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25
소양강문화제에 담긴 춘천 사람들의 추억
<개나리문화제에서 소양강문화제까지>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무더위가 지나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부는 들녘과 광장에는 온갖 문화행사가 열린다. 꽃, 음식, 과일, 해물, 농산물 등 사람을 감성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재료는 모두 축제가 된다. 춘천의 향토문화제인 소양강문화제는 춘천사람들의 감성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축제이다. 정말 축제의 현장에 가면 일로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한다.
개나리문화제는 1966년 춘천에서 가장 먼저 열린 춘천시 향토문화제이다. 현 소양강문화제의 전신이다. 왜 개나리문화제였을까. 《춘천백년사》에 보면 그 해답이 있다. 개나리는 춘천시의 시화(市花)이다. 춘천시를 상징하는 꽃이다. 꽃말은 희망이다. 개나리꽃은 강원도가 원산지라 했다. 강원도 도청소재지인 춘천에서는 개나리꽃을 시를 상징하는 꽃으로 정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개나리는 생명력이 강인하고 번식력이 강하며 춘천시민의 불굴의 투지와 단결 점진적 자세를 상징한다. 노란색은 평화를 상징하며 시민의 순결, 평화, 애호 사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로 인해 춘천의 향토문화제 이름을 개나리문화제로 정했다.
개나리문화제 명칭은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사용했다. 1969년부터 1983년 소양제가 되기까지는 개나리호수제라는 명칭을 썼다. 아무래도 춘천은 호수의 도시니까. 춘천에는 소양호, 춘천호, 의암호, 청평호라는 거대 인공호수가 4개나 있다. 소양제는 소양강이 춘천을 상징하는 강이라는 의미에서 주어진 명칭이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인가 소양강문화제로 그 명칭이 바뀌어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향토문화제이기에 ‘탈’, ‘꽃’, ‘나비’ 등처럼 독특한 주제를 부각하지 않고 향토의 특정 명칭인 ‘개나리’, ‘호수’ ‘소양강’을 사용하였다.
<소양강문화제에 얽힌 추억>
소양강문화제는 전통적인 우리나라 향토축제의 양상을 띠고 시작했다. 그래서 춘천 사람들에게는 소양제에 얽힌 남다른 추억들이 있다. 마을 대항전과 개인 대항전, 그리고 축제를 알리는 화려한 길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처럼 시청광장에서 행하는 보여주기 축제처럼 멋없지는 않았다. 대항이 없이 확성기 소리만 요란한 정체불명의 굿과 민속놀이는 무대에서 배우가 행하는 연희일 뿐 사람들의 흥을 돋우지 못했다. 전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떡메치기, 투호놀이, 짚풀공예는 춘천만의 고유성이 떨어진다.
그 때문일까. 어르신들을 모시고 소양강문화제에 갔더니 재미없다고 빨리 돌아가잖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옛 추억을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참 재미있었어”라고. 개인 대항으로 그네를 탄 이야기, 미인선발대회, 소양강 가요제, 마을 대항 민속놀이, 마을 대항 줄다리기, 춘천 무당들의 전통 굿 대회, 개회식과 함께 시작한 외바퀴수레싸움의 화려한 퍼포먼스 등이 어르신들의 추억에 있었다. 그 가운데 길놀이는 정말 볼만했다. 중고등학교 밴드부, 취타대, 여학생들의 한복 행렬, 마을농악대, 군악대 등의 화려한 행렬이 있었고, 특히 접객업소 아가씨들도 초롱을 들고 한복을 곱게 입고 길놀이에 동참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옛 추억 속의 소양제는 모두 참여형 향토문화제로 구성돼 있었다.
향토축제가 가진 본래의 속성이 추억 속에 살아 있었다. 구경만 하는 축제는 축제가 아니다. 향토축제에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난장(亂場)이 있고, 음주가무와 원시종합예술이 연행되어야 한다.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며 강림한 신(神)을 즐겁게 해서 돌려보내야 안녕과 복을 내린다.
아무리 시대 따라 변하는 게 사람 사는 일이라지만, 향토문화제가 가진 정체성은 살려야 하지 않을까. 추억을 불러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