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놀이 대신 연초 10회가 뭉쳤다. 시월 말에 예정된 단풍놀이 대신 시골집에 모여 시원하게 놀기로 했다. 동기회장의 번개 모임 제안이 성사된 것이다.
정연복님의 「단풍과 나」를 생각하며 모임을 준비한다.
‘차츰차츰 단풍 물드는 잎들을/ 멀뚱멀뚱 쳐다보지만 말자./ 저 많은 잎들은 빠짐없이 생의 절정으로 가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기죽고 슬퍼하지 말자./ 한 하늘 하나의 태양 아래 또 같은 비바람 찬이슬 맞으며/ 지금껏 하루하루 살아온 나무와 나의 삶인 것을/ 이제 고운 빛 띠어가는 나무의 한 생이라면/ 내 가슴 내 영혼 또한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가리’
본 모임도 좋지만 기다림과 준비 또한 재미있고 설렌다.
미꾸라지 통발을 걷고 고기잡이를 같이 하자는 대성 친구의 전화를 받고 아침 일찍 대성으로 갔다. 초등학교 때 놀던 곳으로 마을이 깨끗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도랑의 물이 깨끗하고 차갑다. 토함산 터널을 뚫을 때 수맥이 터져서인지 물의 양이 많아졌다고 한다.
통발 32개를 걷으니 미꾸라지 양이 상당하다. 소쿠리로 민물새우를 잡는다. 물이 깨끗해서 펄펄 뛰는 새우가 많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친구에게 통발용 떡밥 만드는 방법을 물었다. 떡밥은 멸치를 갈아 깻묵과 된장에 넣고 잘 뭉쳐질 수 있도록 밀가루를 넣어 반죽한다. 구슬처럼 동그랗게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한단다.
친구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아침상에는 가을 상추를 비롯해 가을 음식으로 가득하다. 뭔지 모를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참으며 맛있게 먹었다. 밭과 논을 둘러보니 친구는 역시 농사의 만물박사다.
모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일차로 다섯 명이 대성 친구 집에서 끓인 추어탕을 들고 왔다. 민물새우를 넣어 끓인 추어탕이라 약간의 단맛과 함께 시원하다. 추어탕을 맛있게 먹은 친구들은 가까운 아기봉산에 가고 나는 친구 맞을 준비를 한다. 장어와 삼겹살을 구울 틀과 이것저것을 준비한다. 친구들이 온다. 밤 한 포대를, 깨로 만든 묵을, 장어를, 삼겹살을, 수박을, 과일을, 복분자와 더덕주를, 음료수를, 휴지를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겨울 큰누나 시집가던 날, 마을 어른들이 가져온 부조 음식이 생각난다. 묵을, 단술을, 유가를, 동동주를 이고 지고 들어오시던 친구 부모님이 생각난다.
날이 어두워지고 조명과 함께 우리는 함께 어울린다. 고기를 굽는 사람, 술을 먹는 사람, 안부를 묻는 사람, 옛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 초등학교 때 첫 만남의 설래임을 이야기하는 사람, 살아가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사람, 지금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사람,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 등 어울림과 울림이 있다.
밤하늘의 별과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오손도손 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시원하게 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적당히 즐기다 자고 일찍 일어나 마을를 돌며 고향의 맛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다 붙이더라도 초등학교 동기 모임은 학력, 경력, 건강, 부와 명예를 뛰어넘은 순수한 인간의 모임이다.
잔치는 끝나고 모두 현재의 위치로 돌아간다. 다음날부터 카톡이 오기 시작한다.
울산의 눔이는 “좋은 친구들 덕분에 시골집 앞마당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릴 적 생각나게 하는 밤이었어요.” , 울산의 순이는 “노을 진 하늘, 마당 한켠에 숯불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친구들 오순도순 모인 정겨운 시간이 연기와 함께 어우러져 보기도 좋더라.”, 부산의 옥이는 “훗두루 맛두루였던 하루, 아직도 귓가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네. 재미나고 귀한 추억 만들기 했으니 오래도록 기억되길...”, 울산의 우야는 “친구들 고맙고 사랑한다. 표현하고 싶은 내 마음을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모두 표현해 버렸네. 찾아보니 영상이 있어서 내 마음을 친구들에게 보낸다.”라며 기타 치며 노래하는 영상을 보냈다.
붉은 단풍, 노란 단풍, 갈색 단풍, 형형색색의 단풍이 산과 마을을 덮어 간다. 들판에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밭의 작물들도 하루가 다르게 색이 변하고 있다. 우리도 함께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고 있다.
2024.10.7. 김주희
첫댓글 옛 친구들 만남은 즐거운 일입니다 좋은 만남 오래오래 가며 더욱 추억을 쌓아서 즐거운 삶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