난 돈 없으니, 그렇거들랑 큰사랑 할아버지께 가서 타 쓰려무나?"
"피― 무척 내가 이뻐서 돈 주겠수…… 어머니 히잉― 오십 전마아안……."
"없어!"
"이 애야, 그럴라 말구……."
조씨가 옆에서 꼬드기는 소립니다.
"……서울아씨더러 좀 달래려무나……? 넌 그 아씨 시집 보내 줄 걱정까지 해주는데, 그까짓 돈 오십 전 아니 주겠니? 오십 전은 말구 오 원, 오십 원두 주겠다!"
물론 서울아씨가 미워라고 시방 그 쑥 나온 입술로 비꼬는 솜씨지요. 그런데 경손이는 거기 귀가 반짝 하는지 눈을 깜작깜작 고개를 깨웃깨웃,
"서울아씰……? 시집 보내 준다구……? 하하, 오옳지, 옳아!"
하면서 무릎을 탁 치고 일어서더니,
"됐어, 됐어……! 왜 아까 그때 바루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어쩐 말이냐!"
하고 거드럭거리고 나갑니다.
박씨는 아들놈 등뒤를 걱정스럽게 바라다보면서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하다가 그만둡니다.
분배를 놓던 경손이가 나가고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하자, 두 동서는 제각기 제 생각에 잠겨 한동안 바느질 손만 바쁩니다.
"때그르르."
마침 박씨가 굴리는 실패 소리에 정신이 들어 조씨는 자지러지듯 한숨을 내쉽니다.
"형님은 그래도 좋시겠수……."
"……."
"아즈바님이 따루 계시긴 하세두, 다아 마음은 아니 변허시구…… 다아 저렇게 똑똑한 아들두 두시구…… 난 전생에 무슨 업원이 그대지두 중했는지, 팔자가 이 지경이니……! 차라리 죽은 목숨만두 못한 인생……! 그래두 우리 어머니 아버진, 날 이 집으루 시집 보내믄서, 만석꾼이 집 지차 손주며느리래서, 호강에 팔자에, 모두 늘어질 줄 알았을 테지!"
"그런 소리 하지 말소!"
박씨가 위로의 말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박씨는 이 동서를 위로해 줄 말이 딱합니다.
번번이 마주 앉으면 노래 부르듯 육장 두고서 하는 꼭 같은 푸념이요 팔자 탄식인 걸, 그러니 인제는 듣기도 헤먹거니와 이편의 위로엣 말도 밤낮 되풀이하던 그 소리라 말하는 나부터가 헤먹습니다.
"……난들 무슨 팔자가 그리 우나게 좋다던가……? 남편이 저럭허구 다닐 테믄 맘 변하나 안 변하나 매일반이지…… 자식은 하나 두었다는 게 벌써 에미 품안에서 빠져나간걸…… 그러니 동세나 내나 고단하긴 매양 같지, 별수 있는가……? 다같이 부잣집 이름 좋은 종이요 하인이지…… 대체 이 집은……."
안존하던 박씨의 음성은 더럭 보풀스러워지면서, 아직 고운 때가 안 가신 눈이 샐룩 까라집니다.
"……무얼루, 무엇이 만석꾼이 부잔고……? 이 옷 주제 허며 손이 이게 만석꾼이 집 며느리들이람? 끌끌……."
미상불 동서가 다 영양이 좋지 못한 얼굴입니다. 손은 작년 겨울에 터진 자국이 여름내에 원상 회복이 못 된 채 북두갈고리 같습니다.
박씨는 여태도 인조항라 고의를 입고 있고, 조씨는 역시 배 사먹으러 가게 실렁한 검정 목 보일 치마를 휘감고 있습니다.
박씨는 저네들의 주제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방 안 짐을 둘러봅니다.
화류 의걸이에 이불장에 삼층장에 머릿장에 베갯장에 양복장에, 이칸 장방이 그득, 모두 으리으리합니다.
"……저런 게 다아 무슨 소용인구……! 넣어 두구 입을 옷이 있어야 저런 것두 생색이 나지…… 저런 걸 백 개 들여노니, 얼명주 단속곳 한 벌만한가! 아무짝에두 쓸디없는 치레뻔…… 난 여름부터 고기가 좀 먹구 싶은 걸 못 얻어먹었더니……."
동서의 위로가 아니고 어쩌다가 제 자신의 구느름이 쏟아져 나와서 마악 거기까지 말이 갔는데, 헴 하는 연한 밭은기침 소리에 연달아 미닫이가 사르르 열립니다.
옥화가 왔던 것입니다. 창식이 윤주사가 올 봄에 새로 얻은 기생첩, 그 옥화랍니다.
기생으론 그다지 세월도 없었으나 어느 여학교를 이 년인가 다녔고, 그런데 어디서 배웠는지 묵화를 좀 칠 줄 아는 것으로, 그 소위 아담한 교양이 윤주사의 눈에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 생김새는 도저히 아담함과는 간격이 뜹니다.
도량직한 얼굴이면서 어딘지 새침한 바람이 돌고, 그런가 하고 보면 생긋 웃는데 눈초리가 먼저 웃습니다.
이 새침새가 남의 조강지처로는 아무래도 팔자가 세겠는데, 마침 고놈 눈웃음이 화류계 계집으로 꼭 맞았습니다. 다시 그의 흐뭇하니 육감적으로 두터운 입술은 그 이상의 것을 암시하구요.
옥화는 이 큰댁엘 자주 드나들어,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의 귀염을 일쑤 받고, 외동서 조씨의 성미를 맞추기에 노력을 하고, 서울아씨나 이 두(남편의) 며느리와도 사이가 좋습니다. 능한 외교수완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한데, 그러고서도 기생으로 세월이 없었다니 좀 이상은 합니다마는, 실상인즉 그러니까 윤주사 같은 봉을 잡았지요.
옥화는 언제고 여학생 차림을 합니다. 기생의 여학생 차림이란 어딘지 좀 빤지르르한 게 암만해도 프로 취(職業臭)가 흐르기는 하는 0 이지만, 당자들은 그걸 교정할 용기가 없어, 옥화도 그 본에 그 본입니다. 그래도 옥화 저더러 말하라면 기생은 일시 액운이었었고, 인제 다시 예대로 여학생 저를 찾은 것이랍니다.
"두 동세분이 바누질을 하시는군?"
옥화는 영락없이 눈으로 웃으면서, 깍듯이 며느리들더러 허우를 하여, 어서 오시라고 일어서는 인사를 맞대답합니다.
"……그새 다아 안녕허시구?"
옥화는 손에 사들고 온 과자 꾸러미를 내놓으면서 주객 셋이 둘러앉습니다.
"무얼 오실 때마다 늘 이렇게…… 허긴 잘 먹습니다마는!"
박씨가 치하를 합니다. 미상불 옥화는 언제고 빈손으로 오는 법은 없습니다.
"잘 자시니 좋잖우? 호호…… 그런데 저어, 새서방 소식이나 들었수?"
이건 조씨더러 가엾어하는 기색으로 묻는 말!
"내가 그이 소식을 알다간 서쪽에서 해가 뜨라구요?"
"원 저를 어째……! 부부간에 의초가 그렇게 아니 좋아서 어떡허우!"
"어떡허긴 무얼 어떡해요……! 날, 잡아먹기밖에 더 허까!"
"아이, 숭헌 소릴……."
옥화는 박씨가 풀어 놓는 비스켓을 저도 하나 집어넣으면서,
"……그 얌전한 서방님이, 어째 색신 마댄담……? 그 아우 형제가 둘이 다아 얌전하기야 조옴 얌전한가……! 아이 참, 어디 나갔수?"
"누가요?"
박씨는 무슨 소린지 몰라 뚜렛뚜렛합니다.
"누구라니 새서방…… 경손 아버지 말이지……."
"그이가 오기나 했나요?"
"오기나 하다께……? 아, 온 줄 몰루?"
"내애."
"어쩌나!"
"왔어요?"
"오기만……! 아까 저어, 아따 우미관 앞에서 만난걸…… 그리구 언제 왔느냐니깐 아침차루 왔다구, 그 말꺼정 했는데!"
"그래두 집엔 아니 왔어요!"
"어쩌나……! 저거 야단났군! 호호."
"야단날 일이나 있나요……! 아마 볼일이 바빠서 미처 집엔 들를 틈이 아니 난 게죠."
속은 어떠했던지 박씨는 그래도 이만큼 사람이 둥글고 덕이 있습니다.
세 여자는 잠깐 말이 없이 잠잠합니다. 시방 박씨는 남편 종수가 분명 어디 가서 난봉을 피우고 있으려니, 그래도 올라는 왔으니까 얼굴이라도 뵈기는 하겠지, 이런 생각을 혼자 하고 있고, 옥화는 옥화대로 긴한 사무가 있어, 인제는 이만해도 마을 나온 증거는 만들어 놓았으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정작 가볼 데를 가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조씨는, 옥화의 백금반지야 금반지야 다이아반지가 요란한 고운 손길이며 진짜 비단으로 휘감은 옷이며를 골고루 여새겨 보면서, 논다니요 첩데기란 아무래도 이렇게 제 티를 내는 법이니라고, 에이 더럽다고 속으로 비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 속의 속을 캐고 볼 양이면 조씨는, 옥화가 그렇듯 좋은 패물이며 값진 옷을 입고 이쁘게 단장을 하고서 한가로이 마음 편히 놀러 다니는 팔자가 부러워 못 견딥니다.
부러웠고, 부러우니까는 오기가 나고, 그래 앙앙한 오기가 바싹 마른 교만을 부리던 것입니다.
이편, 경손이는 다뿍 불평스런 얼굴을 우정 만들어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옵니다.
서울아씨와 태식이의 두 가수(歌手)는 여전히,
"……헤야, 하징아니 하고오!"
의『추월색』오페라와,
"비― 비―가 오―오. 모―모―가 모―가 자―자―라 자―라오."
의 맹꽁이 음악을 끈기 있게 쌍주하고 있습니다.
경손이는 심상찮이 불평스런 얼굴은 얼굴이라도, 일변 매우 조심성 있게 서울아씨가 누웠는 옆에 가 앉습니다.
"그게 무슨 책이죠?"
"추월색이란다."
서울아씨는 긴치 않다고 이맛살을 약간 찌푸립니다.
그러나 경손이는 더욱 은근합니다.
"퍽 재밌죠?"
"그렇단다!"
"그럼 나두 한번 봐예지!"
경손이는 혼자 중얼거리고는, 한참 있다가 또,
"……전서방, 저녁 다아 먹었나……? 대고모가 아까 차려 내보낸 게 전서방 밥상이죠?"
서울아씨는 속이 뜨끔했으나 겉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경손을 바라봅니다.
"그렇단다…… 왜 그러니?"
"아뇨, 밥 다 먹었으믄 나가서 돈 좀 달라구 하게요."
"……."
서울아씨는 아까 대복이의 저녁 밥상을 차리러 나서느라고 저도 모르게 일으킨 이변을 비로소 깨달았으나, 그래서 속이 뜨끔했던 것이나, 경손이가 막상 눈치를 채지는 못한 것 같아서 적이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안심은 할 수가 없어 좀더 속을 떠보아야 하겠어서, 슬며시 오페라를 중지하고 짐짓 제 말 나오는 거동을 살피려 드는데, 경손이는 연해 혼자말로 두런두런,
"에이! 고 재―리, 깍쟁이!"
"……."
"고거, 죽어 버렸으믄 좋겠어!"
"……."
"그 중에 그 따위가 병신이 지랄하더라구, 내 참!"
"……."
"아, 글쎄 대고모!"
"왜?"
"아, 대복이녀석이, 말이우……."
"그래서?"
"내 참……! 내 인제, 마구 죽여 놀 테야!"
"아―니, 왜 그래? 무어라구 욕을 하든?"
"욕은 아니라두, 욕보다 더한 소리지 머!"
"무어랬길래 그래?"
"아, 고 병신이, 밤낮 절더러, 대고모 말을 하겠지! 망할자식 같으니라고!"
서울아씨는 얼굴이 화끈 다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무어라구 내 말을 한단 말이냐?"
"머, 별소리가 많아요! 느이 대고모님은 참 얌전한 부인네라구, 그런 소리두 하구…… 또오……."
"또오?"
"퍽 불쌍하다구…… 소생이 무언지, 소생이라두 하나 있었더라믄 그래두 맘이나 고난치 않았을걸, 어쩌구 그런 소리두 하구……."
"주제넘은 사람두 다아 보겠다! 제가 무엇이 대껴서 날 가지구 그러네저러네 해?"
말의 뜻에 비해서는 악센트가 그다지 강경하진 않습니다. 대복이를 꾸짖자기보다, 경손이한테 발명이기가 쉽지요.
"그러게 말이에요…… 내 인제, 다시 그따위 소릴 하거던 마구 그냥 죽여 놀 테에요!"
"……."
"큰사랑 할아버지께 고해서, 아주 밥통을 떼어 놓던지…… 망할자식! 상놈의 자식이!"
"경손아?"
서울아씨는 긴장한 태를 아니 보이느라고 내려놓았던『추월색』을 도로 집어 들면서 경손이를 부르는 음성도 대고모답게 상냥하고도 위의가 있습니다.
경손이의 대답 소리도 거기 알맞게 대단히 삼가롭습니다.
"너, 애여 남허구 시비할세라?"
"내애."
"대복이가 했단 소리가, 다아 주저넘구 하긴 하지만, 넌 아직 어린애니깐 남하구 시빌 하구 그래선 못써요……! 좀 귀에 거실리는 소릴 하더래두 거저 들은 숭 만 숭하는 것이지, 응?"
"내애."
"그리구, 그런 되잖은 소리 들었다구, 이사람 저사람한테 옮기지두 말구…… 그따위 소린 한 귀루 듣구 한 귀루 흘려 버릴 소리 아냐?"
"내애, 아무더러두 얘기 아니 허께요!"
경손이는 푸시시 일어서고, 서울아씨는 도로 오페라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밥이나 다아 먹었나? 작자가!"
경손이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미닫이를 열다가 짐짓 머뭇머뭇하는 체하더니,
"대고모?"
하고 어렵사리 부릅니다.
"왜?"
"저어, 저녁이라 말하기가 안돼서 그러는데요!"
"그래?"
"내일 대복이한테 타서 도루 가져다 드리께, 저어, 돈 이 원만!"
"돈은 이 원씩이나 무엇에 쓰니?"
"좀 살 게 있어서 그래요!"
서울아씨는 더 묻지도 않고 일어서더니 의걸이를 열쇠로 열고는 속서랍에서 일 원짜리 두 장을 꺼내다가 줍니다.
대체 서울아씨가 다른 사람도 아니요, 경손이한테 돈을 이 원씩이나 주다니, 그것 또한 이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저녁처럼 경손이가 서울아씨를 존경(?)하고 서울아씨는 경손이한테 상냥하게 굴고 한 적도 물론 전고에 없는 일이고요.
"내일 대복이한테 타서 드리께요?"
경손이는 두 손 받쳐 돈을 받고, 서울아씨는 그 소리를 도리어 나무람하되,
"내가 네게다가 돈 취해 줄 사람이더냐……? 그런 소리 말구, 가지구 가서 써요!"
다 이렇습니다.
가령 받고 싶더라도 아니 받을 생각을 해야지요. 살쾡이가 닭 물어다 먹고서 갚는 법 있나요.
경손이는, 네에 그러겠습니다고, 더욱 공손히 대고모 안녕히 주무세요란 인사까지 한 후에 마루로 나오더니 안방에다 대고 혓바닥을 날름, 코를 실룩, 눈을 깨끗, 오만 양냥이짓을 다 합니다.
구두를 신노라니까 등뒤에서 마루의 괘종이 아홉시를 칩니다.
아홉시면 지금 가더라도 '모로코'밖에 못 볼 텐데 어쩔까 싶어 작정을 못 한 대로 나가기는 나갑니다. 아무튼 나가 보아서 영화를 보든지, 영화는 내일 밤으로 미루고 동무를 불러 내어 그 돈 이 원을 유흥을 하든지 하자는 것입니다.
안대문은 잠겼고, 그래 사랑 중문으로 가는데 큰사랑에 춘심이가 와서 있는 것이 미닫이의 유리쪽으로 얼핏 들여다보였습니다.
경손이는 잠깐 서서 무엇을 생각하다가, 잠자코 대문 밖으로 나가더니 조금 만에 되짚어 들어오면서,
"삼남아?"
하고 커다랗게 부릅니다. 삼남이는 벌써 십오 분 전에 잠이 들었으니까 대답이 없고, 대복이가 건넌방 앞문을 열고 내다봅니다.
"여기 춘심이라구 왔수? 어떤 여편네가 대문 밖에서 좀 불러 달래우!"
경손이는 대단히 성가신 심부름을 하는 듯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려 놓고는, 이내 돌아서서 씽씽 나가 버립니다.
대복이가 전갈을 하기 전에 춘심이는 제 귀로 알아듣고 뛰어나와서 납작구두를 신는 둥 마는 둥 대문 밖으로 달려나옵니다.
대복이나 윤직원 영감은 경손이가 하던 소리를 곧이를 들은 건 물론이요, 춘심이도 깜빡 속아 제 집에서 누가 부르러 온 줄만 알았습니다.
춘심이는 대문 밖으로 나가서 문등이 환히 비치는 골목을 둘레둘레, 왔으면 어머니가 왔을 텐데 어디로 갔는고, 하고 밟아 나옵니다.
마침 옆으로 빠진 실골목 앞까지 오느라니까, 경손이가 그 안에서 기침을 합니다.
춘심이는 비로소 경손한테 속은 줄을 알고는 골딱지가 나려다가 생각하니 반가워, 해뜩해뜩 웃으면서 쫓아갑니다. 경손이도 말없이 웃고 섰습니다.
"울 어머니 어딨어?"
"느이 집에 있지, 어딨어?"
"난 몰라……! 들어가서 영감님더러 일를걸?"
"머야……? 흥! 연앨 톡톡히 하시는 모양이군……? 오래잖아 우리 큰사랑 할머니 한 분 생길 모양이지?"
"몰라이! 깍쟁이……."
춘심이는 마구 보풀을 내떱니다. 속이 저린 탓으로, 경손이가 혹시 아까 윤직원 영감과 반지 조건을 가지고 연애 계약을 하던 경과를 죄다 듣고서 저러는 게 아닌가 싶어, 젖내야 날 값에 그래도 계집애라고 그런 연극을 할 줄 알던 것입니다. 게나 가재는, 나면서부터 꼬집을 줄 알듯이요.
"……머, 내가 누구 때문에 밤낮 여길 오는데 그래…… 늙어 빠지구 귀인성 없는 영감님이 그리 좋아서……? 남 괜히 속두 몰라주구, 머……."
춘심이는 제가 지금 푸념을 해대는 말대로, 늙어 빠지고 귀인성 없는 윤직원 영감이 결단코 좋아서 오는 게 아니라, 윤직원 영감한테 오는 체하고서 실상은 경손이를 만나러 온다는 게,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춘심이 저도 모르는 소립니다. 아마 보나 안 보나 윤직원 영감과 경손이를 다 같이 만나러 오는 것이기 십상일 테지요.
그러나 시방 이 경우 이 자리에서는 단연코 경손이 때문에 온다는 것으로, 팔팔 뛰지 않지 못할 만큼 춘심이도 본시, 그리고 벌써, 계집이던 것입니다. 천하의 계집치고서, 멍텅구리 외에는 남자를 속이지 않는 계집은 아마 없나 보지요?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한테 다니기 시작한 지 세 번째 만에 경손이를 알았습니다.
석양쯤 해선데, 춘심이가 윤직원 영감이 있으려니만 여겨 무심코 방으로 쑥 들어서니까, 커―다란 윤직원 영감은 간데없고, 웬 까까중이의 죄꼬만 도련님이 연상 앞에서 라디오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좀 무색했으나, 고 도련님 이쁘게도 생겼다고, 함께 동무해서 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손이는 뚱뚱보 영감한테 들켰나 해서 깜짝 놀랐으나, 이어 아닌 걸 알고, 한데 요건 또 웬 계집앤고 싶어 춘심이를 마주 짯짯이 쳐다보았습니다.
전에 이 큰사랑에 오던 계집애는 이 계집애가 아닌데…… 그것들은 모두 빌어먹게 보기 싫었는데…… 이건 어디서 깜찍하니 고거 이쁘게는 생겼다…… 동무해서 놀았으면 좋겠다…… 경손이 역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연애에는 소위 퍼스트 임프레션이라는 게 제일이라구요. 과연 둘이 다 같이 첫인상이 만점이었습니다.
그래, 하나는 문지방을 잡고 서서, 하나는 라디오의 스위치를 잡고 앉은 채 한참이나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경손이가 먼저,
"너, 누구냐?"
하면서 눈에 나타난 호의와는 다르게 텃세하듯 따지고 일어섭니다.
"넌, 누구냐?"
춘심이 역시 말소리는 강경합니다. 적어도 이 댁에서 제일 어른이요 제일 크고 뚱뚱한 영감님, 그 어른한테 다니는 낸데, 제까짓것 까까중이 도련님이면 소용 있느냔 속이겠다요.
경손이는 장히 시쁘다고 바짝 다가와 춘심이를 들여다봅니다.
"그래, 난 이 댁 되련님이다!"
"피이…… 되련님이 아니구 영감님이믄 사람 하나 궂힐 뻔했네!"
"요 계집애 건방지다!"
"아니믄……? 병아리새끼처럼 텃셀 해요!"
"요것 보게…… 너 요것, 주먹 하나 먹구퍼?"
"때리믄 제법이게?"
"정말?"
"그래!"
"요―걸!"
경손이가 번쩍 들이대는 주먹이 코끝으로 육박을 해도 춘심이는 꼼짝 않고 서서 웃습니다. 웃음도 나름이지만, 이건 호의가 가득한 웃음입니다.
"하하, 고거 야!"
경손이는 주먹을 도로 내리면서 좋게 웃습니다. 역시 춘심이처럼 호의가 가득한 웃음입니다.
"왜 안 때려?"
"울리믄 쓰나!"
"내가 울어?"
"네 이름이 무어지?"
"알면서 물어요!"
"내가, 알아?"
"그―럼!"
"내가?"
"너―너― 하는 건 무언데?"
"오옳지! 너라구 했다구! 하하하…… 그럼, 아가씨 존함이 누구시오?"
"누가 아가씨랬나? 해해해……."
"하하하…… 무어냐? 이름이……."
"춘, 심……."
"응, 춘심이…… 그리구, 나인?"
"열다섯 살……."
"하! 나허구 동갑이다!"
"정말?"
"응!"
"이름은?"
"경손 씨."
"경손 씨……? 활동사진 배우 이름매니야……."
"안 됏! 되련님 이름을 그런 데다가 빗대다니……."
"피이!"
"그래두!"
"어쩔 테야?"
"한 대 먹구 싶어?"
경손이는 또 주먹을 들이댑니다. 그러나 그게 아까 먼저보다는 도리어 무름하건만, 무름할 뿐더러 정말 때릴 의사가 아닌 줄을 빠안히 알면서도 춘심이는 허겁스럽게 엄살 엄살, 다시 안 그런다고 항복을 합니다.
"다신 안 그러기다?"
"응!"
"응…… 그리구……."
"무어?"
"아―니…… 참, 너두 기생이냐?"
"응!"
"요릿집이두 댕기구? 응, 인력거 타구?"
"응!"
"그리구서?"
"무얼?"
"인력거 타구, 요릿집이 가서?"
"손님 앞에서 소리두 하구, 술두 치구……."
"그리구?"
"다― 놀믄 인력거 타구 집으로 오구……."
"그거뿐?"
"뿐!"
"돈은? 아니 받구?"
"왜 안 받아!"
"얼마?"
"한 시간에 일 원 오십 전……."
"꽤다……! 몇 시간이나?"
"대중없어……."
"갈 땐 이렇게 입구 가니?"
"야단나게……? 쪽찌구 긴치마에 보선 신구 그리구……."
"하하하."
"해해해."
이때 마침 대문간에서 윤직원 영감의 기침 소리가 들려, 이 장면은 그대로 커트가 됩니다. 그러나 경손이가 총총히,
"저―기, 뒤채 내 방으루 놀러 오너라, 응? 꼭……."
하고 부탁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부터 두 아이의 연애는 급속도로 발전을 해갔습니다. 무대는 이 집의 뒤채 경손이의 방과, 영화 상설관과 안국동에 묘한 뒷문이 있는 청요릿집과, 등이구요.
그 사이에 경손이는 춘심이한테 코티의 콤팩트와 향수 같은 것을 선사했고, 춘심이는 하부다이 손수건에다가 그다지 출 수는 없으나 제 솜씨로 경손이와 제 이름을 수놓아서 선사했습니다. 두 아이의 대강 이야기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밤으로 돌아와서 실골목의 장면인데…….
경손이는 춘심이가 너무 억울해하니까, 그를 믿고(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도시에 의심을 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아무려나 농담이 과했음을 속으로 뉘우쳤습니다.
아마 인간이라고 생긴 것이면, 사내치고서 계집한테 속지 않는 녀석은 없나 보지요.
"극장 가자……."
경손이는 이내 잠자코 섰다가 불쑥 하는 소립니다.
이 기교 없는 기교에, 정말 아닌 노염이 났던 춘심이는 단박 해해합니다. 가령 정말로 성이 났었더라도 그러했겠지마는요.
"늦었는데?"
"괜찮아?"
"영감님?"
"그걸 핑곌 못 해?"
춘심이는 좋아라고 연신 생글뱅글, 사랑으로 들어가더니, 대뜰에 올라서서,
"영감님? 나, 집이 가봐야겠어요!"
합니다.
"오―냐!"
윤직원 영감의 허―연 수염이 미닫이의 유리쪽을 방 안에 가리며 내다봅니다.
"……누가 불르러 왔더냐?"
"내…… 우리 아버지가 아푸다구, 어머니가 왔어요!"
"그렇거들랑 어서 가보아라…… 거, 무슨 병이 났단 말이냐?"
"모르겠어요. 갑자기, 그냥……."
"그럼 무엇 먹은 게 체히여서 곽란이 났넝가 부구나?"
"글쎄, 잘 모르겠어요!"
"어서 가부아라……. 그리구, 곽란이거던 와서 약 가져가거라…… 사향소합환 주께."
"내."
"어서 가부아라……. 그리구 내일 낮에 올라냐? 반지 사러 가게……."
"내."
"꼭 올 티여?"
"내, 꼭 와요!"
"지대리마……? 반지 꼭 사주마?"
"내…… 안녕히 주무세요?"
"오―냐……. 너 혼자 가겄냐?"
"아이! 괜찮아요!"
"무섭거던 삼남이 데리구 가구!"
"무섭긴 무엇이 무서요!"
"그럼 어서 가보구, 내일 오정 때쯤 히여서 꼭 오니랭? 반지 사러 진고개 가게, 응?"
"내."
"잘 가거라, 응!"
"내, 안녕히 주무세요!"
"오―냐, 어서 가거라……. 그리구, 내일 반지 사러 가자?"
반지 소리가 드리 수없이 나오나 봅니다.
걱정도 되겠지요. 제 아범이 병이 났다니, 그게 중해서 내일 혹시 오기가 어렵게 되면 또다시 연애를 연기해야 할 테니까요.
그 육중스런 임시 첩장인을 위해, 중값 나가는 사향소합환을 주마는 것과 과연 근경속이 그럴듯하기는 합니다.
아무려나 이래서 조손간에 계집애 하나를 가지고 동락을 하니 노소동락(老少同樂)일시 분명하고, 겸하여 규모 집안다운 계집 소비절약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소비절약은 좋을지 어떨지 몰라도, 안에서는 여자의 인구가 남아 돌아가고(그래 한숨과 불평인데) 밖에서는 계집이 모자라서 소비절약을 하고(그래 칠십 노옹이 예순다섯 살로 나이를 야바위도 치고, 열다섯 살 먹은 애가 강짜도 하려고 하고) 아무래도 시체의 용어를 빌려 오면, 통제가 서지를 않아 물자배급에 체화(滯貨)와 품부족(品不足)이라는 슬픈 정상을 나타낸 게 아니랄 수 없겠습니다.
12. 세계 사업 반절기(半折記)
역시 같은 날 밤이요, 아홉시가 한 오 분 가량 지나섭니다. 그러니까 방금 창식이 윤주사의 둘째첩 옥화가 계동 큰댁에 들렀다가 며느리뻘 되는 뒤채의 두 새댁들과 말말 끝에, 집에는 얼굴도 들여놓지 않은 종수를, 아까 낮에 우미관 앞에서 만났다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시각과 거진 같은 시각입니다.
과연, 그리고 공굘시, 그 시각에 종수는 그의 병정인 키다리 병호의 인도로 동관 어떤 뚜쟁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종수는 새삼스럽게 소개할 것도 없이, 만석꾼 윤직원 영감의 맏손자요, 창식이 윤주사의 맏아들이요, 경손이의 아범이요, 윤씨네 가문 빛내는 큰 사업의 제일선 용사 중 한 사람으로서 군수 운동을 하느라고 고향에 내려가 군 고원을 다니는 사람이요, 그리고 장차 경찰서장이 될 동경 어느 대학 법학과 학생 종학의 형이요, 이러한 그 종숩니다. 주욱 꿰어 놓구 보니 기구가 대단하군요. 뭐, 옛날 지나 땅의 주공(周公)이라든지 하는 사람은, 문왕의 아들(文王之子)이요, 무왕의 동생(武王之弟)이요, 시방 임금의 삼촌(今王之叔父)이요, 이렇대서 근본 좋고 팔자 좋고 권세 좋고 하기로 세상 우두머리를 쳤다지만, 종수의 기구도 그뱃속으로부터 분노와 악이 치받쳐 올랐습니다.
"이놈 윤가야, 네 들어 보아라!"
두목은 종시 말이 없이 앙연히 앉아 있는 윤용규를 마주 노려보면서, 그 역시 분이 찬 음성으로 꾸짖는 것입니다.
"……네가 이놈 관가에다가 찔"너 이년, 다리넌 안 치기루 힜냐?"
"싫여요! 누가 암마야상인가, 머!"
"허! 그년 참……! 그럼 다리 안 치넌 대신, 노래나 한마디 불러라!"
"노랜 하죠! 풍류 끝엔 텁텁한 걸루다 잡가를 들어야 하신다죠?"
"그런 걸 다아 알구, 제법이다!"
"어이구, 참! 나구는 샌님만 업신여긴다구……! 자아, 노래하께 영감님 장단치시오?"
"장단은 이년아, 장구가 있어야 치지?"
"애개개! 장구가 있으믄 영감님이 장단을 칠 줄은 아시구요?"
"헤헤, 그년이. 이년아 늬가 꼭 여수 같다!"
"내애. 난 여우 같구요, 영감님은 하마 같구요? 해해해!"
"네라끼년! 허허허허…… 그년이 꼭 어디서 초라니같이 까분당개루?"
"초라니? 초라니가 무어예요?"
"초라니패라구 있더니라. 홍동지 박첨지가 탈바가지 쓴 대가리를 내놓구서, 서루 찧구 까불구, 꼭 너치름 방정맞게 촐랑거리구, 지랄을 허구 그러더니라…… 떼―루 떼―루 박첨지야― 이런 노래를 불러 가먼서……."
"해해해해, 어디 그 소리 또 한번 해보세요? 아이 참, 혼자 보기 아깝네! 해해해……."
"허! 그년이!"
이렇게, 그야말로 찧고 까불고 하는 소리를, 누가 속은 모르고 밖에서 듣기만 한다면 꼭 손맞은 애들이 지껄이고 노는 줄 알 겝니다.
방 안을 들여다보면……? 그런다면 저네들 말마따나, 동물원의 하마와 여우가 한 울안에서 재미있게 노는 양으로 보이겠지요.
"춘심아?"
"내애?"
"너어……."
"내애!"
"저어, 무어냐……."
윤직원 영감은 다리를 비비 꼬면서 말끝을 어름어름합니다.
못 견디겠어서 인제 웬만큼, 너 몇 살이지? 응, 숙성하다. 너 내 말 들을늬…… 이, 이를테면 사랑의 고백을 해야만 하겠는데, 그놈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는 도로 넘어가곤 하던 것입니다. 역시 다섯 번이나 창피를 본 나머지라, 어쩔까 싶어 뒤를 내는 것도 그럴듯한 근경입니다.
그게 젊은것들 사이라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소릴 텐데, 그 소리 한마디 나오기가 어렵기란, 아마도 만고를 두고 노소 없이, 또 사정과 예외를 통틀어 넣고 일반인가 봅니다.
"인제 구만 까불구, 어서 노래나 시작히여라."
윤직원 영감은 드디어 망설이다 못해 기회를 뒤로 미뤘습니다.
"내―내, 무얼 하까요? 아까 낮에 명창대회서 영감님이 연신 조오타! 조오타! 하시던 적벽가 새타령 하까요?"
"하아따! 고년이 섯바닥은 짤뤄두 침은 멀리 비얕넌다더니, 이년아, 늬가 적벽가 새타령을 허머넌 나는 하눌서 빌을 따오겄다!"
"애개개! 아―니 내 그럼 내일이라두 권번에 가서 그거 한마디만 배워 가지구 영감님 듣는 데 할 테니깐 정말 하눌 가서 별 따오실 테야요?"
"누가 인자사 배각구 말이냐? 시방 이 당장으서 말이지……."
"피― 아무렇게 해두 하기만 하면 고만이지, 머……."
"그년이 노래허라닝개루 또 잔사살을 내놓너만!"
"내―내햄…… 자아 합니다. 햄…… 망구강사안 유람헐 제……."
단가로는 맹자 견 양혜왕짜리요, 한데 망구강산의 망구는 오식(誤植)이 아닙니다.
고저가 옳게 맞을 리도 없고, 장단이 제대로 갈 리도 없는데다가, 소리 선생 앞에서 배울 때에 쓰던 그 목을 그대로, 고래―고래 내시처럼 되게 지르고 앉았으니, 윤직원 영감의 취미 아니고는 듣기에 장히 고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음악입니다. 게다가 윤직원 영감의, 역시 장단을 유린하는, 좋다! 소리가 오히려 제격이요, 겨우 노래가 끝나니까는, 에 수고했네! 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근천의 절창이라 하겠습니다.
"너, 배 안 고푸냐?"
윤직원 영감은 쿨럭 갈앉은 큰 배를 슬슬 만집니다. 춘심이는 그 속을 모르니까 뚜렛뚜렛합니다.
"아뇨, 왜요?"
"배고푸다머넌 우동 한 그릇 사줄라구 그런다."
"아이구머니!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저런년 주둥아리 좀 부아!"
"아니, 이를테믄 말이에요……! 사주신다믄야 밴 불러두 달게 먹죠!"
"그래라. 두 그릇만 시키다가 너허구 한 그릇씩 먹자!"
"우동만, 요?"
"그러먼?"
"나, 탕수육 하나만……."
"저 배때기루 우동 한 그릇허구, 또 무엇이 더 들어가?"
"들어가구말구요! 없어 못 먹는답니다!"
"허! 그년이 생부랑당이네! 탕수육인지 그건 한 그릇에 을매씩 허냐?"
"아마 이십오 전인가, 그렇죠?"
윤직원 영감의 말이 아니라도 계집애가 여우가 다 되어서, 탕수육 한 접시에 사십 전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삼남이는 이 소리를 마치 중이 염불하듯 외우면서 나갑니다. 사실 삼남이한테는 그걸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루 세 끼 중에 한 끼를 잊어버리지 않음과 일반으로 중요한 일이어서, 그만큼 긴장과 노력이 필요하던 것입니다.
무슨 그림자가 지나간 것처럼 방 안이 잠깐 교교했습니다. 이 침정의 순간이 윤직원 영감에게 선뜻 좋은 의사를 한 가지 얻어 내게 했습니다.
전에 아이들한테 하듯, 단박에 왁진왁진 그러지를 말고서, 가만가만 제 눈치를 먼저 떠보아 보는 것이 수다…… 이런 말하자면 점진안(漸進案)입니다.
동티가 나지 않게, 또 창피를 안 당하게 가만히 슬쩍 제 속을 뽑아 보고, 그래 보아서 싹수가 있는 성부르면 그 담에는 바싹 다그쳐 보고…… 미상불 그럴 법하거니 싶어 우선 혼자 만족을 해 싱그레니 웃습니다.
"춘심아?"
머리를 싸악싹 쓸어 주면서 부르는 음성도 은근합니다.
"내애?"
"너, 멫 살이지?"
"그건 새삼스럽게 왜 물으세요?"
"아―니, 그저 말이다!"
"열다섯 살이지 머, 그새 먹어서 없어졌을라구요?"
"응 참, 그렇지…… 퍽 숙성히여, 우리 춘심이가……."
"키는 커두 몸은 이렇게 가늘어요! 아이 참, 영감님은 몇 살이세요?"
"나……? 글씨 원, 하두 많이 먹어서 인재넌 나이 먹은 것두 다아 잊어뻬맀넝가 부다!"
"애개개, 암만 나일 많이 잡수셨다구, 잊어버리는 사람이 어디가 있어요……? 이렇게 머리랑 수염이랑 시었으니깐 나이두 퍽 많으실 거야!"
춘심이는 백마꼬리같이 탐스런 수염을 쓰다듬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다른 한 손으로 춘심이의 나머지 한 손을 조물조물 주무릅니다.
"춘심아!"
"내애?"
"너, 내가 나이 많언 게 싫으냐?"
"싫은 건 무엇 있나요……? 몇 살이세요? 정말……."
"그렇게 알구 싶으냐?"
"몸 달을 건 없지만……."
"일러 주래?"
"내애."
"예순…… 으응…… 다섯 살이다!"
"아이구머니!"
춘심이는 입이 떡 벌어지고, 윤직원 영감은 윤직원 영감대로 또 속이 있어서, 입이 벌씸 벌어집니다.
윤직원 영감의 나이 꼬박 일흔둘인 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것을, 글쎄 애인한테라서 그 중 일곱 살만 줄이어 예순다섯으로 대다니, 그것을 단작스럽다고 웃어버리기보다 오히려 옷깃을 바로잡고 엄숙히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흔두 살 먹은 영감이 열다섯 살 먹은 애인 앞에서 나이를 일곱 살을 줄여 예순다섯 살로 대던 것입니다.
기생들이 손님에게다가 나이를 속이는 것은 예삽니다. 또 젊은 기집애들이 제 나이를 리베씨한테다가 줄여서 대답하는 수도 더러 있습니다. 속을 알고 보면 그야 근경이 그럴듯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여기, 일흔두 살 먹은 허―연 영감태기가, 열다섯 살배기 동기 계집애를 아탕발림시키느라고, 나이를 일곱 살을 야바위쳐서, 예순다섯 살로 속이던 것이랍니다.
그도, 곧이야 듣건 말건 한 이십 살 꼬아 먹고 쉰 살쯤 댔다면 또 몰라요. 고작 일곱 살. 늙은이의 나이 예순다섯에서 일흔두 살까지 거리가 그리 육중스럽게 클까마는, 그래도 열다섯 살배기 애인한테 고거나마 젊게 보이고 싶어, 그 일곱 살을 덜 불렀더랍니다, 예순다섯 살이라고.
그 우람스런 체집에 어디를 눌렀는데, 그런 간드러진 소리가 나왔을까요.
저어 공자님 말씀에,
"소인이 한가히 지낼 것 같으면 아름답지 못한 꿍꿍이를 꾸미나니라."
하신 대문이 있겠다요.
그 대문을 윤직원 영감한테 그대로 적용을 말고서 죄꼼 고쳐 가지고,
"소작인이 바쁘게 지낼 것 같으면 지주 영감은 약시약시하느니라."
이랬으면 어떨까요.
인간이 색의 기능을 타고나는 것은 생물로서 운명적 필연이요, 그러니까 결단코 그걸 나무랄 일은 못 됩니다. 또 누가 나무라고 시비를 한다고 그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해서 비판이나 간섭의 피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윤직원 영감처럼 나이 칠십여 세에, 연령의 한계를 마구 무시하는 그의 야만스러운 정력은, 부질없이 생물로서의 선천적인 운명이라고만 처분은 안 됩니다.
본시 체질을 좋게 타고났다고 주장을 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신돈이 같은 체질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윤직원 영감이 윤직원 영감다운 팔자를 얼러서 타고나지 못했으면 그 체질은 성명이 없고 말 것입니다.
몇백 명이나 되는 윤직원 영감의 소작인 중엔 윤직원 영감만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 몇은 없을 이가 있다구요.
그렇건만 그 사람네는 온전히 도조를 해다가 바치기에 정력이 죄다 말라 시들고, 보약 한 첩 구경도 못 했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攝理) 이하로 오히려 떨어지고 만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가령 특별한 예외나 기적으로, 윤직원 영감네 소작인 가운데 윤직원 영감처럼 칠십이로되 능히 계집을 다룰 정력을 지탱하고 있는 자 있다 치더라도, 그가 감히 첩질과 계집질을 할 팔자며, 그럴 생심인들 하겠습니까.
그러니 결국 그것은 늙은이한테는 생물적 필연이라는 관용도 안 될 말이요, 타고난 선천이니 체질이니 하는 것도 다 여벌이고, 주장은 한갓 팔자(시체말로는 환경) 그놈이 모두 농간을 부리는 놈입니다.
소작인이 바빠 벼가 만 석이 그득 쌓이기 때문에, 그의 생리와 건강과 행동과 이 모든 것이 화합되어(혼합이 아니라 화합이 되어) 오늘날의 싱싱한 윤직원 영감을 창조한 것이니라…… 이런 해석도 그러므로 고집은 해볼 만합니다.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이 예순다섯 살이란 말에, 계집애가 까부느라고 아이구! 예순다섯 살이라니, 퍽도 많이 자시기는 했네! 그러면 가만있자, 나보다 몇 살 더한고? 응, 가만있자, 예순다섯이라, 열다섯을 빼면 응…… 쉰, 아이구 어찌나! 쉰 살이나 더 잡수셨구려! 이러고 허겁떨이를 해쌉니다.
윤직원 영감은, 제가 하는 대로 빙그레 웃으면서 보고만 있습니다. 춘심이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제 나이와 빗대 보던 것인데, 윤직원 영감은 그게 무슨 뜻을 두기는 두었던 표적이려니 하고 혼자 느긋해하는 판입니다.
뜻은 있는데, 나이 하도 많으니까 놀라는 것이고, 그러나 뜻이 있었던 것만은 불행 중 다행인즉, 옳지 그렇다면 어디 좀…… 이런 요량짱입니다.
연애는 환장이니라(Love is Blind)란다더니 옛말이 미상불 옳아, 이다지도 야속스레 윤직원 영감 같은 노인에게까지 들어맞기를 하는군요. 그나마 골고루 골고루…….
"내가 나이 많언개루 싫으냐?"
인제는 제이단으로 들어가서, 나이 많은 게 나쁘지 않다는 변명, 혹은 나이 많아도 많지 않다는 주장을 해야 할 차롑니다.
"싫긴 뭐어가 싫여요? 나이 많은 이가 좋죠, 허물없구……."
"그렇구말구…… 그러구 나넌 예순다섯 살이라두 기운은 무척 시단다…… 든든허지!"
"참, 영감님은 늙었어두 몸집이 이렇게 크니깐, 기운두 무척 셀 거야. 그렇죠?"
"호랭이라두 잡을라면 잡넌다!"
"하하하, 그렇거들랑 인제 동물원에 가서 호랭이허구 씨름을 한번 해보시죠……? 아이 참, 하마허구 호랭이허구 씨름을 붙이믄 누가 이기꼬? 하하하, 아하하하……."
"허허, 그년이 또 까불구 있네!"
윤직원 영감은 어느결에 다시 집어 문 담뱃대 빨부리로 침이 지르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흐물흐물, 춘심이를 올려다봅니다. 몸이 자꾸만 뒤틀립니다.
"춘심아?"
"내애?"
"너어…… 저어…… 내 말, 들을래?"
"무슨 말을, 요?"
묻기는 물으면서도 생글생글 웃는 게 벌써 눈치는 챈 모양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오냐 인제야 옳게 되었느니라고 일단의 자신이 생겼습니다.
"내 말, 들을 티여?"
"아, 무슨 말이세요?"
윤직원 영감은 히죽 한번 더 웃고는 슬며시 팔을 꼬느면서,
"요녀언! 이루 와!"
하고 덥석 허리를 안아 들입니다. 마음 터억 놓고서 그러지요, 시방…….
아, 그랬는데 웬걸, 고년이 별안간,
"아이 망칙해라!"
하고 소리를 빽 지르면서 그만 빠져 달아나질 않는다구요.
여섯 번!
윤직원 영감은 진실로 기가 막힙니다. 여섯 번이라니, 아마 성미 급한 젊은놈이었다면 그새 목이라도 몇 번 매고 늘어졌을 것입니다.
글쎄 요년은, 눈치가 으수하길래 믿은 구석으로 안심을 했던 참인데, 대체 웬일인가 싶어 무색한 중에도 좀 건너다보려니까, 이게 또 이상합니다.
그 동안에 다섯 기집애들은 울기 아니면 욕을 하면서 영락없이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을 했는데, 요년은 보아야 그렇게 소리를 바락 지르고 미꾸리새끼처럼 빠져나가기는 했어도, 그저 저기만치 물러앉았을 따름이지, 울거나 골딱지를 냈거나 도망을 가거나 하기는커녕, 날 잡아 보라는 듯이 밴들밴들 웃고 있지를 않겠습니까. 마구 간을 녹입니다.
아무려나, 그렇다면 다시 어떻게 사알살 달래 볼 여망이 없지도 않습니다.
"저런―년 부았넝가! 헤헤, 그거 참……! 이년아, 그러지 말구, 이리 오니라, 이리 와, 응? 춘심아!"
"싫여요!"
"왜?"
"왠 뭘 왜!"
"너 이년, 내 말 안 듣기냐?"
"인제 보니깐 영감님이 퍽 음충맞어!"
"아, 저런년! 허, 그거 참……! 너, 그러기냐!"
"어때요, 머!"
"그러지 말구 이만치 오니라. 내, 이얘기허마."
"여기서두 들려요!"
"그리두 이만치, 가까이 와!"
"피― 또 붙잡을 양으루?"
"너, 내 말 들으면 내가 좋은 것 사주지?"
"존 거, 무엇?"
"참, 좋은 것 사줄 티여!"
"글쎄, 존 게 무어냐니깐?"
용천뱅이가 보리밭에 숨어 앉아서, 어린애들이 지나갈라치면, 구슬 줄게 이리 온, 사탕 줄게 이리 온, 한답니다. 그와 근리하다 할는지 어떨는지 모르겠군요.
윤직원 영감은 미처 무얼 사주겠다는 생각도 없이, 당장 아쉰 대로 어르느라고 낸다는 게 섬뻑 그 소리가 나와졌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꾸만 물어도 이내 대답을 못 하던 것입니다.
"늬가 갖구 싶다넌 것 사주마!"
"내가 가지구 싶다는 걸 사주세요?"
"오―냐!"
"정말?"
"그리여!"
"가―지뿌렁!"
"아니다, 참말이다!"
"그럼, 나 반지 사주믄?"
"반? 지……? 에라끼년! 누가 그런 비싼 것 말이간디야!"
"피― 그게 무어 비싼가……? 저기 본정 가믄 칠 원 오십 전이믄 빠알간 루비 박은 거 사는데…… 십팔금으루 가느다랗게 맨든 거……."
"을매? 칠 원 오십 전?"
"내애."
"참말이냐?"
"가보시믄 알걸 뭐!"
"그래라, 그럼 사주마…… 사줄 티닝개루, 인제 이리 오니라!"
"애개개! 먼점 사주어예지, 머."
"먼점 사주구? 그건 나두 싫다!"
"나두 싫다우!"
"고년이 똑 어디서 미꾸람지새끼 같다! 에엥, 고년이…… 그러지 말구, 이년 춘심아!"
"내애?"
"그러지 말구, 이리 오니라, 응? 그럼 내가 인제 내일이구 모리구, 진고개 데리구 가서 반지 사주께!"
"일없어요……! 시방 가서 사주시믄?"
"시방이사 밤으 어떻게 갈 수 있냐? 내일 낮에 가서 사주마. 그러지 말구, 이리 오니라!"
"싫여요!"
윤직원 영감은 칠 원 오십 전이면 산다는 그 반지를 사주기는 사줄 요량입니다. 하기야 돈 칠 원 오십 전만 놓고서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래도 명색이 동기 쳇것인데, 칠 원 오십 전짜리 반지 한 개로 사탕발림을 시키다니, 도리어 헐한 셈입니다. 제법식대로 머리를 얹히자면 이삼백 원 오륙백 원이 들곤 할 테니까요.
그래, 잘라 먹지 않고 내일이고 모레고 사주기는 사줄 텐데, 춘심이년이 못 미더워서 그러는지 까부느라고 그러는지, 밴들밴들 말을 안 듣고는 애를 태워 줍니다. 생각하면 밉기도 하고 미운 깐으로는 볼퉁이라도 칵 쥐어질러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괜히 함부로 잡도리를 했다가는, 단박 소갈찌가 나서 뽀루루 달아나 버리고는 다시는 안 올 테니, 그렇게 되고 보면 여섯 번 만에 겨우 반성공을 한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게 아니겠다구요.
에라, 그러면 기왕이니 내일 제 소원대로 반지를 사주고 나서…… 이렇게, 할 수 없이 순연(順延)을 하기로 요량을 했습니다.
"그럼, 내일 진고개 데리구 가서 반지 사주께, 그 담버텀은 무궁토록 누리고…… 하자던 진시황과, 만석꾼의 가산을 더욱 늘려 가면서 천지로 더불어 길이길이 지키고, 양반을 만들어 가문을 빛내되, 나는 오줌을 먹고 보건체조를 하고 보약을 먹고 하여, 이 집안의 가장으로 이 영광을 무궁토록 누리고…… 하자는 윤직원 영감과, 그 둘은 조금도 서로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여덟시가 되자, 윤직원 영감은 안으로 들어가서 조반을 자시고 나와, 다시 그럭저럭 아홉시가 되었습니다.
하늘은 씻은 듯이 맑고 햇볕은 향기롭습니다. 정히 좋은 날이요, 윤직원 영감한테는 그새와 마찬가지나, 새로이 행복된 오늘입니다. 오후쯤 해서는 올챙이와 말이 얼린 수형 조건으로 오천구백오십 원을 주고서 칠천 원짜리 수형을 받아, 일천오십 원의 이익을 볼 테니, 그 중 일백오 원은 구문으로 올챙이를 주더라도 구백사십오 원이고 본즉, 오늘도 벌이가 쑬쑬하여 기쁘고.
그런데 오늘은 또 춘심이와 다아 이러쿵저러쿵하게 될 날이어서, 이를테면 특집호화판(特輯豪華版)입니다.
행복과 만족까지는 모르겠어도, 윤직원 영감 이외의 다른 식구들도 죄다 평온무사한 것만은 적실합니다.
태식이는 골목 구멍가게에 나가서 맘껏 오마께를 뽑고 사먹고 하니, 무사태평을 지나 오히려 행복이고.
경손이는 간밤에 춘심이로 더불어 랑데부를 하면서, 이 원 돈을 유흥하던 추억에 싸여 시방 학과에도 여념이 없는 중이고.
서울아씨는『추월색』을 일찌감치 들고 누웠으니, 오만 시름 다 잊었고…….
뒤채의 두 동서는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중, 박씨는 남편 종수가 오늘은 집에를 들어오겠지야고 안심코 기다리고…….
고씨는 새벽 세시가 지나 술이 얼큰해 들어오더니 여태 태평몽이고…….
동소문 밖 ××원 별장에서는 종수가 배반이 낭자한 요리상 앞에 기생들과 병호로 더불어 역시 태평몽이고…….
옥화는 간밤의 일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뭘 집 한 채와 패물과 또 현금으로 이삼천 원 몽똥그렸으니, 발설이 되어 윤주사와 떨어져도 그다지 섭섭할 건 없다고 안심이고.
윤주사도 도합 사천오백 원을 마작으로 펐으나 오천 원도 채 못 되는 것, 술 사먹은 폭만 대면 그만이라고 새벽녘에야 든 잠이 시방 한밤중이요, 자고 있으니까 동경서 온 그 전보의 사단도 걱정을 잊었고…….
다 이렇습니다. 그렇고 다시 윤직원 영감은…….
윤직원 영감은 오정 때에 오라고 한 춘심이를 어째 다뿍 늘어지게 오정 때에 오라고 했던고. 또, 제 아범이 앓는다고 불려갔으니 혹시 못 오기나 하면 어찌하노 해서, 바야흐로 등이 단 참인데, 웬걸 아홉시 치는 소리가 때앵땡 나자 고년이 씨근버근 해뜩반뜩 달려들지를 않는다구요!
어떻게도 반가운지! 윤직원 영감은 앞미닫이를 더럭 열면서 뛰어나오기라도 할 듯이 엉덩이를 떠들썩, 커다란 얼굴에다가 하나 가득 웃음을 흩트립니다.
"어서 오니라…… 아범은 앓넌다더니 인재 갱기찮어냐?"
"내애, 인저 다 나았어요……."
춘심이는 (속으로 요옹용 하면서) 토방에 가 선 채 방으로 들어가려고도 않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반지 사러 가게요……."
"헤헤헤! 그년이 이저빼리지두 안힜네……! 그래라, 가자! 제엔장 맞일……."
"내가 그걸 잊어버려요? 밤새두룩 잠두 아니 잔걸! 아, 오정 때 오라구 허신 걸 아홉점에 왔다면 고만이지 머어…… 어서 옷 입으세요!"
"오―냐, 끙……."
윤직원 영감은 뒤뚱거리고 일어서서 의관을 차립니다.
"……반지 파넌 가게서 쬐깐헌 여학생이 반지 찐다구 숭보면 어쩔래?"
"남이 숭보는 게 무슨 상관 있나요? 나만 좋았으면 고만이지……."
"으응, 그리여잉! 그렇다먼 갱기찮지!"
"갠찮기만 해요? 머……."
"오냐 오냐!"
괜히 속이 굴져서 말이 하고 싶으니까 입을 놀리겠다요.
어제 오후 부민관의 명창대회에 가던 때처럼, 탕건 받쳐 통영갓에, 윤이 치르르 흐르는 안팎 모시 진솔것에, 하얀 큰 버선에다가 운두 새까마니 간드러진 가죽신에, 은으로 개대가리를 한 개화장에, 합죽선에 이렇게 차리고 처억 나섭니다.
덜씬 큰 윤선 옆에 거룻배 하나가 붙어서 가는 격이라고나 할는지, 아무튼 이 애인네 한 쌍은 이윽고 진고개 어귀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마다 모두들 윤직원 영감을 한 번씩 짯짯이 보면서 지나갑니다. 더구나 때묻은 무명 고의 적삼에 지게를 짊어지고 붉은 다리를 추어 올린 요보가 아니면, 뒷짐지고 흰 두루마기에, 어둔 얼굴에, 힘없이 벌린 입에, 어릿거리는 눈으로 가게를 끼웃끼웃, 가만히 들어와서는 물건마다 한참씩 뒤적뒤적하다가 슬며시 나가 버리는 센징들만이 조선 사람인 줄 알기를 십상으로 하던 본전통 주민들은, 시방 이 윤직원 영감의 진고개 좁은 골목이 뿌드읏하게시리 우람스런 몸집이며 위의 있고 점잖은 얼굴이며 신선 같은 차림새 하며가 풍기는 얌반상의 위풍에 그만 압기라도 되는 듯, 제각기 눈을 흡뜨고서 하― 입을 벌립니다.
좀 심한 천착인 것 같으나, 윤직원 영감으로 해서 조선 사람에도 요보나 센징말고 조센노 얌반상이 있다는 것을 그야말로 재인식했다고 할 수가 있겠고, 따라서 윤직원 영감 자신은 그 필요는커녕 도리어 긴찮은 일로 여기는 것이지만(그렇기 때문에 애꿎이) 조선 사람을 위해 무언의 만장 기염을 토한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앞을 서서 가던 춘심이가 초입을 조금 지나 어떤 귀금속상점 앞에 머무르더니, 진열창 속을 파고 들여다봅니다. 제가 눈익혀 두었던 그 칠 원 오십 전짜리 반지를 찾는 속인데,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보아야 보이질 않습니다.
낙심이 되어, 어쩔까 하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윤직원 영감을 데리고 그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섭니다.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구경도 할 겸, 점원들이 있는 대로 대여섯 일제히 합창을 하고 나섭니다.
춘심이는 점원 하나를 상대로, 권번에서 배운 토막일어를 이용하여, 문제의 칠 원 오십 전짜리 반지를 찾습니다.
"네에! 그건입쇼……!"
답답히 듣고 있던 점원은 척 조선말로 대응을 합니다.
"……그건 마침 다 팔렸습니다마는, 그거 비슷하구두……."
점원은 부지런히 진열장을 안에서 열고, 빨갱이 파랭이 노랭이 깜쟁이, 모두 올망졸망 알룽달룽, 반지가 들어박힌 곽을 꺼내다 놓더니, 그 중 빨갱이 한 놈을 뽑아 춘심이를 줍니다.
"이것이 썩 좋습니다. 아까 말씀하시던 거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뽄두 이뿌구, 돌두 빛깔이 곱구…… 네헤."
춘심이가 받아 들고 보니, 아닌게아니라 요전 치보다 더 이쁘고 좋아 보입니다. 다시 왼쪽 무명지에다가 끼어 보니까는, 아주 맞춤으로 꼭 맞습니다.
"이거 사주세요."
춘심이는 정가표가 실 끝에서 아른거리는 반지를 손에 낀 채, 윤직원 영감의 코밑에다가 들이댑니다.
"그게 칠 원 오십 전이라냐? 체―참, 손복허겄다!"
윤직원 영감은 두루마기 자락을 젖히고 염낭끈을 풀려다가 점원을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