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시조
이정환
1.
1984년 9월 1일은 특기할 날이다. 오류동인지 창간호인『바람도 아득한 밤도』를 펴낸 날이기 때문이다. 월간 종합문예지《유심》11월호에는「3행의 행간 속에 빛나던 눈빛들」이라는 제하에 이송희 시인의 집필로 한국시단의 등뼈 동인 23번째로《오류》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시조시인이라면 누구나 예의 주시하며 읽을 만한 글이다. 아주 밀도 높게 논의함으로써 시조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잘 기록하고 있다. 다섯 명 동인들의 창조적 고민과 그 과정 그리고 마무리를 세세히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2.
먼저《오류》동인 중의 한 사람인 문무학 시인의 작품「같은데 다르다」를 보자.
젊어선 넘어지지만 늙어서는 쓰러진다. 넘어지면 일어나도 쓰러지면 못 일어나 사는 건 넘어지다가 쓰러지는 것이다.
사는 건 넘어지다가 쓰러지는 것이다. 넘어지면 일어나도 쓰러지면 못 일어나 젊어선 넘어지지만 늙어서는 쓰러진다.
-문무학,「같은데 다르다」전문
제목에서 보듯 첫수와 둘째 수의 내용은 같다. 중장의 위치는 똑 같고, 다만 초장과 종장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다. 뜻은 분명히 같지만 위치가 바뀜으로써 시적 울림이 새롭다. ‘젊을 때는 넘어지고 늙어서는 쓰러지는 것’이라는 기본적 인식 아래 빚어진 작품인데, 이 단정은 우리 인생살이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종언을 맞는가에 대한 것이다. 각 수 중장에 반복되고 있는‘넘어지면 일어나도 쓰러지면 못 일어나’이라는 대목은 보다 구체적인 해석이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어서는 쓰러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는 점을 이 시편은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연로한 이들이 뜻밖의 사고로 쓰러진 다음 자리보전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비근하다. 시인의 인생론이라고 할만한‘사는 건 넘어지다가 쓰러지는 것이다.’가 첫수 종장, 둘째 수 초장에 놓여서‘생로병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결국 시인은‘넘어지다’와 ‘쓰러지다’라는 낱말이 주는 다른 의미에 착안하여「같은데 다르다」를 썼다. 이렇게 초장과 종장의 위치 바꾸기를 통해서 되풀이가 주는 의미의 확장을 꾀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독자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
시인이라면 누구든지 새로운 창조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다. 무언가 다르게 쓰겠다는 창작 의지 없이 예술혼을 꽃피울 수는 없을 것이다. 등단 초기부터 문무학 시인은 그러한 생각이 확고부동하여서 여러 가지 언어 실험, 형식 실험에 힘을 기울였다. 성패 여부가 그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과감하게 뛰어들어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좋은 실례가 초기 작품인「지평선」이다. 서정성이 뛰어난 작품으로는「비비추에 관한 연상」, 「바람」, 「나비난초」등이 있다. 이 작품들을 굳이 각주 안에 소개한 것은 그만큼 우리가 기억하고 주목해야할 가편들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출간할 당시 문단의 주목을 받은 시조집『낱말』도 그의 실험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생산된 것이다.
3.
‘소시집의 얼굴’에서 박영식 시인을 만난다. 그는 울산 일대의 시조 부흥에 기초를 닦은 시인이다. 어느 지역마다 그러한 지도자는 있다. 그의 작품 한 편을 보겠다.
도대체 누구냐 넌? 날 빤히 쳐다보는
뭔 할 말 있다는 듯 그렇게 노려보나
화들짝 들킨 속내에 석상처럼 서 있다
찬찬히 뜯어보니 흠집 많이 나 있다
어디서 묻었는지 머리엔 흰 페인트
겁먹은 동공 깊숙이 물기마저 서렸다
한 타래 풀린 궤적 만만치 않았나 보다
오고 감이란 찰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못 내린 삶은 시가 있기 때문이다
-박영식,「거울 앞에서」전문
「거울 앞에서」는 나이 듦에 대한 자아성찰이 애잔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바라본 시의 화자는 ‘도대체 누구냐 넌? 날 빤히 쳐다보는’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거울 속의 인물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타자의 발견이다. 분명히 나인 것이 틀림없는데 아주 낯설다. 하여 ‘대체 누굴까. 뭔 할 말 있다는 듯 그렇게 노려보’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할 만하다. ‘찬찬히 뜯어보니 흠집 많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한다. 살아온 세월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머리는 희끗희끗하여졌고, 두려움이 어린‘동공 깊숙이 물기마저 서’려 있다.
끝수에서 보다 깊숙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즉‘한 타래 풀린 궤적 만만치 않았’던 중에 ‘오고 감이란 찰나’임을 자각하면서도 끝까지 자존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까닭을 조심스럽게 밝힌다. ‘그래도 못 내린 삶은 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못 내린 삶’이라는 표현은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결국 시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게 주는 울림 때문에 삶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시의 화자는 어느 날‘거울 앞에서’화들짝 놀라면서 ‘아아, 이때껏 나를 지탱케 한 힘이 곧 시였구나, 시가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였구나.’하고 시에게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법하다. 박영식 시인, 그 역시 평생을 시조 쓰기 한 길을 묵묵히 걸어 왔기 때문이다.
끝으로 단시조 한 편을 보겠다.
온다던 그대 못 오고
먹구름 대신 보내
창문만 쓰다듬다
돌아서며 쏟는 통곡
빈 가슴
움푹 파놓고
고이지도
못하는
-최재남,「소낙비」전문
절절한 사랑 시편이다. 초장‘온다던 그대 못 오고/ 먹구름 대신 보내’라는 구절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꼭 와야 했던 그대는 왜 오지 못했는지 묻을 일이 아니다. 못 온 대신‘먹구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먹구름’은 곧‘그대’다. 그대의 화신인 셈이다. 중장‘창문만 쓰다듬다/ 돌아서며 쏟는 통곡’도 실감실정이다. 창문을 쓰다듬은들 무슨 느낌이 오겠는가.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시적 정황은 이렇듯 절절하다.
미완성 문장인 종장‘빈 가슴/ 움푹 파놓고/ 고이지도/ 못하는’이라는 결구도「소낙비」라는 단시조의 완성도에 기여하고 있다. 움푹 파였다면 그곳에 채움이 있어야 마땅한 일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안타까움, 애절한 그리움은‘그대’가 옴으로써 한 순간에 사위어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이 시편의 정황으로 볼 때 기약이 없다.
인생이란 곧 그런 것이 아닐까.
4.
《시조21》가을호에서 많은 작품들을 읽고 고작 세 편만 언급했다. 보는 눈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라고 잠시 자책해 본다. 그러고 보니 단시조 한 편과 연시조(두 수, 세 수) 두 편이다.
가을도 지나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글을 쓰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어서 겨울호에는 보다 풍성한 성찬이 차려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영혼을 실은 시 한 편을 위해 더 깊이 침잠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