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방글라데시
노 승희
사랑스런 막내 딸 정인!
네가 태어난지 어언 삼십여년이 다 되어 가건만 그날이 엊그제 일만 같으니 지나간 모든 세월은 한 순간인 모양이다. 너를 가지면서 아들이기를 바랬던것, 태몽을 잊은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하도 간절하여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나 어떤 방법으로도 변명이나 사과할 길이 없더구나. 너 만약 고추달고 나왔더라면 네번째 딸을 어디서 찾으려고 아들을 바랐을까. 아니 그랬더라면 네 동생이 세상에 올수나 있었을까? 게다가 태몽을 잊다니..엄마로서 이만저만 미안한게 아니다. 정말 미안해. 대단히 미안해 정인.
정인! 너는 적극적이고 총명한 아이였더라. 기억나니? 언니 유치원 졸업 사진 찍을때 너도 찍겠다고 시장 바닥에 두다리 뻗고 눈물 콧물 빼며 울어대던거 말이야. 결국 엄마는 두손들고 사진관으로 갔잖아. 너는 졸업사진 먼저 찍어놓고 유치원 간 녀석이야. 바알간 볼에 울어서 부은 눈을 하고 학사모 쓴 다섯살 아기 정인...지금은 너무 멀리 있구나.
네가 태어나고 봄이 열 아홉번쯤 지났을 것이야 너는 대학생이 되었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네가 록 밴드를 조성하고 리드보컬로 활약 할때만 하더라도 나름 대학생활을 즐긴다고 엄만 생각했다. 광안리 록 페스티벌. 그 많은 군중앞에서서 목에 핏줄 그리며 열창 할때에 아마도 네 안의 수많은 너의 허상들이 성대를 통하여 뽑혀져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너의 몸도 마음도 자라났겠지.엄마는 지금 손잡이 끝에 사슴 한마리 서 있는 네가 사준 나무 스픈을 들고 이역의 너를 그린다. 스픈이 찻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웬지 지금 세상것은 아닌것 같은 착각이 드는구나. 2학년 여름방학. 네가 느닷없는 국토 대 정에 나서겠다고 '허락'의 피켙을 내 들었을때는 아무도 동조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대장정은 여학생으로는 넘지못할 산 으로만 보였고 가족 모두는 회의적 이었다. 아빠는 과격한 언어로 너를 제압 하려 하셨지만 막무가내였다. 너는 아빠앞에서 소리내어 서럽게도 울더니 문을 박차고 나갔다. 네가 아빠를 ..이긴 것이다. 너는 분명 여성 이지만 '여성성'으로만 쏠리지 않는 다분히 포괄적이고도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대학생 이었다.
대장정 출발점인 삼척으로 떠나던 밤엔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듯 폭풍우가 쏟아졌다. 가뜩이나 걱정 스러운 가족들은 더욱 심란했었다 . 마치 인생극장에 효과음으로 등장한듯한 퍼붓는빗 소리. 아. 생각하면 지금도 공연히 마음이 서글퍼 지는구나.
'떠난다' 세글자가 뜬 핸드 폰을 남기고 너는 폭풍속으로 사라졌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핸드 폰을 두고 간 이유가 어디 그 뿐이었겠니. 모든것으로 부터의 자유를 너는 갈망 했을 것이다. 엄마는 알아. 심지어는 스스로를 옥죄는 너 자신으로 부터 우선 놓여나고 싶었을 너를.
삼척에서 제주일주. 장장 950km 의 대장정에 스믈 한살 네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너 떠나고 일주일 쯤 지났을때 받은 오밀 조밀한 글씨의 엽서 한장을 엄마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여름은 앞만보고 내달리고 사람들은 바다로 부산으로 몰려들 왔다. 해운대는 넘치는 인파로 매일 신기록을 다시 썼다. 한 낮의 기온은 사람의 체온 가까이 오르며 더위만이 공통의 화제일 적에 거실에 앉아서도 바다가 보이는 집을 떠난 네가 살을 익힐듯한 태양 아래 흐믈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걷고 또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고 했다. 7번 국도의 어디쯤 멀리 바다가 보이긴 한다고도 했다. 엠블런스는 항상 뒤에 따라오고 있고 견디지못하면 언제든 포기 하면 된다고 했지만 특히 여학생 부상자는 속출 하고 되돌아 간 대원도 있다고 일렀다. 기왕 떠난 길인데 이제라도 우리 가족은 힘내라는 격려의 말 한마디 보내고 싶었지만 편지를 전할 주소도 네겐 없고 통화를 시도해볼 전화도 없는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우리는 네가 점점 탄탄한 사고로 무장해 가는것이 보이는듯 했단다. 엽서 한장의 사연 만으로도.
나서 자라고 살고 있는 부산에 도착 하던날도 알리지 않은 너는 당일 저녘 전화로만 깔깔 거리면서 이제는 거의 의기 양양했다. 제주도만 남았다던 목소리에 비치던 자신감을 감지한 엄마는 비로서 안정을 찾아갔다. 불가능일줄만 알았던 대장정 완주에 네가 바짝 다가선 느낌을 받은 우리는 그전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네 깍정이 같은 마음을 이해 하며 만날날 만을 기다렸었지. 정인! 그 날들이 생생하지 않니?
너의 저력은 놀라웠다. 제주도 일주를 끝으로 마침내 대장정의 막은 내렸지. 네가 집에 돌아왔을때 우리는 모두 너를 감격으로 끌어 안았다. 이제야 말이지만 네 모양은 거의 노숙자 였다. 상상 이상으로 검게 탄 피부와 남루하기 그지없는 옷차림. 몰골은 국적불명의 이방인 같았지만 울면서 빗속으로 사라지던날로부터 25일간의 고행끝에 대장정 완주의 값진 훈장을 안고 온 네가 참 많이 자랑 스러웠다. 네 인생의 젊은 한 여름, 육신의 고통을 통해 정신을 단련하는 옹골찬 체험을 한 너는 무슨 일이라도 해낼것만 같았다. 날이 갈수록 너는 대장정파 친구들과 막강한 우정을 나누며 점점 두려움 없는 여성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너는 대학 3학년. 학교를 자퇴 한다는 너의 폭탄 선언은 우리들의 '즐거운 나의집'을 초토화 시키는위력이 있었다. 말이 승락이지지 통보에 불과 했던 그날의 만행은 네 인생의 역사적인 날 이기도 했다. 휴학은 몰라도 자퇴만은 막아보려고 엄마는 속을 태워도 보았지만 부질 없었다. 너는 너 자신이 스스로 칼을 들고 공대생으로서의 2년을 도려 내었다. 그것은 바로 네 삶의 개혁과도 같은 일 이었다. 외롭게도 정인! 너는 네가 나아갈 세상을 오직 혼자서 찾아내고 홀로 길을 내어 그곳으로 간것이다.
전공을 바꾸고 부모의 명을 거역한 죄로 스스로 학비를 벌며 밤을 낮삼는 고된 삶의 단련을 자처했다. 독학과도 맞먹는 혹독한 상황에서 네가 4년간의 모진 대학생활을 이겨낼줄은 아무도 몰랐다.
너의 꿈은 이루어졌다. 아니 꿈을위한 너의 부단한 노력과 남 모르는 눈물로서 네 꿈을 쟁취할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너는 단단하고도 견고한 사고를 가진 믿을수 있는 딸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이미 막내딸이 아닌 한 여성으로, 인간으로서 너를 신뢰하게 되었다.
엄마의 아침밥을 먹고 출근 하고 싶다던 너의 작은 소망은 우리 가족들에게 밀어닥친 엄청난 고통과 슬픔이 오고 난 후에야 현실이 되었다. 일어날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나 우리는 오로지 슬픔에만 매달리며그것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과연 산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았던 그일을 받아들일 온전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받아 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수는 없는것이기에 하늘과 맞대응 하는 어리석음을 접었을 뿐이리라.
그 후로 우리가족은 말을 잃었다. 무표정과 침묵만으로 우리만의 고통과 좌절의 턴넬을 지나고 있었다. 엄마의 아침밥을 그리더니 막상 함께 한 너는 쥬스 한잔으로 아침을 끝내더라.
호주유학을 준비하던 너는 급작 스럽게 한번 더 삶의 궤도를 수정하여 엄마 가슴을 서늘케 하였다. KOICA (한국국제 협력단) 에 입단하여 뱅골어를 습득하고 방글라데시 문화를 미리체험 해보는 훈련과정을 여주의 깊은 산골 동네에서 통과 했다.그 나라 특정상 '기아체험'도 있었고 '정전체험'등 도 인상적 이었다. 말 그대로 인생의 역방향으로 돌아 앉는 형상 이었지만 너는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방글라데시에 파견 되었다. 네 인생에 또한번의 실험적 처사였다. 내달릴수 있는 포장도로를 버리고 비포장의 황무지를 선택한 너에 대한 엄마로서의 이해와 염려는 지금도 내 안에서 어지럽게 부딛치고 충돌 한다.
2008 년 7월8일.
"엄마 우리 쿨 하게 헤어져' 단호히 집앞에서 헤어지자는 너와 우리는 어스름 새벽길에 작별의 포옹을 하였지.
근무 기간 2년. 휴가때는 몰디브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잊지 않고.
심약한 엄마가 삶의 모든 의욕들을 잃고 육신의 기력마저도 무너저 갈때 너는 엄마의 지팡이가 되었다. 몸과 마음으로도 엄마는 너에게 의지 하며 스스로 의아해 하기도 했다. 너는 막내인데 엄마가 실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바랄수도 없던 막내딸인데 넌 어찌그리도 내 온 마음을 해아리고 눈물의 구덩이에서 엄마를 건져 내려고 그토록 애틋한 노력을 하였더냐!
가끔씩은 네 목소리도 듣고 네가 보내는 문자도 도착 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너를 보고싶은 마음이 하늘만 하구나. 또 한번 그리운 정인! 부모와 형제를 떠나 50년전의 세상일수도 있는 그 열악한 환경에 묻혀 인종이 다른 학생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너는 장한 대한의 딸이다!
그곳에서 눈에 띌수밖에 없는 이방인의 존재인 너의 안전을 믿고 더불어 자긍심있는 한국여성으로서의 너를 굳게 믿는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날을 기다리자.
하이! 방글라데시!
코리아에서 날아온 작은 평화의 사자를 부드럽게 안아다오. 우리는 모두 지구촌의 한 가족이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을 풀고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두 손을 잡고 나아가라!
친구와 친구 사이의 우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애적 사랑으로!
첫댓글 제가 봐도 심했습니다. 시간 되는 대로 생략할 예정입니다.
네째 따님을 훌륭하게 키우셨네요. 자랑스런 어머니의 마음도 읽고 갑니다. 선생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너는 너 자신이 스스로 칼을 들고 공대생으로서의 2년을 도려 내었다. 그것은 바로 네 삶의 개혁과도 같은 일 이었다. 외롭게도 정인! 너는 네가 나아갈 세상을 혼자서 찾아내고 홀로 길을 내어 그곳으로 갔다. 전공을 바꾸고 부모의 명을 거역한 죄로 스스로 학비를 벌며 밤을 낮삼는 고된 삶의 단련을 자처했다. 독학과도 맞먹는 혹독한 상황에서 네가 4년간의 모진 대학생활을 이겨낼줄은 아무도 몰랐다. 정인! 너의 꿈은 이루어졌다. 아니 꿈을위한 너의 부단한 노력과 남 모르는 눈물로서 네 꿈을 쟁취할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너는 단단하고도 견고한 사고를 가진 믿을수 있는 딸이 되어 있었다."
자기 앞길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개척해 나가는 자랑스런 딸이 부럽습니다. 훌륭하게 잘 키우셨습니다. 선생님의 딸이 아니네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딸입니다. 짝짝짝 자랑스런 딸에게 축하 보냅니다. 감동으로 잘 읽고 갑니다.
하이! 방글라데시! "코리아에서 날아온 작은 평화의 사자를 부드럽게 안아다오. 우리는 모두 지구촌의 한 가족이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을 풀고 두 손을 잡아다오!" 세계평화의 사신이 되어 전력투구하는 네째따님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잘키운 딸하나 열아들 부럽지 않다는 구호가 이런때 쓰는 말 인것 같군요. 존경합니다. 그리구 부럽습니다.
하이방글라데시따님의까므잡잡한모습을하고당당하게나타날것만같은느낌입니다자신감넘치는따님을두셔서행복하시겠습니다잘읽고갑니다
참으로 멋진 따님의 삶에 박수와 찬사를 맘껏 보냅니다! 자랑스런 대한의 딸 입니다. 어찌하면 저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며 역동적으로 본인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수 있는 용기가 솟을까요... 따님의 젊은 패기와 내면에 품은 비젼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이 아줌마 부럽습니다. 선생님? 따님은 반드시 훌륭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것입니다 아니 이미 살고 있잖습니까? 그저 신께 맡기고 기도만 하시면 될듯 싶습니다. 엄마 닮아서 똑똑한가 봅니다 선생님 가족 핫팅!!
쓰고 보니 결국은 자랑이 되었나요 겸손하라 겸손하라 하셨는데..생략도 못한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알짜는 어떻게 뽑아 내는지 정답을 좀 가르쳐 주셔요.
언니 졸업식때 사진 찍겠다고 바알간볼에 부운 눈으로 학사모를 쓴 정인! 다섯살 아기의 천진무구한 모습이그려집니다.따님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선생님!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