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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그 집을 생각하면/ 김남주
은하수 추천 0 조회 58 14.12.18 07: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 집을 생각하면/ 김남주

 

이 고개는

솔밭 사이사이를 꼬불꼬불 기어오르는 이 고개는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욱신욱신 삭신이 아리도록 얻어맞고

친정집이 그리워 오르고는 했던 고개다

바람꽃에 눈물 찍으며 넘고는 했던 고개다

어린 시절에 나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어머니를 데리러 이 고개를 넘고는 했다

고개 넘으면 이 고개

가로질러 들판 저 밑으로 개여울이 흐르고

이끼와 물살로 찰랑찰랑한 징검다리를 뛰어

물방앗간 뒷길을 돌아 바람 센 언덕 하나를 넘으면

팽나무와 대숲으로 울울한 외갓집이 있다

까닭 없이 나는 어린 시절에

이 집 대문턱을 넘기가 무서웠다

터무니없이 넓은 이 집 마당이 못마땅했고

농사꾼 같지 않은 허여멀쑥한 이 집 사람들이 꺼려졌다

심지어 나는 우리 집에는 없는 디딜방아가 싫었고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때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당부 말씀이 역겨웠다

나는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총각 머슴으로 거처했다는 이 집의 행랑방을

 

- 시집『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비, 1995)

.................................................

 

 김남주 시인은 그의 여러 작품에서 집안 내력을 정직하고 소상하게 까발렸다. 그의 아버지를 노래한 시에서 “그래 그는 머슴이었다/ 십 년 이십 년 남의 집 부잣집 머슴살이었다/ 나이 서른에 애꾸눈 각시 하나 얻었으니/ 그것은 보리 서 말에 얹혀 떠맡긴 주인집 딸이었다” 김남주 시인은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독시리 자주 싸웠다면서 부잣집 딸과 그 집 머슴출신 남편의 혼인생활이 평탄할 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사회적 모순에 눈 뜨고 저항의식을 갖게 한 것은 성장 후 책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통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어린 시절 ‘외갓집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사는 초가집과는 외양부터 크게 다르고 머슴을 서넛 부리는 외갓집에 대해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

 

 지난번 낙마한 문창극 총리후보자는 강연에서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못을 박는 ‘숙명론’을 주장하였지만, 그보다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급투쟁으로 보는 유물론적 역사이해가 솔직히 설득력은 더 있다. 인간은 본디 불평등을 참지 못하는 성정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유’만 억압당하지 않는다면 늘 ‘평등’을 위해 싸워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또한 인류의 역사는 끝없는 권력투쟁의 역사이다. 부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가진 자들 간의 다툼으로 국민은 편할 날이 없다. 그들은 국가와 국민을 명분으로 앞세우기도 하지만 실상 싸움의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지배욕구와 영달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부를 허용하지만 가진 자들의 겸손과 권력욕구의 통제 없이는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회귀될 우려마저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박애’정신일 터이다. 승자독식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로 ‘박애자본주의’가 최근 세계경제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이유다. 개인적 선행의 차원을 넘어 배품과 나눔의 기부가 양극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찍이 자선사업의 지평을 열었던 카네기는 “사회의 경제번영으로 가장 커다란 수혜를 입은 사람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데 자신의 돈과 재능을 써야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어지러운 세상에서 불안하게 사는 까닭에는 한계를 드러내고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재벌들의 각성 부족에다가 정부의 경제민주화 실천 약속이 전혀 이행되지 않은 결과도 포함되어 있다.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 혁명 당시 민주주의 대원칙으로 내세운 정신이기도 하다. 장발장의 도둑질에 뺨을 후려치지 않고 선으로 갚은 신부님의 행동은 장발장을 감동적인 박애주의자로 거듭나게한 계기가 되었다. 이번 대한항공 사태를 통해 ‘앗, 뜨거라’하며 호된 나락을 맛보았으므로 다른 재벌들도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려야하고 또 달라지리라 기대한다. 나 자신 80년대 초부터 근 10년간 KAL 밥을 먹었던 사람으로서 소회가 남달랐으며, 조양호 회장이 자식을 잘 못 가르쳤다며 사과문을 읽을 때는 연민의 정마저 느꼈다. 그리고 당시 잘 아는 동료직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한동안 조중훈 회장의 부암동 자택에 집사로 파견된 말하자면 상머슴 노릇을 하면서 다른 여러 머슴을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대저택이었으니 이런저런 돌보고 관리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하루는 국내산 사과 배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각지로부터 선물로 날아온 온갖 종류의 진귀한 과일들을 박스째로 십여 개나 땅에 파묻으란 지시를 받았다. 어떤 건 밴드도 뜯겨지지 않은 채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창고에서 꺼내 시키는 대로 묻긴 했지만 머슴들로서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집사가 사모님께 넌지시 여쭈었다. “버리시기 전에 저희들에게 나눠주시면 고맙게 얻어먹을 텐데요...” 사모님이 말씀하시기를 “집안으로 들어온 물건을 함부로 남에게 주는 법이 아니라네, 더구나 아랫사람들에게 돌리다니 무슨 그런 당치않은 소리를 하는가” 지청구를 듣고서야 자신의 신분과 분수를 얼른 자각했다고 한다. 그 분위기에서 그런 정경을 보면서 자랐을 당시 초등 3~4학년 쯤인 조현아씨를 떠올려본다. 그에 비한다면 김남주 시인의 외가에서 비록 '애꾸눈'의 어머니지만 아버지에게 넘겨주신 처사는 차라리 ‘박애’의 발로이지 않았을까.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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