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날 (음력 1월8일)
곡식날은 사람의 생명을 지탱해 주는 곡식과 곡식을 생산하는 업인 농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가을에 갈무리해 둔 씨앗을 잘 살펴 한 해 농사를 정초부터 준비하자는 의미에서 비롯된 세시풍속이며 음력 정월 초여드렛날 이다
곡식날의 대표적인 행사라 할 수 있는 콩볶기는 일종의 예방의례적 성격이 있지만 겨울철에 부족한 영양소를 콩에서 섭취하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유풍이라고 할 수 있다.
풍작을 기원하고 풍흉을 점치는 의례를 가지는 곡식날의 풍습을 요즘에는 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날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들을 점검하고 심을 준비를 해두면 풍년이 든다고 하며, 닭장·외양간·돼지우리를 치운 거름을 논밭에 내고 보리밭에 거름을 주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오곡을 볶아 먹거나 떡을 해 먹기도 하고, 또 국수를 섞은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곡식을 볶으면서 일종의 주술적인 행동을 통해 좀이나 쥐와 같은 해충과 잡초로부터의 피해를 예방하고, 음식이 익는 현상이나 짚을 태워 남은 재의 양으로 풍흉을 점치는 의식이 있다.
정초 의례의 하나로, ‘칠인팔곡(七人八穀)’이라 하여 초이렛날인 ‘사람날[人日]’의 다음날이 ‘곡식날[穀日]’이 된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곡식날이 따로 없고 정월 첫 쥐날[上子日]이나 첫 용날[上辰日] 또는 14일에 곡식날과 같은 의례를 행하는 곳이 많다.
곡식날의 가장 큰 의미는 곡식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씨앗을 잘 관리하여 농사를 잘 지으려 함이다.
이날 오곡(쌀·보리·조·콩·기장)을 볶아 먹으면 곡식에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하여 ‘좀날’이라 할 정도로 좀이나 쥐와 같은 해충으로부터 씨앗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크다.
그리고 곡식날 곡식을 내다 팔면 집안의 복이 함께 나가고 흉년이 든다고 하여 이를 금기시하였다.
오곡 가운데 특히 콩을 볶아 먹는 경우가 많은데, 볶은 콩을 먹으면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고, 콩을 볶으면서 “콩 볶자.”, “쥐 볶자.”, “새삼 볶자.”, “새알 볶아라.”, “콩알 볶아라.”, “쥐알 볶아라.”는 등의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여 외친다.
이는 해충이나 잡초들로부터 피해를 막으려는 일종의 예방의식이다.
또한 수수깡으로 보리나 나락 모양을 만들어 거름에 묻어두고 아이들이 거름을 흩어버리게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때 곡식 모양이 쓰러지지 않으면 그것을 태워서 남은 재를 도토리 껍질로 계량하여 재가 많으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국수가 섞인 수제비를 끓여 먹기도 하는데 국수는 줄기를, 수제비는 열매를 상징하여 이들이 빨리 익으면 농사도 빨리 된다고 믿었다.
지역사례
곡식날의 풍습은 경상·전라지방에서 비교적 잘 전해지고 있다. 콩
을 볶아 먹는 풍습은 지방마다 차이가 있다.
경남 거창에서는 밭에서 불을 피우고 콩을 볶는데 그래야 잡초가 덜 난다고 한다. 김해에서는 콩을 심을 밭에서 “새삼 볶자, 새삼 볶자.” 하면서 콩을 볶아 밭에다 뿌리는데 그렇게 하면 새삼이라는 잡초가 나지 않아 콩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다.
새삼은 한해살이 잡초로 잎은 볼 수 없고 덩굴로 자라는데, 콩과 같은 기주식물(寄主植物)을 휘감고 거기에 뿌리를 내려 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콩밭에 새삼이 나면 농사를 망친다.
그런데 충북 옥천에서는 새삼이 아니고 “해삼 볶자.”고 하는데 여기서는 해삼이 벼가 누렇게 말라 죽는 병이라고 한다.
또한 콩을 볶으면서 하는 소리도 “콩 볶자.”, “쥐 볶자.”, “해삼 볶자.”, “왜놈 볶자.” 하여 쥐와 병 그리고 일인(日人)들을 방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곡식날이 정월 초여드렛날로 정해진 곳은 경상·전라지방의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곡식날이 따로 없다.
강원 춘천·영월·정선·평창, 경기 평택, 축북 제천·충주·옥천·아산, 경남 기장에서는 정월 첫쥐날에,
충북 단양에서는 용날[辰日]
그리고 경기도 고양에서는 14일에,
영동에서는 정초 아무 날이나 하루를 정해 오곡이나 콩을 볶아 먹는다.
쥐날에 곡식날 의례가 많은 것은 쥐가 곡식을 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양에서는 콩 볶는 일을 ‘좀볶기’라 하고 용날에 좀볶기를 해야 곡식에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는 곡식날에 금줄을 치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8일이 패일(敗日)과 중국어 음이 같기 때문에 잘못 전해진 풍속으로 곡식날과는 관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