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꿈이 뒤돌아 찾아오다
뉴욕물고기의 음악에선 진심어린 위로가 느껴진다 | 그는 그림 그리기와 노래 부르는 일로 청춘을 소진했다. 그가 먼지처럼 날려버린 청춘의 시간 중에는 당연히 밑도 끝도 없는 술자리도 다수 포함됐을 것이다. 그렇게 1990년대가 지나고 뉴밀레니엄의 감동도 훌쩍 지나간 2006년, 그는 첫 번째 앨범 을 꺼내 놓았다.
사람의 인생이란 자전거 체인 돌아가듯 척척 이가 맞는 게 아닌가 보다. 나는 뉴욕물고기(본명 김종윤)를 대표하는 한자성어라면 우여곡절(迂餘曲折)과 첩첩산중(疊疊山中)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그는 힘겨운 음악 인생을 살아왔다.
물론 쉬운 인생길이 어디 있을까. 대신 첩첩산중 속 휴양림의 새벽을 걷노라면 우리는 말 그대로 새벽이슬에 옷이 젖어 들어간다. 그렇다, 이 가수의 노래는 그렇게 기분 좋게 축축해지는 음악이다.
● "복잡하다, 인생도 음악도"
여러 음악인들이 "이 사람은 천재"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내 기준으론 지나치게 복잡하다. 인생도 음악도 말이다. 한 곡 안에 소위 말하는 '엣지'가 너무 많다. 한 곡 안에 세 곡으로 나누어도 충분할 만큼의 음악적인 드라마와 화성이 존재한다. 댄스나 발라드에 휘청대는 세상에서는 그마저도 너무 정성스럽다.
그리 간단치 않은 음악적 경력과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그의 이력에 비춰 그는 너무 여유만만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좀 더 빨리 데뷔를 하고 음악을 퍼내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이란 게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게 적당한 것 아닐까. 지금부터라도 그득한 항아리에서 한 곡 한 곡 곡주를 떠내는 듯한 그의 손길을 느낄 시간은 충분하다.
필자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은 그의 두 번째 앨범이 출시되기 직전이다(11월 초 발매 예정). 그렇다고 해서 그 구하기 어렵다는 첫 번째 앨범을 구하려고 애쓰지는 말자(사실 온라인을 통해 다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어느 제작자의 호주머니에 꽁꽁 숨어 있어 정작 뉴욕물고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금전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그의 말대로 빚에 빚을 내서 만든 두 번째 앨범을 잠시만 기다린다면 인터넷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그의 첫 번째 순정어린 앨범까지도 3단 변신을 거쳐 우리 곁에 찾아올지 모른다.
후드티셔츠를 캡모자 위로 씌우고 다니는 스타일은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 | ● 특별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반드시 성공해야 할 이유를 가진 노래들은 얼마든지 있다. 한 주에 한번 녹화하고 방송되는 방송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지만 인디씬에게는 조금 특별한 EBS<스페이스 공감>만 해도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한 달 내내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쉽게 말해 줄을 섰다는 얘기다.
음악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과연 몇 개나 되는지 잠시만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결국 돈 없고 빽 없는 뉴욕물고기 같은 가수의 노래는 발품을 팔아야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그의 음악을 들은 지 3년째 된 필자는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도끼질 같은 경험으로 당신은 그의 열혈 팬이 될 수 있다는 것.
첫 앨범에도 수록됐던 '왜 자꾸 눈물이'는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소주 세 병에 눈물 쫘~악 흐른다. 축하한다. 이제 당신도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그저 그 상황이 아닌 당신 가슴에 멍울이, 울혈이 풀려나가는 카타르시스다.
쉽게 얘기하자면 등을 쓰다듬어주는 친구의 위로, 바로 그것이다. 무려 열 세곡이 들어가 있는 이 음반을 내가 여기서 첫번째로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도 이제 그의 삶을 위로하고 안아줘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 제목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LOVE AGAIN' / 눈 먼 가슴 / 사람이다 / 반 / LIKE A FRENCH MOVIE / 진실의 숲 / 날아 물고기 / 챨리 채플린의 아이러니 / 왜 자꾸 눈물이 / 타샤의 정원 / 여행같은 삶 / BINGBING(낮잠이 준 선물) / NOTE Y.
10월 17일 홍대 앞 클럽 오퇴르에서. 뉴욕물고기(가운데) 왼쪽이 박새별, 오른쪽이 필자인 김 마스타
| ● 더 없이 화려한 2집 출연진
이번 앨범은 '다시 한 번 사랑하고 싶다'고 했던 고 백남준을 떠오르게 만드는 이 타이틀이다. 뉴욕에서 만들었던 첫 앨범과는 색채가 다르고 참여연주자의 뉘앙스 또한 다르다.
프랑스로 이주했던 오랜 후배인 동방불패의 베이시스트 서영도가 네덜란드 유학중인 재즈드러머 이도헌과 일시 귀국해 함께 녹음했으며 한국라틴계의 거장 '코바나'의 정정배도 선배 자격으로 참여했다.
여기에 현재 한국대중음악계의 두 개의 진주로 불리는 기타리스트 박주원(별칭이 '개미')과 피아니스트 이화가 그 화려한 반주의 수를 놓았으며 드렁큰 지니어스(drunken genius)로 알려진 초정밀 극세사같은 드러머 이재규가 뉴욕물고기를 뒤에서 떠받치고 있다.
게다가 성지송이라는 걸출한 첼리스트에 소니뮤직에서 나왔던 한국크로스오버뮤직의 신예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의 지원사격까지. 마무리에는 한국의 R.KELLY 하림이 참여했다. 이 세션라인업만으로도 한동안 인디씬의 인구에 회자될 것같다.
그의 팬 카페 미니홈피(/nyfish)에는 700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단지 그의 음악과 공연을 접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그를 찾고 또 찾는다.
열에 아홉에서는 멋있다거나 그럴싸하다는 얘기는 찾기 어렵다. 대신 대중음악의 가장 궁극적인 지점인 공감대형성의 이구동성이 터져나온다. "그래 나도 그래요, 그랬던 적 있었어요…." 이 얼마나 단순하지만 가슴 벅찬 사건인가?
친구를 따라서 찾아갔던 강남의 모 치과 옥상에서 열린 그의 공연(치과원장이 열혈팬이었다)에서 처음 들어본 노래가 이 가을에 시퍼렇게 멍든 내 가슴에 작은 반창고 하나 붙이듯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우리가 아무리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그리고 지긋함의 반값정도의 나이가 되어도 돌이켜보면 달라진 것이 그리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바로 머릿속에 담긴 추억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잘, 그것보다도 딱 내 맘에 드는 그림으로 그려놓았다면 우리는 다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뉴욕물고기의 노래는 바로 그 발걸음의 정지지점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음악을 격려해주고 위로해 줘야 한다. | ● 언더그라운드 싱어송라이터들의 마징가 or 맏인가
지난해 말부터 매월말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는 트리하우스라는 콘서트브랜드가 있다. 50여 명에 달하는 이들 가수들 진영에서 그는 마징가다. 그리고 맏이다. 그의 나이도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겨 중반에 이르렀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초절정의 동안(童顔). 게다가 오래된 추억 속에서 꺼내오는 그의 진심어린 다정함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알약 같은 밥을 먹을 줄 알았던 2009년의 오래된 미래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 것이다.
이 가을을 뉴욕물고기는 자신의 앨범 재킷을 직접 디자인하거나 후배들의 음반을 디자인해주며 보내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후드티셔츠를 캡모자 위로 씌우고 다니는 스타일도 한두 해된 것이 아니다. 필자같이 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가끔 그의 음악을 듣다가 그를 만나게 된다면 당신의 감정을 표현해도 좋을 성 싶다.
나는 혼자 먹는 밥상머리에서 TV에서 중계하는 격투기를 보며 두툼한 중국 개 챠우챠우와 같은 인상을 가진 뉴욕물고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가 다음에 차려줄 음악메뉴들을 고대한다. 무슨 이유일까. 이유야 이제부터 알아가면 그만이다.
김마스타 / 가수 겸 칼럼니스트 sereeblues@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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