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수도원운동의 대가 안토니우스
1. 어린 시절과 소명
안토니우스(St. Antonius, 251-356 A.D.)는 아리우스 이단과의 신학 논쟁으로 유명한 신학
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가 그에 관해 기록한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를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이 전기에 의하면 그는 이집트의 콥트인으로서, 신앙심
이 독실하고 부유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18세 무렵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그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동생과 함께 고아가 되었다.
어느날 그는 교회에서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 즉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 19:21)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말씀이 바로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
이라고 느낀 그는 가서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어린 여동생을 그 마을 교회에 속해 있는 수녀원에 맡기고(나중에 그녀는 그 수녀원의 지도
자가 된다) 일평생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2. 초기의 수도 생활과 영적 전투
우선 그는 평생을 은둔자로서 기도하면서 살아온 이웃 마을의 노인에게 수도 생활의 조언
을 청했다. 그리고 마을 외곽에 자리잡은 무덤 속에 들어가 독수도(獨修道) 생활을 시작했
다. 그는 노동과 기도에 힘쓰면서 밖으로 전혀 나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
으면서 매 순간 하나님만을 발견하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대해 마귀는 온갖
유혹으로 그를 넘어뜨리려 했다. 온갖 세상 염려로, 음란한 생각으로, 격정적인 사념(邪念)으
로 그의 마음을 점령하고자 했으나, 안토니우스는 노동과 금식과 기도로 대적하였다.
홀로 있는 그에게 마귀의 유혹과 시험은 날로 강도를 더해갔다. 심지어 밤중에 귀신들이
몰려와서 온갖 소음과 두려운 환상으로 위협했고, 종내는 그를 구타했으며, 이 때문에 그는
심한 고통으로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마귀에게 굴복하지 않고 말씀으로 대적하
자, 마침내 마귀의 군대가 쫓겨가고 하늘문이 열리면서 주님이 그에게 빛 가운데 강림하셨
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곳에 있었다. 너의 싸움을 지켜보며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네가 잘 참고 물러서지 않았으니, 나는 영원히 너를 도울 것이고 너를 온 세상에 알리겠다"
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의 나이가 35세였다.
그 후 그는 더욱 깊은 사막(광야)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리스도를 따
르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운동 선수들(athletae Dei, 고전 9:24-25)이라는 사실을 알았
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완전(소위 완덕(完德))을 향하여 선한 경주를 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뒤지면 상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열심을 품고 완전을 향해 나
아가려고 했다. 이같은 영적 완전을 향한 노력이 극기와 금욕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당시
고대 교회의 관습이었다. 특히 사막에서의 수도 생활은 모세의 광야 생활, 엘리야의 광야 체
험 및 예수께서 세례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것과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 광야에
서 3년간 수도했던 성경 전통의 연장으로서 간주되었고, 영성 훈련의 유력한 방법으로 생각
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모의 사막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에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다. 안토니우스는 이같은 선배 은둔자들의
모든 장점을 연구하고 본받으려 했다.
그는 우선 "바깥 산"이라고 그가 부른 이집트 사막의 오지에 이르러 그곳에 있는 폐허가
된 요새에 홀로 들어가 20년 동안 독수도 생활을 하였다. 1년에 두 번 지붕에서 내려주는
빵을 받아 하루 한끼 빵과 물과 소금만의 식사를 하면서 수도하였다. 마귀는 거듭 무리지어
그를 공격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주안에서 강건하고 맑은 영혼으로 단련되었다. 20년만
에 그가 요새로부터 나왔을 때 그는 살이 찌지도 야위지도 않았고, 이전과 동일한 몸에 맑
고 평정한 영혼(apatheia)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때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안토니우스에게
몰려들어 함께 수도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집트의 사막 속에 수도사들로 "도시가 이루
어졌다."
3. 콜짐산에서의 수도 생활
이에 그는 사람들을 피해 더욱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가 "안쪽산"이라고 부
른 콜짐산에 이르러 새로이 독수도를 시작했다. 그는 여생을 이곳에서 살면서 가끔 바깥산
을 방문하여 수도사들을 가르쳤다. 그는 홀로 머물면서 날마다 고된 훈련을 하였다. 그는 인
간의 덧없는 삶을 묵상하였고,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썼으며, 심지어 먹고 마시는
육체의 일에 신경쓰는 것마저 부끄러워하였다. 우리는 몸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간만을
조금 할애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보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매일 해
진 후 한 번 식사하였다. 또한 바구니를 짜는 힘든 노동으로 자신을 단련하였다. 로마황제
막시미니아누스(Maximinianus, 305-308)가 교회를 박해할 때 수도처를 떠나 순교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로 갔으나, 순교자의 면류관을 쓰는데 실패하였다. 산으로 돌아온 그는 더욱 힘
든 수도 생활에 도전하였다. 사막의 수많은 야수들이 그와 함께 거했으나, 그로 인해 해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함께 사이좋게 동거하였다. 그는 노동과 금욕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대로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였다. 그는 산 속에서도 온 세상의
되어지는 일을 볼 수 있었으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야로 중보하였다. 그를 통하여 원근각
처에서 무수한 신유와 이적이 일어났다. 그는 105세로 죽기까지 육신적으로 지극히 건강했
고, 정신이 맑고 말이 분명하고 조리가 있었다.
4. 안토니우스의 인격과 교훈
그의 성품은 관대했고 개방적이었다. 영혼은 겸손했으며, 지혜와 명철, 인자와 온유의 사
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엄격하게 훈련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와 대면한 사람들은 그가 극단적인 금욕 생활을 하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럽고 균
형잡힌 육체와 정신의 소유자라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으나,
성령의 지혜로 당대의 저명한 철학자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욕망을 철저히 죽이
고 육신을 굴복시키는 생활을 하였지만, 치우침 없는 원만한 신앙 인격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령의 지도와 인도 안에 있기만 하다면, 금욕 훈련을 통해서도 원만한 기독교 영성
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금욕주의는 자기 육체의 공로를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자기 영
혼의 시선을 돌리려는" 것으로서, 하나님과 자신의 영적 교제를 가로막는 모든 육체와 세상
의 장벽을 철저히 제거하려는 노력이었다. 이같은 방식을 일반적으로 수덕적인 영성훈련
(askesis)이라고 부른다. 그는 수도사는 직접 사형장에서 순교하지 못해도 "매일 양심의 순
교"를 할 수 있으며, 이는 또 하나의 순교라고 가르쳤다. 그는 수도사들에게 "오직 날마다
새로 시작하듯이" 헌신을 키워갈 것과, 한결같은 열심을 간직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세상에
서 무엇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품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성품만을 소유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저녁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종말론적인
자세로 살아갈 것을 가르쳤다. 그는 마귀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몸소 체험했으며, 그
의 십자가의 능력을 힘입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영적 전투에 있어
고대 교회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영성 훈련을 받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훈련하기 위해 육체적, 환경
적으로 다양한 고난을 허락하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점차 변화, 훈련, 성장, 성숙하게 하신
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원하여 극심한 고난의 삶을 택했으며,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더욱 힘들고 어려운 수도 생활을 시도하였다. 이같은 그의 삶은 당시 고대 세계에 풍부한
영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오직 단순과 절제 생활을 통해 거룩함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의 거룩한 단순성(holy simplicity)의 가르침은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영성인 수도원 영성의
개화(開花)에 기여하였다. 교부 어거스틴은 젊은 날에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사로 생활하면서
로마의 고급 관리들이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읽고 감명받아 세상을 등지고 수도사로
자원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로 인해 마음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밀라노 정원에서 저 유
명한 회심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고향인 북아프리카에 돌아가서 수도원을 만들었고, 마침내
위대한 교부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안토니우스는 세계 최초의 수도사는 아니었지만 특별히
기독교적 동기를 가지고 사막 깊숙이 들어간 최초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며, 독수도 운동
의 대가로서, 그의 행적을 통해서 수도원 운동은 교회 내에서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얻게
되었다.
<참고서적>
아타나시우스. 성 안토니의 생애, 은성출판사.
브래들리 홀트. 기독교영성사. 은성출판사.
앤드류 루스. 하나님의 광야. 은성출판사.
리차드 포스터. 생수의 강. 두란노.
존스와 야놀드와 와인라이트. 기독교영성학. 도서출판 영성
[출처] 사막 수도원운동의 대가 안토니우스 (청계산기도원) | 작성자 순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