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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Misrepresentation of ancient writers
A-3: 고대 필자들의 기록을 오보함
The last two pages of the “Appendix” to “Let Your Kingdom Come” are devoted to a discussion of Jeremiah’s prophecy of the seventy years.17 All arguments in this section have been thoroughly refuted in Chapter 5 of the present work, “The Seventy Years for Babylon” (which corresponds to chapter 3 of the first edition), to which the reader is directed. Only a few points will be made here.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의 마지막 두 페이지는 예레미야의 칠십 년 예언에 대한 논의로 할애되어 있다.17 본서의 <바빌론을 위한 칠십 년> 제5장(초판 3장에 해당)에서 이 모든 주장을 철저히 논박하였다. 여기서 몇 가지 사항만 제시될 것이다. Against Berossus’ statement that Nebuchadnezzar took Jewish captives in his accession year, shortly after the battle at Carchemish (see Chapter 5 above, section A-4), it is argued that “there are no cuneiform documents supporting this .”18 But the Watch Tower Society fails to mention that Berossus’ statement is clearly supported by the most direct reading of Daniel 1:1–6.19 베로수스의 기록이 네부카드네자르가 즉위하던 해에 유대인을 포로로 유배했다고 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갈그미스에서의 전투 직후 (위 5장 A-4절 참조) "이 유배 사실을 뒷받침하는 설형문서는 없다."고 주장하였다.18 그러나 워치타워 협회는, 다니엘 1:1-6을 읽어 본다면 베로수스의 진술이 매우 명백하게 뒷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19 Daniel reports that “in the third year of the kingship of Jehoiakim” (corresponding to the accession year of Nebuchadnezzar; see Jeremiah 25:1) Nebuchadnezzar took a tribute from Judah, consisting of utensils from the temple and also “some of the sons of Israel and of the royal offspring and of the nobles,” and brought them to Babylonia. (Daniel 1:1–3, NW) It is true that the Babylonian Chronicle does not specifically mention these Jewish captives. It does mention, however, that Nebuchadnezzar, in his accession year, “marched about victoriously in Hattu,” and that “he took the vast booty of Hattu to Babylon.”20 Most probably captives from the Hattu territory were included in this “vast booty,” as is also pointed out by Professor Gerhard Larsson: 다니엘은 `여호야김 왕 삼년(느부갓네살 즉위년, 예레미야 25장 1절)에, 느부갓네살은 성전에서 사용하는 그릇과 `이스라엘 자손과 왕족들과 귀족들 가운데서 몇 사람'을 볼모로 바빌로니아로 데려갔다.(단 1:1-3, NW) 바빌로니아 연대기에서 이들 유대인 포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20 그러나 이 책에는 느부갓네살의 즉위년에 "하투에서 승리하여 바빌론으로 건너갔다"고 언급되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하투 지역에서 온 포로들은, 게르하드 라슨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넓은 의미에서 전리품"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It is certain that this “heavy tribute” consisted not only of treasure but also of prisoners from the conquered countries. To refrain from doing so would have been altogether too alien from the customs of the kings of Babylon and Assyria.21 이 "무거운 공물"은 정복된 국가들의 보물뿐만 아니라 볼모들도 포함되었음이 확실하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바빌론과 앗시리아 왕들이 그들의 관습을 전혀 지키지 않은 셈이 되었을 것이다.21 Thus, although the Babylonian Chronicle does not specifically mention the (probably very small) Jewish deportation in the accession year of Nebuchadnezzar, it strongly indicates this to have taken place, in agreement with the direct statements of Daniel and Berossus. 따라서, 바빌로니아 연대기에서 네부카드네자르 즉위 해에 (아마도 매우 사소하게 보이는) 유대인의 유배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니엘과 베로수스의 직접적인 진술과 일치하게, 이 유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지적한다. Further, it is to be noticed that the same Babylonian chronicle (BM 21946) speaks of the vast booty taken to Babylon in the seventh year of Nebuchadnezzar in similar laconic terms. Although it is known from the Bible (2 Kings 24:10–17; Jeremiah 52:28) that this booty included thousands of Jewish captives, the chronicle does not mention anything about this but just says: 게다가, 같은 바빌로니아 연대기 (BM 21946)에서 느부갓네살 7년에 바빌로니아로 데려간, 광의의 의미에서의 전리품[유배된 유대인들]에 대한 함축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성경 (왕하 24:10~17, 예레미야 52:28)에 따르면 이 전리품에 유대인 포로 수천 명이 포함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연대기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고 단지 다음과 같은 말로 함축하고 있다: A king of his own choice he [Nebuchadnezzar] appointed in the city (and) taking the vast tribute he brought it into Babylon.22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가 친히 선택한 자를 성읍의 왕으로 임명하였으며, 거액의 조공을 바빌론에 바치게 하였다.22 If, therefore, the silence of the cuneiform documents about the deportation of Jewish captives in the accession year of Nebuchadnezzar indicates, as the “Appendix” of “Let Your Kingdom Come” implies, that it did not take place, the silence about the deportation in his seventh year would indicate that this one did not take place either. However, since the Bible mentions both deportations, the Babylonian chronicle evidently includes them in the “vast booty” or tribute taken to Babylon at both occasions. 그러므로,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의 "부록"이 암시하듯이, 느부갓네살의 즉위년에 유대인 포로의 유배에 관해 설형문서들이 침묵한 것이, 그 유배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의 7년차에 유배에 대한 침묵도,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두 경우의 유배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바빌로니아 연대기에서는 두 경우 모두 바빌로니아에 바쳐진 "전리품"이나 공물에 그들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The Society finds another argument against a deportation in the accession year of Nebuchadnezzar in Jeremiah 52:28–30: 협회는 예레미야 52장 28절~30절에서 느부갓네살의 즉위년에 유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반대하는 또 다른 주장을 한다: More significantly, Jeremiah 52:28–30 carefully reports that Nebuchadnezzar took Jews captive in his seventh year, in his 18th year and his 23rd year, not his accession year.23 더욱 중요하게도, 예레미야 52장 28절~30절에서 느부갓네살이 즉위년이 아닌 7년, 18년, 23년에 유대인들을 포로로 유배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23 This argument, however, presupposes that Jeremiah 52:28–30 contains a complete record of the deportations, which it clearly does not. The sum total of Jewish captives taken in the three deportations referred to in the passage is given in verse 30 as “four thousand and six hundred.” However, 2 Kings 24:14 gives the number of those deported during only one of these deportations as “ten thousand” (and perhaps 8,000 more in verse 16, if these are not included in the first number)! 그러나 이 주장은 예레미야 52장 28절부터 30절까지 유배에 대한 완전한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다. 이 구절에 언급된 세 번의 유배에서 유배된 유대인 포로의 합계는 30절에서 "4천 6백 명"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왕하 24:14에서는 이 여러 유배들 중 하나만 하더라도 그 수는 "만 명"에 (16절에 이 수가 처음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8,000명이 더 있을 수도 있다.) 달하는 것으로 알려준다! Different theories have been proposed to explain this discrepancy, none of which may be regarded as more than a guess. The Watch Tower Society’s Bible dictionary Insight on the Scriptures, for instance, states that the figures at Jeremiah 52:28–30 “apparently refers to those of a certain rank, or to those who were family heads.”24 The New Bible Dictionary holds that “the difference in figures is doubtless due to different categories of captives being envisaged.”25 이 불일치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이론들이 제안되었는데, 그 중 어느 것도 추측 이상의 확실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워치타워 협회의 성경 사전 <통찰>에서는 예레미아 52:28–30에 언급된 사람들이 "분명히 특정 계급의 사람들, 또는 가장이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말하였다.24 뉴 바이블 사전은 "수치상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틀림없이 포로의 범위를 다르게 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25 All agree that Jeremiah 52:28–30 does not give a complete number of those deported, and some commentators also suggest that not all deportations are mentioned in the text.26 예레미아 52장 28절에서 30절까지 유배된 사람들의 전체 수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며, 일부 주석가들은 또한 본문에 당시에 있었던 유배들이 모두 언급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26 At least the deportation in the accession year of Nebuchadnezzar described by Daniel is not mentioned by Jeremiah―which does not prove that it did not take place. The reason why it is not included among the deportations enumerated in Jeremiah 52:28–30 most probably is that it was a small deportation only, consisting of Jews chosen from among “the royal offspring and of the nobles” with the intention of using them as servants at the royal palace. (Daniel 1:3–4) The important thing is that Daniel, independently of Berossus, mentions this deportation in the accession year of Nebuchadnezzar. 적어도 다니엘이 기술한 느부갓네살 즉위 연도에 유배된 사실은 예레미야가 언급하지는 않았다. ㅡ이것은 유배가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 52장 28절~30절에 열거된 유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틀림없이 왕실의 자손과 귀족들 중에서 선택된 유대인들이 왕궁의 신하로 이용하려는 의도였을 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니엘 1장 3절-4절) 중요한 것은 베로수스와는 별도로 다니엘이 유배된 사실을 느부갓네살의 즉위년에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Against the clear statements of both Daniel and Berossus, the Watch Tower Society refers to the Jewish historian Josephus, who claims that, in the year of the battle of Carchemish (during Nebuchadnezzar’s accession year), Nebuchadnezzar conquered all of Syria-Palestine “excepting Judea.”27 워치타워 협회는 다니엘과 베로수스의 명백한 진술에 반대하여, 유대 역사가 요세퍼스를 언급하는데, 요세퍼스는 (느부갓네살의 즉위년 동안)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던 해에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제외한" 시리아-팔레스타인 전역을 정복했다고 주장한다.27 The Watch Tower publication argues that this conflicts with the claim that the 70-year servitude began in that accession year Josephus wrote this more than 600 years after Daniel and almost 400 years after Berossus. Even if he were right, this would not contradict the conclusion that the servitude of the nations surrounding Judah began in the accession year of Nebuchadnezzar. Jeremiah’s prophecy clearly applies the servitude, not to the Jews, but to “these nations” (Jeremiah 25:11), that is, the nations surrounding Judah. (See Chapter 5 above, section A-1.) In fact, Josephus even supports the conclusion that these nations became subservient to Nebuchadnezzar in his accession year, as he states that the king of Babylon at that time “took all Syria, as far as Pelusium, excepting Judea.” Pelusium lay on the border of Egypt. 워치타워 출판물에서는 이 사실은 70년간의 포로생활이 다니엘로부터 600년 이상 그리고 베로수스로부터 거의 400년 후의 요세퍼스의 기술과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기록이 옳다고 해도, 이것은 유다를 에워싸고 있는 민족들의 노역이 느부갓네살 즉위년에 시작되었다는 결론에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노역이 유다 사람이 아니라 '이 민족들'(렘 25:11), 즉 유다를 둘러싼 민족에게 분명히 적용된다(5장 섹션 A-1내용 참조). 사실 요세퍼스는 바빌로니아 왕이 "유대를 제외한 시리아를 펠루시움까지 모두 차지하였다"고 말하므로, 이 민족들이 즉위년에 느부갓네살에게 복종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지지한다. 펠루시움은 이집트 국경에 위치해 있었다. There is no reason, however, to believe that Josephus’ statement is more trustworthy than the information given by Daniel and Berossus. Josephus here evidently presented a conclusion of his own, based on a misunderstanding of 2 Kings 24:1. Dr. E. W. Hengstenberg, in his thorough discussion of Daniel 1:1ff., gives the following comment on the expression “excepting Judea” in Josephus’ Antiquities X, vi, 1: 하지만, 요세퍼스의 진술이 다니엘과 베로수스가 제공하는 정보보다 더 믿을 만한 이유는 없다. 여기서 요세퍼스는 왕하 24:1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여 자신의 결론을 제시했음에 분명하다. E. W. 헹스텐버그 박사는 다니엘 1:1절 전반부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통하여 <요세퍼스의 유물> X, vi, 1에 나오는 "유다를 제외하고"라는 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It should not be thought that Josephus got the parex tes Ioudaias [excepting Judea] from a source no longer available to us. What follows shows clearly that he just derived it from a misunderstanding of the passage at 2 Kings 24:1. As he erroneously understood the three years mentioned there as the interval between the two invasions, he thought that no invasion could be presumed before the 8th year of Jehoiakim.28 요세퍼스의 <parex tes Ioudaias>[유다를 제외하고]를 우리가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는 출처로부터 자료를 사용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가 단지 왕하 24: 1의 구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3년을 두번의 침략의 간격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야김 8년 이전에는 침략이 없었을 것이라 전제했다.28 Josephus’ statement thus carries little weight against the testimony of Berossus, who evidently, unlike Josephus, got his information from sources preserved from the Neo-Babylonian period itself, and the testimony of Daniel, as one personally involved in the deportation he himself describes. 따라서 요세퍼스의 진술에서 베로수스의 기록을 거부할 수 있는 무게가 실린 것은 거의 없다. 베로수스의 기록은, 요세퍼스와 달리, 신바빌로니아 시기 그 자체로부터 보존된 사료와, 유배와 개인적으로 관련된 다니엘 자신의 증언에서 정보를 얻은 것이다. The Watch Tower Society next quotes two passages from Josephus’ works in which the seventy years are described as seventy years of desolation (Antiquities X, ix, 7, and Against Apion, I, 19).29 But they conceal the fact that Josephus, in his last reference to the period of Jerusalem’s desolation, states that the desolation lasted for fifty years, not seventy! The statement is found in Against Apion I, 21, where Josephus quotes Berossus’ statement on the NeoBabylonian reigns, and says: 그 다음에 워치타워 협회는 요세퍼스의 작품 중 두 단락을 인용하는데, 70년의 기간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황폐기간인 70년(Antiquities X, ix, 7, Against Apion, I, 19)으로 기술한다.29 그러나 그들은 요세퍼스가 예루살렘의 황폐에 대한 마지막 언급에서 70년이 아니라, 50년 동안 황폐가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침묵하고 있다. 이 진술은 <아비온에 항거하여> 1권 21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요세퍼스는 신바빌로니아 통치기에 관한 베로수스의 기록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This statement is both correct and in accordance with our books [that is, the Holy Scriptures]. For in the latter it is recorded that Nabochodonosor in the eighteenth year of his reign devastated our temple, that for fifty years it ceased to exist, that in the second year of Cyrus the foundations were laid, and lastly that in the second year of the reign of Darius it was completed.30 이 진술은 우리의 책[즉, 성서]에 부합하며 정확하다. 나보코도노솔[느부갓네살]은 그의 통치 십팔년에 우리 성전을 황폐하게 하였다. 50년간 성전의 존재는 중지되었고 고레스 이년에 기초가 놓였고, 다리우스 이년에 완공되었다.30 In support of this statement Josephus quotes, not only the figures of Berossus, but also the records of the Phoenicians, which give the same length for this period. Thus in this passage Josephus contradicts and refutes his earlier statements on the length of the period of desolation. Is it really honest to quote Josephus in support of the idea that the desolation lasted for seventy years, but conceal the fact that he in his latest statement on the length of the period argues that it lasted for fifty years? It is quite possible, even probable, that in this last passage he corrected his earlier statements about the length of the period. 요세퍼스는 이 진술을 뒷받침하여 베로수스의 수치(數値)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인들의 기록도 인용하는데, 같은 기간의 햇수를 사용한다. 따라서 이 단락에서 요세퍼스는 황폐의 기간에 대한 그의 초기 진술들과 충돌하며 뒤집고 있다. 요세퍼스의 말을 인용해서 황폐의 기간이 70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요세퍼스가 그의 최후 진술에서 그 기간이 5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주장한 사실을 숨기는 것이 정말 정직한 태도인가? 이 최후의 진술에서 그가 그 기간의 길이에 대한 초기 진술을 정정했을 가능성이나, 그랬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The translator of Josephus, William Whiston, wrote a special dissertation on Josephus’ chronology, entitled “Upon the Chronology of Josephus,” which he included in his publication of Josephus’ complete works as Appendix V.31 In this careful study Whiston points out that often in the later parts of his works, Josephus attempted to correct his earlier figures. Thus he demonstrates that Josephus first gives the length of the period from the Exodus to the building of the temple as 592 years, which figure he later changed to 612.32 The next period, from the building of the temple to its destruction, he first gives as 466 years, which he later “corrected” to 470.33 요세퍼스 저서의 번역가인 윌리엄 휘스턴은 <요세퍼스의 연대기>라는 제목의 특별 논문을 썼는데, 그는 요셉푸스의 전집을 부록 V 로 출판하면서, 요세퍼스의 작품 후반부에서 요세퍼스가 종종 자신의 초기 수치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했다고 지적했다.31 이렇게 해서 그는 요셉푸스가 출애굽기부터 성전 건축까지의 기간을 592년으로 처음 제시했으나, 그후 그는 그 기간을 612년으로 변경시켰다.32 그 다음에 성전 건축에서 파괴까지 466년으로 처음 제시했으나, 나중에 그는 이를 470년으로 "정정"했다.33 Of the seventy years, which Josephus first reckons from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to the return of the Jewish exiles in the first year of Cyrus, Whiston says that “it is certainly Josephus’ own calculation,” and that the 50 years for this period given in Against Apion I, 21, “may probably be his own correction in his old age.”34 요세퍼스는 성전의 파괴에서부터 고레스 원년에 유대인 망명자들이 귀환할 때까지 처음 계산한 70년에 대해, 휘스턴은 "그것은 확실히 요셉푸스가 친히 계산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이 기간에 대하여, <아비온에 항거하여> 1, 21에 제시된 50년은 그에 대한 정정일 것이다."라고 말한다.34 If this is the case, Josephus might even be quoted as an argument against the application of the seventy years made by the Watch Tower Society. In any case, it seems obvious that his statements on the seventy years cannot be used as an argument against Berossus in the way the Society does. Josephus’ last figure for the length of the desolation period is in complete agreement with Berossus’ chronology, and Josephus even emphasizes this agreement!35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요세퍼스의 진술은 워치타워 협회에 의해 주장되는 70년의 적용에 반대되는 주장으로 인용될 수도 있다. 어쨌든, 70년에 대한 그의 진술은 협회가 주장하는 방식이 베로수스의 기록에 대한 논쟁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황폐 기간에 대한 요세퍼스가 마지막으로 제시한 수치는 베로수스의 연대기와 완전히 일치하며 요세퍼스도 심지어 이 일치성을 강조한 셈이다!35 In addition to Josephus, the Watch Tower Society also refers to Theophilus of Antioch, who wrote a defense of Christianity towards the end of the second century C.E. As the Society points out, he commenced the seventy years with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36 But the Watch Tower writers conceal the fact that Theophilus was confused about the end of the period , as he first places this in the “second year” of Cyrus (537/36 B.C.E.) and then in the “second year . . . of Darius” (520/19 B.C.E.).37 워치타워 협회는 요세퍼스 외에도, 기원후 2세기 말에 기독교를 옹호하는 글을 쓴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루스를 언급한다. 협회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는 70년의 시작점을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으로 잡았다.36 그러나 워치타워의 집필자들은 테오필루스가 처음에 이 70년의 시기의 끝을 처음에는 고레스 "2년" (기원전 537/36년)으로 잡았다가 그후에는 다리우스 2년 (기원전 520/19년)으로 정정했기 때문에 그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37 Some other early writers, including Theophilus’ contemporary, Clement of Alexandria (c. 150–215 C.E.), also ended the seventy years “in the second year of Darius Hystaspes” (520/19 B.C.E.), which would place the desolation of Jerusalem about 590/89 B.C.E.38 테오필루스와 동시대의 인물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기원전 150년경–215년경)를 포함한 다른 몇명의 초기 저자들도 기원전 590년/89년으로 본 예루살렘의 황폐가 "다리우스 히스타스페스 2년" (기원전 520년/19년)에 70년이 끝났다고 기록했다.38 Eusebius in his chronicle (published c. 303 C.E.) adopted Clement’s view, but also tries another application, starting with the year in which Jeremiah began his activity, forty years prior to the desolation of Jerusalem, and he ends the seventy years in the first year of Cyrus, which he sets at c. 560 B.C.E. Julius Africanus, in c. 221 C.E., applies the seventy years to the period of Jerusalem’s desolation, the end of which he, like Eusebius later, erroneously dates to c. 560 B.C.E. It is very obvious that these early Christian writers did not have access to sources that could have helped them to establish an exact chronology for this ancient period. 유세비우스는 그의 연대기 (서기 303년경 출판)에서 클레멘스의 견해를 받아들였지만,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40년 전인, 예레미야가 활동을 시작한 해부터 시작하는 또 다른 해석을 시도하였으며, 기원전 560년으로 보는 고레스 원년에 70년이 끝났다고 해석하였다. , 서기 221년 경에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는 70년을 예루살렘의 황폐에 적용시켜 70년의 끝을 유세비우스처럼 기원전 560년경으로 잘못 적용하였다. 이 초기 기독교 저자들이 고대 시대의 정확한 연대기를 확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자료들이 부족했음에 명백하다. The Watch Tower Society’s use of ancient writers then, is demonstrably very selective. They quote Josephus on the seventy years of desolation, at the same time concealing the fact that he finally gives fifty years for the period. Their reference to Theophilus reflects the same methods: He is quoted, not because he really presents evidence that supports them, but because his calculation to some extent agrees with theirs. Other contemporary Christian writers, whose calculations differ from theirs, are ignored. This procedure is a clear misrepresentation of the full body of evidence from the various ancient writers who discussed the matter at hand. 워치타워 협회가 고대 작가들을 매우 편향적으로 사용했음은 명백하다. 그들은 요세퍼스가 최후로 진술한 예루살렘의 황폐기간이 오십 년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정정 이전의 칠십 년의 황폐기간을 인용했다. 테오필루스에 대한 그들의 언급도 같은 방법임을 반영한다. 그들의 말을 인용한 것은 그들이 워치타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실히 제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제시한 수치가 어느 정도 워치타워의 계산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다른 기독교 저자들의 계산은 그들의 계산과 다르기 때문에 무시된다. 이러한 절차는 당면한 문제를 논의한 여러 고대 작가들이 제시한 증거의 전모를 잘못 보도한 것임에 명백하다. |
A-4: Misrepresentation of the Biblical evidence
A-4: 성서적 증거를 오보함
In its further discussion of the seventy years , the Watch Tower Society attempts to show that, even if the historical evidence is against their application of the period, the Bible is on their side. First, at the top of page 188 of ‘Let Your Kingdom Come,” they state, categorically, that “we believe that the most direct reading of Jeremiah 25:11 and other texts is that the 70 years would date from when the Babylonians destroyed Jerusalem and left the land of Judah desolate.” 70년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에서, 워치 타워 협회는 역사적인 증거가 그들의 해석에 반대되더라도, 성경은 그들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첫째,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188면 맨 윗부분에는 "우리는 예레미야 25장 11절과 그 밖의 다른 성경들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이해는 바빌로니아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유다 땅을 황폐하게 버려두게 한 기간이 70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기술하였다. The simple truth is, however, that the Society bluntly refuses to accept the most natural understanding of Jeremiah 25:11 and a number of other texts related to this subject.39 As was discussed in Chapter 5, the most direct reading of Jeremiah 25:11 shows the seventy years to be a period of servitude, not desolation: “These nations shall serve the king of Babylon seventy years.” (NASB) It was further pointed out that the other text in Jeremiah referring to the seventy years, Jeremiah 29:10, confirms this understanding. The most direct reading of the best and most literal translation of this text shows those “seventy years” to be a reference to the Babylonian rule: “When seventy years have been completed for Babylon.” (NASB) Both texts clearly refer to Babylon, not Jerusalem. 그러나 간명한 진실은 협회가 예레미아 25장 11절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이해와 이 주제에 관련된 많은 다른 문헌들을 받아들이기를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이다.39 예레미야 25장 11절의 가장 직설적인 의미는, 그 칠십 년이 황폐의 기간이 아니라 노역의 기간으로서 "이 민족들이 바빌론 왕을 70년간 섬기게 될 것이다."(NASB)란 뜻이다. 70년 예언에 관한 다른 성경 본문은, 예레미야 29장 10절로서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바빌로니아 통치에 대한 언급으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직접적인 이해는 "바빌론을 위한 70년이 차게되면"(NASB)이라고 번역함으로써 "70년"이 바빌론의 패권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두 본문 모두 예루살렘이 아닌 바빌로니아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If the seventy years refer to the Babylonian rule, as these verses show, this period ended with the fall of Babylon in 539 B.C.E.; and this is directly stated at Jeremiah 25:12: “Then after seventy years are completed, I will punish the king of Babylon and that nation.” (NRSV) As this punishment took place in 539 B.C.E., the end of the seventy years cannot be extended beyond that date, either to 537 B.C.E. or any other date, as that would be in conflict with a direct reading of Jeremiah 25:12.40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70년이 바빌로니의 패권과 관련된다면, 이 70년 기간은 기원전 539년에 바빌로니아가 함락하면서 끝났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25장 12절에서 이 사실이 직접적으로 이렇게 기술되었다: "70년이 차게되면, 나는 바빌로니아 왕과 그 민족을 벌하겠다."(NRSV)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의 함락으로 이 벌이 일어났기 때문에, 70년의 기간이, 그 시기 곧 기원전 537년이나 다른 날짜를 넘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예레미아 25:12의 직접적인 말씀과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40 There cannot be any doubt whatsoever about the matter: The most direct reading of Jeremiah’s prophecy (Jeremiah 25:11–12 and 29:10) is in clear conflict with the application that the Watch Tower Society gives to the seventy years. In spite of this, it boldly declares: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레미야의 예언서(예레미야 25장 11절~12절, 29장 10절)를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워치타워 협회가 70년에 부여하는 해석과 뚜렷이 상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치타워 협회는 대담하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But the Bible itself provides even more telling evidence against the claim that the 70 years began in 605 B.C.E. and that Jerusalem was destroyed in 587/6 B.C.E.41 그러나 성경 자체는 70년이 기원전 605년에 시작되었고 예루살렘이 기원전 587/6년에 멸망된 것이 아니라는 훨씬 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41 What “telling evidence”? This: 어떤 "강력한 증거"가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말하였다: As mentioned, if we were to count from 605 B.C.E., the 70 years would reach down to 535 B.C.E. However, the inspired Bible writer Ezra reported that the 70 years ran until “the first year of Cyrus the king of Persia,” who issued a decree allowing the Jews to return to their homeland.42 언급했듯이, 만약 우리가 기원전 605년부터 계산한다면, 70년은 기원전 535년까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영감을 받은 성서 필자 에스라는 70년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하는 포고령을 발표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까지 이어졌다고 보도했다.42 But did Ezra really report that? As was shown in the discussion of 2 Chronicles 36:21–23 in Chapter 5, Ezra does not clearly indicate that the seventy years ended “in the first year of Cyrus,” or in 537, as the Watch Tower Society holds. On the contrary, such an understanding of his words would be in direct conflict with Jeremiah 25:12, where the seventy years are ended in 539 B.C.E.! This scripture provides the most telling evidence against the claim that the seventy years ended in 537 B.C.E. or in any other year after 539. 하지만 에스라가 정말 그 사실을 보도했을까? 이책의 5장에서 역대하 36:21-23의 논의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에스라는 워치타워 협회가 주장하듯이 70년이 "고레스의 원년" 또는 기원전537년에 끝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을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기원전 539년에 70년이 끝난다고 되어 있는 예레미야 25장 12절과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다. 이 성구는 70년이 기원전 537년이나 또는 539년 이후 어떤 해에 끝났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매우 확실한 증거를 제공한다. It is true that in the original manuscript of The Gentile Times Reconsidered (sent to the Society in 1977), one of the possible applications of the seventy years considered was that they could be counted from 605 to 536/35 B.C.E. But this application was presented as a less likely alternative. In the published editions of the work this suggestion has been omitted because, like the application of the period advocated by the Watch Tower Society, it was found to be in clear conflict with Jeremiah’s prophecy. In discussing this application, the Society argues that “there is no reasonable way of stretching Cyrus’ first year from 538 down to 535 B.C.E.”43 As the application discussed did not imply this, and as I am not aware of any other modem commentator that attempts to stretch Cyrus’ first year “down to 535 B.C.E.,” this statement seems to be nothing but a “straw man” created by the Watch Tower Society itself. Although an argument directed against such a fabricated “straw man” may easily knock it down, the argument completely misses the real target.44 본책 <이방인의 때를 재고함>의(1977년에 협회로 보내짐)의 원본 원고에서 고려된 70년 예언의 가능한 해석 중 하나는 기원전 605년에서 536/35년까지의 기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가능성이 적은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이 논문이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는 이 해석은 빠졌는데, 이는 워치타워 협회가 주장하는 해석과 같은 것으로서, 예레미야의 예언과 명백히 상충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해석의 적용을 논하면서, 협회는 "고레스의 첫 해를 기원전 538년에서 기원전 535년으로 늦추어야 할 합리적인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43 논의된 해석의 적용은 이 사실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고레스의 첫 해를 "기원전 535년으로 늦추려는" 다른 현대 주석가의 이 주석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워치타워 협회의 '허수아비'공격이다. 비록 그렇게 날조된 "허수아비"에 대해 논쟁함으로써 쉽게 허수아비는 무너뜨릴 수 있지만, 그 논증은 진짜 목표를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44 Finally, the Watch Tower Society claims, 결국, 워치타워 협회는 이렇게 주장한다: . . . we are willing to be guided primarily by God’s Word rather than by a chronology that is based principally on secular evidence or that disagrees with the Scriptures. It seems evident that the easiest and most direct understanding of the various Biblical statements is that the 70 years began with the complete desolation of Judah after Jerusalem was destroyed.45 . . . 우리는 주로 세속적인 증거에 바탕을 두거나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연대기보다는 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인도되기를 원하고 있다. 다양한 성경 진술에 대한 가장 쉽고 직접적인 이해는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은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 유다가 완전히 황폐된 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45 Again, these statements tend to give the impression that there is a conflict between the Bible and the secular evidence on the seventy years, and that the Watch Tower Society faithfully stands for the Bible against secular evidence. But nothing could be further from the truth. On the contrary, biblical and historical data are in good agreement on the period under discussion. Here,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discoveries, as in so many other cases, uphold and confirm biblical statements. On the other hand the interpretation of the seventy-year period given by the Watch Tower Society does conflict with facts established by secular evidence. As has been clearly demonstrated above and in Chapter 5, it is also in flagrant conflict with the “easiest and most direct understanding of the various Biblical statements” on the seventy years, such as Jeremiah 25: 11–12; 29:10; Daniel 1:16; 2:1; and Zechariah 1:7,12, and 7:1–5.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진술들은 70년 예언에 대한 성경과 세속적인 증거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과, 워치타워 협회는 그러한 갈등 가운데서 세속적인 증거보다는 성서의 역사를 충실히 옹호한다는 인상을 주려는 경향을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 무엇도 진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는 없다. 반대로, 성서 자료와 역사 자료는 논의 중인 역사에 대해 매우 일치한다. 다른 많은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역사적, 고고학적 발견은 성서의 진술을 지지하고 확인시켜준다. 반면 워치타워협회가 내리는 70년의 해석은 세속적인 증거에 의해 확립된 사실과 충돌하며, 앞서 명백히 입증된 바와 같이, 또한 5장에서 예레미야 25:11-12, 29:10, 다니엘 1:16, 2:1 및 사가랴 1:7,12, 7:1-5의 다양한 성서적 진술에 대한 가장 쉽고 가장 직접적인 이해"와 충돌한다. The real conflict, therefore, is not between the Bible and secular evidence, but between the Bible and secular evidence on the one hand, and the Watch Tower Society on the other. As its application of the seventy years is in conflict both with the Bible and the historical facts, it has nothing to do with reality and merits rejection by all sincere truth-seekers. 그러므로 진짜 갈등은 성경과 세속적 증거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성서와 세속적 증거 사이에 있지만, 나머지는 워치타워 협회에 있는 것이다. 70년 예언의 워치타워 협회의 해석은 성경과 역사적 사실 모두와 충돌하기 때문에, 실제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자들의 거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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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Let Your Kingdom Come,” pp. 188, 189.
17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188, 189면.
18 Ibid., p. 188.
18 같은 책, 188면.
19 See the section, “The ‘third year of Jehoiakim’ (Daniel 1:1–2)” in the Appendix for Chapter 5 below.
19 제5장 부록에서 '여호야김 제3년'(다니엘 제1:1~2)을 참조하라.
20 A. K. Grayson, Assyrian and Babylonian Chronicles (Locust Valley, New York: J. J. Augustin Publisher, 1975), p. 100.
20 A. K. 그레이슨 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연대기> (뉴욕 로커스트 밸리: J. J. 어거스틴 출판사, 1975년), 100면.
21 Gerhard Larsson, “When did the Babylonian Captivity Begin?,”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Vol. 18 (1967), p. 420.
21 게르하르드 라슨 저<바빌로니아 포로생활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신학 연구 저널, 제18권 (1967년), 420면.
22 A. K. Grayson, op. cit., p. 102. (Emphasis added.)
22 A. K. 그레이슨, 앞서 인용된 책, 102면. (강조는 추가됨)
23 “Let Your Kingdom Come,” p. 188.
23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188면.
24 Insight on the Scriptures, Vol. 1 (1988), p. 415.
24 <성경 통찰>, 제1권 (1988년), 415면.
25 New Bible Dictionary, 2nd edition, ed. by J. D. Douglas et al (Leicester, England: Inter-Varsity Press, 1982), p. 630.
25 신성서사전, 제2판, J. D. 더글러스 외 연구진(영국 리스터: 인터-바시티 출판부, 1982년), 630면.
26 See Albertus Pieters’ discussion in From the Pyramids to Paul (New York: Thomas Nelson and Sons, 1935), pp. 184–189.
26 알베르투스 피에터스 저 <피라미드에서 폴까지의 연구>(뉴욕: 토마스 넬슨과 아들들, 1935년), 184-189면.
27 “Let Your Kingdom Come,” p. 188, quoting from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X, vi,1.
27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188면에서 요세퍼스의 유태인 고서 X, vi,1절 인용함.
28 Ernst Wilhelm Hengstenberg, Die Authentie des Daniels und die Integrität des Sacharjah (Berlin, 1831), p. 57. Translated from the German.
28 Ernst Wilhelm Hengstenberg, Die Authentie des Daniels und die Integrität des Sacharjah (베를린, 1831년, 페이지 57)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29 Josephus mentions the seventy years five times in his works, viz., at Antiquities X, 7, 3; X, 9, 7; XI, 1, 1; XX, 10, 2; and Against Apion I, 19. In these passages the seventy years are alternatingly referred to as a period of slavery, captivity, or desolation, extending from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until the first year of Cyrus.
29 요셉푸스는 그의 저서 <고대사> X, 7, 3; X, 9, 7; XI, 1, 1; XX, 10, 2 과 <아비온1세에 항거하여>에서 '70년'을 모두 다섯 번이나 언급한다. 이 내용들에서 '70년'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부터 고레스 원년까지의 노예, 포로, 또는 황폐한 기간으로 번갈아 언급된다.
30 Josephus’ Against Apion I, 21 is here quoted from the translation of H. St. J. Thackeray, published in the Loeb Classical Library (Cambridge, Massachusetts, and London, England: Harvard University Press, 1993 reprint of the 1926 edition), pp. 224–225. Some defenders of the watch Tower Society’s chronology claim that there is a textual problem with the “fifty years,” pointing out that some manuscripts have “seven years” instead of “fifty” at I, 21, which some earlier scholars felt could be a corruption for “seventy” Modern textual critics, however, have demonstrated that this conclusion is wrong. It has been shown that all extant Greek manuscripts of Against Apion are later copies of a Greek manuscript from the twelfth century CE., Laurentianus 69, 22. That the figure “seven” in these manuscripts is corrupt is agreed upon by all modern scholars. Further, it is universally held by all modem textual critics that the best and most reliable witnesses to the original text of Against Apion are found in the quotations by the church fathers, especially by Eusebius, who quotes extensively and usually literally and faithfully from Josephus’ works. Against Apion I, 21 is quoted in two of Eusebius’ works: (1) in his Preparation for the Gospel, I, 550, 18–22, and (2) in his Chronicle (preserved only in an Armenian version), 24, 29–25, 5. Both of these works have “50 years” at I, 21. The most important of the two works is the first, of which a number of manuscripts have been preserved from the tenth century C.E. onwards. All modern critical editions of the Greek text of Against Apion have “fifty” (Greek, pentêkonta) at Against Apion 1, 21, including those of B. Niese (1889), S. A. Naber (1896), H. St. J. Thackeray (1926), and T. Reinach & L. Blum (1930). Niese’ s critical edition of the Greek text of Against Apion is still regarded as the standard edition, and all later editions are based on—and improvements of—his text. A new critical textual edition of all the works of Josephus is presently being prepared by Dr. Heintz Schreckenberg, but it will probably take many years still before it is ready for publication. Finally, it should be observed that Josephus’ statement about the “fifty years” at Against Apion I, 21 is preceded by his presentation of Berossus’ figures for the reigns of the Neo-Babylonian kings, and these figures show there was a period of fifty years, not seventy, from the 18th year of Nebuchadnezzar to the second year of Cyrus. Josephus himself emphasizes that Berossus’ figures are “both correct and in accordance with our books.” Thus the context, too, requires the “fifty years” at Against Apion I, 21.
31 Josephus’ Complete Works, translated by William Whiston (Grand Rapids: Kregel Publications, 1978), pp. 678–708. Whiston’s translation was originally published in 1737.
30 요세퍼스의 <아비온 1세에 항거하여>는 로엡 고전 도서관(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와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H. 세인트 J. 태커레이의 번역본에서 인용한 것이다: 하버드 대학 출판부, 1926년판 1993년 재인쇄), 224–225면. 워치타워 협회의 연대기 옹호자들은 일부 원고가 I, 21에서 "50년" 대신 "70년"으로 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50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초기 학자들은 이 "50"이 "70"의 변형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본문 비평가들은 이 결론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하였다. 현존하는 모든 <아비온에 항거하여>의 그리스어 필사본은 12세기의 그리스어 필사본인 Laurentianus 69, 22의 사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필사본의 숫자 "7"이 변형되었다는 생각은 모든 현대 학자들이 일치한다. 게다가, <아비온에 항거하여> 원문에 대한 가장 훌륭하고 신뢰할 수 있는 목격자들이 교회 아버지들, 특히 요세퍼스의 저서에서 광범위하고 문자 그대로 그리고 충실히 인용하는 유세비우스에 의해 발견된다는 것은 모든 현대 비평가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비온 1세에 항거하여>, 21은 유세비우스의 두 작품에서 인용된다: (1) <복음을 위한 준비> I, 550, 18-22 그리고 (2) 그의 연대기 (아르메니아어로만 보존됨), 24, 29-25, 5. 이 두 작품 모두 I, 21에 "50년"으로 되어 있다. 두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작품인데, 그 중 많은 필사본들이 기원후 10세기 이후까지 보존되어 왔다. <아비온에 항거하여>의 그리스어 본문에 대한 모든 현대 비평판 <아비온 1세에 반항거하여>, 21에 는 50 (그리스어, 펜테콘타)으로 되어 있다. Niese (1889), S. A. Naber (1896), H. St. J. Thackeray (1926), 그리고 T. Reinach & L. Blum (1930) 니세의 그리스어 <아비온에 항거하여>에 대한 비판판은 여전히 표준판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후의 모든 판본은 그의 본문에 바탕을 두고 개선되었다. 요세퍼스의 모든 저서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본문 판이 현재 하인츠 슈레켄베르크 박사에 의해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출판할 준비를 갖추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비온 1세에 항거하여> 21의 "50년"에 대한 요세퍼스의 진술은 그가 신바빌로니아 왕들의 치세에 대한 베로수스의 인물들에 대한 그의 발표보다 앞서 있으며, 이 수치들은 느부카드네자르 18년부터 키루스 2년까지의 기간이 70년이 아니라 50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세퍼스 자신은 베로수스의 수치가 "우리의 책에 부합하고 정확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정황상으로도 <아비온 1세에 항거하여>, 21의 내용에는 "50년"이 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31 31 윌리엄 휘스턴이 번역한 요세퍼스의 전집 (그랜드 래피즈: 크리그 출판사, 1978), 678–708면 휘스턴의 번역본은 원래 1737년에 출판되었다.
32 1bid., p. 684, § 14.
32 같은 책 684면, §14.
33 Ibid., p. 686, § 19.
33 같은 책 686면, §19.
34 Ibid., pp. 688, 689, § 23.
34 같은 책 688, 689면, § 23.
35 Against Apion I, 20–21.
35<아비온 1세에 항거하여>, 20-21
36 “Let Your Kingdom Come,” p.188.
36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188면
37 On Theophilus’ application of the seventy years, see A. Roberts and J. Donaldson, eds., The Ante-Nicene Fathers, Vol. 2 (Grand Rapids: Wm. Eerdmans Publishing Co., reprinted 1979), p. 119. Theophilus probably based his terminal date of the seventy years on Ezra 4:24, confusing Darius Hystaspes with “Darius the Mede” of Daniel 5:31 and 9:1–2.
37 테오필로스가 70년을 적용한 내용은 A를 참조하라. 로버츠와 J. 도날드슨, 에드즈가 편집한 <The Ante-Nicene Fathers>, 2권 (그랜드 래피즈: Wm) Eerdmans 출판사, 1979년 재인쇄), 119면. 테오필루스는 아마도 70년의 끝을 에스라 4장 24절에 근거했을 것이며, 다리우스 히스타스페스를 다니엘 5장 31절과 9장 1-2절의 "메데의 다리우스"와 혼동했을 것이다.
38 Ibid., p. 329. This application of the seventy years may have been influenced by Rabbinic views. Referring to the Rabbinic chronicle Seder Olam Rabbah (SOR), Dr. Jeremy Hughes points out that “later Jewish tradition reckoned 52 years for the Babylonian exile (SOR 27) and 70 years as the interval between the destruction of the first temple and the foundation of the second temple, with this event dated in the second year of Darius (SOR 28; cf. Zc 1.12).” The 70 year-period was “divided into 52 years of exile and 18 years from the return to the foundation of the second temple (SOR 29).”—Jeremy Hughes, Secrets of the Times (Sheffield: JSOT Press, 1990), pp. 41 and 257.
38 같은 책, 329면. 70년의 이러한 적용은 랍비의 견해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제레미 휴즈 박사는 랍비 연대기 세데르 올람 랍바(SEDER Olam Rabbah, SOR)를 언급하며 "나중에 유대교 전통은 바빌로니아 망명 기간인 52년과 70년을 첫 번째 성전이 파괴되고 두 번째 성전이 세워지는 기간으로 여겼으며, 이 사건은 다리우스 2년에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SOR 28; cf; cf. Zc 1.12)." 70년의 기간은 "유배 기간 52년과 제2의 성전 (SOR 29)의 창건 18년으로 구분되었다."—제레미 휴즈 저 <시대의 비밀> (셰필드: JSOT 출판사, 1990), 41, 257면.
39 As is shown in the Appendix for Chapter 5, “The ‘third year of Jehoiakim’ (Daniel 1:12),” these texts also include Daniel 1:1–2 and 2:1.
39 제5장의 부록 '여호야김 삼년'(다니엘 1장 12절)에서 보듯이, 이 본문에는 다니엘 1:1-2와 2:1도 포함되어 있다.
40 For a full discussion of the texts dealing with the seventy years, see Chapter 5 of the present work.
40 70년을 다루는 본문에 대한 전체 설명은 본 연구의 5장을 참조하라.
41 “Let Your Kingdom Come,” pp. 188–189.
41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188-189
42 Ibid., p. 189.
42 같은 책 189면
43 Ibid.
43 같은 책
44 Most commentators end the seventy years either with the fall of Babylon in 539 B.C.E., with Cyrus’ decree in 538, with the return of the first Jewish remnant to Palestine in 538 or 537 (Ezra 3:1–2), or with the commencing of the reconstruction of the temple in 536 (Ezra 3:8–10). (Cf. Professor J. Barton Payne, Encyclopedia of Biblical Prophecy, Grand Rapids: Baker Books, the 1980 reprint of the 1973 edition, p. 339.) Curiously, these alternatives (except for the Watch Tower Society’s own 537 B.C.E. date) are not even mentioned in the “Appendix” to “Let Your Kingdom Come”!
44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기원전 539년 바빌론이 멸망하고, 538년 고레스의 포고령으로, 538년 또는 537년(에즈라 3:1-2)에 팔레스타인에 첫 유대인 남은자가 돌아오거나, 536년(에스라 3:8-10)에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면서 70년을 마감한다. (그랜드 래피즈: 베이커 북스, 1973년판 1980년판, 339쪽) 흥미롭게도, 이러한 대안들 (워치타워 협회의 기원전 537년 연대를 제외하고)은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의 부록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45 “Let Your Kingdom Came,” p. 189
45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1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