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통의 유효기간은? / 용수 스님
우리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면 괴로운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불교에서는 감정을 공성(空性)이라고 한다. 보이지만 실체는 없다.
별게 아닌데..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냥 감정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몰라서 화가 올라오면 두 가지 반응을 한다.
1. 분노를 표출한다.
대부분의 감정은 생각과 함께 올라온다.
분노가 말한다. "아! 저 나쁜 놈,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무 억울해!
세상에 어떻게 저런 놈이 있지?"
그러면 습관적으로 분노의 생각을 무심코 믿고 따라간다.
분노에 빠져서 화를 내고, 분노가 시키는 대로 한다.
"Yes, Sir! 맞아! 저 사람, 너무 나쁜 놈이야!"
분노가 "저 나쁜 놈, 가서 한 마디 해 봐!" 시키면
"Yes, Sir! 네, 알겠습니다."
"가만있지 말고 소리라도 질러 봐!" 시키면
"Yes, Sir!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분노가 시키는 대로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무엇을 던질 수도 있고, 심지어 사람을 때리거나 죽일 수도 있다.
영어에 'Anger is Blind'라는 표현이 있는데,
분노는 우리를 눈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를 내고 나면 어떤가? 창피하더라, 후회 되고..
그렇지 않으려면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화가 날 때 얼른 알아차리고 멈추어야 한다.
알아차림 연습을 해도 처음에는 알아차림이 좀 늦게 온다.
화를 낸 다음에 알아차린 다거나..
왜 그런가 하면 분노의 힘은 아주 강력하고,
알아차림의 힘은 아직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을 계속하면.
분노가 딱 일어나는 순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분노하고 친해졌기 때문에 분노를 얼른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안녕! 친구 왔구나~"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분노를 만나면 당황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마음의 원리를 몰라서 그렇다.
마음의 원리를 배우면 분노와 친해질 수 있다.
2. 억지로 참는다.
분노가 말한다. "아! 저 나쁜 놈,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무 억울해!
세상에 어떻게 저런 놈이 있지?"
그러면 그 말을 상대를 한다. 분노를 싫어한다.
"안 돼! 자비심을 가져야 돼! 나는 스님이잖아!"
분노가 또 "그래도 너무 나쁜 놈이잖아!" 그러면 "안 돼! 나가!"
"아니, 너무 심하잖아!" 그래도 "아냐, 안 돼! 나가!"
이런 식으로 분노와 싸운다. 분노를 억누른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분노가 좀 가라앉을 수는 있는데..
다음에 올라올 때, 똑같은 상황이 주어질 때는 어떨까?
우리가 분노를 내쫓았기 때문에, 억눌렸기 때문에..
더 쎄게 올라온다.
우리나라는 유교전통의 영향으로 화를 참는 경우가 많은데
안 좋다. 홧병이 생기고, 언젠가는 결국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분노와 좀 더 친절하고 유익하고,
좀 더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
3. 분노를 바라보고 허용한다.
이것은 양극단을 여읜 중도의 방법이다.
한쪽은 분노를 따라가고, 분노의 노예가 되고
한쪽은 분노를 싫어하고, 분노와 싸우고 억누르지만..
이 방법은.. 이것은 밍규르 린포체께서 보여주신 건데,
분노가 말한다. "아! 저 나쁜 놈,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무 억울해!
세상에 어떻게 저런 놈이 있지?"
그러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어 준다.. "안녕!"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너무 심하잖아!" 그래도 "안녕! 분노^^"
"아! 소리라도 좀 질러봐" 그래도 "안녕! 분노^^"
"뭐라도 좀 해 봐!" 그래도 "안녕! 분노^^"
분노를 바라보라. 그래야 분노에 대해서 알게 된다.
분노의 좋은 점도 있는데,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쉽다는 점이다.
분노를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생각을 바라보면, 생각은 가라앉는다. 이것이 알아차림의 힘이다.
그러면 화 잘 내던 사람이 화 덜 대는 사람으로 되고
나중에는 화를 전혀 안 내는 사람으로 될 수도 있다.
나는 분노하고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화가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화가 올라오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감정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는 화가 나야 할 때는 화가 안 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성불할 때까지 화는 나겠지만
다만, 그 대신에 분노를 잘 맞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달라이라마 존자님도 화가 날 때가 있다,
하지만 분노에 휩쓸리지는 않는다. 화를 내지는 않는다.
분노를 알아차리다 보면 분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마치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분노와 맞닥뜨려도
당황하지 않고.. 훨씬 더 잘 오고 가게끔.. 허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원리를 알면 고통의 유효기간이 확 줄어든다.
많은 이익이 있는데,
이러한 것은 짜증이나 슬픔..
어떤 감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출처: 불교는 행복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