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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0일 화요일. 종일 비가 소록소록 속삭이며 따라다닌 날의 일기
박경선
어젯밤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영남수필문학회에서 성지순례 가는 날인데……
그래도 좋았다. 이런 날 낭만이 부슬부슬 따라올 수도 있으니. 8시 30분 현대백화점 앞으로 가니 먼저 와서 기다리는 회원들의 얼굴이 반긴다. 공진영 선생님도 배웅차 나와서 20만 원을 찬조하고 가셨다. 돌아가는 뒷모습 발걸음이 약간 위태롭다. 우중인데 위험한 길을 일부러 오셔서 후배들을 배웅해 주고 가시다니. ‘91세 저 연세에 나도 저렇게 멋있게 늙어 갈 수 있을까?’ 아름답게 늙어 가는 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내당성당 · 하목정 · 삼가헌 · 왜관성당 · 베네딕도 수도원 · 가실성당을 거쳐 시내 ‘옛집’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일기를 쓰려고 앉았다. 돌아다니며 열심히 들었지만 들은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찍어 온 사진과 인터넷의 자료들을 찾아보며 정리해 봤다.
<내당성당>
9시에 출발한 버스가 15분 만에 첫 방문처인 내당성당에 닿았다. 건너편에는 굿모닝병원이 있어 자주 지나쳐 본 성당인데 일부러 찾아와 보기는 처음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하늘을 향한 첨탑, 높은 내부 공간, 스테인드글라스의 중세 고딕 교회 모습이 아니다. 최상대 회장이 신문에 연재한 성당 내력을 카톡방에 미리 올려 둔 걸 대충 읽어 보고 왔다. 내당성당은 ‘3단 스텝 피라미드’ 형태의 기하 입방체 건물이다. 들어가는 문도 정방형 네 모퉁이 양쪽에 8개로 활짝 열려 있다. 회중석으로 ‘참여·소통·개방’을 의미한단다.
이 성당은 계산성당이 세워지고 60여 년이 지난 1966년, 대구 서구 내당동 언덕 위에 세워졌단다. 외국에서도 선례를 찾기 힘든 3단 스텝 피라미드 형태의 성당이라니. 하늘에서 내려다본 성당은 쌓아 올린 십자가 형상의 조형이다. 회중석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성이 없는 사방 공간이 넓게 나타난다. 회중석은 ‘ㄷ’자 형태 세 방향으로 배치되었는데, 회중석보다 몇 단 낮은 가운데에 제대가 있다. 장방향의 긴 거리가 아닌, 가까운 자리에 둘러앉은 신자들은 낮은 곳의 제대를 편히 바라보게 된다. 낮은 위치의 제대는 하느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것을 의미하는 정신이란다. 이 성당에서 내 마음에 가장 와닿는 부분이다. 구유에서 나신 예수님을 경배하려면 이렇게 낮은 곳에 계심이 마땅하다. 유럽 여행을 하다가 휘황찬란한 성당 안이나 화려한 옷을 두르고 서 있는 성모상을 만나면 울고 싶어진다. 우리의 어머니가 아닌 모습이어서... 올해 6월에 완공된 가우디가 건축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전도 너무 화려해서 성모님이 계시기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으실 것만 같은데?
벽면에는 스테인드글라스 빛 디자인 천장이다. 십자가 현판이 매달려 있는 제대 상부는 가로세로 크기가 같은 로만 십자가(Roman cross) 형상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성당은 겹친 십자가 형상과 다이아몬드(하느님의 고귀한 보물) 결정체를 상징한단다. 고귀함보다 화려함이 돋보이는 것은 왜일까? (내 사고가 병적일까?)
이곳은 1966년부터 성당 주변에는 한센인 수용소가 있었단다. 주변은 초가집만 있는 동네였고 언덕 꼭대기의 현대적 성당 모습은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설립 당시 초대 주임신부는 오스트리아 신부였다. 고국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에 성전 건축비 모금 운동을 펼쳐 건물이 세워졌고, 1966년 11월 힘들게 축성된 성당이 20년 동안 원래의 모습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신자 수 증가로 ‘ㄷ’자형 일반 회중석으로 개조하였다. 개조 공사 이후 초기 성당의 가치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고, 2021년 박장근(베드로) 신부가 부임하며 복원 공사에 돌입했다. 유적 발굴 현장처럼 바닥과 벽 부분을 해체하며 초기 성당 형태를 되찾아 오늘에 이른다. ‘울 교수’는 고려청자 색의 타일을 구하느라 애정을 쏟았단다. 지난 4월, 초기 건축 모습의 성전으로 복원했다 한다.
이런 역사를 전혀 몰랐다가 오늘 성지순례 여행으로 조금 알게 되어 옆에서 가르쳐 주는 건축가 회장의 존재가 더 크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건축물은 사라지고 부서지고 헐리고 다시 지어지는 역사를 가지게 될지라도, 그 종교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되어 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찾아보았다.
<하목정>
가까이 있는 달성 하목정으로 갔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낙포(洛浦) 이종문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하목정’이라는 정호(亭號)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 준 것인데, 당나라 왕발이 지은 《등왕각기(騰王閣記)》 서(序)에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아가고(落霞與孤鶩齊飛) 가을 물은 먼 하늘색과 한 빛이네(秋水共長天一色)”라고 쓴 데서 따온 것이다.
또한 일반 백성들의 주택에는 서까래 위에 덧서까래인 부연(附椽)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이 안타깝다. 별 간섭을 다 받고 살았으니) 사랑채로 사용하는 이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우측 1칸에는 앞쪽으로 누 1칸을 첨가하고 뒤쪽으로는 방 1칸을 더 만들어 평면이 정자형(丁字形)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의 양쪽 추녀를 조금씩 잘라 처마 끝을 둥그스름하게 만든 방구매기 수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건물 내부에는 김명석, 남용익 등 명인들이 남긴 시액(詩額)이 걸려 있다.
<삼가헌>
달성 삼가헌 고택(達城 三可軒 古宅)으로 갔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04호인데 하빈면 묘동에 있었다. 충정공 박팽년(1417∼1456)의 후손인 순천 박씨들이 정착하여 묘골마을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파회마을에 자리 잡은 조선 시대 주택이다. 이 집에 대를 잇는 자손이 사는데 대문에 들어서자 진돌이가 왕왕 짖어대었다.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대청 마루에 회원들이 걸터앉으니 그제야 녀석이 짖기를 멈추고 바라본다. 똥개가 아닌 이 개도 학문을 닦고 혈통 있는 진돗개 집안의 자손일까 싶다. 저번에 방문한 누구는 진돌이를 보고 ‘역지사지’ 생각으로 ‘함부로 사진 찍지마. 나에게도 초상권이 있다구.’ 하는 디카 시 한 구절을 찾아갔단다.
주인은 어디를 가든 그집 마루에 올라앉아 먼곳을 바라봐야 바로 그 집 절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한 말씀하시는데 인상 깊었다.
삼가헌은 조선 후기 영남 내륙 지방 양반사대부가의 대표적 주택으로, 넓은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 외에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별당인 하엽정과 여러 부속채를 거느리고 있었고, 배치 형식은 19세기 초 사대부가의 공간 구성과 생활상을 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되겠다. 박팽년의 11대손인 박성수가 1769년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삼가헌이라 했다. 둘째 아들 박광석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1826년에 초가를 허물고 현재와 같은 정침과 사랑채를 지었다. 별당인 하엽정은 광석의 손자인 규현 대에 파산서당으로 이용하던 건물에 누마루를 달았다. 그 마루가 오늘은 까만색으로 반질거리는 모습이 오랜 세월을 물고 온 얼굴처럼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옆쪽에 작년부터 연못을 만들었단다. 언뜻 보기에, 대구수목원의 연못을 닮아 있었다. 마당 가득 큰 연못을 파놓은 것을 보니 공사중인가 보다. 정원 가쪽에 속이 파인 고목 한 그루가 받침대에 몸을 의지해 비스듬히 서있다. 쓰러져가는 고목이라도 연못에 연꽃이 피고 물이 차면 멋이 출출 흘러내릴까?
삼가헌을 돌아 나오니 온 동네 식당이 장어구이 간판을 달고 있다. ‘웬일?’ 우리는 쌈채소 식당을 찾아가 푸짐한 채소로 주꾸미랑 돼지고기를 우렁쌈장에 찍어 먹으며 모두 만족스럽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차에 올랐다.
<왜관성당>
왜관성당 입구에 대구대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기념비 돌상이 서 있었다. 대구의 5만 레지오 단원들의 정성과 뜻을 모아 2007년 대구 도보 성지순례, 묵주기도 1억 단 봉헌 운동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1894년 가실성당이 천주교 박해 속에서 설립된 뒤 1928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구 왜관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붉은 벽돌과 높은 첨탑, 반원형 아치 창문이 특징이다. 한국전쟁 당시 총탄과 포탄으로 건물이 크게 손상되었단다.
북한과 중국 연길 지역 등에서 활동하던 수도자들은 피난과 이동을 거쳐 왜관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자리한 왜관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성장과 근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간직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칠곡 지역의 천주교 역사는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해를 피해 신나무골과 한티, 왜관 인근에 모여 살던 신자들은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고, 1894년 가실성당이 설립된 뒤 천주교는 이 지역에 더욱 깊이 뿌리내렸다. 1928년, 가실본당에 속해 있던 왜관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구 왜관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붉은 벽돌과 높은 첨탑, 반원형 아치 창문이 특징인 이 성당은 1932년 축성된, 서양의 성당 건축 양식과 한국 현장의 기술이 만나 탄생한 근대 종교 건축물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비극으로 총탄과 포탄으로 건물이 크게 손상되었지만, 전쟁의 고비를 넘긴 뒤 복구되어 다시 공동체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단다. 성당의 역사는 건물의 역사를 넘어, 종교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가 함께 공존하리라.
<베네딕도 수도원>
전쟁은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북한과 중국 연길 지역 등에서 활동하던 수도자들은 피난과 이동을 거쳐 왜관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1952년 설립된 왜관수도원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구 왜관성당은 수도원의 초기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에는 알빈 슈미트 신부가 설계한 새 왜관성당이 들어섰다. 전통적인 서양 성당 양식에서 벗어나 신자들의 공간을 부채꼴로 구성하는 등 보다 자유로운 건축적 시도를 보여 준다. 이처럼 왜관성당은 한 시대의 종교 건축물에 머물지 않는다. 박해 속에서 시작된 신앙, 일제강점기의 공동체 형성, 한국전쟁의 상흔과 복구, 피난 수도자들의 정착, 현대 성당 건축의 변화가 한곳에 겹쳐 있다.
전시실의 자료들을 보다가 호노라도 밀레만 신부의 유품 중, 깨알 같은 글씨로 정성껏 적어 둔 메모 노트를 보았다. 최명희의 혼불문학관에 갔을 때 그녀가 적어 둔 깨알 글씨 메모들이 클로즈업되어 떠올랐다. 제 삶을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의 흔적이야말로 누구나 흉내 낼 수 없는 고귀한 삶의 증언처럼 저런 유품을 남길 수 있겠다.
경건한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곱씹어 보며, 베네딕도 수도원 뒤쪽 숲속 십자가의 길을 찾아 들었다. 비에 젖은 지붕과 이끼 낀 돌계단이 가을의 운치를 정겹게 날려 준다. 젖은 낙엽들도 식탁과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1처에 들어서면서부터 예수님의 고초가 내 마음을 슬프게 흔들어댄다. 아무도 없다면 예수님을 안고 함께 울고싶었다.
“아이야, 너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따스함을 나누는 삶을 살아라.”
십자가의 길을 돌아 내려오는 묵상 또한 마음을 스산하게 한다.
그러나 가지가 휘어지도록 감을 달고 하늘을 채우고 있는 감나무가 곱다. 그저 감사하다. 아니, 저런 가을 정경을 볼 수 있는 내 시간이 감사하다. 그 아래쪽 주차장에 우리가 타고 온 빨간 버스가 장난감 자동차처럼 예쁘게 서서 감나무 가지 사이에 언뜻 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도 숨바꼭질 중인양 정겹다.
“가을은 참 예쁘다. 하루하루가 코스모스 바람을 친구라고 부르네. 가을은 참 예쁘다. 파란 하늘이 너도나도 하늘에 구름같이 흐르네~♬”
박광수의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고, 붓을 들어 이 가을의 풍성한 풍경을 캔버스 위에 한가득 그려보고 싶다.
주님, 오늘도 제 다리로 걸어다닐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가을 속에 제가 머물수 있음도, 새 친구를 만남도...
[영수 ㅡ김아가다선생님] [오후 3:12] 이연희 작가님 환영합니다. [영수 ㅡ김옥자선생님] [오후 3:14] 이연희 작가님 영수가족 되심을 격하게 환영합니다~~ [영남수필 ㅡ김성문 교장.가야연구원장] [오후 3:14] 이연희 작가님 크게 환영합니다.*^* [가.영수 ㅡ하정숙회장님] [오후 3:18] 이연희 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영수ㅡ최상대선생님] [오후 3:28] 사진 [영수 ㅡ김옥자선생님] [오후 3:29] 핑크 3인방~ㅋ [영수ㅡ최상대선생님] [오후 3:29] 새 식구 반갑습니다. 이연희님. 양쪽에서 붙잡고 영남수필로 끌고오는 장면. [영수 ㅡ김옥자선생님] [오후 3:31] 그리고 뒤따르는 포졸 1인~ㅋ [김남희] [오후 3:36] 즐거워 보여서 보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영수 ㅡ신미경선생님] [오후 3:44] 이연희님 환영합니다 문운이 활짝 피시길요 [영수 ㅡ고윤자 선생님] [오후 3:51] 이연희 작가님 환영합니다. [이연희엘리사벳] [오후 4:16]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경아 ㅡ임우희.소피아ㅡ수필] [오후 4:56] 크게 환영합니다 ㆍ^^ [김금자(아셀라)] [오후 5:11] 이연희선생님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영남수필 박보현샘ㅡ] [오후 5:28] 이연희 선생님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
2026년 10월 22일 목요일 (격려주신 댓글 모음)
[가.경아 ㅡ임우희.소피아ㅡ수필] [오전 9:01] 👍 이 기록은 대단한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일기로 쓸 수 있는지 정~말 경이롭습니다... 존경합니다. 💕
[영수 ㅡ김아가다선생님] [오전 9:08] 박경선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핑크 포섭도 좋았구요. ㅎ
[박미정 영남수필 ㅡ동시] [오전 9:11] 박경선 선생님, 정성이 가득 담긴 글, 잘 보았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영남수필 ㅡ김성문 교장.가야연구원장] [오전 9:18] 박경선 교장선생님!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대단하셔요.♡♡♡
[영수ㅡ최상대선생님] [오전 9:38]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를 한꺼번에 읽는 박경선 선생님의 글입니다. 글 쓰는 자세 품격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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