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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 개 요****
▩산 행 지 : 팔공산 은해사 산내 7암자 순례 산행
▩일 시 : 2014. 10. 26(일)
▩산행 코스 : 은해사주차장(08:49) - 사랑나무(09:01) - 은해사(09:06) - 서운암(09:12) - 안흥폭포(09:40) - 기기암(09:59) - 능선삼거리(10:19) - 은해능선접속(10:38) - 전망바위(10:50) - 갓바위주차장갈림길(11:13) - 묘봉암(11:29) - 석간수(11:42) - 전망바위(11:51) - 중앙암(12:16) - 극락굴(12:26) - 만년송(12:41) - 중식(12:50~13:29) - 안부네거리(13:56) - 백흥암(14:02) - 안부네거리(14:08) - 운부곡(14:56) - 운부암(15.09) - 신일지삼거리(16:01) - 백련암(16:17) - 은해사(16:21) - 극락교(16:35) - 솔밭식당(16:41)
▩산행 거리 : L= 15.23km (GPS상 거리)
▩산행 시간 : 산행 7시간 52분(산행 평균속도 : 1.94km/h)
▩참 가 비 : 친구와 함께
▩출 발 지 : 08시 00분 ( 성서 우리집)
▩산행 종류 : 원점회귀형 산행
▩산행 날씨 : 산행하기 좋은 선선한 날씨
▩산의 개요 :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본산, 현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 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 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신라의 진표율사는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은해사는 현재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내 8암자
**거조암
거조암은 산내 암자로서 신라 효성왕 2년(서기 738) 원참대사가 창건하였다. 그 뒤 고려 우왕 13년 혜림법사(慧林法師)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 나한을 모신 유서 깊고 영험 있는 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목조 건물로 가장 오래된 거조암 영산전(서기 1375)은 고려시대의 대표적 건물로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등 4곳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문화재가 되고 있다.
영산전이란 석가여래께서 영축산(영취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設)하신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중심으로 지은 법당이다.
이 영산전은 은해사 창건보다 앞서 신라 효성왕 2년(738) 원참조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경덕왕 때 창건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산정 보수 시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우왕 원년(1375)에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조암 영산전을 얼핏 보면 건물 전체가 경판고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으나 건물 내부에는 석가여래, 문수, 보현,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다. 간결하고 단순한 맛배집 건물이지만 내부공간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공간감이 훌륭하다. 또 중앙칸 벽에도 널직한 살창을 두어 조명과 환기의 구실을 하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기둥의 모습을 볼 때도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되어 배흘림(엔타시스)이 특이하고 천장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연등천장으로 되어 주심포계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영산전은 사언화상이 그렸다는 영산회상도와 청화화상이 앞산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들었다는 석가여래와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리고 526분의 나한성중을 모시고 있다.
영산전은 현재 국보 제 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행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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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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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지난주에 은해사 산내 7암자 산행을 하기로 약속을 한 친구를 만나 고속도로에 애마를 올리는데 짙은 박무가 잔뜩 내려앉아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은해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간단한 산행준비를 하고 일주문으로 향하는데 고요한 산사가 내 눈에 들어와 기분이 좋아진다.
매표소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노송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인사를 하고 추색이 내려앉는 가을길을 따라 가니 ‘사랑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쉬엄쉬엄 걸어가니 은해사 안내판이 서있고 교량 건너기 전에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내려서 들어오라는 ‘대소하마비’가 서있다.
보화루 앞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지 않고 돌담을 따라 가니 이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틀어서 좁은 포장길을 따라 가니 얼마 가지 않아 서운암이 나타난다.
초라한 서운암을 뒤로하고 호젓한 길을 이어가니 추색은 짙어만 가고 걸어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더라.
가을을 만끽하며 20여분 걸어가니 이정표가 서있는데 우측 기기암 가는 포장길을 버리고 지척에 있는 안흥폭포를 보기위해 곧장 앞으로 나아가니 안흥폭포가 반갑다고 손짓을 한다.
폭포 앞에서 추억하나 남기고 기기암 옛길을 따라 올라가니 조용한 소롯길이 이어져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15분 정도 올라오니 한적한 산사가 눈에 들어오는데 기기암이라!!!
고즈넉한 산사 풍경이 너무나 멋이 있다.
하룻밤 자고 가도 되느냐고 스님에게 농을 거니 자고 가란다!!!
발길 떨어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추슬러 등로에 접어드니 이내 호젓한 오솔길이 열리더니 은해능선으로 나를 안내한다.
은해 능선에 접어들어 잠시 이어가니 갓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목탁소리가 내 귀를 맑게 하는데, 멋진 전망바위가 나타나 친구랑 막걸리 한통을 비우며 주변 경관에 눈을 맡겨본다.
한참을 놀다가 은해능선을 따라 올라가니 조용하던 등로가 두런두런 사람들 소리가 들리더니 갓바위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연이어 나타난다.
단풍객들도 제법 눈에 들어오고!!!
능선네거리에서 우측으로 틀어 사면길에 들어서니 가을색은 곱게 덧칠을 하기 시작하더라.
깊어가는 가을을 온몸으로 맡으며 소롯길을 이어가니 얼마 가지 않아 묘봉암이 자락을 내보인다.
묘봉암에 오르니 멋진 전망이 터지는데 ‘가을의 진수는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추억 쌓기에 재미를 들여 한참을 놀다가 계단을 타고 올라와 산신각 옆에 있는 석간수 한잔을 마시니 물맛이 너무나 좋다.
불치의 병도 낮게 해준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석간수!!!!
석간수를 뒤로하고 날등에 올라서니 네거리 소롯길이 나타나 우측으로 틀어 내려가니 전망바위 하나가 나오는데 건너다보니 중앙암의 멋진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온다.
추억하나 남기고 사면길을 내려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네거리에서 12시방향의 길과 연결되는 것 같다.
낙엽이 내려앉는 계곡을 건너오니 이내 중앙암 가는 포장길이 나오고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니 바로 위에 중앙암 주차장이 얼굴을 내민다.
주차장을 지나가니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인사를 하고 테크길을 따라 가니 이내 중앙암의 명물 ‘돌구멍’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중앙암에 들어가 ‘천년 해우소’를 들여다보고, 법당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빼 놓을 수가 없어서 주변 조망에 정신줄을 놓는다.
한참을 놀다가 나와 계단길을 올라가니 삼층석탑이 보이고 바로위에 극락굴이 있어 ‘죄를 지었나? 안 지었나?’ 극락굴에 들어가 물어보니 역시 착하게 살았는 게 증명이 된다 ㅋㅋㅋ
극락굴을 나오니 수석전시장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길 정도로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하나하나 구경하려는데 단풍객들이 너무나 많아 ‘만년송’만 구경을 하고 태실봉 능선으로 내려와 버린다.
한참을 내려오다 배가 고파 등로 옆에 앉아 ‘상추 샤브샤브 라면’을 특식으로 먹고 간식으로 막걸리 한잔을 덤으로 먹는다.
널널한 능선길을 내려오니 갈림길이 두어개 나오는데 무시하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니 태실봉 전위봉 앞에 안부네거리가 있어 철조망이 쳐진 우측으로 틀어 내려가니 백흥암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더라.
비구니들의 수행 도량이라 일년내내 문이 잠겨져 있다고 들었는데 역시 빗장을 굳게 쳐져 닫힌 문만 구경을 하고 다시 되돌아 안부에 올라서니 거친 숨만 헐떡인다.
운부암을 가기위해 맞은편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호젓한 오솔길이 계속 이어지더니 갈림길이 어지럽게 나타난다.
좌로 우로 하며 가다보니 계곡을 건너는데 운부곡이라!!!!
가을색은 더해만 가는데 등로는 희미해지더니 잠시 숨어버리고 ㅠㅠㅠ
넝쿨을 뚫고 나오니 임도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운부암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니 좌측에 연이어 등로가 나타나는데 운부곡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곧장 이어갔으면 이 등로와 마주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그마한 소류지 건너 고즈넉이 자리한 산사가 운부암이라!!!
운부암의 멋진 풍경을 이리저리 담아 넣으며 한참을 놀다가 보화루에 올라가니 몇몇 단풍객들이 차를 마시며 한가로움을 느끼기에 우리도 짙은 차를 한잔 마시며 주변 경관을 내려다 보며 가을 정취에 흠뻑 젖어본다.
운부암을 뒤로하고 포장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오니 저 멀리 신일지가 보이고 단풍객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신일지 삼거리를 지나 한참을 내려오니 좌측에 커다란 건물이 보여 좌측으로 틀어서 올라가니 조그마한 백련암 암자가 조용히 앉아 있더라.
발걸음 조심하며 내려와 웅장한 은해사 경내에 들어가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 쌍거북이 안내판을 보고 찾아보니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어 그냥 내려온다.
극락교를 지나니 역시 노송들이 반겨주고 노송사이로 이어오니 일주문이 활짝 웃어준다.
일주문을 나서니 오늘 무슨 행사를 하였는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터덜터덜 내려와 솔밭식당에 들어가 파전 한 접시에 동동주 한 사발을 들이키니 내 마음은 그저 즐겁기만 하더라!!!
▼ 은해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가 별로 없어
호젓한 산행이 되리라 예상이 되어 기분이 좋은데
▼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거리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서있어도
고요한 분위기가 내 기분을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 졸졸 흐르는 개울에는 어린애 둘이서 장난을 치고 있고
▼ 일주문에는 단풍객 몇몇이 서성대고 있더라
▼ 경내에 들어서니 노송들이 고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 한적한 가을길은 추색을 짙게 드리우고 있더라
▼ 길옆에 사랑나무 알림판이 있어
▼ 연리목을 한번 올려다 본다
▼ 은해사 알림판을 지나니
▼ 대소 하마비가 눈에 들어온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무시하고 모두 말에서 내려서 걸어오라는 평등주의가
조선시대 불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는 글귀이다
▼ 다리를 건너며 계곡을 내려다 보니 계곡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오고 있더라
▼ 보화루를 지나 경내에 들어가지 않고
▼ 돌담을 따라 가니
▼ 길이 갈라지는데 서운암으로 가기위해 좌측으로 들어간다
▼ 뒤돌아 보니 추색은 짙어만 가고
**서운암
서운암은 은해사의 말사로 전해지는 사찰 기록이 전혀 없다. 폐사로 남아 있었으나 6.25이후 중건하여 한 분의 스님이 거처하고 있었다. 산령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자그마한 전각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창호는 빗살문살로 짜여져 있으며 안에는 산신상(山神像)만을 봉안하고 있다.
산신은 민간신앙으로 호랑이의 변화신인 산신(山神)을 숭배하던 것을 불교에서 흡수한 경우이다. 산신각은 보통 산의 악귀를 누르기 위하여 가람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다.
정면 4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서운암의 스님들이 머무시는 요사이다. 정면 가운데 두 칸에는 곁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 포장길을 따라 5분 정도 이어오니 서운암이 눈에 들어온다
▼ 서운암 해우소가 앙징맞아 한컷 담아보고
▼ 돌담을 따라 들어가니
▼ 초라한 요사체가 눈에 들어오고
▼ 단촐한 법당은 조용히 앉아 있더라
▼ 서운암을 뒤로하고 포장길을 따라 가니
역시 가을이 짙게 내려오는데
▼ 굽이쳐 오르는 길에는 아름다움이 묻어 나더라
▼ 낙엽이 뒹구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 뻥 뚫린 내 맘은 즐겁기만 하고 !!!
▼ 가을을 느끼며 25분 정도 올라오니 길이 갈라지는데
우측 포장길을 버리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니
▼ 요런 앙징맞은 알림판이 있어 한번 담아보고
▼ 올라가니 안흥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 등로를 잠시 내려와 안흥폭포 한번 담아 넣고
▼ 희미한 계단길을 올라가니
▼ 비렁길로 이어지고
▼ 널널하게 20여분 올라가니 기기암이 다가온다
**기기암
기기암은 애장왕 때 국사로 봉안된 정수(正秀)스님이 816년(헌덕왕 8)에 창건하였고 1546년에는 쾌선스님이 중건하여 안흥사(安興寺)라 하였으며 60여명의 승려가 살았다고 한다. 그 뒤 1823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우로는 요사와 법당을 겸한 건물 1동이 있고, 선방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에 팔작지붕 건물로 근래에 조성되었다.
기기암은 '신기사바 심기극락(身寄娑婆 心寄極樂)'이라 하여 '몸은 비록 사바세계에 있으나 마음은 극락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안한 수행처이다. 현재 선방에는 비구스님들이 참선 정진 중이다.
*당우(堂宇)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법당(法堂) : 절에서 승려들이 부처의 상을 모셔 놓고 불도를 닦으며 신도를 모아 불교의 이치를 가르치는 장소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요사체 : 사찰내에서 전각이나 산문외에 승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잠자고 쉬는 공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또한 기도하러운 불자들이 잠깐 쉬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창고, 우물, 장독, 세탁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한데 모여 있다.
▼ 기기암 표석 한번 담고
▼ 기기암을 올려다 보니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 고즈넉한 산사가 맘에 들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데
▼ 참선중임을 알리는 판대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고치고
▼ 등로를 오르며 내려다봐도 기기암은 멋있기만 하더라
▼ 호젓한 오솔길을 이어가니
▼ 능선 삼거리가 마중을 나오는데 좌로 틀어서 등로를 따라가니
▼ 갈림길이 나오는데 무시하고 곧장 앞으로 나아간다
▼ 한참을 가다보니 멋진 노송이 하나 서있어 한번 보듬어 주고
▼ 널널한 능선길을 이어가니
▼ 은해능선으로 이어진다 우로 틀어서 올라가니
▼ 역시 널널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 솔숲길을 지나가니
▼ 전망바위가 서너군데 있는데
모두들 자기자리에 앉으라고 유혹을 하더라
▼ 요바위가 제일 좋을것 같아
▼ 전망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통을 꺼내 갈증을 풀어본다
▼ 막걸리 한통으로 좋아진 기분을 만끽하며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 좀 웃기는 판대기가 안내를 하길래 한번 웃어준다
▼ 내가 명명한 트위스트 소나무를 지나니
▼ 네거리 소로에 접어든다
지난번에는 좌로 올라와서 곧장 앞으로 나아갔는데
이번에는 우측으로 틀어서 내려간다
▼ 이정표 한컷 담고 내려가니
▼ 멋진 오솔길이 이어지고
▼ 길 주변에는 가을색을 뽐내는 나무들로 성항을 이루더라
▼ 그저 바라만 봐도 즐거운데
▼ 요런 앙징맞은 단풍은 내 맘을 더 흥분시키기만 하고
▼ 푹신한 낙엽은 걷기에는 그만이더라
▼ 잠시 이어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무시하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니
**묘봉암
묘봉암은 833년(흥덕왕 8)에 심지(心地)왕사께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오랫동안 관음기도처와 수행처로 전승되어 오다가 1485년(성종 16)에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중창하였고 1780년(정조 4)에 다시 중창하였으며, 최근에 6·25사변 당시 폐사된 것을 법운(法雲)스님께서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관음기도와 신신기도처로 유명하고 과거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큰절에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은해사 대중스님들이 모두 올라오셔서 산신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산령각 옆 석간수는 불치의 병도 낳게 한다는 신비의 약수로 유명하다.
원통전은 과거 석굴에서 기도를 해왔던 곳으로 석굴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높이가 매우 높아 정사각형의 모양에 가까운데 이는 내부에 큰 돌이 뻗어 있어 그 아래에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하고, 왼쪽 위에 2층을 만들어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기 때문이다.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기도 하다.
▼ 묘봉암이 어서오라 손짓을 한다
▼ 묘봉암에 올라서니 가을은 성큼 다가오고
▼ 아름다운 단풍은 곱게 치장하는데 정신이 없더라
▼ 계단을 따라 올라가
▼ 법당안을 들여다 보니 부처님이 커다란 바위를 이마에 걸치고 있더라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즐거움은 배가 되고
▼ 법당 좌측으로 올라오니 커다란 바위가 법당으로 들어가 있는데
신기해서 한컷 담아본다
▼ 추색이 완연한 묘봉암은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데
▼ 산신각 옆에는 불치의 병도 낮게 한다는 석간수가 있어
▼ 뚜껑을 열고 한바가지 떠서 먹어보니 물맛이 너무나 좋더라
▼ 산신각을 돌아 능선으로 가는길에 등로가 위태롭게 보여
조심스레 지나간다
▼ 네거리 소로가 있어서 우측으로 틀어서 내려갔는데
곧장 앞으로 나아가도 밑에서 만나게 되더라
▼ 전망바위에 올라서서
▼ 가야할 건너편 중앙암을 건너다 보니 너무나 아름답다
▼ 잠시 내려오니 네거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마주치는데
▼ 지류를 건너면서
▼ 골을 올려다 보니 내맘이 그저 힐링이 되고 있더라
▼ 중앙암 주차장을 지나니 안내판이 하나 서있고
▼ 중앙암 가는 길에도 예쁜 색깔이 가득하고
▼ 귀여운 산신각도 눈에 들어오더라
▼ 중앙암 해우소 밑에는 붉게만 물들어 가는데
▼ 한켠에는요런 이정표도 서있는데
**중앙암
중암암은 은해사의 산내암자로서 신라시대 화쟁국사 원효(元曉)스님 (617~686)께서 토굴을 짓고 정진한 곳으로 널리 전해진 곳에 신라 광덕왕 (光德王) 9년 (서기 834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중암암은 팔공산 동편 정상부분 기암절벽에 위치한 천년고찰로서 일명 돌구멍절이라 불리운다.
중암암은 원래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암자로 하여 붙여진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으며 뒤편 암벽 위에는 바위 하나가 위태롭게 놓여 있어 항상 근심 걱정하던 스님께서 기도 하던 중 부처님께서 암자를 구하기 위하여 옮겨주셨다고 전해지는 ‘건들바위’, 만년을 살았다는 만년송, 우리나라에서 제일 깊다는 해우소, 이런 것들이 유명하며 기암괴석이 빼어난 경치 역시 자랑이다. 또한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장군수(將軍水)가 있다.
암자 뒤편 산중턱에는 고려시대 중엽의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 돌구멍 가운데로 들어가니
▼ 앙징맞은 중앙암이 고즈넉히 앉아 있더라
▼ 유명한 해우소를 들여다 보니 문이 굳게 닫혀져 있어
요즘은 사용을 하지 않은듯한데
예전에 올때마다 사용을 했었는데 ㅋㅋㅋ
▼ 이 높은 곳에서 바위사이에서 물이 나온다는게 신기해서 한컷 담고
▼ 지붕아래를 내려다 보니 역시 가을은 깊어만 가더라
▼ 건너편 산자락에서도 추색은 짙어만 가는데
▼ 돌구멍을 다시 빠져 나오니
▼ 바위위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노송이 가여워 한컷 담아주고
▼ 우측 바위로 올라가니
▼ 바로 위에 삼층석탑이 말없이 서있어
▼ 알림판을 한번 읽어 본다
▼ 삼층석탑 위에는 극락굴이 있어
▼ 들어가 보니
▼ 안에는 요렇게 벌어져 끝에는 낭떠러지라!!!
▼ 우측을 들여다보니 너무 좁아 들어가지는 못할것 같고
▼ 위를 쳐다보니 커다란 바위로 덮여져 있더라
▼ 굴을 빠져 나오니 극락굴 입구임을 알리는 알림판이 있고
▼ 나무에 장군수 알림판이 있어 따라 가보니
장군수는 찾을수가 없더라
▼ 삼인암 가는 알림판이 있어 한번 담고
▼ 바위에 올라서니 저멀리 코끼리 봉이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 만년송 알림판을 한번 보고
▼ 바위사이로 들어가 좁은 바위를 비집고 지나가니
▼ 만년송이 천년의 세월을 지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더라
▼ 아기자기한 바위를 구경하느라
삼인암을 깜빡 잊어버리고 그냥 내려오니
▼ 좁은 바위는 틈을 주지않고 나를 붙잡고 늘어지더라
▼ 한참을 내려와 조용한 곳에 터를 잡고
상추 샤브샤브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하고
▼ 막걸리도 한잔 마셔본다
▼ 점심을 해결하고 한참을 내려오니 등로한켠에 이정표가 서있고
▼ 또 한참을 내려오니 우측갈림길이 나오는데
무시하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니
▼ 이정표가 연달아 나타난다
▼ 널널한 능선길을 이어오니
▼ 우측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살짝 틀어 능선길을 고집한다
▼ 한참을 내려오니 안부네거리에 도달하는데
우측으로 틀어서 내려갈려니
▼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데 내가 가지 못할소냐
▼ 잠시 내려오니 버섯 재배하는 듯한데 스님들이 먹나???
**백흥암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 절은 혜철(惠徹)국사께서 861년(경문왕 1년)에 착공하여 873년에 완공하였으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송지사(松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546년(명종 1)에 백흥암으로 개칭하였고, 1651년(효종 2)에 중건하였으며, 1677년(숙종 3)에 중수하였다. 1730년(영조 6)에는 보화루(寶華樓)를 중건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청봉이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한때 수백 명이 수도하였다고 하며, 규모도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영산전·명부전(冥府殿)·문루(門樓)·산신각(山神閣)·선실(禪室)·원주실(院主室)·요사 등이 있다. 백흥암에는 보물 제790호 극락전(極樂殿)과 보물 제486호 극락전 수미단(須彌壇)이 있다.
▼ 백흥암에 도달하니
▼ 역시나 문은 굳게 닫혀져 있는데
▼ 옆문도 역시 굳게 잠겨져 있더라
▼ 아쉬운 맘 뒤로하고 노란 단풍 한번 올려다보고
▼ 왔던 길 다시 되돌아 올라가니
▼ 안부 네거리는 말없이 기다리고 있더라
같이 간 친구는 별것 없다고 입만 삐죽거리고 ㅎㅎㅎㅎ
▼ 낙엽길 따라 내려가니
▼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틀어서 내려가니
▼ 또 다시 갈림길이 !!!
이번엔 우측으로 틀어서 내려간다
▼ 네거리 소롯길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좌측으로 틀어서 이어가니
▼ 지류를 건너게 되고
▼ 바로 지척에 갉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틀어서 이어간다
곧장 앞으로 나아가면 운부암 소류지로 이어질 것같더라
▼ 잠시 이어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임도가 가까이 있어
좌로 틀어서 가니 갑자기 등로가 덩쿨속으로 숨어버린다
▼ 덩쿨을 뚫고 나오니 임도가 기다리고 있는데
▼ 임도를 따라 터덜터덜 내려오니 삼거리에 도달한다
좌로틀어서 올라가니
▼ 두번째 갈림길에서 좌로 가면 이어질것 같은 등로가 연결되고
▼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며 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너무나 맑게 들리더라
▼ 첫번째 갈림길에서 좌측길이 연결되는 등로가 보여
신중하지 못한 내 자신이 밉게만 보인다
**운부암
운부암은 711년 성덕왕 10년에 의상 스님이 창건하였다. 천년 전에 창건할 당시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났다고 하여 그렇게 명명되었다는 운부암은 어쩌면 면벽참선 (벽을 향하여 앉아서 수도하는 방법)하는 수도 방법을 통하여 속세의 모든 영욕을 저 뜬구름에다 비유하고 스스로가 해탈하는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승려들의 계명(戒銘)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 뒤 관음기도 도량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1860년에 화재로 소실되자 옹허스님과 침운스님이 중건하였고 1900년에 보화루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운부난야(雲浮蘭若)가 있고 오른쪽에 우의당(禹義堂)이 있으며 앞쪽에는 보화루가 있다. 원통전 안에는 보물 제 514호인 청동보살 좌상이 있다. 금동장식의 화려한 이 불상은 신라 말에 혜철국사가 인도에서 해금강으로 들어오는 배 안에서 모셔왔다는 전설이 있다.
아무튼 이 암자에는 근년에만 하여도 조계종의 종정을 역임한 바 있는 동산선사와 운봉선사와 같은 고승들도 지나갔을 만큼 매우 유서 깊은 수도장임이 분명한 듯하다.
*원통전 : 관세음 보살을 주불로 모신 사찰 당우로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관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 나무사이로 보이는 운부암 전경이 너무나 아름다운데
▼ 표석 한번 담아보고
▼ 달마상이 내려다 보는 풍경도 한번 담아 본다
▼ 불이문을 통과하여
▼ 계단길을 올라가니
▼ 고풍스런 보화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 원통전을 구경하고
▼ 보화루에 올라가 차를 한잔 마셔본다
▼ 암자에 와서 먹어보기는 처음인데
향이 너무나 좋더라
▼ 이 북 이름이 뭐라 하더라????
▼ 보화루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데
▼ 보하루 문 사이로 내려다 보는 풍경 또한 좋더라
▼ 운부암을 뒤로하고 포장길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니
▼ 계곡에서는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더라
▼ 흐르는 물소리는 정겹기만 한데
▼ 흘러흘러 신일지에 들어 가더라
▼ 신일지 삼거리에 도달하여 이정표 한번 훓어 보고
▼ 인종 태실 알림판도 한번 읽어 본다
▼ 태실 이정표 한번 보고 등로를 한번 올려다 본다
▼ 밝게 빛나는 가을길 속으로 들어가니
▼ 곱게 칠한 단풍이 반가움을 표하고
▼ 은해사 가까이 와서 마지막 7암자 백련암을 보러 좌측을 틀어서 들어가니
▼ 능인중고 개발지 표석이 서있더라
**백련암
백련암은 일제말 항일학생운동의 본거지이자 대구 능인 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오산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자연석을 쌓아 축대를 만든 이후에 초석을 두어 기둥을 세운 정면 7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이며, 근래에 조성되었다. 처마 밑에는 2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백련암에는 현재 삼국유사와 일연스님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에 따른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일연학연구원이 자리하고 있다.
▼ 참선중인 백련암을 조용히 들여다 보고
▼ 내려와 은해사 경내로 들어간다
▼ 오래된 향나무를 한컷하려니 연등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아쉬운 맘 뒤로하고
▼ 극락보전 한컷으로 대체를 한다
▼ 스님 한분이 사자 닮은 개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개 이름이 뭐더라????
▼ 박물관 건물도 한번 훓어 보고
▼ 예쁜 단풍도 한번 담아주고
▼ 담 넘어 단풍도 한번 담아 본다
▼ 쌍거북 바위 알림판을 한번 읽고
▼ 들여다 보니 거북이는 어딜 갔는지 흔적도 없더라
▼ 넝쿨 단풍이 너무 예뻐 한번 담아 보고
▼ 극락교를 지나 오니
▼ 노송들이 친구왔다고 나를 반기더라
산내 8암자 중 거조암은 여러번 갔던 곳이라 패스하고
일주문을 나오니
▼ 많은 단풍객들이 오가는데
▼ 솔밭 식당에 들어가 파전 한접시에 동동주 한잔으로
기분 좋은 하루룰 마감한다
첫댓글 예전에 동봉에서 갓바위로 내려오다가 은혜사를 내려와 다시 백흥암으로해가 올라서니 무슨 기맥이라고 쓰져있던데,예휴~그때혼자서 얼매나 걸었던지,,,,혼자산행하는 재미도 쏠솔하지요,,,보기 좋습니다,
정기 산행에 가지도 못했는데 변함없는 회장님의 사랑에 그저 감사할뿐입니다
덕룡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