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여행2 - 몰타 공항에서 X4 버스를 타고 발레타에 도착해 성 안으로 들어가다!
2024년 5월 9일 아테네 공항 인근 숙소에서 새벽 5시 반에 다른 손님들 까지 포함해 6명이
탄 승합차는 25분 만에 아테네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한후 보안검색을 하고
들어가는데 그리스와 몰타 모두 EU에 셍겐조약에 가입한지라 별도의 출국 수속은 없습니다.
아게안 항공 비행기는 07시 30분에 출발해 1시간 45분을 비행해 몰타 루카 국제공항 Malta
Luqalnt. Airport (MLA) 에 도착하는데 역시 셍겐조약국으로 여권 검사 없이 입국해
공항교통센터에서 21유로 하는 텔린아 카드 Tallinja Card 4일권 Explore Flex 을 구입합니다.
공항을 나와 길을 건너면 버스 정류장 Malta Public Transport 으로 보통 많이 숙박하는 슬리에마는 A2 정류소
에서 X2 버스를 타지만 우리는 수도인 발레타로 가는지라 A1 정류소에서 X4 번 버스 탑승하니 30분후
입구인 플로리아나 Il-Furjina 를 지나 곧 종점인 발레타 Valletta (Independence Monument) 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발레타 입구가 수많은 관광객들로 너무 복잡한지라 버스는 정류장 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내려서 조각과 나무들이 우거진 거리를 걸어 들어가는데....
버스는 2~3분을 더 가서 3군데 정류소 중에 가장 안쪽 정류소에서 다시 공항으로 출발합니다.
뒤쪽에는 교회가 보이니 St. Publius Church 이며, 나무와 조각들이 늘어선 몰 정원 The Mall Garden
거리를 걸으니..... 조각상 중에도 멋진 것이 독립기념비(Independence Monument) 인가 봅니다.
몰타는 1964년 9월 21일 영국에서 독립한 날을 기념하는데....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플로리아나 Floriana 의 시작점에 위치하는데, 여성이 머리 위로 깃발을
쥐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여인은 승리의 여신 니케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문득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가 동아일보 ‘강인욱의 세상만사 기원’ 이라는 칼럼에 쓴 “총-칼-활 든 여전사들”
이라는 글이 떠오르는데..... 최초의 강한 ‘여전사’ 라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인국 ‘아마조네스’ 가
먼저 떠오른다. 브라질의 광활한 밀림과 거대 인터넷 기업의 이름으로도 유명한 아마존의 여전사는 실재했을까.
아마존 여전사는 호메로스 ‘일리아드’ 부터 헤로도토스 ‘역사’ 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 기록에서
널리 등장하니, 현재 흑해 연안의 스키타이 기마민족인 사르마트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즉, 말을 타고 화살을 쏘는 여성 기마부대인 셈이다. 여성 부대라는 점은 수많은 억측과 오해를
낳았는데, 화살을 쏘는 데에 걸리적거린다고 한쪽 가슴을 자른다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아마존’ 이라는 단어를 ‘가슴이 없다’ 는 뜻으로 오해한 데에서 기인한
것일 뿐 전혀 근거가 없다. 가슴을 살짝 동여매는 정도로도 충분한데
굳이 잘라낼리는 없다. 이 전설이 널리 퍼진 이유는 기마인들에 대한 공포가 반영된 것이다.
20세기 들어서 흑해 연안 일대 스키타이 기마민족의 무덤터에서 1990년대까지 120개의 여성
전사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무덤 평균 3개 중 1개꼴로 남자들이 사용할
법한 무기와 갑옷이 부장된 경우도 있었다. 여성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무장한 전사였다는 뜻이다.
여성 전사는 시베리아 일대에서도 속속 발견되었다. 1988년에 러시아 남부 시베리아에서 발굴된 2600년 전
전사도 12∼13세 정도의 여성으로 재판명되었다. 이 여전사의 무덤에는 1m 가 넘는 활과 70cm 의
도끼 등 완전한 군장이 갖춰져 있었다. 반지나 목걸이 같은 장신구는 전혀 없는 완벽한 ‘남성’ 의 무덤이었다.
유목민들은 10대부터 전사로 활약했고 20세 전후 전사해서 묻혔다. 10대 중반에 죽는다면 2차 성징이
뚜렷하지 않아서 인골만으로 남녀를 구분하기 어렵다. 흑해 일대뿐 아니라 중국 북방
만리장성에 이르는 유라시아 초원에서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전사의 역할을 수행했음이 밝혀졌다.
단, 여전사 부대를 여인국인 아마조네스와 혼동해선 안 된다. 실제로는 남성 전사의 비율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남성이나 여성 중 한쪽 성별로만 사회를 이루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정상적인 자손의 번식도 어렵다.
총, 칼, 활을 든 여성 전사들은 세계전쟁사에 무수한 활약 기록을 남겼다. 2차대전 때 소련군은 여성 스나이퍼
부대를 양성해서 엄청 큰 성과를 거뒀다. 17세에 참전한 것으로 알려진 니나 알렉세예브나 로콥스카야.
유목민 사회 인구는 정착민 사회와 비교해 몇십분의 일에 불과하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전사로 참여시킬 수밖에
없었다. 또한, 활과 기마술은 여성에게도 불리하지 않다. 말은 빠르지만 지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사가
가벼울수록 유리했다. 그리고 고삐를 잡고 활을 쏘는 건 정교함이 필요한 작업이라 여성도 장점을 살릴 수 있었다.
살아 남은 초원의 여전사는 결혼하고 육아에 힘쓰면서 또 다른 전사를 길러냈다. 당시 유목민들은 인구가
적기 때문에 출전할 때는 모든 전사가 동원되고 본거지에는 아내와 노약자들이 남아
목축 동물을 지켰다.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본거지를 급습하고 목축동물을 약탈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용맹한 전사 출신의 엄마들은 마치 예비군처럼 칼을 들고 무장했다. 자기 자식과 가족들에게
칼과 화살을 겨누는 적들을 향한 엄마 전사들의 처절함과 용맹함은 상상 초월이었을 것이다.
이런 ‘엄마부대’ 로 구성된 유목민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아마조네스라는 전설에 일조했을 것이다.
페르시아 성군 키루스 2세 (기원전 585∼529?) 는 구약 성경에서 바빌론의 유대인을 해방한 ‘고레스’ 왕으로 더
유명하다. 이 키루스 2세는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스키타이계 부족 여왕 ‘토미리스’ 와 전쟁 중에 전사했다.
그녀는 당시 세계를 평정한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에 맞설 정도로 용맹했고, 상대의 왕을 노릴 정도로 과감했다.
여장부는 고대 중국에도 있었다. 문화혁명이 끝나가던 1976년에 발굴된 상(商) 나라 무정(武丁)
의 부인인 부호 (婦好) 묘에서는 16명의 순장 인골과 청동기 460여 점이 발굴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왕비의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전쟁에서 실제로 앞장 서는 장군 역할을 했다.
상나라 시절 왕은 샤먼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며 밤에 술을 마시고 제사를 지내며 측근인 정인(貞人)들과 점을 치며
정사를 했었다. 반면에 부호는 최대 1만 3000명의 군인을 인솔하던 장군이었다. 부호의 무덤에서 수백점의 복골
이 발견되었으니, 낮에는 전쟁에 앞장서고 밤에는 점을 치고 제사를 지내며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역할도 한 셈이다.
베이징 근처에서도 3000년 전 전차를 직접 몬 여장군의 무덤이 발굴됐다. 여성들은 주로 점을 치는
사제의 역할을 했다고만 알려졌는데..... 실제 장군의 역할도 했음이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흑해 연안 스키타이 기마민족의 인골을 분석한 결과 두개골이 비대해진 흔적이 많았다. 이것은
호르몬 이상인 모르가니- 스튜어트- 모렐 증후군의 결과인데, 여성이라면
남성적인 특성이 강하게 발현된다. 기마민족들은 이런 여성들을 군사력으로 적극 이용한 것이다.
최근 고고학과 역사의 성과로 여전사의 증거는 세계 곳곳에서 더욱더 많이 확인되고
있다. 한국과 이웃한 여진족에도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들로 구성된
용맹한 여전사가 있었다. 이들은 넷플릭스 영화 ‘킹덤: 아신전’ 의 모티브로도 등장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여성 전사나 여인국에 대한 믿기 어려운 흥미 위주
풍문이 넘쳐난다.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정착민들이 여성 전사
의 존재에 여성에 대한 신비로운 환상을 덧입혀 이야기를 부풀렸기 때문이다.
‘여성 전사’ 에 대한 환상엔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남성중심사회의 선입견도 영향을 미쳤다. 중세 프랑스를 구한
오를레앙의 처녀 잔다르크가 화형당한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남자의 옷을 입었다” 는 것이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을 사살한 소련의 여성 스나이퍼 무용담에서 그들의 용맹함은 결국 가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러고는 Christ the King 교회를 지나 오른쪽 도로 멀리에는 War Memoral 인 것 같고
오른쪽에는 Commonwealth Air Forces Memoial 인 모양이며 곧 트리톤 분수
Triton Fountain 가 나타나는데..... 이건 참 엄청 큰 분수라 물이 쏘아지면 볼만하겠습니다.
트리톤 파운탱 분수 (Triton Fountain ) 는 1959년 몰타의 조각가 빈센트 아펩이 디자인
했다고 하는데, 플래터를 돌고 있는 신화 트리톤 청동상 3개로 구성되니
하나는 무릎을 꿇는 등으로 균형을 이루는데 밤에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데이트 장소라고 합니다.
큰 광장으로 무대가 설치된 것을 보니 공연이나 아님 바자회라도 하는가 싶은데 다음날 보니 아침에 벼룩시장이
열리는걸 보게 되는데, 오른쪽으로는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왼쪽에는 인포메이션 센타 Information Office
Valletta 가 있으며 해자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육중하게 구축된 성벽을 통과해 발레타 시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발레타 성벽이 워낙 견고하고 높은지라 절벽에 걸친 다리를 지나면 성문인 Valletta City Gate
(Triq Ir-Repubblika 시티 게이트 )를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가니 사시사철
전 세계 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아 복잡한데..... 로열 오페라하우스가 볼만합니다.
그리고 새 의회 New Parliament 는 렌조 피아노에 의해 발레타 게이트 프로젝트의 일부 로 천년의 시간과
현대가 공존하는 주제로 설계되어 의히 역사를 보여주는 상설 전시회가 0시 ~16시 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1565년에 성 요한 기사단이 유럽에서 최초로 계획도시로 만든 어퍼 바라카 정원 Upper
Barrakka 에서는 The Saluting Battery 라고 해서 매일 12시와
4시에 대포를 쏜다고 하는데..... 아직 시간이 이른지라 시내를 먼저 둘러 보기로 합니다.
배낭을 멘채 시내로 들어가서는 도무스 자미텔로 호텔 Domus Zamittello
을 지나..... 그 왼쪽에 5D 영화관 Malta 5D Theatre 를 봅니다.
극장에서는 움직이는 좌석에다가 에어 블래스트, 워터 스프레이 등으로 17 가지 언어로 환상적인
3차원 쇼 형태로 몰타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수 있으며 입장료는 10 유로라고 합니다.
거리를 게속해 걸으면 고고학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rchaeology 으로
7천년전 부터 몰타섬에 살아온 사람들의 발자취와 흔적을 전시한답니다.
틸멘시엔 사원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의 단검과 사원은 기원전 3천년전의 유적이며...
그랜드 살롱의 화려한 장식이 볼만 하다고 하며 그 옆에는
국립 미술관이 있는데 되돌아와서 바다쪼긍로 나가니 De Valette Square 광장입나다.
몰타는 1798년에 이집트를 점령하려 가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었고 2년 뒤
이집트 에서 나폴레옹을 몰아낸 영국이 탈취하여 1814년 부터
영국 영토로 2차대전 기지로 활용되다가 1964년 독립하였으며 영국연방에 속합니다.
몰타섬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으니.... 선사시대의 무덤인 하이포게엄(Hypogeum), 신석기시대
사원, 바로크풍의 수도 발레타(Valletta) 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몰타는 1964년에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후에는 공산권과 도교류했으며 1983년 오랜 역사를
지닌 가톨릭 교회 재산 상당수를 몰수하기도 했으나 1987년 부터는 친서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협정에 의한 비자 면제국으로 2007년 현재 7명의 한국민 교민과 205명의
유학생등 체류자가 있다고 하는데...... 영어 어학 연수로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몰타에서는 여름에는 와인 축제와 음악 축제가 열리며.... 9월 29일 발레타 비앙카 축제가 개최되고, 점심때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시에스타가 있으며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제외한 가게는 7시면 문을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