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가 그린 '발전'의 실체
: 2023년 역사문제연구소 정기 심포지엄 <한국적 관점에서 본 발전의 지구사> 참관기
이준영(역사문제연구소)
지난 11월 25일, 관지헌에서 2023년 역사문제연구소 정기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번 정기 심포지엄은 역사문제연구소 1950·60년대 연구반에서 지난 1년 간 토론해 온 주제를 학술발표회의 형태로 학계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관지헌에는 참가자 30여 명이 좌석을 전부 메웠다. 아래에서는 발표 순서대로 원고 내용소개와 더불어 필자의 인상기를 간략하게 남겨보기로 한다. 그 전에,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감상이므로 발표·토론자의 견해나 역사문제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음을 독자들께 알려드린다.
이날 학술회의가 기획된 취지에 대해서는 총론 발표를 맡은 이동원(서울대)이 '현대 한국 발전주의 연구의 성과와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이에 따르면 서양어 Development의 번역어인 '발전'은 오늘날 사회적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했다고 여겨질만큼 우리에게 당연한 명제가 되었다. 그러나 1949년 트루먼 취임연설 '네 번째 항목(Point Four)' 이후, '발전'은 저발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경제성장'의 의미만을 갖게 되었다. '네 번째 항목'은 이후 발전 국가가 저발전 국가를 '원조'하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는데, 이는 저발전 상태가 과거 식민주의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동시에 제3세계 혁명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입안된 것이었다.
이러한 '발전', '발전주의'에 관한 연구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근대화'에 관한 연구로 구체화되었다. 근대화 연구는 미국의 대한원조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한국 내부의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전개된 역사적 국면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하는 문제와 결부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승만 정권기를 '원조경제'로, 박정희 정권기를 '개발독재' 또는 '발전국가'로 규정하는 일련 논쟁과도 연관된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주의적 한국사 인식은 미국의 국제원조·개발 정책의 성격 및 역할 변화를 간과하게 되며, 시기별로 상이한 원조의 유형과 작동방식을 포착할 수 없게 했다. 따라서 향후의 한국 발전주의 연구는 미국의 대외원조사는 물론 지구사적 관점을 염두에 두고 그 구체적인 궤적을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제1부 발전주의의 한국적맥락 : 후진성 극복 모색>의 제1발표자인 박정근(진실화해위원회)의 연구는 <1960년 전후 한국 언론과 정계의 이집트 혁명 인식과 전유>를 주제로 1960년대 미국식 발전론에 대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비판 담론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제3세계 인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 발표자는 1963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박정희와 윤보선이 보인 상이한 이집트 혁명 인식의 기원을 추적함으로써 1960년 전후 한국 근대화론 분화의 구체적 측면을 드러냈다. 토론을 맡은 홍정완은 인용된 사료의 해석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가운데, 박정희와 윤보선 뿐만 아니라 혁신계 등의 이집트 혁명 인식에도 주목해줄 것을 주문했다.
제2발표자인 이준희(연세대)는 현대 한국 발전주의 연구에 있어서 큰 공백을 이루고 있는 사회주의권의 발전 담론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시도로서 <1950년대 북한 상업 노동자의 '후진성' 극복과 '봉사성'>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사회주의 공업화 시기 상업노동자의 후진성 극복 노력이 자본주의적 봉사성 추구로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북한의 상업을 통해, 사회주의권 역시 제1세계를 상호 의식하는 가운데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실제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었음을 보여주는 사례 연구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토론을 맡은 조수룡(국사편찬위원회)은 당대 북한의 상업 정책을 보다 내재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며 북한 내부 통계자료 인용과 북한사 학계의 개념어 사용에 있어서 제기될 수 있는 논쟁점을 환기했다.
이어 <제2부 발전주의의 사회·기술적 실천>의 첫 번째 발표자이자, 제3발표자인 최혜린(서울대)은 <1950~60년대 한국생산성본부의 활동과 국제기술원조>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발표문은 한국생산성본부의 창립과 활동을 국제 기술원조, 생산성향상운동의 맥락에서 살펴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는 일본과 밀접하게 연결된 아시아생산성본부의 존재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어 지구적 원조체제와 더불어 지역적 맥락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들 던져주고 있다. 토론을 맡은 이봉규(연세대)는 생산성본부 초기 한국과 미국의 갈등 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이 시기 한미 간 '발전'을 둘러싼 접근방식의 차이에 대해 더 강조해줄 것을 주문했다.
제4발표자인 한봉석(부경대)은 <발전이라는 타인의 꿈 - 냉전 기술원조의 구성요소로서 여성노동에 대해 : 록펠러 재단의 개입이 지니는 의미를 중심으로>를 통해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주도한 해외원조가 사실은 록펠러 등 사기업 집단이 적극 개입한 수 백개의 개별사업으로 구성된 기획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는 가운데, 또한 그것이 '저개발국' 상호간의 경험을 참조하는 과정에서 전개된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여기에 더하여 돌봄노동 및 임상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통해 위와 같은 해외원조 프로젝트 배후의 구조를 설명하고자 했다. 토론을 맡은 김상현(서강대)는 영양교육사업과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비가시화된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시도는 긍정적이나, 이를 기존의 이론적 논의와 보다 엄밀하게 조응시킬 필요성에 대해 주문했다.
제5발표자인 권혁은(안동대)은 <반공의 근대화? 1950-70년대 유선전화 발전과 113 간첩신고 전화>를 표제로 미국의 개발원조가 한국과 같은 제3세계 치안 및 반공 근대화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규명하는 가운데 '발전'이 '국가폭력'과 맺는 관계, 즉 '반공의 근대화'라는 냉전의 지구사에 대한 문제의식에까지 가닿고 있다. 또한 이 연구는 '반공의 기술적 조건'이라는 기술사적 문제의식과도 연관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토론자 김상현(서강대)은 기술에 내재한 특성과 파급력이 기존 현실과 조응하거나 전유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기술사의 문제의식을 보다 강화해 줄 것을 주문했다. 또다른 토론자 이봉규(연세대) 역시 반공기술의 근대화가 그 너머의 사회와 주체를 향한 변화를 어떻게 야기했는지에 대해 주목해줄 것을 요청했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이루어진 종합토론에서 좌장 이상록(국사편찬위원회)은 한국 발전주의 연구가 지성사·사상사적 접근을 넘어 남북을 아우르고 사회·기술적 맥락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서두를 장식했다. 이어 그는 발전의 지구사는 미국이 제3계로 송출하는 원조의 일방향성만이 아니라 제3세계의 주체들이 보여주는 자율성과 상호작용, 그리고 쌍방향성(혹은 3개의 방향성)에도 주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발표자들과 토론자들은 이번 심포지움의 대주제인 발전의 지구사라는 문제의식과 해당 발표의 연관성을 다시금 상기하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종합토론의 문제의식을 거칠게 요약해보면 한국의 발전주의 연구는 원조의 발신자와 수신자, 양자 모두의 복잡성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로 논의가 모아졌다. 즉 냉전기 미국의 대외원조 정책 변화와 실상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는 가운데, 1950-60년대 제3세계주의 혹은 탈식민주의 맥락과 떼어 놓을 수 없는 한국 내부의 자기동학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수신·발신의 관계로는 포착되지 않는 아시아와 남미 등 제3세계 내부에서 이루어진 상호참조, 그리고 제1세계와 제2세계 사이의 대쌍관계와 상호의식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번 2023년 역사문제연구소 정기 심포지엄 <한국적 관점에서 본 발전의 지구사>는 지구적 관점의 냉전사, 미국 대외원조 정책사, 반공의 기술사 등 필자로서는 따라가기조차 벅찬 다양하고 넓은 주제들을 넘나드는 발표와 토론의 향연이었다. 이번 심포지엄이 열린 장소인 '관지헌'에서 유망한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의 발표를 관지(觀知, 지식을 지켜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사의 특수성을 규명하려는 가운데 냉전사·기술사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아우름으로써 그 역사상의 보편성을 획득해 나가려는 토론 과정 역시 종합학문으로서 역사학이 지닌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오랜시간 공들여 연구해온 결실을 나누어 준 역사문제연구소 1950·60년대 연구반에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역사문제연구소> 뉴스레터 제18호 2024.1.5에서 가져왔습니다.