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ver.me/GpfGaFv7
양산-그늘을 만드는 일은 남자답지 못한가
우산과 양산은 모양이 똑같지만 용도는 정반대다. 하나는 비를 피하고, 하나는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서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방수용 천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그림 프린트가 선명하게 잘 드러나도록 마직을 많이 이용한다. 마직은 물에 매우 취약한 재료다. 우산이 먼저 생겼을까, 양산이 먼저 생겼을까. 양산을 써 본 적이 거의 없는 남자들은 즉시 당연히 우산이 먼저일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먼저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우산은 기원전 고대 이집트 기록에도 보일 정도로 오래된 사물이다. 그런데 이런 벽화 중에는 커다란 종려잎을 흔들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때 종려잎은 바람을 만드는 부채일 수도, 그늘을 만드는 양산일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산을 뜻하는 영어 단어 '엄브렐러(umbrella)'의 어원이 고대 로마시대의 말 '그늘(umbra)'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우산의 어원이 '그늘'이다? 그렇다면 우산은 오히려 그늘을 만드는 양산의 '파생상품'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양산은 여자의 전유물이다. 양산으로 제 머리에 그늘을 이고 다니는 남자가 있다면 십중팔구 그는 '의혹'의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우산도 여자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을 아는가.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서 남자들은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쓰는 것을 떳떳하지 못한 일로 여겼다. 아직도 군법에서는 군복을 입고서 우산 쓰는 일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는 이러한 '고대적 남성성'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군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우산을 여자의 전유물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남자는 여전히 거의 없다.
'남자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산이 여자의 사물이라는 골동품적 발상만큼이나 양산은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완고한 사고도 실체 없는 것일지 모른다. 여름 햇볕은 누구에게나 따갑다.
[함돈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