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수께끼 1 / 거대한 몸을 어떻게 지탱했을까
물에 떠서 살았다는 수중생활설 뒤집어져
범죄현장에 남은 발자국이 범인 추적에 매우 유용하듯이, 공룡의 발자국은 공룡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예를 들어 보폭을 보면 그 동물이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를 알 수 있다. 거대한 아파토사우루스나 뿔이 난 트리케랍토스, 그리고 갑옷 차림의 스테고사우루스 등은 대체로 한가롭게 거닐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또 어떤 공룡은 시속 40km로 달렸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용각룡이 어떻게 몸무게를 지탱했을까 하는 수수께끼는 발자국을 통해 풀 수 있다. 몸무게가 25t이 나가는 아파토사우루스, 27t이 나가는 마멘키사우루스, 30-50t이 나가는 브라키오사우루스 등은 용각룡들이다. 이들의 몸무게는 10분의 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물속에 넣어 대강의 부피를 구한 다음, 현존하는 파충류의 밀도를 사용해 구한 값이다. 파충류의 밀도를 사용하는 까닭은 공룡의 밀도가 대체로 파충류와 비슷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너무 몸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용각룡들은 수중에서 생활했을 것이라고 지금까지 생각돼 왔다. 또 용각룡의 발자국 화석 중에는 앞발만 보존돼 있는데, 이는 몸이 물속에 떠있어 뒷발자국 화석이 남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중생활설을 뒷받침하려면 그 근처에 수심이 3-4m의 바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조사 결과 용각룡 화석이 발견된 지역에는 그런 바다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앞발자국 화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학자들은 여기서 새로운 비밀을 알아냈다. 즉 앞발자국 화석이 언더프린트라는 것이다. 언더프린트란 표면에 새겨진 것이 아니고 엄청난 몸무게 때문에 표면 아래에 새겨진 자국이다. 표면에 새겨진 발자국은 풍화에 의해 없어지고 그 아래 새겨진 발자국만남았다. 이것은 발견된 앞발자국의 화석이 접시 모양으로 움푹 패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발자국이 아래 지층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발자국이 흐릿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모형실험을 통해 용각룡의 몸무게는 뒷발보다 앞발에 1.5-3배의 압력이 가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같은 체중이라도 앞발이 뒷발보다 지면에 닿는 면적이 적어 압력이 크게 작용한다. 이 점은 앞발자국만 나타나고 뒷발자국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결국 용각룡이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수중생활을 했다는 것은 전면적으로 뒤집혔다. 또한 화석을 연구하면서 용각룡의 근육이 엄청난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튼튼했다는 사실들도 드러났다.
□ 수수께끼 2 / 공룡은 온혈동물인가
파충류라는 것은 편견
동물의 몸은 체온이 일정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체온이 일정하면 몸 속의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 중에는 체온이 일정하지 않은 종류들이 있다. 바로 도마뱀이나 뱀과 같은 냉온동물로, 이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햇빛과그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포유류나 새와 같은 항온동물이 음식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체온을 내부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사뭇 다르다.
상식적으로 공룡이 파충류라면 냉혈동물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공룡화석이 발견된지 1백70여년이 지나는 동안 학자들은 공룡이 파충류라는 사실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해부학적으로 공룡의 머리뼈, 턱뼈, 이빨이 파충류의 것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또 공룡은 알을 낳고 피부도 비늘로 덮여 있었다. 비록 엉치뼈, 등뼈, 다리뼈가 파충류와 다른점도 있었지만 무시됐다. 그래서 공룡의 체구가 커진 이유를 스스로 체온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체적에 대한 표면적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공룡이 파충류와 포유류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파충류라고 볼 수 없으며, 그 일부는 온혈동물이었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 냉혈동물로 보기엔 너무 체구가 크다. 10t의 공룡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1℃를 높이기 위해선 밤낮없이 86시간 동안 계속 햇빛을 쐬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 공룡의 골격 속에는 하베스관이라는 혈관이 있는데, 이것은 냉혈동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온혈동물에게만 있는 특이한 기관이다.
◇ 공룡의 발자국화석은 공룡이 체중을 다리에 온전히 싣고 걸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은 공룡이 파충류보다 포유류에 가깝다는 것을 입증한다. 파충류는 복부(배)와 꼬리를 땅바닥에 대고 기어다니지만 포유류는 체중을 다리에 온전히 싣고 걸어다니는데, 공룡의 발자국은 포유류에 가깝다.
◇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을 산소 동위원소로 분석한 결과 신체의 각 부위의 온도차가 매우 적었다. 이 역시 온혈동물의 특징이다.
□ 수수께끼 3 / 새는 공룡의 자손인가
시조새 아르케에오프테릭스의 함정
새가 공룡의 자손이란 사실이 마치 정설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새가 정말 공룡으로부터 진화했는가라는 점은 여전히 공룡 연구자의 주요한 논쟁거리다. 이 논쟁의 뿌리는 매우 역사가 깊다.
독일 바바리아 지역에서 쥐라기 말(1억4천7백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한 동물 화석이 발견됐다. 이 동물 화석은 반은 파충류, 반은 새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즉 조류의 특징인 날개와 깃털을 가지고 있으면서 파충류의 특징으로 부리에 이빨을 가지고 있고 꼬리뼈가 있었다. 또한 날개에는 긴 발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이 동물을 파충류가 새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여겨 '시조새'(아르케에오프테릭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 시조새가 콤프소그나투스라는 공룡과 흡사하다는 것을 안 헉슬리가 1868년 처음으로 새가 파충류가 아닌 공룡에서 직접 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26년 덴마크의 하일만은 헉슬리의 주장을 뒤집었다. 즉 콤프소그나투스가 속해 있는 코엘로사우루스류에는 쇄골(가슴 좌우에 있는 S자형 뼈)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결국 하일만이 주장한 대로 새의 조상은 공룡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파충류의 일종인 조치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논쟁이 여기서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1975년 오스트롬이 공룡과 조류를 묶어 '공룡강'이란 새로운 분류를 만들며 새의 조상이 공룡이란 증거를 들고 나오면서 논쟁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논쟁이 아니라 공룡과 새의 관계가 부자지간(새가 공룡으로부터 진화한 경우)인지 형제지간(공룡과 새의조상이 같은 경우)인지이다. 그런데 1986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새인지 공룡인지 분간할 수 없는 화석이 발견돼 우리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시조새보다 7천5백만년이 오래된 트라이아스기 중기에 살았던 프로아비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 프로아비스는 '원조'(原鳥)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프로아비스를 새의 조상으로 보는 학자들은 시조새가 새라기보다는 공룡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프로아비스는 시조새에게 없는용골돌기, 퇴화된 이빨, 커다란 쇄골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의 새처럼 뼈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아비스의 화석은 완전하지 못해 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또 일부에선 '공룡이 새의 자손'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영국 과학자들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트라이아스기 중기에 두발로 걷던 작은 동물 가운데 하늘을 나는 것이 나타났는데, 이 중 일부가 공룡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공룡과 새의 관계에 대해 합의된 바는 없다. 다만 공룡과 새는 친족관계에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래서 공룡이 새의 조상인가, 공룡과 새는 조상이 같은데 달리 진화해 온 것인가, 아니면 새가 공룡의 조상인가 하는 점은 더 많은 화석이 연구된 다음에야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 수수께끼 4 / 현대과학으로 공룡을 되살릴 수 있을까.
호박 속의 공룡, DNA 복원
마이클 크리튼이 쓴 소설 '쥐라기 공원'에서 유전학자들은 멸종한 공룡을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호박(amber)은 나무의 진이 화석화된 것인데, 이 안에는 과거의 곤충이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공룡시대의 흡혈곤충이 호박 안에 갇혔다면 그 내장에서 공룡의 피를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이 피로부터 멸종된 공룡의 DNA를 분리해 공룡을 부활시켰다.
과연 소설에서처럼 공룡을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공룡을 부활시키려면 먼저 DNA를 분리해낼 수 있어야 한다. 공룡의 DNA를분리해낼 만한 곳은 공룡의 뼈화석과 호박 속에 갇힌 흡혈곤충이다. 그런데 공룡의 뼈는 화석화 과정을 거치면서 단백질이 파괴되기 때문에 DNA를 분리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흡혈곤충이 빨아먹은 공룡의 피로부터 공룡의 DNA를 찾아내는 것은 가능할까. 호박 속의 곤충으로부터 생물의 DNA를 분리하는 것은 실제로 이용되는 방법이다. 호박은 탄수화물 고분자로서 DNA가 손상되는 것을 막아준다. 실제로 호박 안에 포착된식물의 씨나 곤충으로부터 게놈 DNA를 분리한 예들이 많다. 그 예로 1993년 라울 카노 박사는 1억3천5백만년 전에 살았다고 추정되는 곤충으로부터 바구미 아종의 게놈 DNA를 분리해냈다. 여기서 게놈(genome)이란 생물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집합체를 말한다.
그러나 공룡은 작은 곤충이나 식물의 씨와 달리 덩치가 커 호박 속에 갇혀 있을리가 없다. 결국 공룡의 게놈 DNA를 분리해낼 가능성이 있는 곳은 호박 속에 갇힌 흡혈곤충 내장에 있는 공룡의 피다. 그러나 흡혈곤충의 내장에는 여러 가지 공룡의 피가 섞여있을 수 있어 하나하나의 공룡에 대한 DNA 정보를 분리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그 피가 공룡의 피인지 확인할 길도 없다. 결국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공룡의 게놈 DNA를 찾아낼 수 없다. 만일 공룡의 게놈 DNA를 발견한다면 공룡을 복원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 물음 역시 대답은 '아니오'다. 현재의 과학기술로 유전자만 가지고 공룡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은 없다.
□ 수수께끼 5 / 한반도에서 공룡 발굴이 왜 안될까
1972년 처음 공룡알 발견
우리나라에서 공룡이 살았다는 증거가 나오는 곳은 영남지역. 이곳은 백악기 때 퇴적된 지층으로 공룡의 뼈화석, 분(똥)화석, 알껍질화석, 그리고 발자국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룡화석이 발견된 것은 1972년. 경북대 양승영교수가 경남 하동에서 공룡의 알껍데기를 발견한 것이다. 이듬해 경북 의성 탑리에서 부산대 김항묵교수가 60cm에 달하는 공룡의 대퇴골의 뼈를 발견해 공룡화석의 발굴은 불이 붙는 듯했다. 김교수는 이 공룡을 한외룡(울트라사우루스 탑리엔시스)으로 명명해 세계 학계에 보고했다. 그러나 대퇴골 하나만으로 판단이 불가능하고 신종의 명명절차에 하자가 있어 국제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편 의성지역에서 많은 공룡 발자국화석이 발견돼 199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그후 1981년 경북대 양승영교수가 경남 합천에서 백악기 공룡의 쇄골화석을 발견한 것을 비롯해, 군위, 영천, 경주, 경산, 울산, 의령, 고성, 거제, 통영 등의 영남지역과 전남 광양, 해남 등지에서 수많은 공룡화석이 잇달아 발견됐다. 그런데 아쉽게도 공룡의 발자국화석이 대부분이었다.
공룡은 전체 골격이 발견되기 전에 뼈, 발자국, 알껍질 화석만으로 그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기가 어렵다. 유일하게 이빨화석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에 살았을 것이라고 알아낸 공룡은 카마라사우루스와 알로사우루스 정도뿐이다.
왜 백악기 공룡의 낙원이라는 한반도에는 우람한 체구를 가진 완벽한 공룡 발굴이 이뤄지지 않을까. 우선 당시 한반도 주변에 홍수처럼 급격한 자연재해가 없어 많은 공룡이 한꺼번에 죽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두번째로 한반도의 지층이 쌓일 당시 공룡의 뼈를 녹여내는 산성수가 흐르거나 산소가 많은 상태여서 화석의 보존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주로 석회분이 많은 지층에서 뼈화석이 발견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많은 화석이 있을 터인데, 몽고, 중국, 캐나다의 앨버타, 미국의 로키산맥처럼 수풀이 없는 사막이나 노출지역이 적어 발굴하기 힘들다는 점도 그 이유로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