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난골族(족)_白石(백석) : 1912~1995

[코보샘]

명절날 나는 엄마 아빠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난 말할 때마다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필을 짠다는
벌하나 건너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新里(신리)고모 고모의 딸 李女(이녀)
작은 李女(이녀)

열 여섯에 四十(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土山(토산) 고모 고모의 딸 承女(승녀)
아들 承(승)동이

六十里(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山(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洪女(홍녀)
아들 洪(홍)동이 작은 洪(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아내, 사촌 누이
사촌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냄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찰떡의 냄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 숟가락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바깥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 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 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마는 엄마들끼리
아랫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공기놀이하고
주사위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火臺(화대)의
사기 등잔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紅鷄
(홍계)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추녀)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와 동서들이 욱적
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냄새가 올라오도록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