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탄자부르 호텔 체크 아웃.
호텔 앞에서 터미널 가는 시내 버스 탑승.
터미널에 오니 , 바로 출발하는 마두라이 행 버스가 있다.
말이 시외 버스이지 상태는 시내버스보다 못한 상태이다.
11시 30분 푸다코다이에 도착하니 승객 대부분이 내리고 그 만큼 다시 탄다.
푸다코다니는 탄자부르와 마두라이 사이에 가장 큰 마을이다.
2시경에 마두라이에 도착. 3시간 30분 운행거리의 요금이 우리돈으로 1700원이다.
마두라이 터미널은 시내 중심에서 10키로 떨어져 있는외곽이다,
경찰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버스편을 물어보았다.
숙소에 전화를 하고 난 후, 시내버스 700번을 타고 종점에서 다시 55U로 갈아타라고 한다.
lost guest house에 예약을 한 것이 아님으로 버스종점 근처에서 숙소를 찾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추천해준 college hotel에 짐을 풀었다.
6층의 오래된 호탤로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저렴한 호텔이다.
에어컨도 없고 wifi도 안된다고 한다. 1000루피에 하루만 예약.
휴식을 취하고 난 후 lost guest house을 찾아갔다.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전형적인 배낭여행자 숙소이다.
8인실, 침대 당 600루피에 2일간 예약.
주인의 도움으로 인터넷으로 28일 오후 8시 45분에 출발하는 코치행 야간버스를 예약.
두 사람 차비 1450루피, 29일 아침 6시에 도착예정.
마두라이는 인도 동남부 타밀라드 주의 중심에 있는 도시이다,
세개의 구릉으로 둘려싸인 아담한 옛도시이다
4ㅡ11세기 판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미낙시순다레슈바라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1310년 마두라이가 모두 파괴된 후 16세기 비자야나가르 왕조시대 다시 복원되었다.
도시 성벽은 1837년 영국인들이 도시를 확장할 목적으로 없애버렸다.
마두라이는 판디아 왕조이후 촐라, 비자야나가르 ,이슬람, 마라타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영국에 넘어갔다.
1940년 영국에 대항하는 시민불복종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도시이기도 하다.
lost guest house의 다인실과 공용공간.
8시 30분 숙소에서 골목으로 나오니 사람들로 혼잡하다.
인도 사람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듯하다.
이른 시간임에도 거리는 사람으로 혼란스럽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마두라이 최대사원 미낙시 Meenakshe 사원이 있다.
탄자부르는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이고, 트리치는 비쉬뉴 신을 모시는 사원인 반면
이 곳 미낙시 사원은 시바의 부인 미낙시를 모시는 사원이다,
고푸람은 사원으로 들어가는 탑 모양의 입구이다.
미낙시 사원은 고푸람이 5개 있다. 동문이 2개, 서,남,북 문이 하나씩있다.
고푸람 안쪽 사당은 신발과 가방을 모두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서문에 있는 고푸람.
북문 고푸람은 신상으로 장식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건축물로 장식되어 있다.
고푸람으로 둘려싸인 사원 안에는 독립적인 사당들이 있다.
가내샤를 모시는 사당.
가네샤는 코끼를 의미한다. 축문을 하고 가는 브라만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sorry라고 하면서 돌아간다.
기둥마다 브라만이 앉아 있다. 찾아 오는 신자에 축문을 읽어 준다.
어느 가족이 브라만으로부터 축문을 받고 있는 관경을 오랫동안 참관했다.
마치 우리내 사주를 보고 있는 모습같다.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람이 브라만이다.
사당 외부 회랑에 있는 난디 예배처. 난디는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소이다.
소를 숭배하고 있지만 실재로는 시바신의 소를 통해 이루어지는 행위를 숭배한다.
남문쪽에 있는 저수조.
저수조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지만 짐작컨데 물은 힌두교에서 신성한 것으로
오염된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역활을 한다.
중앙 사원을 애워싸고 있는 주랑.
이 곳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고 또 하나의 예배처이다.
내부에 있는 시바 신상앞에서.
손이 12개, 오른발은 올린 모습니다.
모든 신상의 모습과 동작은 상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힌두교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흉물스러운 상이지만 신자들에게는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어지기에
그 앞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를 드린다.
중앙 사원은 들어 갈 수 없다.
내부사원의 황금 지붕이 보이는 자리를 원판으로 표시해 두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서문 밖 상점, 노란 코코넛은 녹색보다 속이 다 고소하다.
녹색은 30루피이지만 노란 커코넛은 50루피이다.
사원 주위의 통로 역활을 하는 회랑.
각 석주마다 다른 신 ( 마귀모양 )을 조각.
사원 앞 골목에서 장사를 하는 친절한 아주머니.
꽃 모양의 과일을 크러스터드 애플 이라고 한다.
까만 씨를 둘러싸고 있는 연한 껍질을 먹는다. 연한 단맛이 난다.
씨가 커서 별로 먹을 것이 없다. 아주머니가 원해서 같이 찍은 사진.
lost guest house로 짐을 옮겼다.
오랜만에 주방이 있는 숙소이다. 주택 골목에서 만난 이동식 다림질 아저씨.
골목 하나를 돌아가니 아주머니가 다림질하고 있다.
palace.
입장료는 인도인은 5루피, 외국인은 50루피이다.
외국인 단체관광객에 섞어서 같이 들어갔다.
이 구전은 1636년 나이크 왕조 때 건축물로 전체 궁전의 1/4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극장과 그 부속건물.
극장 내부의 천장과 기둥은 아름다운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궁전을 나와 도로를 건너면 st merry church 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헨드폰 가게에 여러나라 화폐가 진열되어 있어 환전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가게 청년이 전화를 하고 한참을 기다리니 청년의 아버지가 자가용을 직접 운전해서 왔다.
작은 키에 활달한 성격이다.
환률이 1달라에 63루피라고 한다.
첸나이에서 65루피에 환전을 했다고 하니, 환률은 오르고 내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오늘 환률시세를 보여준다.
1달라에 61.9루피이다.
얼마를 바꾸겠냐고 묻는다.
환률만 좋으면 2천 달라 정도라도 하니,
64루피에 주겠다고 한다.
그냥 가려고 하니 계산기로 65×2000= 130,000루피에 500루피를 빼자고 한다.
dana 가 계산기를 받아 250를 더하니 OK라고 한다.
결국 처음 63루피로 계산하는 것보다 3,750루피를 더 받은 셈이다.
하루 숙박비가 12000루피니 3일치보다 많은 돈이다.
아들에게 2000달라와 카드를 주니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로 간다.
무슬림 가족이라고 한다. 2남 1녀 중 장남은 손녀가 하나 있고 가게를 하는 아들은 24살에 미혼이다.
내년에는 가족모두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단다.
아들이 가지고 온 돈은 작은 가방 하나 가득이다.
100루피 지폐로 13만루피면 1300장이다. 100장 묶음이 13장인 셈이다.
다시 은행에서 2천루피 지폐로 교환해 오니 3시 30분이다.
서로 손주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는 60년생.
dana가 누나라고 하니 좋아한다.
아들과 대화를 잘하는 좋은 아버지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일본 아이와 이야기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일본 아이로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 알바로 여행경비를 벌고,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그리고 호주에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세계여행 중인 24살의 당찬 여자아이다.
점심을 먹고 숙소 주인이 소개하는 sunset point 를 찾아갔다.
외진 곳이라 툭툭이는 왕복요금을 주어야 가는 곳이라고 한다.
마두라이는 특이라게 서쪽에만 산이 있다. 그것도 순전히 돌로만 된 산이다.
이 산이 ,sunset point로 힌두교 사원과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 곳이다.
숙소에서 로터리까지 거의 30분을 걸어간 루 21번 버스르 타고 갔다.
도시를 완전히 벗어나 들판 웨에 거대한 바위 하나로 된 산이다.
정상에 올라가 보고 너무 늦은 시각이라 바로 하산했다.
sunset point 돌산 입구에 있는 힌두교 사원.
힌두교 사워 뒤로 바위를 깎아 계단을 만들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자이나교 석상이 있다.
계단 위 , 물이 고여있는 홈 위로 신상을 조각해 놓았다.
석굴 자이나교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뒤에 보이는 초가집이 카페이다. 인도 짜이를 파는 곳이다.
인도 사람들의 금 사랑은 대단하다.
시골 마을로 금 광고를 나온 사람들.
4톤 트럭에 광고판을 싣고 다니면서 광고를 한다.
버스를 기다릴 수 없어 큰길까지 광고차 뒤에 타고 나왔다.
8시 45분 코치행 sleeping bus을 타기위해 버스터미널로 출발하기 전.
숙소 벽에 dana가 써 놓은 안내문.
sunset point에서 찍은 사진.
숙소는 부부가 운영한다.
여주인은 프리아, 남자는 아난드이다.
딸이 둘인 이부부는 인테리이다.
프리아는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아난드는 금융계통의 회사원이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대학 강사와 은행원의 보수나 사회적 지위를 모르니 그들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lost hostel 주인 아난드.
우리가 숙소를 나올 때 프리아만 보고 나왔다.아난드는 숙소에 없어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버스 터미널로 작별 인사하러 찾아 온 아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