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이 곳 3기 지대방에 연재했던 글을 다시 이어서 씁니다.
다녀가시는 분들, 재미삼아 미소로 보시고, 행복한 새해 맞으시길... ^^ ()()()
7.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단기출가학교 3기를 졸업한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자원봉사 차 월정사를 자주 오가던 터에,
합창단 지선보살님으로부터 4기 후배님들을 위한 <작은음악회>에 함께 연주하자는 요청이 있었다.
당시에는 단기출가학교 프로그램 안에 저녁 나절 행자님들을 위한, 그야말로 "작은" 음악회 순서가 있었다.
피아노, 기타, 플룻, 그리고... <첫마음으로> 를 비롯한 여러 찬불가들을 행자님들과 함께 노래했었다.
(여기서, 사족이지만 저의 직업과 관련된 과거를 잠시 언급하고 갑니다.)
나는 (음악과 무관한 전공의) 대학을 졸업한 후, 국내 및 일본에서 전문적인 음악 연주를 다시 공부한 이력이 있다.
어릴 때부터 악기를 좋아했었고, 학창시절 음악 동아리에서 오래 연주를 했었기에,
직업적 연주자로서의 진로를 꿈꾸며, 졸업 후 늦깎이 음악 공부를 몇 년 더 했고, 결국은 직업 연주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무렵은 갑작스런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연주 활동을 포기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중이던 때이기도 했다.
초파일 전날 콘트라베이스를 차에 싣고 월정사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저녁 무렵... 단기출가학교 4기 행자님들과 법륜전에서 조촐한 <작은 음악회> 행사를 했다.
음악회를 마치고, 재무스님(법상스님) 방에서 수고하신 다른 분들과 함께 다과를 나누고는,
휴식을 위해 이른 저녁 배정받은 동별당 숙소로 향했다.

고즈넉한 월정사의 늦봄 저녁...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으니, 법당에서 조용히 좌선을 하든지 절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해보는 악기 연주에, 스스로 만감이 교차하여, 홀로 전나무숲길을 나선다.
어둑어둑해진 전나무숲길과 일주문을 지나, 매표소 옆 보배식당에서 감자전에 가볍게 동동주도 한 잔.
외로운 뒷풀이를 짧막하게 마치고 나는 다시 큰절로 향했다.
내려올 때는 숲길로 왔으니, 올라갈 때는 큰 길로 가리라.
달 없이 밤하늘이 맑게 갠 날은, 저녁 무렵 캄캄한 밤길 포행이 참 좋았다.
그 쏟아질 듯한 별빛들 사이로, 마치 '무소의 뿔처럼' 오대 속을 홀로 걸어가는... 아 지금도 물론 다시 해보고 싶다.
그러나,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길 옆을 흐르는 오대천의 방둑이 때로는 야트막하지만 때로는 상당한 높이라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밤길 보행은 자칫 큰 위험이 따른다.
하물며 그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 별빛도 없고, 초파일 행사 차량들로 길에는 밤늦게까지 자동차의 행렬이 이어졌다.
오고가는 차를 피해 가장자리로 천천히 걷다가, 잠시 소피도 볼 겸 오대천에 바싹 붙어서는데...
아차차! 발이 칠흙같은 허공을 내딛는 순간, 나는 3~4 미터 높이에서 그대로 추락했다.
떨어진 곳이 돌 아닌 흙이라서, 다행히 큰 충격은 없었던 듯, 정신도 말짱하고 다만 다리가 많이 불편했다.
일어서려 했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다리를 만져보니.. 어? 부러졌다. 통증도 천천히 시작된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찾았다. 다행이다. 신호가 잡힌다.
정신을 가다듬고는 119 에 구난 전화를 하고 위치를 설명했다.
십여분 후 구급차가 도착하고, 나는 응급구조대원들의 들것에 실려 엠블런스와 함께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담담했다. 다리 골절상 이외의 별다른 상처도 없었다.
응급 수술을 위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단다. 수술 날짜는 다음날로 잡혔다.
왜 그랬을까? 나는 '덧버선 행자님'이 문득 떠올랐다.
부모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굳이 수술 동의를 위해 보호자를 찾자면 분당에 계시는 누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밤 늦은 시간 '덧버선 행자님'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저 일불 행자님, 놀라지 마시고요...
부탁이 있는데, 내일 아침에 강릉 아산병원으로 와주실 수 있어요? 이유는 낼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큰 기대는 안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간단했다. " 네, 그럴게요."

다음날 일불 행자님과 나는 담당 의사와 상의 후, 집 근처 일산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낫겠다 판단하여
다시 구급차를 같이 타고 일산으로 향했다. 물론 나는 임시 깁스와 함께 구급차 안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덜컹거릴 때마다 통증이 다리에 그대로 전해졌지만... 문제 없었다. 그것은 좁은 공간 둘만의 첫 데이트였기에...
일산병원에서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한 달 간 더 입원했다.
근처 행신동 백양중학교에서 근무중이던 일불 행자님은 거의 매일을 내게 문병와서 위로해 주었다.
"새옹지마" 란 이럴 때도 붙일 수 있는 고사(古事)이리라.
단기출가학교의 가피에 취해 하늘을 걸어다니는 기분일 때 갑작스런 골절 사고로 큰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 수술의 와중에서 또 평생의 인연이 새로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因緣)으로...
나는 '덧버선 행자님'과 조금씩 연인(戀人)이 되어 가고 있었다. ()
2014. 12. 29. 선일
0. 출가
1. 자자회
2. 꿈길과 버스안에서
3. 탁발 그리고 덧버선
4. 채공
5. 자원봉사, 수광전 보살님
6. 프로방스의 스파게티
7.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8. 크리스마스 출산
9. 함께하는 수행의 길
(MBC 출가 Original Sound Track)
첫댓글 귀한 인연이십니다. _()_
그만큼 잘 살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원행법우님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