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제주번개
태모님은 내원궁 법륜보살
1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금산사 미륵전 남쪽 보처불(補處佛)은 삼십삼천(三十三天) 내원궁 법륜보살(內院宮 法輪菩薩)이니, 이 세상에 고씨(高氏)인 나로 왔느니라.
2 내가 법륜보살로 있을 때 상제님과 정(定)한 인연으로 후천 오만년 선경세계를 창건하기로 굳게 서약하고
3 세상의 운로에 맞춰 이 세상과 억조창생을 구제할 목적으로 상제님을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왔느니라.” 하시니라.
수부, 잘 만났구나
4 이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세상에 오려고 모악산 산신으로 내려와 있던 중에, 상제님께서 오시기에 금산 미륵불로 인도하고 시종하다가
5 상제님께서 개 구(狗) 자 아홉 드는 구구지(九狗地)의 중앙인 시루산 아래 객망리 강씨 문중에 태어나시기로
6 나는 9년 만에 담양땅 고씨문(高氏門)에 태어나서 신씨와 인연타가 상부(喪夫)를 당한 후에
7 수부공사(首婦公事)로 상제님과 만났을 적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8 ‘나는 제주 번개를 잡아 쓰노라. 수부, 잘 만났구나. 만날 사람 만났으니 오죽이나 좋을쏘냐.’ 하셨느니라.” 하시니라.
9 또 말씀하시기를 “뇌성(雷聲)은 백 리를 가고, 지동(地動)은 천 리를 가고, 번개는 천하를 비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20)
삼변이라야 성국이니라
1 태모님께서 오성산으로 이사하신 뒤 하루는 공사를 행하며 말씀하시기를 “삼변(三變)이라야 성국(成局)이니라.” 하시고
2 “오성(五聖)의 기령(氣靈)을 배합케 한다.” 하시니라.
3 또 말씀하시기를 “오성산은 북방(北方) 일육수(一六水)라야 채울 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성산의 형국
4 오성산은 동서양 기계통이니라.
5 오성산은 동서양 전기통이니 번개는 제주 번개를 잡아 쓰리라.
6 오성산은 오선위기(五仙圍碁), 두 신선은 바둑 두고 두 신선은 훈수하고 갈 적에는 바둑판과 바둑은 놓고 간다.
7 오성산에 오성(五聖)이 있고, 성덕리(聖德里)가 있고, 서요동(西堯洞)이 있고, 사옥(沙玉)개가 있느니라.
(증산도 道典 11:369)
먼저 '제주 번개'라는 것이 언급된 곳이 2곳입니다. 처음에는 수부를 만날때, 두번째는 오성산에서 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구절들을 보다보니 둘다 '고수부'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첫번째 수부 정할 때의 상황을 보면
'나는 제주 번개를 잡아 쓰노라. 수부, 잘 만났구나. 만날 사람 만났으니 오죽이나 좋을쏘냐.'
하셨느니라.
하시니라.
즉 천주님께서 저 말씀을 하셨다고 고수부님이 전달하는 상황인거죠. 정말 두 분이 계실때 저 말을 하셔서 다른 종도들은 전혀 들은바가 없고 오로지 고수부님만 들으셨을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대순전경이나 다른 곳에서는 제주 번개라는 단어를 찾을수가 없었는지도요. 여튼.
나 = 증산
'제주 번개를 잡아 쓰노라, 수부, 잘 만났구나'의 구절을 볼 때 '제주 번개 = 수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침 고수부님이 제주 고씨이므로 고수부를 제주 번개라고 봐도 될거 같습니다.
두번째 언급된 문장을 보면
오성산은 동서양 전기통이니 번개는 제주 번개를 잡아 쓰리라.
여기서 제주 번개를 잡아 쓰는 사람은 고수부님이 됩니다. 오성산을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 1933년 용화동에서 오성산으로 교단을 옮길 때 쯤의 말씀인거 같구요.
주어진 문장으로만 파악하면 제주번개가
첫번째는 제주번개 = 고수부님 / 쓰는 분 : 증산
두번째는 제주번개 = ??? / 쓰는 분 : 고수부님
이렇게 주체가 서로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처음에 얘기했듯이 이 두번의 언급 모두 고수부님께서 교단을 세우시고 나서 언급된 것으로 다른 경전을 통해 교차검증을 해야 합니다.
정말 딱 두 분이 계실 때 하신 말씀이라면 .... 검증이 안되겠죠.
# 2. 다른 경전
(1) 대순전경
3장 30절
태인 고현 내행단(泰仁 古縣 內杏壇)에 이르사 경석에게 일러 가라사대 공자(孔子)가 행단(杏壇)에서 강도(講道)하였나니 여기서 네게 한 글을 전하리라 하시고 옛글 한 장을 외워 주시며 잘지키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부주장지법(夫主將之法) 무람영웅지심(務攬英雄之心) 상녹유공(賞祿有功) 통지어중(通志於衆) 여중동호미불성(與衆同好靡不成) 여중동오미불경(與衆同惡靡不傾) 치국안가(治國安家) 득인야(得人也) 망국패가(亡國敗家) 실인야(失人也) 함기지류(含氣之類) 함원득기지(咸願得其志) 또 가라사대 내 일은 수부(首婦)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일을 하려거든 수부(首婦)를 들여 세우라 하시니라 경석(京石)이 천주를 뫼시고 돌아와서 그 이종매 고부인(姨從妹高夫人)을 천거(薦擧)하니라.
3장 31절
동짓달 초 사흗날(十一月三日) 천주(天主)께서 고 부인(高夫人)을 맞아 수부(首婦)로 정(定)하실새 부인(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만나려고 십오년(十五年) 동안 정력(精力)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 대업(天地大業)을 네게 맡기리라
하시고 인하여 부인(夫人)을 옆에 끼시고 붉은 책과 누른 책 각 한권 씩을 앞으로부터 번갈아 깔며 그 책을 밟으며 방에서 마당에 까지 나가사 남(南)쪽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네번 절하라 하시고 다시 그 책을 번갈아 깔며 밟아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2) 고판례 송덕문
수부고부인송덕비首婦高夫人頌德碑
수부首婦 고부인高夫人 판례判禮님은 조선왕조 고종 17년 3월 26일 전라도 담양군潭陽郡 무면武面 성도리成道里에서 태어나셨다. 부친의 휘諱는 덕삼德三이요 모친은 박씨朴氏이시다. 모친께서 절에서 기도할 때 꿈에 높은 산에 올라 웅장한 집에 들어가니 한 선관仙官이 붉은 책과 누런 책 한권씩을 주거늘 받고 이로부터 잉태하여 딸을 나셨다. 나신지 여섯달 만에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 아홉 살에 모친을 따라서 정읍군井邑郡 입암면笠岩面 대흥리大興理로 이사하고 여기서 이모부 차치구車致九를 좇아 동학東學을 믿으셨다. 약년弱年에 같은 마을 신씨申氏 집으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두고 상부喪夫하여 홀몸이 되셨다. 대순 37년 정미丁未 동짓달 초이튿날 상제上帝께서 태인泰仁 행단杏壇에 이르사 종도從徒 차경석 車京石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수부首婦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일을 하려거든 수부首婦를 들여 세우라 하시므로
차경석이 상제를 모시고 집에 돌아와서 그의 이종누님인 님을 천거하였다.
상제께서 님을 수부로 맞이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精力을 들였다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네게 맡기리라 하시고
매양 님의 등을 어루만지시며 너는 복동福童이라 장차 천하 사람의 두목頭目이 되리라 하셨다. 이와 같이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만고에 없는 천지공사를 행하신 상제께서 님을 수부로 택정擇定하심에 님이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여 후천後天 5만년 운수運數를 여는 여러 공사公事에 끼친 공덕功德이 무량無量하셨다. 상제께서 차윤칠車輪七에게 말씀하시기를 수부가 눈물을 흘리면 천하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수부가 기뻐하면 천하사람이 기뻐하리라 하신 것은 님이 수부로써 신문神門에서 보인 혈성血誠이 신명神明과 사람을 감동感動케 한 것을 밝히신 것이다. 님은 상제께서 억음존양抑陰尊陽하던 선천先天의 그릇된 이치를 뜯어고쳐 여인女人도 각기 닦은 바를 따라 존신尊信하는 후천 여인상女人像의 표상表象이시다. 상제께서 화천化天하신 해 9월에 님이 상제를 애모哀慕하여 새벽에 홀로 80리 길을 달려 초빈에 존尊을 드리고 그 두 이듬해 4월에 대원사大願寺에 가서 49일 동안 진법수련眞法修鍊을 행하였고 그해 대순절大巡節에 대흥리大興里에서 상제의 성령聖靈에 접응接應되어 종도들을 불러 교단개창敎團開創을 선언하고 포교를 명하니 이로써 상제께서 화천하신 후後에 후천선계後天仙界을 개벽할 증산종단甑山宗團의 첫 교단敎團인 태을교太乙敎가 서게 되었다. 님이 태을교를 창립하여 수년간 교화敎化를 폄으로써 이 대지大地위에 상생대도相生大道가 발전할 기초基礎가 굳어졌고 대순 48년 무오戊午 9월에 대흥리를 떠나 조종골에 이르러 법소法所를 짓고 십삼년간 신정神政을 베풀어 중생衆生을 건졌으며 다시 대순 61년 신미辛未 동짓달에 용화동龍華洞을 이거移居하여 조종祖宗골 교단과 동화교東華敎를 통합하고 2년간 따뜻하게 도인道人들을 가르치시다가 오성산五聖山 수양소修養所로 은거한 뒤 대순 65년 을해乙亥 10월 6일 쉰다섯의 연세로 선화仙化하셨다. 님의 일생은 상제께서 지워주신 후계사명後繼使命을 받들어 여느 규중의 부녀婦女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도문道門의 큰 살림을 하면서 신도적神道的으로 그 문도門徒들에게 큰 기운을 불어넣어 천하 만민을 선도善導해 나갈 새로운 도장道場을 열게 하고 대도大道가 꽃필수있는 대덕大德을 쌓아 온 거룩한 삶이었다. 님의 탄신 백아홉돌 되는 해에 님을 숭앙崇仰하는 도인道人들이 성심聖心을 모아 여기 작은 돌을 세우고 무딘 붓으로 삼가 그 위업偉業을 기린다.
대순大巡 119년 음력 3월 열엿새
洪凡草 글 짓고
金芳鉉 글씨 쓰고
증산종단연합회 후원하여
증산교본부 세움
▶ 고수부님의 송덕문을 지은 분이 대순전경을 집필한 이정립이 아꼈던 후배인 홍성열입니다. 송덕문을 지을때 대순전경을 참고하였을 것이므로 내용이 대순전경과 동일합니다.
(3) 태을교 - 범증산종단사 중 태을교사에서
차경석(車京石)이 천거한 수부(首婦)
정미년(丁未年1907년) 늦은 가을에 상제(上帝)께서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五仙圍棋) 도수(度數)를 취하여 천지공사를 보신 후 현(現) 칠보면(七寶面) 행단(杏壇)에 이르시더니 경석(京石)을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내 일에는 수부공사(首婦公事)가 있나니 네가 참으로 일을 하려거든 수부(首婦)를 들여 세우라’ 하심으로 경석은 유념하였더라.
상제께서 그 길로 정읍군(井邑郡) 대흥리(大興里)에 오시어 경석의 집에 계시니라. 이때에 경석의 형편은 동학을 추종하다가 가산이 탕진되어 곤궁한 처지라 깔아드릴 자리조차 마땅한 것이 없어서 이종매씨(姨從妹氏)의 혼석(婚席) 자리를 빌려다 깔아 드렸던 바 이때에 감주(甘酒)를 드시다가 사발이 미끄러져 자리에 엎질러지니 이를 본 경석이 걸레를 가질러 간 순간에 상제님께서 붉은 손수건으로 닦으시니 자리에 붉은 물이 얼룩지더라. 그 후 상제께서 구릿골로 가신 후에 자리를 닦으나 이미 들은 물이 종시 지지 않거늘 경석이 그 자리를 가지고 이종매씨에게 가서 사유를 말하며 미안하다고 말씀을 아뢰더라. (仙道神政經 선도신정경)
그 후에 상제께서 오시어 경석에게 가라사대 천지(天地)에 독음(獨陰) 독양(獨陽) 만사불성(萬事不成)이니 내 일은 수부(首婦)가 있어야 순서 진행(順序進行) 하나니라 하시며 수부를 택정하리라 하시고 경석에게 정면하사 가라사대 네가 전일에 수부를 인권한다 하더니 어찌 되었느냐 하시는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경석의 생각에 이종매씨가 떠오르더라. 그러나 이종매씨는 홀로 된 지가 이제 겨우 석달 밖에 되지 않았는 데 체면상(體面上) 무엇이라 말을 할까 염려하며 매씨에게로 가서 임기
응변을 써서 말하되 내가 내일 새벽에 어디를 다녀올까 하는데 도복(道服)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니 매씨께서 오시어 서둘러 도복을 손질해주기 바라노라 하여 고부인(高夫人)께서 오시니라. 경석의 집은 상하 채로 되어 있으며 행랑(行廊)채 정면으로 대문이 있어 그 대문으로서 안채를 출입하게 되어있더라. (仙道神政經선도신정경)
고부인께서 막 대문을 들어서시는데 둥근 달이 행랑방 문 지두리에 훤하게 솟아있어서 그 달 속을 들여다보니 둥근 달 속에 선관(仙官)이 좌정해 계시더라 이 때에 고부인(高夫人)께서 정신을 가다듬어 바라보시니 여전히 달 가운데 선관이 좌정하여 계시거늘 바라보시다 생각해보니 아녀자의 체면에 미안하여 안채로 들어가니라. 그후부터 바느질을 하시나 훤하니 달속만 비치어서 황홀한 생각속에 계실 뿐이요 바느질이 손에 안걸리더라. 경석이 상제께 여쭈어 가로대 지금 안채로 들어간 분이 저의 이종매(姨從妹)오이다 수부로써 어떠하나이까 하고 사뢰니 상제 가라사대 수부(首婦)를 지척(咫尺)에 두고 미정(未定)이로다 하시며 속히 주선하라 공사지연이로다 하시니라. 경석이 바삐 안으로 들어와서 매씨에게 여쭙기를 사랑(舍廊)에 계시는 선생님께서 천지공사를 하시러 하는 바 이 공사(公事)에는 수부도수(首婦度數)를 정하신다 하니 매씨(妹氏)께서 수부의 소임(所任)을 맡으심이 어떠하리오 하니 고부인께서 흔쾌히 승락하심으로 이로써 수부택정공사(首婦擇定公事)를 정미년(丁未年1907) 동짓달 초사흗날 행하시더라. (仙道神政經선도신정경)
대성께서 고부인을 맞아 결혼하신 뒤에도 차씨(車氏) 집안에서는 이 사실이 신씨(申氏)집안에 알려질까 눈치를 살피는 형편이었는데 대성께서 하루는 오셔서 밤에 마당 한가운데 청수를 올리시고 무슨 일을 하신 뒤에는 동리에서 수근거리는 일이 없어졌다. (朱判禮의 口述)
대성(大聖)께서 동짓달 초삼일날 고부인을 맞아 결혼하실 때 고부인에 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精力)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네게 맡기리라(大巡典經3장 31절)
하시고 매양 고부인의 등을 어루만지시며 너는 복동(福童)이라 장차 천하 사람의 두목이 되리라 하셨다. (大巡典經3장 127절)
대성께서 하루는 종도(從徒) 10여인을 뜰아래 늘여 세운 뒤에 고부인과 더불어 마루에 앉으사 차경석을 명하여 망치를 들리고 대성(大聖)과 고 부인을 치며 동상례(東床禮)를 받으셨으며(大巡典經4장 64절) 또 고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나이는 스물 아홉이고 내 나이는 서른여덟이 라 내 나이에서 아홉을 감하면 내가 너 될 것이요, 네 나이에서 아홉을 더하면 네가 나 될지니, 곧 내가 너 되고 네가 나 되는 일이니라 (大巡典經4장 64절) 하셨다.
또 하루는 대성(大聖)께서 반듯이 누우신 뒤에 고부인으로 하여금 배위에 걸터앉아 칼로 배를 겨누며 나를 일등(一等)으로 정하여 모든 일을 맡겨 주시렵니까 라고 다짐을 받게 하시고 허락하여 말씀하시기를 대인(大人)의 말에는 천지가 쩡쩡 울려 나가나니 오늘의 이 다짐은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으리라 하시고 이도삼(李道三) 임정준(林正俊) 차경석(車京石) 세 사람으로 증인을 세우셨다. (大巡典經4장 66절)
천사(天師)께서 부인과 결혼(結婚)하실 때 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만나려고 십오년동안 정력(精力)를 들였노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네게 맡기리라”하시고, 모든 천지공사를 시행(施行)하심에 일동일정(一動一靜) 동행케 하시며 앞으로 내가 없으면 천지(天地)의 큰 세살림을 어떻게 할고 하시고 부인에게 가라사대 후비소(后妃所) 창생점고(蒼生點考)를 정하시며 무당(巫堂)의 책임공사(責任公事)를 보시고 수부의 도수(度數)를 정하시며 “수부의 치마 그늘밖에 벗어나면 죽으리라”하시고 문명(文命)의 말씀으로 “천반저이지고중앙비이오십(天反低而地高中央備而五十)” 이라 하시며 후천 오만년 무극대도의 계통(繼統)을 전수하실새 (高師母神政記고사모신정기)
▶ 태을교사에 나오는 내용도 처음 만났을때의 상황에 대해서는 대순전경 구절을 인용하였기 때문에 '제주 번개'에 대한 구절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 3. 제주
확인해 볼 수 있는 몇 개의 경전을 살펴봤는데, 도전 외 다른 경전에서는 '제주 번개'라는 단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다른 경전이라고 해 봐야 대부분이 '대순전경'을 참고한 것이 많아 대순전경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즉, 제주 번개라는 단어는 도전에만 수록된 말인거 같고, 고수부님이 교단을 세운 이후의 말씀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2가지
1. 거짓이거나
2. 변화된 살림살이
로 봐야 합니다. 수부를 들이면서 하신 말씀이면 당연히 주변에 종도들이 있었을 것이고 종도들이 들었다면 대순전경의 자료를 모을때 전달이 되었을 것인데 ... 전혀 언급이 없다가 나중에 고수부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기록되었다? 거짓이거나 또는 고수부님이 담당하신 변화된 교단의 살림살이에서만 적용되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번 '제주'관련하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대순전경에 '제주'관련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이 이상하긴 합니다.
도전에 따르면
상제님 : 함열 > 영광 > 제주
형렬 : 통영 > 제주
이렇게 이동하여 김기보의 집에서 머물면서 여러 가지 공사를 보신 것으로 나옵니다. 즉, 혼자 가신 것이 아니고 김형렬도 함께 갔다는 것이죠.
도전을 기준으로 볼 때 제주에 가신 것은 크게 2번으로 보입니다.
첫번째는 김형렬과 함께 가셔서 '보름 정도를 머무시고'
두번째는 호연이라는 분과 함께 제주에 가셔서 '십여 일 동안 제주도에 머무시며 공사를 행하실 때'
보름동안 머무신 적이 있고, 십여일 동안 머무신 적이 있다고 쓰여있는 것을 보아 딱 한번만 가신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주도에서도 '보천교'가 크게 흥했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범증산종단사 - 동도법종금강도 편에서
대성(大聖)께서 여수, 순천(麗水, 順天)에 머무르실 때 대포(大浦)에 좌정(坐定)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제주(濟州)로 가리라“ 하시고 “한라산(漢拏山)이 높다 하지 않느냐“ 하시니 제자 대답하기를 “광대무량(廣大無量) 하나이다“ 하였다. 대성(大聖)께서 이르시기를 “한라산 와룡봉(漢拏山臥龍峰)에 서면 세계만국(世界萬國) 좋은 경개(景槪) 눈 앞에 다 보인다“ 하셨다.
또 물으시기를 “제주라 할 때 무슨 제자를 쓰느냐“ 종도(從徒) 대답 하기를 “건널 제를 쓰나이다“ 대성(大聖)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생(諸生)들이 다 모르는도다. 후천세상 당도하여 포덕도수(布德度數) 이루어지면 임금 제자(帝) 쓰리니, 그 글자 자세히 보면 상제(上帝) 제자(帝) 분명하리라. 상제 제자(帝) 쓰는 날엔 1만 도사(一萬道士) 9천 군자(九千君子) 틀림없이 날 것이니 우리나라가 도주국(道主國)이 되리라. 좋은 도덕 서려 하면 고생인들 없을소냐.
때가 오면 도생(道生)마다 오만년간(五萬年間) 누리는 행복을 받으리라“ “우양호사사해립(牛羊虎獅四海立)하니 천도진인(天道眞人) 만날 때라. 남조선(南朝鮮) 배질하여 후천 좋은 도덕 제주(濟州)에 붙였으니 천지인들 불응(不應)하며 산령(山靈)인들 불응(不應)할까. 천지산령성운중(天地山靈成運中)에 신명(神明)이 보호하여 신인합발(神人合發) 되는 날에 좋은 낙원 되리로다
“ 읊으셨다." (濟州傳道門公事略書12~13쪽)
▶ 이런 구절들이 있는 것으로 보면 분명 '제주'에 대해 다른 경전에서도 확인이 되어야 맞는데, 이상하게 제주는 거의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 하~ '대성께서 여수, 순천에 머무르실때' === 1948년 여수 순천 반란사건도 살펴야......
▶ 좋은 도덕 서려하면 고생인들! 없을소냐 === 여수순천, 제주4.3 민간인이 너무 많이 죽었는데요.
▶ 전라도 전주를 중심으로하는 증산교단의 내용을 살피는 것도 힘들었지만......
제주도의 역사를 살피는 것은......... 너무 복잡해서 글로 제대로 엮을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 4. 무오년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제주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은 기미년(1919년)의 3.1운동보다 5개월 앞선 무오년(1918년) 제주도 서귀포 법정사(法井寺)의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당시 종교계가 일으킨 최대 규모의 무장항일운동이다. 이 항쟁에는 700여 명의 주민이 동조하여 참여하였다. 그 결과 66명이 검거되어 31명이 실형을 받았다.또한 검거된 인원 가운데 5명이 재판과 수형 생활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항일투쟁의 발상지인 법정사는 애국지사의 체포와 함께 일제에 의해 불태워졌고 현재는 건물 기단과 초석 등이 남아있다. - https://ncms.nculture.org/independence-movement/story/11356
- 독립운동 현장을 가다 중에서 -
무오년옥화 사건을 “제주법정사(法井寺) 항일항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사건은 사실상 일제에 대한 민중봉기이며 당시의 관계 기관 및 언론은 이 사건을 독립운동 또는 정치적인 사건으로 보았으며, 이 배후에 보천교(태을교)로 보았고, 보천교(태을교)는 사교집단으로 취급하였다. 그리고 보천교(태을교)신도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하였다. - 안후상 무오년 제주 법정사 항일항쟁연구
- 범증산종단사 '태을교' 설명 중에서
chatGPT 자료조사해 주세요.
1918년(무오년) 제주도 법정사 항일운동의 배경에 보천교가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는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당시 보천교는 조선 전역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의 신도를 확보하고 있었고, 특히 제주도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보천교를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제주도 내 보천교 신도 비율에 대한 추정
정확한 통계 자료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여러 연구자들의 문헌과 지역 자료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